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zard’s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80)
# 280
2부 Chapter.11 새 생명과 함께
“드래곤의 성물 중에 정신의 꽃이라는 게 있도다.”
“…….”
이름 한 번 직설적이었다. 정신의 꽃이라니. 차라리 히비렌 꽃이 뭔가 더 있어 보일 정도.
“그건 어딨습니까. 지금은 없다든지, 이런 말은 곤란합니다.”
“아니, 있긴 있다. 있는데….”
“있는데?”
“성지의 지하에 피어 있다. 사용하려는 자가 그걸 가져와 먹고, 그러니까 네놈이 그걸 먹고, 루린에게도 먹이면 된다. 너는 정신을 잃고 루린과 정신이 접촉되지. 루린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될게야.”
“세상에 그런 신기한 꽃이 있습니까?”
“그래, 이런 상황이 아니라도 사용하면 그 사람의 내면을 다 들여다볼 수 있다.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까지도.”
“오, 그건 뭔가…. 사용하고 싶으면서도 무서운 놈인데요. 그래서 그 지하라는 곳은?”
“가깝다. 입구까진 안내해 주지. 하지만, 그렇게 쉽진 않을 거다. 성지의 지하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도록, 고대부터 방문자의 정신력을 엄청나게 시험해 왔거든.”
“으음, 상관없습니다. 정신력이든 뭐든 제 뼈를 갈아서라도 그 꽃을 가져올 겁니다.”
“……뭐 그렇다면 알겠다. 네놈이니 가능할 수도 있겠지.”
장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안내했다.
그 결과.
나는 어두운 지하의 나선계단을 내려가는 신세가 됐다. 그리고 이곳은 성지의 그곳.
이 공간에서는 마법을 쓸 수 없다.
마법을 못 쓰면 나는 평범한 인간.
그래서 힘들 거라고 말한 걸까?
의문을 품고 어느 정도 내려갔을 때.
갑자기 계단의 통로가 막혀 있는 지점에 도착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몸이 얼어붙는 것 같은 추위가 찾아왔다.
그 추위는 좀처럼 가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치 나보고 이만 돌아가라는 것처럼.
강추위와 막혀 있는 공간. 장로는 5층까지 내려가라고 했다. 여기는 2층이다.
그렇다는 건?
모르겠다.
무슨 장치가 있는 건가 싶어서 추위를 견디면서 사방을 뒤적거렸다.
하지만 곧,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어졌다. 몸이 얼고 있었다. 체온이 못 버틸 수준으로 내려가고, 손가락이 얼어붙는 그런 느낌.
냉동 생선이 되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속에서.
여전히 계단 앞 공간은 그대로였고, 걸어온 반대 방향에서는 빛이 들어와 돌아가면 살 수 있다는 유혹을 하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위기였다.
정말로 난데없는.
하지만 루린의 목숨이 걸려있다. 죽어도 돌아갈 수 없었다. 그 자연의 섭리에게 대항하려면, 반드시 그 꽃이 필요했으니까.
그게 없으면 루린이 깨어나지 않는다.
장로는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 것.
그 영원한 고통에 비하면, 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절대로.
이를 악물고 그 고통을 감내했다.
그 결과 약 5시간이 지나갔다.
보통이라면 벌써 동사해 죽었어야 마땅한데도 이상하게도 죽지는 않았다.
죽지 않은 채 계속해서 고통이 지속됐다.
그런 상황에서 질기게 또 5시간을 버텼더니.
드디어 10시간째에.
몸에 아무런 감각이 없는 상태에서 계단을 막아뒀던 공간이 사라졌고, 나의 꽁꽁 언 몸은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져 내려갔다.
쿠당탕-!
아마도 그렇게 정신을 잃었던 듯.
눈을 떴을 땐 계단 위였고 몸은 회복되어 있었다.
신기한 일이다.
문제는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었냐는 것. 시계조차 멈춰버린 공간이라 파악은 불가능했다.
루린이 걱정되는 마음이야 어쩔 수 없는 것.
그럴수록 전진만이 나의 길이었다.
그리고 곧 나는 장로가 말한 5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련은 아까 그걸로 끝난 걸까?
계단은 더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저 심연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순 없지만.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어쨌든 내 목표는 그저 5층의 꽃.
