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Succession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194
이능 계승잔데 특성이 있다 194화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앞에 선 숙정은 전보단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까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다.
처음 숙정의 외모를 보고 다들 놀랐지만 자신들이 그토록 청한 인물이 제 발로 왕림한 것이라 애써 시선을 돌렸다.
그제야 숙정은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왕청하 소장의 연회까진 갈 자신이 없는지 관사에 남기로 했다.
“금방 올게.”
“전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은성은 숙정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스킨십이었다.
은성은 숙정이 좋아하는 음식을 자신의 진 인벤토리에서 꺼내 탁자를 덮었다.
동화책도 꺼내주었다.
“감사합니다.”
은성은 왕청하 소장이 안내인으로 붙인 교연방의 안내로 마차에 몸을 실었다.
관사를 나선 마차는 중앙 대로를 따라 천천히 이동했다.
교차로에서 마차가 잠시 정차했을 때 은성은 비명을 들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은성의 눈이 찌푸려졌다.
“저들은 왜 잡아가는 겁니까?”
너저분한 옷차림의 아이들이 제복차림의 남자들에게 짐승처럼 끌려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끌려가지 않으려 도망치다 잡혀서 맞고, 버티다 맞았다.
행인들은 멀찍이 물러선 채 지켜보기만 할뿐 나서는 사람 하나 없었다.
어떤 이들은 힐끗 보고 지나치기도 했다.
은성의 질문에 교연방은 난처한 표정으로 쩔쩔맸다.
곧 체념한 그녀가 설명했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고아들이에요.”
“그들을 돌보지 않습니까?”
“이런 세상에 누가 그들을 돌보겠어요.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제 말을 오해했군요. 개인이 아니라 행정국…… 음, 여기선 명칭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니 일단 정부라고 하죠. 정부에서 고아들을 돌보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대피소에 거주하는 인민이 수십만 명이에요. 식량과 생산력은 한계가 있지요. 그래서 취약계층을 돌볼 여력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연방의 말은 각자도생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방치한다고요?”
“전 귀인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네요. 이런 세상에서 취약계층을 돌보는 집단이 있을 리가…… 설마, 한국에선 그리하나요?”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곤란한 처지라면 제 한 몸 건사하기도 급급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몬스터라는 외부의 공격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지하도시다.
물론, 지하도시라고 다 안전한 건 아니다.
재수가 없으면 미 오리건 대피소처럼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패망한 사례도 있으니까.
그러나 그건 이레적인 사건이었다.
아직도 오리건 대피소의 몰락을 생각하면 어이가 없었다.
온갖 욕을 들으며 전 세계에서 긁어모은 이능 계승자가 몇인데 그처럼 허망하게 무너졌는지.
“적어도 우리 땅에선 아이들을 저렇게 대하진 않습니다.”
반항하던 아이들은 결국 폭력에 굴복하여 짐승처럼 끌려갔다.
이를 보다 못한 은성이 마차 문을 박차고 나가려 하자 교연방이 그를 붙잡았다.
“귀인께서 아이들을 가엽게 여기시고 도와주시려는 마음은 고맙지만 계속 돌봐줄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저렇게 끌려가는 편이 나아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저렇게 끌려가면 하루 한 끼는 먹을 수 있으니까요.”
“여기 식량사정이 그렇게 안 좋습니까?”
“구세력과 신세력이 충돌하면서 식량 창고 3분의 2가 불탔어요. 식량 생산시설 역시 막대한 피해를 입었죠.”
가진 걸 나누어 먹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이면 몬스터와 싸우는 사람들에게 우선하여 식량을 공급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밖에 나가면 버려지거나 몰살당하여 방치된 대피소가 수두룩하다.
중국 내 대피소 상황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의 경우에는 각 대피소마다 2, 3년 치의 식량을 비축했다.
설마 중국이라고 그 중요한 걸 비축하지 않았을까.
그러니 그런 곳을 찾아가서 확보해도 굶주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니, 그런 곳이 없다면 던전에서 이를 조달하는 방법도 있다.
이처럼 방법이 다양하다.
몬스터라는 난관을 뚫어야겠지만 한중 정도의 전력이면 그쯤은 일도 아니다.
한마디로 식량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 신호가 바뀌어 마차가 움직였다.
은성이 탄 마차 옆으로 짐마차 두 대가 나란히 지나갔다.
놀랍게도 짐칸엔 시체들이 잔뜩 실려 있었다.
천으로 덮어두긴 했지만 밖으로 삐져나온 팔과 다리가 보였다.
