1217 Koryo III Corps RAW novel - Chapter 164
164. 항주 단상(6)
“왜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올여름에 여기 역병이 돌아서 이 일대가 모두 몰살을 했습니다.”
아하, 이런.
이 시대의 전염병은 정말 무섭다.
제대로 된 약이 없는 이 시대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면 수백, 수천이 떼죽음을 당한다.
그나마 현대처럼 교류가 원활하지 않아서 전국으로 번져 가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고 봐야 한다.
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이 없고, 병이 발생한 원인을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교류까지 활발하면 번져 나가는 것은 순식간일 것이다.
“그럼 주 장군의 가족들은 한 명도 산 사람이 없습니까?”
“누군가가 살아서 이곳을 벗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임안도 명주도 지척에 있어서 즉시 모든 출입이 막혔지요. 그러면서 이곳 사람들은 아무도 밖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없다고 봐야겠지요.”
하긴 전염병이 전단강 건너에 있는 현재 남송의 수도인 임안으로 번져 나갔으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죽어 나간다고 봐야 한다.
“그럼, 노인장께서는 여기에 언제부터 있었습니까?”
“이 지역에 역병으로 죽은 시신을 치우는데 동원되었다가 다 끝나고, 아무도 이곳에 와서 살려고 하지 않아 소인이 여기 눌러살게 되었습니다.”
이 동네 와서 일하다가 빈집이라 눌러앉았다는 소리다.
하긴 전염병이 휩쓸고 간 곳에 누구인들 안심하고 들어오려나?
이 인근이 전멸이면 추가적인 내용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웃들이 다 사라져 버린 꼴이니.
그래서 드론으로 확인하는데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양세에게는 뭐라고 하지?
아나이스에게 역병의 발생 여부를 확인해 보고,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더 이상 조사할 필요가 없다.
“백화 상단은 어쩌실 것입니까?”
돌아가는 길에 서윤이 물었다.
어제의 사달이 백화 상단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니 대응을 할 거냐 하는 질문이다.
“이번에는 모르는 체하고 그냥 가자고. 자신들이 사주해서 생긴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밝혀내지 못한 것처럼.”
“그놈, 그래서 죽이라 하신 거군요?”
“응. 맞아. 혹시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백화 상단에서는 비교적 안심하고 있겠지?”
“네.”
“요즘 백화 상단이 조금씩 회복 중이라고 하니까, 조금 더 기를 펼 때까지 그냥 두자고. 그리고 조금 더 회복되어서 이제 괜찮아졌다고 안심할 때, 죄를 묻자.”
“네, 다음에 올 때까지 상단이 좀 더 발전해 있으면, 더 가슴이 아프겠지요.”
“그래, 그래야 무너뜨리는 재미도 있고. 그런데.”
“그놈 말이죠?”
“광주에 가실 계획은 없나요?”
“그놈을 만나기 전에는 당분간 생각 않고 있었는데, 가 봐야 할 것 같아.”
“그럼, 좀 내버려 두죠.”
“그럴까?”
“네, 그동안 또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그놈에게 욕을 당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서두를 건 없죠. 타지에서보다 자신의 성에서 당해야 더 쓰라릴 테고, 부수는 재미도 있죠.”
홈그라운드에서 깨지면 더 화가 날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한서윤을 보았다.
한번 쳐다보면 눈을 돌릴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상산에서의 왜구나 항주에서 우리를 죽이려 하던 놈들같이 적이라 생각되면 손에 인정을 두지 않는 강력한 전사이다.
그런데 그냥 저렇게 가녀리게 있으면 남자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이라니.
금박 옷, 그놈은 조씨 성을 갖고 있고 광주에 산단다.
송나라 황제의 성씨가 조씨다.
***
“구경은 잘 하셨습니까?”
“네, 대장님 덕분에 평생에 해 볼 수 없었던 일을 해 보았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사포로 돌아가는 길.
안혜 황후는 정말 기분 좋은 얼굴이었다. 이제 돌아가서 푹 쉬는 것만 남았다.
그것도, 21세기 식의 편리한 주택인 귀빈관에 가서 쉴 것이다.
