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음.”
이화가 나비처럼 들어와서 벌처럼 떠나간 뒤.
나는 어처구니가 없는 마음에 중얼거렸다.
“우리 애라길래 누구인가 했더니.”
갑자기 대기실로 찾아온 이화가 내게 한 말은 이런 것이었다.
[승현이요. 혹시 못 보셨어요?]이승현.
자기네 팀원이 갑자기 자취를 감췄는데, 여기에 있느냐는 말이었다.
[핸드폰이 꺼져 있는지 연락도 안 돼요.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일이 조금 복잡해졌다.
이승현이 누구인가 하면, 바로 다음 차례.
한여름의 상대가 될 사람이었다.
그런데 무대를 코앞에 둔 상황에 돌연 사라져 버린 것.
이화는 안절부절못하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승현이가 한영 씨 팬이거든요. 그래서 혹시 했는데, 여기에도 없으면 어디에 갔지.]그녀가 우리 대기실로 찾아온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승현이라는 뮤지션이 내 팬이라는 이유.
그 뒤로 김수경의 매몰찬 한마디만 기억에 남았다.
[놔둬요. 애초에 그런 애가 왜 가수를 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고.]이쪽 대기실에 그가 없다는 걸 확인한 뒤, 그쪽은 금방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어떻게든 더 찾아봐야겠다는 말과 함께.
요컨대, 추노를 하러 떠났다.
“이거 위험한데.”
홍윤서가 중얼거렸다.
“그 도망갔다는 애, 실력이 장난이 아닐 거야.”
“왜요?”
뭔가 짚이는 바가 있는 건가.
심상치 않은 그의 말에 모두의 이목이 쏠린 순간이었다.
“예로부터 탈주한 놈들은 모두 강했지.”
“…….”
“이타치, 제드, 섬광의 플래시까지 탈주한 놈들은 전부 강했어.”
기대했던 내가 등신이지.
이마를 탁 치려니 조은솔은 이화 못지않게 안절부절못하더니 말했다.
“끄응, 한영아, 어쩌지? 파출소에 신고해야 하나?”
“미아도 아니고 신고까지는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그럼 이대로 걔 없이 무대 진행해? 뭐라도 해야지. 그러고 보니까 걔 나이도 되게 어렸던 것 같은데.”
확실히 그렇기는 했다.
인터넷에서 프로필로만 봐서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분명 미성년자였지.
오늘 참가자 중에서 제일 어린 게 이승현이라는 사람이었다.
‘어찌 됐든 결정을 내리려면 빨리 내려야 할 것 같은데.’
나 또한 모르쇠할 수는 없는 일.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 거야 그렇다 쳐도. 빠졌으면 빠진 대로 뭐라도 대책을 세워야 할 것 아닌가.
연출팀이 세팅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족히 10분은 걸릴 테고.
‘관객들한테 양해를 구하고, 우선 여름이라도 올릴까.’
한여름을 이승현과 묶은 데는 나로서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둘을 붙일 수 있다면 붙이는 게 가장 나은데.’
어느 쪽이든 결정을 내리려면 일찍 내리는 게 낫다.
우선, 시간을 끌기라도 해야 하니 방송에 올릴 임시 공지를 고민하는 순간이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고, 이화가 들어왔나 싶었더니.
“저기.”
이번에 들어온 사람은 또 예상 밖의 사람이었다.
“안녕…… 하세요?”
유난히 키가 작고 소심해 보이는 남성.
그가 오들오들 떠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이승현이었다.
* * *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해졌다.
이건 좀 뜬금없지 않나.
사라졌다고 난리길래 어디 무대 밖으로 도망갔나 했는데, 설마 우리 쪽 대기실로 찾아오다니.
‘그 사람 추측이 맞았구나.’
이화라는 사람의 말이 맞았다.
이쪽은 내 대기실로 찾아왔다. 순서가 조금 달랐을 뿐.
“일단은 앉아 봐요.”
“네.”
그는 왜 여기에 찾아온 건지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냅다 눌러앉았다.