앙상한 것이 나뭇가지를 보는 듯했다.
“저건?”
“빈민촌의 동사자들이에요. 요즘 날이 추워져서 동사자들이 속출하고 있어요.”
겨울을 무사히 나기 위해 난방은 필수다.
때문에 한풍가는 진작 이 문제를 고민하였고, 그 해답을 몬스터 부산물에서 찾을 수 있었다.
덕분에 한풍 대피소에선 난방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찾을 수 없었다.
그건 영종도와 충주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일본도 난방을 걱정하지 않는다.
바로 황탄이란 연료를 손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황탄의 주재료는 등급과 무관한 몬스터 부산물로서 이것과 흙만 있으면 약간의 건조기만 거치면 바로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없어서 사람들이 얼어 죽는다니.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렇다고 여기 사람들이 몬스터 사냥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대체 뭐가 잘 못 된 거지?’
은성은 이질감을 느꼈다.
설마, 사람을 솎아내는 건가?
이런 그의 찝찝한 생각과 달리 마차는 도시 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저택 앞에 당도했다.
쇠창살문을 통해 마당을 조금 달린 마차는 저택 현관에 도착했다.
손님이 온다는 연락을 받은 이 저택의 고용인들이 양옆으로 도열하여 90도 인사로 은성을 맞이했다.
그 끝엔 왕청하 소장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서서 그를 환영했다.
그건 분명 환대였지만 이동 중에 본 것들이 있어 내키지 않았다.
연회장은 바깥과 달리 홀 전체가 따뜻했으며, 아이들이 구걸하는 곳이 맞나 싶을 만큼 테이블마다 다양한 음식들이 가득 구비되어 있었다.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손끝 하나 까딱이지 않더라도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미모의 남녀 고용인들이 곁에 붙어서 시중을 들었다.
‘불편하군.’
술잔이 돌고 돌수록 술이 사람을 먹었다.
왕청하 소장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저들끼리 시비가 붙었다.
취기 때문인지 사소한 일에 열을 내며 이편저편으로 갈라서서 목청을 높였다.
‘개판이군.’
아니면 자신을 무시하는 건가?
은성의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랐을 때 잠시 자리를 비웠던 왕청하 소장이 와선 이 사태를 진정시켰다.
소장의 권위를 인정하는 분위기였지만 분위기는 꺾인 대들보 위에 올려진 지붕처럼 위태로웠다.
연주자와 가수, 그리고 댄서들이 흥을 돋우려고 필사의 노력을 경주했지만 한번 깨진 흥은 되살아나지 않았다.
“오늘 연회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모두 돌아들 가세요.”
보다 못한 왕청하 소장이 일갈하며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그들은 각자 무리를 지어 상대 무리를 향해 콧방귀를 날리며 경쟁하듯 퇴장했다.
화를 삭인 왕청하 소장이 은성에게 고개를 돌렸다.
“귀한 손님을 모셨는데 못 볼 꼴을 보였네요. 괜찮으시면 따로 자리를 마련해서 담소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 * *
담백하고 소박한 술상을 앞에 두고 은성과 왕청하 소장은 마주 앉았다.
술과 안주를 먹여주던 시중이 없어 부담이 없는 자리였다.
왕청하 소장은 연거푸 세 잔의 술을 마셨다.
“사과의 의미예요.”
“왕 소장님이 사과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망하셨지요?”
“빈말이라도 아니라곤 못 하겠군요.”
“바른말은 쓰다더니…… 맞아요. 우린 내부적으로 문제가 많아요.”
고소를 머금은 왕청하 소장은 이를 씻기 위함인지 술잔을 비웠다.
은성도 왕청하를 일별하며 잔을 비웠다.
독한 술이었지만 은성을 취하게 만들지 못했다.
사실 연회에 참석한 자들 역시 대취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손님을 초대한 자리에서 언성을 높인 건 서로에게 그간 쌓인 감정이 많은 탓이었다.
“해결이 쉽지 않은가 보군요.”
“연회에 참석한 자들 모두 없어서는 안 될 고위 이능 계승자들입니다. 거기다 각자 세력도 갖고 있지요. 그런 그들을 제재한다는 건 전쟁을 선포하는 짓이라 저 역시 골치를 썩이고 있습니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에 자신들의 치부를 털어놓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청하 소장이 하소연을 하는 건 그녀 역시 스트레스가 쌓일 만큼 쌓였다는 반증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우린 무능한 공산당 당원인 구세력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습니다. 봉기의 목적은 구세력의 무능함과 편협함으로 인하여 병들어가는 한중 대피소 살리기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내세웠던 의로운 취지는 권력이 주는 달콤함에 취한 자들이 속속 나오면서 지금은 구세력과 다른 점이 없어졌습니다. 아니,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가 되었다고 봐야겠지요.”