바람도 없고, 바다는 잔잔하여 배는 흔들림이 없기에 황룡호의 선상에 파라솔을 펼쳐 놓고 앉았다.
개경 손님이 품에 황자를 안고 앉았고, 윤서희가 그 옆에, 태영과 서윤은 맞은편에 앉았다.
박 상궁과 이 상궁이 옆에 있기는 하지만, 감히 같은 자리에 앉지 못하고 안혜 황후의 뒤에 한 발자국 물러서서 시립했다.
상산에서 닷새, 명주에서 닷새, 대산도에서 닷새, 송나라의 수도인 항주에서 보름, 그렇게 한 달 가까운 기간을 있었으니, 인근은 다 구경하고 처음 보는 송나라의 문물은 모두 구경했을 것이다.
절강의 풍경이야 말 그대로 절경이니 얼마나 좋았을까?
“폐하께는 자랑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아니 되는 것입니까?”
“나랏일 팽개치고 놀러 가자고 하면 어찌합니까?”
사실 이 시대는, 아직도 여전히 봉건 영주 시대를 완전하게 탈피하지 못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조선 시대처럼 왕권이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지 못하여, 황제라고 말은 해도, 황제가 궁 밖으로 나가면 털어먹을 수 있는 부자일 뿐이다.
그 정도이니 어느 지방의 호족에게 공격당할지 모른다. 물론 태영 앞에서 모조리 죽겠지만.
8대 황제인 현종이 거란의 침입을 받아 피난길에 올랐을 때, 임진강변에서 그 지역의 호족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았고, 남양주에서는 산적들에게 털리고, 전주까지 갔을 때는, 전주 절도사가 현종을 잡고 자신이 황제가 되겠다고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게 이 시대의 황제의 위치다.
드라마나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안혜 황후가 역사를 공부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이런 것을 배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 충분히 그러실 것입니다, 다만 폐하께서도 가 보지 못한 곳을 다녀왔는데, 자랑을 하지 말라 하십니까?”
“그러니 자랑은 조금만 하셔야지요. 쪼금만.”
검지의 끝을 엄지로 가려서 끝만 조금 나오게 내보이면서 태영이 하는 말을 들은 상궁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저 상궁들인들 송나라를 가 볼 기회가 있었을까?
평생을 궁에 갇히다시피 지내야 하는 사람들이 궁녀인데, 이렇게 송나라의 수도를 구경하고 인근의 관광 명소를 실컷 구경하게 될 줄 알았나?
지금 저들도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 안달일 것이다.
이곳 선상 갑판에 파라솔을 펴고 자리하기 전까지 저들은 갑판에서 무슨 이야기를 그리 나누는지 쉬지 않고 입을 놀렸으니, 지금은 참으로 답답할 것이다.
“네, 꼭 그리하겠습니다. 한데, 수일간 자리를 비우셨다 하여 물었더니 황산이라는 곳을 갔다고 들었습니다.”
이건 질문형이 아니긴 해도 질문이다.
황산.
정말 기가 막힌 곳이었다.
중국의 절경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뛰어난 자연 경관이 있는 곳이지요. 모시고 가고 싶기는 했지만, 항주에서 산길로 오백 리 길인데, 개경 손님은 가고 오는 데만 한 달은 걸릴 것이기에, 말씀드리지 않고 둘이서 살짝 다녀왔습니다.”
태영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윤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했다.
한서윤이 태블릿을 꺼내서 드론으로 찍은 영상을 플레이시켜 안혜 황후에게 보여 주었다.
안혜 황후는 이미 태블릿으로 플레이되는 영상을 본 적이 많아서 크게 부담스럽지 않기도 하고.
입에서 감탄사를 연속적으로 발하며 태블릿에 저장된 영상 중에 20분짜리 한 개를 구경했다.
윤서희도 몸을 기울여 그것을 보고, 박 상궁과 이 상궁이 개경 손님의 뒤에 앉았으니 고개를 쏙 빼서 그것을 열심히 구경하며 입이 쩍 벌어진다.
태블릿 안에는 저런 것이 수백 개가 있다. 사흘 동안 다니면서 계속 영상은 찍었으니.