안색이 좋지 않다.
나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했다.
“그쪽 사람들이 찾고 있는 거 알죠?”
“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 보는 게 좋지 않겠어요?”
“수경이 누나가 무서워서…….”
그는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분위기가 엄청 무서워요. 돌아가면 바로 화낼 것 같아서. 그래서 도저히 거기 못 있겠어서 어쩌다 보니까. 원래는 잠깐 산책만 나올 생각이었는데.”
말이 좀 정돈이 안 됐다.
자기도 생각 정리가 안 된 모양.
그렇다고 해서 굳이 꼬치꼬치 캐물을 생각은 안 들었다.
‘대충 상황은 알겠네.’
한마디로, 자기 팀 분위기가 부담스러워서 잠수 탔다는 거 아닌가.
그러고 보면 아까 대기실에서 첫 만남 때도 얼굴을 못 봤지.
화장실에 갔다고 했었나.
긴장이 많다고 지나가듯 들었던 게 어렴풋이 떠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이렇게까지 소심하기도 어려운데.’
당장 자기가 다음 차례인데 잠수를 타다니.
책임감이 없게 느껴질 정도.
하지만 그의 나이를 보면 대충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어리다.
프로필만 봐도 어린데, 실물로 보니까 더 어렸다.
앳된 티가 한참 못 가시다 못해 그냥 어린아이로 보일 지경. 잘 쳐 줘야 이제 고등학생 2학년 정도나 됐을까.
‘이 나이가 행사 뛸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갈수록 데뷔가 빨라지네.’
하기야,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준비하는 사람도 많다고 하니까.
그럼에도 이런 학생을 무대 위에 보냈다는 건 뭐라고 해야 할까. 좀처럼 흔치 않은 일이기는 했다.
실력이 좋긴 했지.
조금 무리한 일정이더라도, 그만큼 이승현이 숲 뮤직에서 아끼는 인재라는 반증이리라.
“지금 가면 엄청나게 혼나겠죠.”
그가 비 맞은 삽살개처럼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그야, 당연히 혼나겠지.
나부터 혼내고 싶은 기분이 없지 않아 있다. 손님이니까 내버려 둘 뿐.
일단은 돌아가라고 말하려는 찰나였다.
“혹시, 무대가 싫니?”
조은솔이 입을 열었다.
줄곧 그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녀의 말에 이승현이 움찔했다.
조은솔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다른 건 아니고, 내가 보니까 넌 무대 위에 올라가는 걸 많이 무서워하는 것 같아서.”
“그게요.”
“사실대로 말해도 돼. 어디에 말 안 해. 여기 우리밖에 없어. 도와주려고 해도 사정은 알아야 좀 도와줄 수 있잖아. 응?”
거의 애를 다루는 듯한 말이다.
하지만 이승현은 겉모습이나 하는 행동이나 애가 맞았고, 그 덕일까.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혼날까 봐요.”
“혼나? 왜?”
“저희 회사 분위기가 되게 엄해요. 조금만 실수해도 되게 혼내시고.”
“혹시 때리거나 그러니?”
“아니요. 때리지는 않은데, 그냥 조금…… 압박을 줘요. 이번에도 꼭 이기라고 그랬고요. 절대 지면 안 된다고. 중요한 무대라고 해서요.”
그야 숲 뮤직 입장에서는 중요한 무대가 맞지.
이런 사소한 게 누적되면, 테슬라와 한 몸이 된 후 주도권 경쟁이니 뭐니에 반영될 수 있다고 하니까.
“그럼 더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닐까? 실수만 해도 혼내는데, 아예 무대에서 도망치기까지 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그렇기는 해요. 그래도 그냥 답답해서요.”
이승현은 쪼그려 앉은 채 한숨을 바닥이 꺼지도록 길게 내쉬었다.
얘도 참 특이하다.
자기네 팀원들은 무서우면서, 우리는 안 그렇다는 건가.
엄밀히 말하자면 남남인데.
속마음을 좀 너무 쉽게 풀어놓는 거 아닌가 싶은 찰나였다.
