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30
47화 사대 악인 (4) >
붉은 예기의 파도에 투창처럼 날아오던 보검이 튕겨나가고 말았다.
사마착이 날아가는 보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보검이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허공에서 사마착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파도처럼 퍼져나가는 붉은 예기를 향해 사마착이 검을 휘둘렀다.
-촥!
초승달 모양으로 아지랑이처럼 공기가 흔들렸다.
앞으로 퍼져나가던 붉은 예기와 사마착이 휘두르며 날린 예기가 부딪치며 배의 한 가운데가 반으로 갈라졌다.
-쩌저저저적! 쿠구구구구!
“배, 배가!”
배가 기우뚱거리며 심하게 흔들거렸다.
떨어져서 지켜보던 교인들이 배의 난간을 붙잡았다.
이윽고 흔들림이 멈췄다.
두 예기가 부딪친 여파는 그야말로 장관이나 다름없었다.
선상 바닥이 나와 사마착을 중심으로 서로를 향해 부채꼴 모양으로 갈라져 있었다.
“하!”
“어찌….”
해악천을 비롯한 서갈마, 심지어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백련하까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도장호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혈마이시여. 방금 그건 대체?”
“저도 잘….큭!”
대답을 하려던 찰나에 심장이 격하게 뛰고 머리가 터질 듯 한 두통이 암습해왔다.
-쿵!
몸에 힘이 풀리며 바닥에 무릎이 닿았다.
“혈마!”
당혹스러워 하는 도장호의 외침과 함께 머릿속에 소담검의 목소리가 울렸다.
-너 혈마화가 풀렸어. 코, 코피도 나!
“헉….헉….”
녀석이 말하지 않아도 코밑으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물기로 알 수 있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손을 쳐다보니 천권의 붉은 점이 어느새 푸르게 바뀌어 있었다.
염(念)을 전부 소모한 것 같았다.
“괜찮은 겁니까?”
도장호의 물음에 나는 손을 휙휙 휘저었다.
솔직히 괜찮지 않았다.
-방금 그건 뭐지? 혈마에 필적하는 혈정검세였다.
혈마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필적이고 자시고 그 초식을 발휘하고 나니, 염이 바닥난 것도 모자라 선천진기도 거의 소진해서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한계를 벗어난 힘을 발휘해서 그런 듯 하군. 네가 오르지 못한 경지를 억지로 끌어내서 그럴 거다. 어떻게 한 거지?
나도 모르겠다.
그저 죽기 싫다는 강한 일념과 함께 일어났다.
마치 천권의 힘이 그런 일념에 공명해서 나를 살리려고 한 것만 같았다.
‘젠장…..’
그런데 몸이 너무 무겁다.
지금 이렇게 내가 빠지면 안 그래도 상대하기 힘든데, 더욱 밀릴 게 뻔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려 사마착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눈을 가늘게 뜨고서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금만…..회복하겠습니다.”
나의 말에 도장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앞을 가로막고서 기수식을 취했다.
‘후우….후우….’
나는 눈을 감고서 선천심법을 운공했다.
심장에서 따스한 기운이 올라오며 몸 전체로 스며들었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회복해야 한다.
* * *
“클클, 반드시 살려야 할 이유가 늘었구나!”
-쿵! 쿵!
해악천이 다친 손을 개의치 않고 두 주먹을 움켜쥐고서 맞부딪쳤다.
그러자 그의 어깨부터 주먹까지 양 팔이 붉다 못해 검붉게 물들어갔다.
-슈우우우우!
해악천의 전신에서 수증기가 훨씬 많이 올라왔다.
아무래도 비기를 사용하려는 듯 했다.
“하아…..좋소. 해 형. 끝장을 봅시다.”
난마도제 서갈마가 도병을 두 손으로 쥐고서 사선이 되게 했다.
그러자 날카로운 예기가 장도에서 아지랑이처럼 스멀거리며 올라왔다.
초절정의 극에 이른 만큼 그 역시도 숨겨둔 한 수가 있었다.
“저도 한몫 거들게 해주세요.”
그때 누군가 전투가 벌어지는 한복판으로 걸어왔다.
“혈수마녀?”
그녀는 혈수마녀 한백하였다.
한 팔뿐이었지만 혈옥수로 붉게 물든 손으로 그녀가 수공의 기수식을 취했다.
부상으로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한 사람이라도 아쉬웠기에 해악천도 서갈마도 그녀의 참전을 말리지 않았다.
“월악검 다시 해보자꾸나!”
해악천이 거구에 맞지 않게 번개처럼 신형을 날렸다.