5층으로 들어가자, 그곳엔 넓은 공간이 있었다. 하지만 꽃은 없다.
아니 통로가 있었다.
하지만 그 통로 앞은 펄펄 끓는 용암이 막고 있었다. 그 통로까지 점프해 들어가는 것은 절대로 무리인 거리에.
드래곤도 점프해봤자 용암에 떨어질 대해의 용암.
그리고 장로가 말하길 여기선 드래곤도 날 수 없다고 말했다. 눈앞에 있는 용암은 아마 드래곤용이 아닐까.
덕분에 무지막지한 공간이 끓어오르고 있다.
그러니까 이 용암을 지나가 저 통로로 가야 꽃을 얻을 수 있다는 그런 것?
이 용암은 아무리 봐도 진짜 같은데?
들어갔다간 죽는데? 아까처럼 얼어버리는 건 그나마 몸이 보존되는데, 불타서 녹아버리면 보존이라곤 없다. 잿가루가 될 뿐이지.
일단 진짜 용암인지 환술 인지 확인해보려고 윗옷을 벗어서 살짝 갖다 대었다.
그 순간 닿은 부분이 녹아 없어지고 윗옷에 불이 붙어 올라왔다. 깜짝 놀라서 급하게 손을 떼자 윗옷은 형체도 없이 불타올라 사라져 버렸다. 윗옷에서 손을 떼던 순간 느꼈던 그 뜨거움.
이건, 용암 그 자체였다. 정말로 용암 그 자체.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계단 쪽에서 빛이 번쩍였다. 마치, 지금이라도 살고 싶으면 돌아가는 게 낫다는 유혹을 하듯이.
생각하자.
아까도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엄청난 고통이 있었지. 그리고 지금은, 아마도 죽지는 않아도 저 통로까지 수억 번 몸이 불타는 경험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는다는 행위 중에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타서 죽는 거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훗. 웃기고 있네.”
그렇다면 그 고통.
어디 한 번 경험해본다. 지옥에 가기 전 미리 지옥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겠지.
백억 번 죽어서라도 루린을 구할 수만 있다면.
나는 용암으로 뛰어들었다.
순간, 온몸이 녹아드는 감각이 전신을 덮쳤다.
-압도적인 고통!
“크아아아아아아아악!”
저절로 비명이 튀어나왔다.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고 숨을 쉴 수 없는 기분에 붕 뜨는 감각이 나를 찾아왔을 때.
갑자기 평화가 도래했다.
“응?”
녹아 없어질 것 같던 몸은 아주 멀쩡했고, 여전히 팔팔 끓는 것 같아 보이는 용암은 마치 온천의 온도처럼 아늑했다.
“온도 좋은데?”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걸어 나갔다. 나는 별 저항 없이 통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피어 있는 꽃 한 송이를 발견했다.
아무래도 이것이 정신의 꽃이란 녀석이리라.
그 꽃은 깊은 가시덩굴 속에 고고하게 피어 있었다. 그래서 손을 뻗었다. 가시가 손을 찌른다.
하지만 이건 고통도 아니었다. 생채기가 나고 피도 나지만, 정말로 이건 오히려 우스운 수준.
그렇게 거침없이 그 꽃을 꺾었다.
그리고 다시 그 용암을 건너서, 계단 위를 올라왔다. 그 올라오는 과정에서는 그 어떤 고통도 없었다.
“장로님, 다녀왔습니다. 이거 맞죠? 제가 얼마나 걸렸죠?”
“어. 하루 정도?”
“루린은 어떻습니까?”
“네가 계단을 내려가기 전과 상황은 똑같다. 그래서 꽃은?”
“여기 있습니다.”
“…추위의 고통은?”
“별거 아니었습니다.”
“용암의 환각은?”
“그것도 별거 아니던데요?”
“추위의 고통은 너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이며, 용암은 정말로 네 목숨을 바쳐 꽃을 꺾을 수 있는지 정신력을 시험한 거지, 네놈은 네놈이구나.”
“그거야, 뭐….”
“그렇다면 가시는?”
“가시요?”
내 손등에 상처를 낸 이 가시?
“별거 없었는데요?”