이런 민감한 내용을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밝힌다? 과연 이걸 단순한 푸념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왕청하 소장이 술을 제법 마셨다지만 그녀는 초인이다.
그러니 분명 의도가 있음이다.
“제가 원하는 게 있습니까?”
“은성님이 계시는 한풍가와의 동맹을 원합니다.”
“우리와 동맹을 맺는다고 내부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곤 보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그리 해결될 문제는 아니죠. 하지만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우한과 정저우에서 허튼짓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방파제로서의 역할은 할 수 있지요.”
어쩐지 한중 대피소가 다른 두 대피소보다 동맹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더라니.
“우린 남의 집안싸움에 관심이 없습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스탯석? 자원? 아니면 미녀? 뭐든 말하세요. 원하면…… 다 내드리겠습니다.”
스탯석? 자원? 한강에 물 한 바가지 더 붓는다고 수위가 달라지지 않는다.
미녀? 남자라면 혹할 수밖에 없는 제안이다.
하지만 그 또한 은성의 마음을 흔들 수 없었다.
한반도, 아니 일본에서도 은성이 원하면 미녀라 불리는 여인들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은성이 금욕적인 생활을 이어가는 건 혹시라도 거기에 매몰되어 주저앉을 걸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타인의 마음도 그렇지만 때론 자신의 마음도 모르는 게 사람인지라.
은성은 왕청하란 개인을 보고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다 필요 없습니다. 대신 지지의 조건으로 하나만 부탁하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연회장으로 오면서 보니까 아이들이 굶주려서 거리에 나와 구걸하더군요.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동사한 시체도 봤습니다. 몬스터도 아니고 이런 이유로 사람이 죽어야 할까요? 제 부탁은 그들을 제대로 돌봐달라는 겁니다. 약속하시겠습니까?”
왕청하 소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니, 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아직도 남아 있을 줄이야.
왕청하는 진심으로 감동했다.
“주도권을 확실하게 쥐게 된다면 은성님의 당부를 잊지 않고 실천하겠습니다.”
구걸하는 아이들.
얼어 죽는 사람들.
따지고 보면 은성과도 한풍가와도 무관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성이 이를 거론한 건 지금처럼 말 한마디, 이름 하나 빌려주는 것만으로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켜보겠습니다.”
은성이 어떤 존재인지, 그가 어떤 힘을 가졌는지 파악하고 있었기에 왕청하 소장은 저 말을 무겁게 가슴에 새겼다.
* * *
은성은 관사에 도착하자마자 집으로 공간 이동했다.
형수와 깨소금을 볶던 큰형을 불러내 한중의 사정을 알렸다.
한중을 비롯한 정저우, 우한 대피소에서 파견된 대사들과는 아직 동맹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엔 들어가지 않았다.
은성이 그쪽 사정을 확인한 뒤 할 계획이었기에.
“……음, 어쩐지 한중 대피소 대사를 바라보는 우한과 정저우 대피소 대사의 시선이 곱지 않더라니. 그런데 굳이 우리가 그 일에 끼어들 필요가 있는 거냐? 이득도 없는데?”
“기업도 때론 손해 보는 일을 하잖아요? 사회사업 같은 거.”
“순진한 녀…… 흠흠. 그래, 사람이 착하게 살면 좋은 거지. 그래도 뜯어낼 건 뜯어내면 좋지 않을까?”
“우리에게 부족한 게 있어요?”
“그렇긴 한데.”
“괜한 욕심은 부리지 않는 것으로 해요. 이미 차고 넘치는데 거기에 물 한 방울 더 보탠다고 달라질 건 없잖아요.”
“알겠다. 그럼 정저우와 우한이 한중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고 논의하마. 그런데 중국 애들이 이상한 곳에서 자존심 내세우는 그런 경향이 있는데 과연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네.”
“그땐 제 이름 파세요.”
“네 이름?”
“제가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은성이 중국 전역에 남긴 사냥의 흔적은 중국인들의 뇌리에 경외심을 새겨놓았다.
저항할 수 없는 존재로.
사실 그 때문에 중국 내 거대 대피소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 부랴부랴 사신을 파견한 것이다.
혹여 은성의 칼이 자신들을 향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그러니 은성의 요구를 저들이 어찌 무시할 수 있을까.
“내일 바로 네 뜻을 전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