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8
008화 옷깃이 스치다 4
* * *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아이가 동료를 제압하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제야 불량배들은 깨달았다. 상대를 잘못 건드렸다는 걸.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들의 입이 움직이는 것보다 먼저 카인과 라프만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무기를 내리고 투항하려고 하는 이들이 태반이었으나 종횡무진 내달리는 발걸음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일련의 사태가 잠잠해지자 골목길에 서 있는 사람은 둘밖에 없었다. 뺨에 튄 핏방울을 닦아낸 카인이 라프만의 얼굴을 보며 씨익 웃는다.
“제법 잘 어울리지 않나요? 저희.”
“하, 웃기지도 않는군.”
꿈틀거리는 불량배의 엉덩이를 걷어찬 라프만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재치와 독기는 인정하나, 그 이상은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었다. 아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마찬가지였다.
카인이 가진 재능은 일천했다. 열이면 열, 모두가 가지고 있을 법한 것들뿐이었다. 특징이 없으니 장점도 없다. 안타깝지만 그런 이들의 끝은 보나마나였다.
“잔재주는 사용하기 좋으나 사도로 빠지기에 십상이니 올바른 길로 나아가지 않으면 큰 파도에 쓸릴 모래성에 불과하다. 네가 쓰는 기술 또한 같다. 하나같이 눈속임의 연장선에 있으니 자칫 잘못하면 엉뚱한 길로 빠지기 쉽지.”
“그래도 잔재주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지난 35년의 삶이 정면에서 부정당한 기분이니 나오는 말이 고울 리 없었다.
추적술과 투척술 그리고 권각술에 이르기까지. 모두 2급 살귀가 되기 위해 갈고 닦은 기술들이었다. 자랑스러운 기억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버리고 싶은 건 더더욱 아니었다.
이 또한 카인이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하지만 라프만은 현실을 직시하라는 듯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나쁜 버릇이 많이 들었다.”
“그거야 살다 보면 하나씩 있는 거…….”
“어린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넌지시 던진 말은 정확하게 핵심을 꿰뚫었다. 라프만의 말대로 35년 동안 쌓인 버릇과 습관이 가벼울 리 없었다. 모든 걸 통찰하는 듯한 눈빛에 카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프만은 여성에게 다가가 외투를 벗어 주었다. 낯선 호의를 잡은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괜찮나?”
“네, 가, 감사합니다.”
입에서 나온 말은 그게 전부였다. 라프만과 카인을 번갈아 본 여성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매몰차네요.”
“그녀에겐 저들이나 우리나 같은 무리로 보일 테니까.”
피를 보는 걸 꺼리지 않으니 더욱더 무서우리라. 하긴 평범한 여성이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사건은 아니었다. 그렇게 자평한 카인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래도 그렇지, 대낮에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는걸요.”
다른 곳도 아니라 십좌가 다스리는 곳이었다. 따라올 징벌을 생각하면 이런 무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뿌리부터 썩었으니 그럴 수밖에.”
“사정이 있나 보죠?”
“백작령에 활용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땅이 많다는 건 너도 알 거다.”
모를 리가 있을까. 드넓은 부지가 있다는 건 여기까지 오면서 뼈저리게 느꼈는데.
“설마 그곳에서 나온다는 건 아니죠?”
“섞여서 온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
“하지만 허가 없이 영지를 점령하는 건 불법이잖아요?”
“일일이 확인하기엔 인력이 모자라지. 더구나 약탈하고 설산으로 잠적하면 잡을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레서 왕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건 어때요? 국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걸 알면 나설 수밖에 없을 텐데요.”
“사이가 나쁜 편이라 말이지.”
카인이 침음을 흘린다. 들으면 들을수록 진창에 빠지는 듯했다. 여기까지 오니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사정이 있는 게 확실했다. 별로 개입하기 싫은 사정이.
‘하지만.’
카인은 눈앞에 서 있는 남성을 올려다보았다. 십좌의 일원. 검의 천재. 그리고 백작령의 주인. 모든 걸 가진 그가 검을 휘두르면 끝이 보일 게 분명했다.