“사실, 여기 오면 어떻게든 마음이 잡힐 것 같았어요.”
이승현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저요. 형 방송 엄청 재밌게 봤거든요. 진짜 자주.”
“……한영이 방송?”
“네, 다 챙겨 봤어요.”
이쪽도 내 방송의 애청자라는 것이었다.
어쩐지 초면인 것치곤 우리를 좀 아는 눈치다 싶더라니.
방송을 많이 봤으니, 거기에서 친밀감을 느끼고 대뜸 찾아왔다는 것.
“저희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유행했거든요. 아주 초창기부터 봤어요.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부럽기도 했고요.”
“음.”
“그런데 전 안 되려나 봐요. 자꾸 겁이 나서. 저도 형 누나들이랑 같이 했으면 좋을 텐데.”
그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가야 한다는 걸 인지는 하고 있다.
하지만 발걸음이 안 떨어져 주저하는 눈치.
겁이 난다고 했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 나이대에는 그럴 수 있겠다 싶다.
‘누구나 다 무대가 즐거운 건 아니지.’
나나 우리 식구들이나 애초에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무대라는 공간이 친숙할 뿐.
엄밀히 말하자면, 무대 체질이 아닌 사람이 더 많으리라.
대다수 사람에게 있어서 무대 위란 딱딱하고 차가운 공간으로 느껴지기 마련이었다.
가수 중에서도 허다하지 않나.
공연 중 도저히 못 버티겠거든, 관객에게서 등을 돌리고 노래를 부르는 가수까지 있다고 하였다.
하물며 이건 천성의 문제였다.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해서, 쉬이 극복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지.’
많은 가수의 고충을 봐 왔던 나이기에 알 수 있었다.
이승현의 고충은 유치하지만 타당하다.
아니, 오히려 유치하기에 솔직했다.
그렇게 가만히 그의 말을 경청하고만 있는 와중이었다.
“…….”
“…….”
고희범이 나를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눈을 좁게 뜨고 코를 움찔거리는 게.
“코 풀게 휴지 달라고?”
“아니, 김한영 미친놈아. 확, 씨.”
“씨?”
“언더더씨. 언더더씨. 내 학점 언더더씨.”
고희범은 헛기침을 뱉더니 말했다.
“야, 네가 뭐라도 한마디 해 줘야지. 네 방송 보는 팬이라잖아. 그리고 네 방송에 나오는 사람이고.”
“맞아. 이번에는 한영이가 뭐라고 조언 좀 해 주자.”
조은솔까지 거들었다.
고희범의 말이라면 흘릴 수 있겠지만, 조은솔의 말은 어렵다.
그녀는 어딘가 사람에게 말을 따르게 하는 기운이 있었다.
평소 바른말만 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천성적으로 풍기는 그런 기운이었다.
내로남불을 일삼는 홍윤서나 고희범 같은 인간군상으로서는 감히 흉내도 못 낼 그런 거.
무형의 압박이 내게 쏟아졌다.
‘뭐, 어차피 슬슬 한마디 할까 하기는 했지만.’
이 사람이 탈주하게 내버려 두면 결국 손해를 보는 건 나다.
어차피 하는 방송인데, 1명 분량이라도 더 챙겨야지.
숲 뮤직이나 테슬라의 관계가 어떻든, 나는 내 방송에 1명이라도 더 묶어 두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계약 기간 끝나면 남는 영상이 곧 내 재산이지.’
이쪽도 숲 뮤직에서 밀어주는 신인이니까 앞으로 얼마든지 더 뜨겠지.
마침 잘 됐다.
나는 우두커니 서 있는 승현을 향해 물었다.
“음악이 싫어요?”
“아뇨.”
“그럼 무대가 싫어요?”
“아뇨, 그것도 아닌데.”
“싫은 게 아니라면, 무서운 거죠?”
“……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잠시 그의 시선을 마주하다가 물었다.
“숲 뮤직에 들어가기 전에도 그랬어요?”
