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247
248. 비련
서정우가 오랜만에 경찰 정복을 입고 서장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
ES 엔터테인먼트의 승합차도 같은 곳을 향해 달렸다. 이선화가 뒷자리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말했다.
“가끔은 정우 씨가 아직 순경이라는 게 안 믿어진다니까.”
서소라가 손가락을 흔들었다.
“오늘 점심때부터는 경장이죠. 오늘 상도 타고 승진도 하니까.”
조수석에 탄 남수정이 뒤를 돌아보며 이선화에게 물었다.
“언니. 그런데 우리가 아저씨 상받는데 가도 돼요?”
“왜? 우리를 부끄러워할까 봐? 괜찮아. 부끄러워 하는 거 한번 보고 싶다.”
“그게 아니라, 아저씨 이런 거 안 좋아하실 텐데.”
“됐고. 플래카드하고 피켓 잘 챙겼지?”
그 뒷자리에서 쌍둥이 박하연이 피켓 세 개를 손으로 두드렸다.
“당연하죠! 우유 빛깔 서정우! 디리리리 서정우! 드림 캐쳐 서정우!”
박다연도 둘둘 말린 천을 흔들었다.
“플래카드는 나한테 맡기시라!”
이선화가 박하연이 가지고 있는 피켓 중 하나를 가리켰다.
“잠깐. 우유 빛깔은 좋은데, 디리리리는 좀 바보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게 또 재미죠.”
“드림 캐쳐는 뭐야?”
“응. 그건….”
이선화가 당장 눈을 가늘게 떴다.
“쌍둥이! 정우 씨에 대해서 내가 모르는 걸 알지? 숨게는 게 뭐냐!”
“디 형사님이 우리 아빠랑 아는 사이라서 그래요. 밝힐 수 없는 비밀이 있거든요.”
‘밝힐 수 없는 비밀’이라는 말 때문에 이선화는 캐묻는 걸 포기했다.
‘아. 얘네 아빠도 경찰이셨지. 순직 하셨고. 그 이야기인가 보다.’
“응. 그렇구나. 그럼 너희들은 그 피켓이랑 플래카드 잘 들고 있어.”
포켓츠에 남수정까지 더하면 다섯 명이다. 그 인원이면 피켓 세 개와 플래카드 하나가 딱 맞는다.
남수정이 물었다.
“그럼 언니는요?”
이선화가 웃었다.
“난 꽃다발 줘야지. 오호호훗.”
“언니. 그 웃음은 드라마의 악녀가 하는 거 아녜요?”
“카리스마 넘치는 악녀 역할도 한 번 맡고 싶은데, 다들 주인공만 제안한단 말이야. 얼굴에 점 찍고 폭탄주 마는 거 하고 싶은데.”
이선화의 로드 매니저 전동현이 말했다.
“누나가 그런 배역 맡으면 사장님 쓰러지세요.”
“야. 운전에 집중해.”
“전 왜 다른 회사의 차를 운전하고 있는 걸까요?”
“그럼 내가 하리?”
“아니죠. 근데 박하연 씨가 말한 디 형사는 뭐예요?”
“어머. 동현아. 그거 알면 다치는데, 진짜 알고 싶어?”
“아니요.”
“말해줄 때까지는 궁금해하지도 마.”
“넵!”
* * *
경찰 공식 행사장 앞자리에 서정우의 상관인 서장 염기훈이 앉아 있었다. 그 옆에 앉은 친한 경찰 간부가 말했다.
“애 하나 잘 받아서 아주 어깨에 힘 잔뜩 들어갔네?”
“부러우면 너도 받던가.”
“서정우를 넘겨주게?”
“차라리 내 목을 쳐라.”
“부럽다. 임마. 그런데 말이야.”
그 간부가 뒤쪽을 향해 슬쩍 눈짓 했다.
“저기 뒤에… 연예인들이지?”
“서정우 동생이 걸그룹 포켓츠다. 동생네 그룹이 통째로 왔어.”
“그 옆에 남수정은?”