압도적인 무력은 그만큼 엄청난 파급력을 지니고 있었다.
“라프만 님이 직접 움직이면 모든 게 해결되지 않나요?”
“별로 관심 없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생각하지도 못한 대답을 들어서일까. 자신도 모르게 황당한 얼굴이 된다.
“콜록, 우연히 슈발체베인가에서 태어났기에 백작이 된 것뿐이라는 거다. 그리고 백작령에 있는 영지군조차 운용하기 힘든 마당에 다른 땅을 수색하는 건 자살 행위다. 나무를 보려다 숲을 태울 수도 있는 일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영지군이 돌아다니고 있는데도 이 모양이었다. 그런데 더 빠져나간다? 백작령의 혼란을 부추기는 일밖에 되지 않을 게 뻔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곳에만 들어오지 않으면 된다.”
정말로 막 사는구나. 카인의 눈이 차게 식었다.
모르고 있는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가 본 라프만은 무미건조하고 무신경한 성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자신의 영지까지 이 지경으로 운영할 줄이야.
이런 사람 밑에서 아휀이 올바르게 성장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확인한 걸 보면 최소한의 애정은 있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그렇지 않나요?”
“6년 동안 얼마나 변했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보고로 듣는 것과 직접 체험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니까.”
성실한 건지 불성실한 건지 알 수 없는 답변에 카인은 어깨를 으쓱이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때, 라프만이 카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듣고 싶은 건 다 들었을 테니 이제 그만 가자. 확인할 건 모두 확인했으니까.”
신경질적인 목소리였으나 카인은 아무렇지 않았다. 라프만이라는 인물이 어떠한 인간인지 감이 잡혔기 때문이다.
* * *
“엄청나군요.”
“그렇게 놀랄 일인가?”
“솔직히 여기에 있는 게 아까울 정도예요.”
신랄한 감상에 라프만이 두 눈을 감았다. 이쯤에서 신경질적인 반응이 나왔어야 정상이건만 첨언하지 않았다. 그도 한 번씩 그렇게 느꼈던 걸까.
고개를 돌려 드높은 첨탑을 바라본 카인은 휘파람을 불었다.
슈발체베인 성은 삼엄한 듯하면서도 우직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것은 장인의 손길로는 구현할 수 없는 품격이었다. 역사와 세월만이 쌓을 수 있는 고고함이었던 것이다.
슈발체베인가가 개국 공신의 가문이라는 걸 감안하면 능히 예상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 당시에 가용할 수 있는 인력과 자금을 전부 투입한 결과이리라.
슈발체베인 성 앞에서 선 라프만이 오연하게 카인을 내려다보았다. 이 앞은 자그마한 전쟁터였다.
“저 성문을 넘을 때부터 시험은 시작된다.”
지금껏 외면했던 이야기가 들려온다.
하지만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당연한 이야기였다. 십좌의 제자가 된다는 건 그만한 고난과 역경을 넘어야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출신도 불분명한 고아라는 단점은 커다란 악재로 다가올 터. 카인은 자만하지 않았다. 오만하게 현 상황을 좌시하지도 않았다.
이제 막 출발선에 섰을 뿐이었다.
“그것은 내 시험일 수도 있고, 다른 이의 시험일 수도 있지. 내가 너를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배제하려는 무리가 있을 거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슈발체베인 백작령의 사정이 어떠한지 두 눈으로 목격한 상태였다. 그곳을 맡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억척스러울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백기사 아휀이 걸었던 길이었다.
‘나라고 못 할 것도 없지.’
콜록, 하고 기침을 내뱉은 라프만이 들어가기 전에 선을 그었다.
“내게 도움의 손길은 바라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바라는 게 더 이상했다. 라프만이 얼마나 냉담한 인간인지 깨닫지 않았던가. 어리광을 들어줄 성격도 아닐뿐더러 말한다고 해도 변하는 건 없을 터. 그렇기에 카인은 침묵을 고수했다.
“모든 건 스스로 쟁취해야만 의미가 있다.”
