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157
157. 또 다른 길 (1)
시간의 흐름이 이렇게나 잘 느껴지는 건 또 처음인 것 같다.
그도 그럴 게, 하루에도 몇 번씩 음원 사이트의 순위가 요동쳤고, 그때마다 전시(戰時)의 봉화마냥 연락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내게 연락할 수 없는 사람들은 기사나 커뮤니티, 팬카페 등을 돌아다니다 결국 사운드클라우디에 축하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고맙긴 한데, 정말 감사한데.
일일이 답장할 방법이 없어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톡 중이던 강준서가 명쾌한 해답을 던졌다.
SNS.
거기에 감사 인사를 전하면 한 번에 해결되지 않겠냐는 것.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라 생각되었고, 결국 나는 SNS를 시작했다.
[kanghanjunseo님이 팔로우하셨습니다.]첫 팔로워. 강한준서···.
SNS로 들어가자 온통 노는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이쯤 되면 강준서야말로 진짜 천재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노는데 어떻게 실력이 꾸준히 늘지?
이후엔 강준서를 필두로 이소현과 김영태, 그리고 신수아까지도 팔로우를 걸어왔다.
문득 나머지의 SNS도 궁금해져 탐방을 시작했다.
이소현은 온통 먹는 사진들뿐이었고, 김영태는 아무것도 안 올라와 있다. 회귀 전의 나를 보는 것 같네.
그리고 당연히 텅 비어있을 거라 예상했던 신수아의 SNS엔······.
#연습또연습 #아자아자 #노력은배신하지않는다
생각보다 게시물이 많았다. 그것도 꽤 잘 찍은 사진들로. 풍경 사진부터 연습실 사진 등.
중간중간에 자신의 모습이 나온 사진도 있었다.
#연습 #바흐 #동생이찍어준사진
심지어 그런 게시물은 좋아요가 무려 천 개가 넘는다.
그러고 보니 처음 회사에서 만났을 때 강준서가 유명하다고 했던 것 같긴 한데.
4명뿐인 팔로워 구경을 마치고서 나도 게시물을 올렸다. 적당한 사진에 열심히 감사하다는 글을 써서.
[나: 한서호 사칭하지 말라는데요?] [강준서: 그래? 잠시만··· 야. 흔하디 흔한 피아노 사진에다가 그런 글 올리면 누가 믿겠냐. 네 사진을 올려야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진 말고.]···그렇긴 하겠네.
회귀 전에도 SNS 계정만 있을 뿐, 제대로 해본 적도 없었고, 이렇게 유명한 적은 더더욱 없던 터라 미처 생각 못 했었다.
얼른 셀카 하나를 찍어 올렸다.
그러자.
띠링—띠링—띠링—!
[geul_jalsseugosipda님이 팔로우하셨습니다.] [seolma_ilgeusilkka님이 팔로우하셨습니다.] [zinagadun_saram님이 팔로우하셨습니다.].
.
.
알람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팔로우 숫자가 불어난다. 아예 일면식도 없었던 사람들 사이엔 아는 사람들도 끼어 있었다.
윤짜르트에서 남녀주인공을 맡았던 배우들.
소프라노의 주인공을 맡았던 한세경과 그 당시 함께했던 주·조연 배우들.
심지어는.
[siren_emily님이 팔로우하셨습니다.]사이렌의 에밀리를 비롯한 멤버들 전부와 날 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인 할리우드 배우들, 그리고 빌보드에서 거론되는 팝스타들까지도.
난리도 아니다. 팔로워가 몇 시간 사이 몇만 명대가 되었다. 게시물의 좋아요도 10만에 가깝다.
정신이 없다. 일단······.
띠링—띠링—띠링—!
알람은 꺼야겠네.
#
“조교님.”
학과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배꼽 정도 오는 높이의 파티션 너머로 빼꼼 고갤 내민 조교가 보였다.
“어!?”
미어캣처럼 올라왔다가 화들짝 놀라는 그녀에게 내가 웃으며 다가갔다. 양손에 들고 있던 커피 캐리어 중 하나를 건넸다.
“커피 좀 드세요.”
“어머, 고마워. 근데 둘 중에 뭐가 내 거?”
“둘 다요. 뭘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아메리카노랑 달달한 거랑 사 왔어요.”
“이야~역시, 센스까지 좋아~. 근데 나 사실 둘 다 좋아해.”