그리고 마지막에는 천도호에 들러서 그곳도 몇 시간 분량을 영상에 담았다.
“하, 세상에 이런 곳도 있었군요.”
20분에 걸쳐서 한 편을 구경하고는 태블릿을 서윤에게 건네주며 하는 말이다.
운무에 가려져 있어 어느 곳에 저런 선경이 있을까 싶은 황산의 모습이었다.
금강산에 가면 비슷한 것을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안 가 봐서 모르지만.
“개경 손님이 사흘에 걸쳐 구경하고 오신 서호 역시, 저 황산과 더불어 명소로 꼽히는 곳 중에 한곳입니다.”
“대체 이 나라에는 저런 곳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셀 수도 없이 많지만, 손으로 꼽으라면 서호, 황산, 장가계, 계림, 장강 삼협, 구채구, 은시 등 머릿속에 떠오르는 곳만 수십 곳에 이릅니다. 그 중에서 서호는 당당하게도 최고의 풍경 열 곳에 포함된 곳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런 곳을 구경하고 사흘간이나 놀다 왔으니 얼마나 기쁠까?
“이곳, 항주나 명주 외에 다른 곳에도 상단으로 가실 것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제가 사포의 여군에 지원을 하면 함께 갈 수 있습니까?”
아니, 이 아줌마 봐라.
놀러 다니는 줄 아나?
하긴 자신은 일 안 하고 놀았으니 놀러 다닌 것이 맞지.
황후를 아줌마라고 해서 조금 거시기 하지만, 아줌마가 맞긴 하잖아.
그런데 대체 뭔 생각인 거야?
하 참.
이걸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서윤을 쳐다보니 웃기만 하고, 뒤에 있는 상궁들은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서로 각각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 극명하게 보여 주는 상황이다.
“그런데, 왜 여군 지원을 생각하신 것입니까?”
“음, 일단 이곳에서는 여인들도 굉장히 자유스러운 것 같아요. 여군이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그보다.”
자유스럽지.
“그보다?”
“대장님과 함께 전혀 가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면서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실장님이나 부실장님도 그렇지만, 사포의 여군들조차 온 세상을 다니는 것이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하긴 정하연에게 장난스레 황후 시켜 줄까 하고 물었더니 절대로 안 한다고 했었다.
아마 한서윤도 틀림없이 그리 대답할 것이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다 맞긴 한데, 지금 가지고 계신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것을 대신 취할 수 있을 만큼의 가치가 있습니까?”
“그것은 무슨 뜻이지요?”
“우선, 여군에 지원을 함과 동시에 현재까지의 신분이 아닌 군에서의 계급으로 바뀝니다. 즉, 군에서 가장 졸병이 되는 것이지요. 예를 든다면, 유진이나 지금 사포에서 훈련 중인 병사들보다 계급이 낮아집니다.”
신분과 계급은 엄연히 다르다.
계급이 낮아진다고 신분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계급 사회에서는 계급이 우선이다.
“그렇습니까? 그리구요?”
좀 전에 태영이 했던 말 그대로 물어온다.
“군대는 상급자의 명령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은 상급자이고, 개경 손님은 군에 입대하는 그 순간부터 그 사람들의 졸병이 됩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아.”
놀랍기도 하겠지.
황후의 신분은 변치 않겠지만, 가장 낮은 계급으로 바뀌는데.
“그리고, 지금 살고 계신 집을 구입하실 수 없으면 그 집을 비워야 합니다. 그때는 손님이 아니거든요.”
인상이 조금 침울해진다.
최상위의 신분으로 살아온 생인데, 아무리 신분은 그대로 살아 있다 해도 가장 낮은 계급으로 바뀌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구입할 수 있으면 사는 것이 가능한가요?”
“네, 가능합니다. 신분과 재산과 군의 계급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니 구입은 가능하지만 개경의 황궁 열 곳을 팔아도 사실 수 없을 만큼 비쌉니다.”
“아, 아, 그게, 그렇지요.”
그 말에 더욱 침울해졌다.
“그리고 일단 군에 입대하면 3년간 의무적으로 복무해야 합니다. 그 이전에는 전역이 불가합니다만, 사실상 전역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왜 그런 것입니까?”