“……그렇군. 그 가시는 네가 순수한 마음으로 이 꽃을 원하는지, 그것을 시험한다. 만약 아니라면 그 가시의 독은 너를 좀먹지. 그것은 드래곤이라고 해도 버텨낼 수 없는 독이니라.”
“……순수한 마음 말씀입니까?”
“그래, 이 꽃을 악용하려고 하는 목적이라면 죽는 거지.”
“그것참 살벌하네요.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얻어왔으니 이제 사용해서 루린을 불러오면 되는 거겠죠?”
***
루린은 허공에 붕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자신은 그 공간에 부유하고 있었다.
아무런 감각도 없다.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으며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어둠뿐.
뭐가 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눈앞의 공간은 어둠. 그리고 머릿속은 새하얀 백지였다.
-나는 누구?
근원적인 질문이 루린의 머릿속을 지배한다. 열심히 뭔가를 기억해내고 싶은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것도 없는 백지.
마치 존재의 의미가 허무로 돌아간 것처럼.
-모르겠다.
루린은 그냥 생각을 포기했다. 그럴수록 몸은 더 깊은 어둠의 심연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갔다.
-모르겠다?
-무엇을 몰라?
힘들었다. 뭔가를 기억해내려고 할수록 모든 것이 텅텅 비어가는 느낌.
자신이 누구라는 질문조차 무의미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자.
몸은 점점 더 어둠에 싸여 버렸다.
루린의 몸은 점점 무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고회로도.
몸도.
주변의 어둠도.
전부 무로 향해 갔다. 존재의 의식이 옅어가는 그런 순간.
루린은 그 어둠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또 다른 어둠이 찾아왔다.
이 어둠은 한층 더 무.
-루린.
그 무에 정신조차 빨려 들어가려는 순간. 어째선지 익숙한 단어가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그 단어를 말한 목소리도 익숙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누구?
루린이 마음속에 물었다.
-루린!
그러자 목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뭔가 간절한 목소리였다. 그저 두 단어를 말했을 뿐인데.
너무나도 간절하고, 너무나도 처절한 목소리였다.
눈을 감자마자 무에 빨려 들어가던 루린은.
그 목소리에 눈을 떠버렸다.
여전히 주변은 까만 어둠.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작은 빛의 덩어리 하나가 움직이고 있었다.
아까와는 다른 광경.
-누구냐?
루린이 다시 마음속에 말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는 것밖에 허락되지 않은 것 같이.
-루린! 정신 차려. 날 모르겠어?
다시 들리는 목소리.
-모른다.
루린이 어둠 속에서 대답했다.
-몰라도 상관없어. 돌아가자!
돌아가자고? 어디로? 그렇지 않아도 무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무로?
루린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목소리가 매우 애달픈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네가 돌아가야 할 곳은 내 품이야. 생각 안 나? 나와 보냈던 그 시간들. 생각나지 않아? 생각해내야 돼. 루린!
품?
품이란 단어에서 루린은 뭔가 따듯함이 느껴졌다. 텅 빈 자신임에도 그 단어가 몸을 채워주는 것 같은 그런 따뜻함이 느껴졌다.
-루린 당장 정신 차려. 이름을 떠올려. 너의 이름은 루린. 그리고 내 이름은 엘! 엘르시온이다!
으으.
루린은 갑자기 온몸에 고통이 느껴지는 걸 깨달았다. 방금 전까지는 아무런 감각도 없이 그저 무에 빨려 들어가 있었는데.
루린이란 이름보다.
엘이란 이름을 듣자마자 강렬한 고통이 찾아왔다. 마치 절대로 생각해내면 안 되는 이름이라는 듯이.
-엘.
-엘.
-엘.
-엘.
자연의 율법.
자연의 섭리.
자연의 흐름.
그것을 거스르는 것은 무로 향하는 지름길.
으으으읔.
루린에게 찾아온 고통이 더 심해졌다. 하지만 엘이란 이름이 루린의 몸속에 채워 넣은 감각!
그것이 루린을 무로부터 끌어 올리고 있었다.
-나는.
-나는.
-나는 루린이다.
그리고 엘이란 이름은.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 이 목숨을 달라고 한다면 거리낌 없이 바칠 수 있는 이름이었다.
모든 것을 잊고 무로 돌아가라는 이 공간의 속삭임을 떨쳐낼 정도로 엘이라는 이름이 소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