“다행이네요.”
내 대답에 흐뭇하게 웃던 조교가 퍼뜩 고갤 들어 올린다.
“근데 어쩐 일이야? 학기 중에 자주 못 나오던 애가 방학 때 나왔다는 건 설마······.”
돌연 눈을 좁히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대체 뭘 생각했길래 저런 반응인가 싶었는데, 다음 순간 곧바로 의문이 해소되었다.
“휴학은 아니지?”
“네? 아녜요.”
“그럼 자퇴···.”
“그건 더더욱 아니고요.”
갑작스런 전개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네가 좀 바빠야 말이지. 이 학교 다니는 연예인 중에 도저히 스케줄이 안 돼서 휴학하거나 자퇴하는 애들이 엄청 많거든.”
전 연예인이 아닌데요, 라고 하려다 말았다.
그래, 인정할 때도 됐지. 남들이 보기엔 나나 연예인이나다. 그 사실이 부담스럽긴 한데, 행실에 더 조심하면 되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학교 수업이 너무 재밌어서 절대 그렇게 못 하죠.”
“재미? 재미라···. 그래, 나도 너였으면 수업이 재밌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럼, 교수님 뵈러 온 거야?”
“네. 이종범 교수님이요. 미리 연락 드렸어요.”
“음~지금 계시는 것 같더라. 근데 이종범 교수님······.”
조교가 남은 손에 들린 커피 캐리어를 보며 말을 끌길래 내가 답했다.
“카푸치노예요.”
“오, 교수님 커피 취향까지 알고 있네? 그럼 다행이고. 어쨌든, 잘 마실게~.”
커피를 흔들어 보이는 조교와 일별하고서, 다시 복도로 나왔다. 여기서 바로 옆 옆방이 교수실.
다가가자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울림을 보니 직접 연주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 같은데 확실히 방음이 꽤 괜찮단 말이지.
하긴, 연구실에서 악기 연습을 하는 교수들도 많으니 그럴 만하다.
방음이 제대로 안 되어있으면 옆방 교수와 얼굴 붉히는 일이 분명히 생길 테니까.
똑똑.
문을 두드리자, 음악이 뚝 끊어지며 들어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공 실기의 이종범 교수가 양손에 들고 있던 종이 뭉치들을 내려놓으며 나를 반긴다.
“왔니?”
“네. 여기, 커피 좀 드세요.”
커피를 받아든 이종범 교수가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내게 물었다.
“카푸치노네?”
“네. 어제 윤 교수님 만났었거든요.”
“윤석호 교수님?”
고갤 끄덕이자, 대충 알겠다는 듯 웃는 이종범 교수.
그가 카푸치노를 홀짝였다.
“밥 대용으로 많이 먹었었지. 미국 유학 때 피곤은 하고, 배도 고픈데 밥은 세끼 다 챙겨 먹기에 너무 비싸니까. 아무튼 고마워. 잘 마실게. 그리고.”
핸드폰 화면을 내 쪽으로 비추자 그 안에 익숙한 앨범 재킷이 보인다.
“잘 듣고 있다.”
어쩐지 밖에서 느껴지던 울림이 내 연주 같긴 하더라니.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전 수업 잘 듣고 있어요.”
“그러냐. 내가 뭐 도움이 좀 되니?”
사뭇 진지하게 묻는 이종범 교수.
“그럼요.”
나는 전공 실기 수업이 도움이 되는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그렇다고 어려울 건 없었다. 사실인 이야기를 그대로 전할 뿐이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을 때쯤.
나는 가지고 온 파일을 책상 위로 올렸다.
“이건 기말 과제예요.”
#
교수실에 홀로 남은 이종범 교수는 학번과 이름이 적힌 파일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학년 초에 윤석호 교수와 나눴던 대화를 회상했다.
‘일반 학생들과 한서호와의 갭이 클텐데, 대체 뭘 가르쳐야 할지도 고민입니다.’
솔직히 유치원생과 대학생이 한 반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가르쳐야 하는 입장에선 난감할 수밖에.
그러자 자신의 스승, 윤석호 교수가 말했다.
‘그게 무슨 고민이냐. 한서호는 이미 잘하는 녀석이고, 나머진 잘 하기 위해서 대학에 온 녀석들인데. 당연히 다른 학생들을 기준으로 수업을 맞춰야지.’