“우리 동네 주민인데, 데뷔하기 전부터 서정우하고 알던 사이야. 그런데 네가 남수정을 알아?”
“우리 딸이 남수정 팬인데. 싸인 좀….”
“그런 건 사복 입고 가서 직접 받아라. 사인 부탁하면 잘해준다. 괜히 정복 입고 그러다 사진 찍히지 말고. 오늘 행사에 기자도 많이 왔는데.”
“그래. 그건 그러면 되겠네. 그런데 또 말이야.”
그 간부가 단상 옆을 가리켰다.
“이선화가 꽃다발을 들고 서 있네?”
염기훈은 이미 경찰서에서 이선화와 몇 번이나 마주쳤다. 그러다 커피도 한 잔 대접했다.
염기훈의 어깨에 힘이 더 들어갔다.
“내가 좀 아는 사이지.”
“부럽다.”
“내가?”
“아니. 서정우.”
행사 중간에 서정우가 경찰청장 표창을 받으러 단상에 올라갔다. 그가 정복을 입고 나타나자마자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졌다. 표창장을 받은 후에, 이선화가 꽃다발을 들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단상 중앙으로 걸어갔다.
서정우를 찍던 카메라들이 즉시 그녀를 향해 돌아갔다.
카메라가 없는 기자들은 활짝 웃으며 꽃다발을 내미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이러면 이선화는 열애설 걱정해야 하는 거 아냐?”
“이선화가 열애설 난다고 인기 떨어질 레벨은 아니지.”
“그럼 서정우는?”
“경찰이니까 열애설이 나든 말든 원래 상관없잖아.”
“하긴. 경찰인데 연예인 같아서 가끔 착각을 한다니까.”
“연예인보다 더 유명하니까.”
“부럽다.”
“서정우?”
“당연하지. 열애설 상대가 이선화라니.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나?”
기자가 오늘따라 더 화사해 보이는 이선화를 보며 말했다.
“세상을 통째로 구해야 하지 않을까?”
* * *
서정우가 표창을 받고 승진한 것만 해도 기사가 된다. 그래서 기자들이 평소보다 많이 모였다.
그런데 그 장소에 이선화가 나타나 축하 꽃다발을 서정우에게 주었다. 그런 기사는 원래 속도 경쟁이 붙는다. 제일 처음에 나간 건 한 줄짜리 기사였다.
그걸 본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기사가 아니라 SNS냐!
잠시 후에 사진이 첨부된 기사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쌍둥이가 이용하는 게시판에도 제대로 된 기사가 올라왔다. 그 밑에 댓글도 바로 붙었다.
-안돼!
-이선화는 안된다. 이놈아!
-오보다! 오보여야 한다!
그 게시판의 수많은 댓글 중에 축하한다는 건 하나도 없었다.
포켓츠 네 명과 남수정이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흔드는 사진도 올라 왔다.
-차라리 저 중에서 골라라!
-저 다섯 중에 셋은 미성년자고 하나는 친동생이니까, 딱 한 명 남는데요? 윤나나요.
-그럼 이선화 대신에 윤나나를… 안 되겠지요?
-무리. 이선화는 클래스가 다름.
다른 쪽으로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경찰이 상 받는다고 연예인이 저렇게 많이 오는 게 정상인 가요?
-정상입니다. 포켓츠는 동생네 그룹이고, 남수정은 동네 아는 동생, 이선화는 여자친구…는 아닐 거다. 아니어야 한다!
영화제작사 블루토마토의 이사 이수현은 그 기사에 찍힌 연예인들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나는! 나는 왜 안 불렀는데!”
지나가다 그 소리를 들은 블루토마토 직원들이 어깨를 움츠리며 자리를 벗어났다.
“오늘은 마녀 상태가 옛날로 돌아 간 것 같지?”
“한동안 편했었지.”
“당분간 몸조심하자.”
* * *
이선화의 로드 매니저 전동현은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녀의 승용차를 가져왔다.
행사가 끝나고 나서, 이선화가 전동현에게 말했다.