“보안과 관련이 있는 것인데, 군에서 취급하는 보안 사항은 아주 많습니다. 그 보안 사항들을 취급하기 때문에 전역을 하더라도 그 보안 사항의 유효 기간이 지날 때까지 사포의 지정 구역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유효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요?”
“보안 사항에 따라 달라집니다만, 가장 짧은 것이 20년입니다.”
“헉.”
놀라운 일이지.
이 규칙대로라면 일단 군에 입대하는 순간 최소 23년 동안 사포를 떠날 수 없다.
“물론, 개경 손님은 비서실에 발령 내어서 다른 사람들의 명령을 듣지 않도록 배려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비서실에서 취급하는 보안 사항은 유효 기간이 최소 육십 년, 긴 것은 이백사십 년입니다. 즉, 그 말은 살아생전에 전역이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하아.”
“개경 손님과 그 일행들은 사포의 비밀과 비서실의 보안 사항 중에 많은 것을 열람했기에 개경으로 돌아갈 때, 반드시 비밀 유지 각서를 쓰고 가셔야 합니다.”
“비밀 유지 각서요?”
조금 놀란 모양이다.
비밀 유지 각서라는 말을 들어 보기나 했을까?
“네, 거기에 개경 손님은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요?”
“네.”
“그것은 어떤 것입니까?”
“군인이란, 전투 중에 부상을 입을 수도 있고,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군인으로서는 피해 갈 수 없는 일종의 숙명이니까요. 그런데 개경 손님은 다른 병사들과 달리, 절대로 사망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부담을 안고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사망을 해서는 안 된다?”
“네, 그렇습니다.”
“군인이면 사망할 수도 있다 했는데, 나는 안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분이 황후이시기 때문입니다.”
“…….”
태영을 빤히 바라본다.
“아무리 군인으로서의 계급이 낮다고 해도, 군 밖의 신분이 황후이신 것은 변하지 않거든요.”
아이쿠, 설득시키기 귀찮아 죽겠다.
왜 이딴 이야기로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거여?
참치 떼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뱃전에서 들려왔다.
엇, 또 참치 떼를 만났다고?
지난번에 후쿠오카를 갈 때 먹어 본 사람들이 많기에 누군가가 바로 알아본 모양이다.
그땐 봄이었고, 지금은 늦가을, 아니 초겨울이라고 봐야 하는데.
또 참치 떼를 만났다고?
“함장에게 배 멈추고 몇 마리 잡으라고 해.”
“그게 뭐예요?”
서윤이 물었지만, 한서윤은 참치를 본 적도 없고 요리로 먹어 본 적도 없다.
사포가 바닷가이니 생선 요리가 정말 많지만, 산속 마을에서 살아왔던 서윤은 생선 요리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아마 개경 손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바다가 잔잔하니 오늘 선상 요리를 좀 하자. 기대해 봐, 오늘 내가 멋진 요리를 선보일 테니.”
역시 참치는 회로 먹는 것이 최상이긴 하지만, 먹방프로에서 보았던 참치 튀김 요리가 생각났다.
“조리 실장 좀 오라고 해!”
태영이 고함을 치자, 병사 한 명이 황룡호 뒤쪽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고, 곧이어 조리 실장이 왔다.
“이번에 버더라는 것 실었지? 그것 좀 남아 있나?”
이건 우유에서 만들어 낸 버터인데, 이름을 태영도 헷갈리지 않도록 비슷한 어감의 버더라고 지었다.
“네, 실은 것 중에 절반은 남아 있습니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많이 사용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 참치로 요리를 좀 할 거니까, 회 뜰 준비하면서 구이용 철판하고 튀김 솥에 기름 반쯤 채우고, 밀가루 두 되에 계란 백 개 준비해 줘. 요리는 갑판에서 할 거니까 보고 배울 사람 모두 나오라고 해.”
조리 실장은 지난번 후쿠오카에 갈 때, 갑판에서 참치 회를 뜬 적이 있어서 그때를 알고 있을 것이다.
“대장님이 숙수도 하십니까?”
안혜 황후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