이미 그래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가르치는 이의 욕심이란 게 자꾸 생겨서 그렇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윤석호 교수가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한서호 그 녀석이 뭘 배울지 네가 재단할 필요 없어. 걘 네가 기초 화성학을 가르쳐도 거기서 깨달음을 얻을 아이니까.’
그때만 해도 자신의 스승이 무슨 소릴 하는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윤석호 교수의 입으로 듣는 한서호는 마치 고전 시대의 전설적인 천재들의 기록을 보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오늘에서야 제대로 들었다.
한서호의 입으로. 그가 내 수업을 듣고 어떤 점들을 느꼈는지, 뭘 배웠는지.
“하하···.”
이종범 교수는 낮게 웃었다.
그 말 한마디 한마디를 곱씹으며.
스승의 말이 사실이었다.
한서호에게 필요한 건 맞춤형 수업이 아니었다.
그에게 필요한 건 다양한 경험뿐.
파일에서 악보를 꺼냈다.
하나의 동기로 8마디 곡을 만들어보라는 과제가 이번 학기 기말고사였다.
그리고 한서호의 과제물이 손에 들렸다.
“······.”
잠시 악보를 살피던 이종범 교수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더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바로 피아노 앞에 착석해 악보를 보면대에 올렸다.
고작 8마리짜리 곡.
———.
여기에 자신의 수업이 모두 담겨 있었다.
심지어 자신마저도 담겨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금세 끝나버리고 만다.
8마디는 그렇게나 짧다. 이번 학기 수업이 전부 녹아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이종범 교수는 같은 8마디를 두 번, 세 번 연주했다.
과제가 문제가 아니다.
그저 음악인으로서, 이 곡이 더 듣고 싶었다.
‘곡 하나를 완성해오라고 했어야 했나.’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할 정도로 진하게 아쉬워하던 그가 이어서 고민한다.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평가 해야 한다······.’
도무지 평가할 수 없는 아이.
자신의 스승이 과거에 느꼈던 감정을.
젊은 교수는 지금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
“데이빗은 체코 필에 일이 생겨서 갔어. 알렉스도 가게 때문에 먼저 갔고.”
알버트가 커피잔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러자, 니콜라이가 웃으며 덧붙인다.
“걔 정말 가게에 진심인 것 같아요. 프랜차이즈 생각도 있던데요. 클래식 공연을 볼 수 있는 레스토랑 느낌으로.”
“오, 한국에도 내주시면 안 되나.”
내가 반색했다. 재즈는 몇 개 있는 것 같던데 말이지.
그러자 맥주잔을 텅 하고 내려놓은 프랑코가 말한다.
“네가 하나 차리지 그래?”
“그래라. 그러면 나도 가끔 놀러와서 연주할게. 잘됐네. 너랑 이중주 꼭 하고 싶었는데.”
니콜라이가 연주하는 레스토랑이라······.
이거 대박일 것 같긴 한데.
“아 참. 발터 슈몰저 마에스트로님 어떤 분이세요?”
“그건 갑자기 왜?”
그의 비서를 통해 약속이 잡혔다는 얘길 하자, 모두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발터 그 양반도? 흠, 몸이 안 좋아서 쇼케이스를 온 것도 신기했었는데.”
“그 양반은 니콜라이가 잘 알 거야. 빈 필하모닉 객원 연주자로 꽤 오래 연주했었으니까.”
알버트의 말에 니콜라이가 주억인다.
“무서운 양반이지. 깐깐하기 이를 데가 없어. 여기 계신 두 양반보다 더 해. 게다가 연습하는 것도 가장 악랄했고. 그땐 dov(-독일오케스트라협회)에서 연주자 보호에 손 걷어붙이기 전이라.”
과거를 떠올리는지 몸을 떠는 니콜라이.
내가 본 뉴욕 필과 베를린 필도 연습 시간도 상당했다. 게다가 밀도까지 꽉꽉 채워져 연습이 끝나면 단원들이 도미노처럼 허물어졌었지.
근데, 그거보다 더 심했다니···.
“그 양반 왜 아픈지 나는 이해가 간다니까. 그 나이에 하루 열 몇 시간씩 연주를 하면 몸이 안 축날 수가 있나.”
“그나저나, 그분이 갑자기 절 왜 보려고 하시는 걸까요?”
알버트와 프랑코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들도 궁금했는지 니콜라이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니콜라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흐음. 확실하진 않지만, 짚이는 게 있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