그를 따라 서갈마와 한백하 역시도 사마착을 향해 몸을 날리며 절초를 펼쳤다.
-채채채채챙!
사마착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며 검광이 수를 놓았다.
‘음?’
사마착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의 검이 서갈마의 가슴 위를 찔렀는데, 물러나기는커녕 오히려 검을 붙들고 덤볐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상처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고 어떻게든 사마착에게 치명타를 날리려 했다.
‘이놈들……’
세 고수들이 동귀어진의 수에 가까울 만큼 목숨을 던질 각오로 작정을 하고 덤벼들자, 사마착 역시도 변수가 일어날 수 있기에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마착이 자신의 딸이 있는 곳을 힐끔 쳐다보았다.
‘하!’
그 와중에 사마영은 자신이 아닌 소운휘를 쳐다보고 있었다.
딸 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말이 새삼 이해가 갔다.
그런데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혈교 역시도 사파였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족속들로 알고 있었는데, 누구 하나 자신의 점혈로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의 딸을 노리지 않았다.
‘놈이 이야기한 것과는 다르군.’
사마착은 일혈성 장룡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여식인 사마영이 이곳에 있는 것이라면 혈고를 먹고서 반복된 세뇌와 같은 작업을 통해 묶여 있을 거라 하였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오히려 사마영을 통해 협박을 해야 맞았다.
그런데 이들 중에 누구 하나 그런 이가 없었다.
‘이쪽의 이야기도 들었어야 했나.’
사마착은 뛰어난 두뇌를 지녔지만 그에 못지않게 감정적이며 호전적이었다.
그런 성향 때문에 사대 악인의 일인이 된 것이기도 했다.
들은 이야기도 있었고, 자신의 딸이 모욕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기에 그는 그 원흉인 이들과 사마영을 꼬드긴 소운휘를 죽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데 갈수록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흠.’
뜨겁게 타올랐던 분노가 어느 정도 가라앉자, 차가운 이성을 되찾아졌다.
하지만 이미 싸움은 격렬하게 진행되는 중이었다.
‘그놈이 나를 속이고 이 녀석들이 딸에게 위해를 가한 것이 아니라면 굳이 죽여서 원한을 늘일 필요는 없지 않겠나.’
그렇다면 이들을 제압한 후에 사마영만 데리고 가면 될 일이었다.
다만 아까보다 상대하기가 껄끄러워졌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자신보다 약했지만, 합공도 모자라 동귀어진의 수로 덤벼드니 제압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특히,
‘기기괴괴. 이놈이 제일 성가시군.’
세 명 중에서 가장 강한 자는 해악천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금강불괴에 가까운 몸을 지녔는데, 비기를 쓴 이후로 양팔이 더욱 단단해지고 공력이 올랐다.
게다가 싸우면 싸울수록 전의가 올라 더욱 움직임이 날카로워졌다.
‘벽을 눈앞에 두고 있군.’
사마착은 그를 높게 평가했다.
해악천은 절대고수로 들어갈 수 있는 경계에 있는 자였다.
깨달음만 얻는다면 무림은 새로운 초인을 맞이해야 할 수도 있었다.
‘먼저 제압하는 것은 무리겠군.’
그렇다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한백하가 답이었다.
그녀는 초절정의 극에 가까운 고수였지만 팔 하나마저 잃어서 이들 중에서 제일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좋아.’
사마착이 가볍게 검결지를 놀리며 그녀의 수공을 무력화했다.
그리고 전광석화처럼 마혈을 노렸다.
다른 두 고수가 방해하지 못하도록 촘촘하게 검망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크아아압!”
해악천이 검망을 막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검에 베이든 말든 몸으로 부딪친 것이다.
근육질의 두 팔을 방패삼아 이를 기어코 뚫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받아랏!”
해악천이 검붉게 물든 두 손을 깍지를 모으고서 들어올렸다.
해악천의 독문 비기인 금혈광압(金血狂壓)이었다.
태산과도 같은 압력이 짓눌러왔다.
-콰드드득!
초식이 닿기도 전에 바닥이 갈라지며 반경 2장이 넓게 밑으로 패이고 있었다.
‘이건 막을 수밖에 없군.’
사마착이 검에 예기를 집중하며 위로 들어올렸다.
검과 두 주먹이 부딪치는 순간,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두 고수들의 힘에 의해 배의 선미가 강하게 짓눌리며 반으로 갈려져 있던 부분을 중심으로 밑으로 내려앉아버린 것이다.
-쿠르르르!
“배, 배가 무너진다!”
“모두 뛰어내려!”
그것은 그저 두 사람이 부딪치면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계속된 싸움의 여파를 배가 견디지 못한 것이었다.