“그건.”
이승현의 눈빛이 흔들렸다.
마땅히 답을 못 내리는 게, 본인 스스로도 확신이 없는 모양.
그렇다면 됐다.
나는 대답을 굳이 기다릴 것 없이 입을 열었다.
“제 방송, 볼 만해요?”
“재밌어요.”
“그러면요.”
나는 미끼를 던지듯 말했다.
“조만간 한번 출연하러 오세요.”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
이승현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빙고.
포인트를 정확하게 짚었네.
나는 속으로 작게 중얼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이번 무대는요. 사실 쥐뿔도 별거 아니에요.”
“별거 아니라고요?”
이승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를 향해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을 이었다.
“당연하죠. 승패니 뭐니 자꾸 따지려고 하는데, 그건 그냥 포맷이에요. 명목에 불과하죠. 무슨 명목? 실력 있는 사람들을 10명이나 한 번에 끌어들여서 관객분들한테 종합 선물 세트로 제공할 명목.”
“…….”
“잘 들으세요. 사실 숲 뮤직이 이번 방송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깟 승패 따위는 저한테는 별 상관없거든요? 이기면 좋고, 져도 큰 상관 없어요.”
사실, 아니다.
당연히 이기는 게 낫다.
어떻게 지는 게 상관이 없을 수가 있어.
“그런 것보다는 시청자들을 재밌게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지요. 음악에 위아래가 어딨어.”
물론, 음악에는 위아래가 없다.
하지만 음악가의 실력에는 위아래가 존재한다.
그렇다고 본심대로 말하면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꼴이겠지.
나는 조은솔과 달리 입바르게 살아온 사람이 아니기에 양심의 가책 따위는 느끼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딱 하나만 기억하세요. 무대라는 건 내가 재밌고 관객들이 재밌으면 장땡입니다. 우리가 하는 건 스포츠가 아니라 쇼니까요. 그리고 또.”
뭔가 더 할 말이 없을까.
오늘은 집중력을 많이 소비해서 슬슬 머리가 안 돌아간다.
당이 필요하다.
나는 슬쩍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시간을 끈 뒤 말했다.
“관객들한테 숲 뮤직 사람들을 소개하는 무대거든요. 이 사람들이 이런 사람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가 뭐라 말하려는 찰나, 나는 기다려 주지 않고 입을 열었다.
“승현 씨도 다음에 제 방송에 나오려면 이번에 사람들한테 첫인상을 잘 잡아 둬야겠죠?”
“아.”
“잠수 탔다는 사람이 방송에 나와서 얼굴을 비출 수는 없잖아요.”
그의 표정이 살짝 변화했다.
비로소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안 모양.
나는 생수 뚜껑을 다시 열며 말했다.
“그리고 혼난다고 기죽을 거 없어요. 자기들이 내 인생 책임져 줄 것도 아닌데. 나중에 저쪽에서 승현 씨한테 뭐라고 따지거든, 그때는 김한영이 붙잡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둘러대시고.”
정말로 그렇게 말한다면 따지겠지.
따질 수 있다면 말이다.
백번을 따져 봐라.
내가 쥐뿔이라도 신경 쓰나.
적어도 나는 당신들이 우왕좌왕할 때, 미아 한 명 잡아다가 무대 위에다가 올려놓기라도 했지.
게스트 한 명 영입한 건 그냥 보너스고.
“어때요. 이제 알겠죠? 나중에 방송 나오려면 오늘 잘해야 하는 거.”
나는 그 정도의 마음으로 조언을 건넸고.
그 결과는.
“약속한 거예요.”
이승현의 눈빛에서 드러났다.
그가 조금 전과는 확연히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저요. 내일 학교 가서 친구들한테 다 자랑할 거예요. 그러니까 꼭 약속 지키셔야 해요.”
약속 좋지.
나한테 이득이 되는 약속이면 더 좋고.
이승현의 말을 들으며 나는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다음 영상 제목은 [숲 뮤직 유망주를 빼돌려 봤습니다]로 가야겠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