“넌 저 승합차 ES 엔터에 반납하고 바로 퇴근해서 여자친구랑 놀아. 갈 때 쟤들 태우고 가고.”
포켓츠와 남수정은 그 차를 타고 회사로 갔다.
서정우는 이선화의 차를 타고 동네로 돌아왔다. 그녀가 집 근처 공영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서정우가 경찰 정복을 입고 다니면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서 불편하다.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와야겠다.’
서정우가 집으로 걸어갔다. 이선화가 얼른 따라갔다.
“집에까지 따라오려고요?”
“뭐예요? 차 태워줬는데 그냥 가라고요? 차비로 커피라도 한 잔 줘요.”
“그러다 엄한 기사 나면 안 좋을 텐데.”
저쪽 세계는 스킬을 각성하지 못한 젊은 여자 배우에게 가혹하다. 그래서 조연 배우 이선화에게 열애설은 치명타다.
이쪽 톱스타 이선화도 전에는 그런 걸 조금 경계했는데, 이젠 신경도 쓰지 않는다.
“나 이선화예요. 지금 로코 촬영기간도 아닌데 그까짓 게 뭐 어때요?”
“나중에 곤란해져도 난 모릅니다.”
이선화가 방긋 웃었다.
“그땐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얼른 가요. 난 아메리카노.”
“집에 커피 메이커하고 믹스 커피밖에 없는데.”
“커피 머신 하나 선물할게요.”
“본인이 마시고 싶어서 사는 건데 선물 맞….”
서정우는 문득 저쪽 이선화가 생각 났다. 저쪽 이선화도 이런 식으로 짐을 하나씩 늘이다가, 이제는 방하나를 자기 것처럼 쓴다.
“됐습니다.”
“그거 얼마 안 해요. 아. 나한테 에스메랄다 농장 원두가 있는데 내 일은 그걸 가져와서 드립….”
서정우가 갑자기 왼팔로 이선화를 와락 끌어안았다.
이선화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야? 혹시 이거 진도 나가는 거야? 갑자기 이렇게? 뭐에 꽂힌 거지? 내가 방금 뭐라고 했는데? 혹시 커피? 라면도 아닌데?’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총알이 그녀의 뒤쪽으로 지나갔다.
그녀는 그때서야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저절로 비명이 나왔다.
“꺅!”
서정우가 이선화와 함께 옆으로 휙 움직였다. 두 번째 총알이 날아가 벽에 꽂혔다.
서정우가 이선화를 왼팔로 안은 건, 갑자기 감지 스킬에 살기가 잡혔기 때문이다.
살기의 방향은 이미 파악했다. 얼굴을 복면으로 가리고 숨어 있던 놈도 찾아냈다.
그는 적의 권총을 확인했다.
‘육 연발 리볼버.’
적은 이미 두 발을 쐈다.
‘남은 총알은 최대 네 발.’
평소의 서정우라면 저 정도 상대는 쉽게 잡는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좀 불리했다.
서정우는 지금 총이 없다. 경찰 공식 행사장에 정복을 입고 참석하는데 총을 가져갈 순 없다.
게다가 지금은 혼자가 아니다. 이선화와 같이 있다.
저쪽 세계의 이선화라면 총격전이 시작되자마자 엄폐물을 찾아 뛰겠지만, 평화로운 이쪽 세계에서 살아온 이선화에게 그런 걸 바랄 순 없다.
이 상황에서 그녀를 지키려면, 적이 총을 쏠 때마다 그녀와 함께 피해야 한다.
서정우가 왼팔로 그녀를 꽉 안았다.
“누구냐?”
2선 국회의원 김진석이 머리카락까지 감싸는 복면을 쓴 채로 골목 가운데로 나왔다.
그는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고 노출된 신체 부위를 모두 가렸다.
권총은 양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쥐고 있었다. 이러면 화약 흔적이 몸에 남지 않는다.
김진석이 이를 갈았다.
“등 뒤에서 쏘는 총은 못 피할 줄 알았는데. 등에도 눈이 달렸나.”