묵직한 한마디였다. 그 안에 담긴 회한을 어렴풋이 읽은 카인은 지난 삶을 되돌아보았다.
어느 것 하나 보상받지 못한 나날이었다. 힘이 없었기에 자신의 뜻을 관철할 수 없었고, 힘이 없었기에 타인의 뜻에 짓밟혔다. 지긋지긋한 악순환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쟁취할 겁니다.”
설령 다른 이들을 밟게 되는 결과가 된다고 하더라도.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다지?”
“네, 그러니 양보하지 않을 겁니다.”
“후후, 옛 생각이 나는군.”
자신도 그런 때가 있었다. 조소한 라프만이 성문에 두 손을 짚었다. 그가 몸을 앞으로 숙이자 열릴 리 없는 성문이 기이한 소음을 내며 밀리기 시작했다.
주인이 왔다는 걸 알리기라도 하듯이.
슈발체베인 성이 어수선해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 말이 어떻게 끝날지 기대하지.”
성안으로 발을 내디딘 라프만이 웃자 카인도 따라 웃었다.
* * *
슈발체베인 성은 예상치 못한 손님을 맞이하느라 분주했다. 홀연히 사라진 주인이 나타난 것이다. 무려 6년 만의 귀환. 자연스럽게 수많은 이들이 술렁일 수밖에 없었다.
집무실 안으로 들어온 라프만은 먼지 한 톨 쌓이지 않은 자신의 책상을 내려다보았다. 6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한 모습. 집사인 로잔이 얼마나 성실하게 이 자리를 지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콜록, 고생이 많았군.”
“아닙니다, 가주님.”
라프만이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자 노년의 집사가 고개를 숙인다. 어렸을 때부터 슈발체베인가를 섬기는 로잔에겐 당연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한 번 주인은 영원한 주인이었다. 설령 기약 없이 떠난 주인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카인은?”
“별채로 모셨습니다. 혹시 따로 생각해 둔 장소라도 있는 겁니까?”
“아니, 궁금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불청객이 불만스러울 법도 하건만, 로잔은 어디까지나 정중하게 대처했다.
하지만 옆에 선 이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로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총관인 로건이 입을 열었다.
“정말 그 아이를 제자로 삼으실 생각입니까?”
“봐서.”
간단명료한 대답. 어딘가 신경질적인 말투는 여전했다. 더 이상 묻지 말라는 기세가 역력했지만 여기에서 멈출 로건이 아니었다. 여태까지 영주 대리가 되어 백작령을 다스린 장본인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적어도 이 정도 발언권은 있으리라. 그렇게 단언한 로건이 자신의 주장을 피력했다.
“가주님의 결정은 존중하지만 섣부르게 고른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조금 더 슈발체베인가에 어울리는 인재가 있을 겁니다.”
“인재? 그건 귀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자기들 것처럼 여기는 놈들을 일컫는 말인가?”
“그게 아니라 저 넓은 대륙을 호령하는 이들을 말하는 겁니다. 가주님만 원하신다면 소문을 흘리겠습니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호걸들이 모여들 겁니다.”
“허울뿐인 힘을 가지고 싶어서? 다 필요 없다. 소란만 커질 뿐이다.”
라프만이 볼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젓자 로건은 탄성을 터트렸다. 예나 지금이나 주인의 고집은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옆을 쳐다본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눈치챈 건지 매튜가 고개를 돌렸다. 그가 본 건 열렬한 욕망. 주인의 결단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아집이었다.
부담스러운 눈빛에 헛기침을 내뱉은 매튜는 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늘어뜨리며 입을 열었다.
“저 역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로건이 부추겼다는 건 인정하나, 매튜도 나름대로 고심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방금 전에 소개받았던 소년, 카인은 인상적인 면이 하나도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택된 이유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평범했다.
어디에서나 볼 법한 인상이라고 해야 하나. 잘 먹지 못해 자그마한 체구는 단점이면 단점이었지 결코 장점은 아니었다. 더구나 가지고 있는 재능 또한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라프만의 뒤를 잇기엔 자질이 부족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