가장 주원인은 소운휘의 예기와 사마착이 예기를 부딪치면서 배의 위쪽이 반으로 갈라져서 위태로웠던 것이 컸다.
* * *
-쿠르르르!
-운휘야!
소담검의 외침과 더불어 앉아 있던 선축이 격하게 흔들리며 나는 운기하던 도중에 깨어났다.
너무 짧은 시간이라 선천진기가 정말 조금밖에 회복되지 않았다.
그러나 회복의 효능이 있었기에 몸이 굳어졌던 것이 어느 정도 풀려 있었다.
-콰르르르!
배가 쪼개지듯이 갈라지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균형을 잡기 어려울 만큼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뛰어내려!
소담검의 말처럼 당장 강에 뛰어내리지 않는다면 배의 파편들과 함께 수장될 판국이었다.
‘!!!’
그때 나의 눈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녀는 바로 사마영이었다.
마혈이 점해져서 움직일 수 없는 그녀가 무너져 내리는 배의 파편들 사이로 미끄러지듯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젠장!”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배가 갈라지고 무너져 내려서 발을 디딜 곳이 없었지만, 여기저기를 경공으로 내딛으며 그녀를 향했다.
-풍덩!
이미 사마영의 몸이 배 갑판의 파편들과 함께 빠져버렸다.
나 역시도 그 뒤를 따라 물로 들어갔다.
물에서 눈을 뜨자 앞이 뿌옇게 보여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이나마 남은 선천진기를 안력으로 집중하자, 조금씩 시야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꼿꼿하게 고정되어 있는 사마영의 몸이 물밑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나는 발에 공력을 일으켜 빠르게 그 뒤를 쫓았다.
그녀가 고통스러워보였다.
‘조금만 참아요.’
나는 그녀의 허리를 낚아채서 있는 힘을 다해 물 위로 방향을 틀었다.
‘점혈을 풀어야 하는데.’
-탁! 탁!
점혈을 풀려고 선천진기를 집중해 혈도를 눌렀는데 오히려 반탄력만 일어났다.
월악검이 심어놓은 공력이 너무 강했다.
별 수 없이 그녀를 안고서 헤엄쳐서 올라가야 할 듯 했다.
-꾸르르르!
기포가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데, 이러다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미친 듯이 발을 찼다.
‘망할 파편들!’
물 위에서 거대한 배의 파편들이 비처럼 쏟아 내렸다.
물의 저항력 때문에 혈마검을 휘두르는데 평소의 속도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공력 덕분에 가를 수는 있었다.
-좌측 위쪽이 비어있다.
남천철검의 목소리에 그곳을 보니 작은 파편들만 떨어지고 있었다.
그곳을 쏙 지나가 물 위로 올라왔다.
“푸아!”
물을 어찌나 먹었는지 그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사마 소저! 사마 소저!”
빌어먹을!
선천진기가 온전했다면 점혈이라도 풀 텐데.
빨리 근처에 있는 배로 올라서 인공호흡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그녀를 안고서 헤엄을 치려는데,
“크윽!”
또 다시 찢어질 것 같은 두통이 암습해왔다.
염(念)을 한계 이상으로 몰아붙인 후유증이었다.
고통 때문에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제, 젠장!”
여기서 힘이 빠지게 되면 사마영도 그렇고 나도 위험하다.
‘어떻게든 배까지 사마 소저를….’
급박한 위기의 찰나였다.
-파팍!
“억!”
머리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함께 이내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장강의 한복판.
그 물 위를 평지처럼 달리고 있는 이가 있었다.
이것은 전설로만 알려진 등평도수(登萍渡水)라는 경공술이었다.
-팡! 팡! 팡!
발끝이 물에 닿을 때마다 작은 파문이 일어났다.
이런 신기를 보이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월악검 사마착이었다.
그의 양팔 옆구리에는 여식인 사마영과 소운휘가 기절한 채 매달려 있었다.
“이노오오옴! 월악검! 당장 혈마를 내려놓거라!”
그의 뒤쪽에서 해악천의 쩌렁쩌렁한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사마착이 두 사람을 옆구리에 낀 채 배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을 향해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젠장!”
-풍덩!
물 위에 떠있는 판목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던 해악천이 물로 뛰어들었다.
어떻게든 따라잡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헤엄을 치는 자가 어찌 물 위를 평지처럼 달리는 자를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이미 한참 멀어진지 오래였다.
물 위를 달리던 사마착이 심드렁한 얼굴로 소운휘를 힐끔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네놈을 어찌하면 좋을까?”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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