김진석은 군대는 이리저리 손을 써서 면제로 빠졌지만, 총은 잘 쏜다. 미국에 갈 때면 사격장에 들러서 권총만 백 발 이상씩 쏘곤 했다. 그래서 그는 서정우를 한 방에 죽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심장을 노리고 쐈는데 그걸 피할 줄이야.’
그가 조금 전에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서정우가 돌아섰다. 놀라긴 했지만 일단 방아쇠를 당겼다.
그런데 서정우가 그걸 피했다. 혼자 피한 것도 아니고 이선화까지 데리고 피했다.
서정우가 말했다.
“오늘 경찰 행사에 내가 참석하는 걸 알고 여기서 기다렸구나.”
“흐흐. 정복을 안 입는 네 행동 패턴을 분석했더니, 옷을 갈아입으러 집에을 거라는 결론이 나왔지.”
“내가 목표면 여자는 보내줘라.”
“어림도 없다.”
이선화가 활짝 웃었다.
“정우 씨. 나 걱정해주는 거예요?”
“그래야 멋있을 것 같아서 그냥 해 본 말인데요.”
서정우는 상대가 누군지 생각해보았다.
‘칼치파의 잔당인가? 아니야. 내가 그놈들을 쓸어 버린 건 아무도 몰라. 국제 산업스파이 조직? 혹시 살아남은 놈이 있어도 비자금을 챙겨서 잘 먹고 잘살고 있겠지. 그럼 호텔 테러리스트?’
서정우가 복면인의 권총을 보았다.
‘아니야. 산업스파이나 테러리스트 쪽이면, 장탄수가 많은 반자동권총을 가져왔겠지.’
그는 최근에 해커 김도윤을 잡았다. 그 이야기를 일부러 꺼내보았다.
“김도윤에게 받은 내 성향 정보를 보고, 내가 옷을 갈아입으러 집으로 돌아을 거라고 예상한 건가?”
복면을 쓴 김진석이 움찔했다가 실실 웃었다.
“흐흐. 그랬지. 그놈 자료가 돈값은 하더라.”
서정우는 최근에 2선 의원 김진석과 여러 형태로 충돌했다.
‘그놈이 대놓고 날 노린 건 김도윤을 잡은 후부터였지.’
게다가 김진석은 과거에 살인을 저질렀다. 살인으로 의심되는 상황은 저쪽에서는 네 건이, 이쪽에서는 한 건이 더 있다.
‘두 번을 저질렀으면, 세 번도 저지를 수 있지.’
저 총도 단서가 된다.
‘일반인은 한국에서 총을 구할 방법이 없지만, 국회의원이 권력을 악용하면 리볼버 권총 한 자루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서정우가 확인을 위해 미끼를 던졌다.
“어이. 김진석. 국회의원이 잘하는 짓이다.”
깜짝 놀란 김진석이 왼손으로 복면을 만지다 얼른 손을 떼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게 무슨 소리냐!”
서정우가 그 모습을 보고 결론을 내렸다.
‘맞네. 김진석.’
평소라면 상대가 동요하는 순간에 제압할 수 있다. 일단 옆으로 뛰어서 조준선을 벗어난 후에 공격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권총이 서정우만이 아니라 이선화까지 조준하고 있다.
김진석도 그걸 안다. 그가 두 손으로 권총을 꽉 쥐고 살벌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정우. 네가 피하면 이선화가 죽는다. 그냥 내 총에 죽어라. 그러면 이선화는 살려주지.”
이선화가 외쳤다.
“정우 씨. 안돼요! 나 대신 총에 맞으면 안 된다고요!”
“어차피 안 맞아요.”
“알거든요?”
이선화도 안다. 방금 걱정하는 것 처럼 외친 건 사실 연기다. 그녀는 서정우가 겨우 한 명에게 질 리 없다고 믿었다. 이미 총알도 두 번이나 쉽게 피했다.
“비련의 주인공 설정 잡고 연기한 거예요.”
서정우가 피식 웃었다.
“설정연기 참 좋아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