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65
87화 잠입 (2) >
“하아.”
점차 붉어진 얼굴과 입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운 입김.
‘입김?’
막사 안은 따뜻했지만 설백이 익힌 무공이 한기를 가지다보니 입김이 도드라졌다.
그렇지 않아도 하늘거리는 얇은 경장을 입고 있어서 속살이 도드라져 보였는데, 상기된 얼굴로 저러니 뭔가 야해 보인다.
그녀가 내게 말했다.
“내게……무슨 짓을 한 거야?”
“…….”
별 짓은 하지 않았다.
그저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향화열락궁의 궁주 주사련의 비술을 썼을 뿐이다.
그녀는 이 비술로 수많은 사람들의 감정선에 자극과 혼란을 줘서 정신을 굴복시켜 노예로 만들었다고 한다.
-통한 거야?
모르겠다.
명색이 벽을 넘은 고수다.
그 정신력이 일반적인 고수들과 같을 리가 없다.
다만 이 설백이라는 여자가 내가 분장한 천인장에게 강한 애정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성이 있어 보여서 비술을 펼쳤다.
노예로 만드는 것까지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혼란스럽게 하여 내게 적대감을 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볼이 엄청 빨간데.
지금 그녀의 상태를 본다면 영향을 안 받은 것은 아닌 듯 했다.
설백이 내 손목을 붙잡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강 랑이 맞아?”
여자의 감이란 게 정말 무서운 것 같다.
체화만변술은 일반적인 인피면구나 역영술과는 차원이 다르다.
근육과 골격을 변화시켜 상대와 같은 모습이 된다.
물론 그렇다고 약점이 없을 수는 없다.
‘……육체적 접촉을 많이 한 자를 속이기는 어렵겠어.’
설백이 내가 분장한 이 천인장과 육체적 관계를 맺었고 정말 많이 사랑한다면 점 하나에서부터 행동의 일거수일투족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 거다.
그렇기에 주사련의 비술의 영향을 받아서 혼란스러울 때 더 이상의 접촉은 피해야 한다.
“부총….아니 설 매. 곧 대장군께서 찾으실 거요.”
일부러 그것을 강조했다.
어차피 황제가 찾을 수도 있는 상황란 건 이 여자도 잘 알 것이다.
설백이 홍조로 가득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강 랑은 나와의 입맞춤을 오래할 순 없었어.”
“그게 무슨……”
“선천적으로 천음지체이기 때문에 내공이 심후한 고수가 아니면 나와 살갗이 닿는 것만으로 고통스러워했으니까.”
‘아…..’
어쩐지 피부에 닿는 것만으로도 시렸다.
지금도 그녀에게 붙잡힌 손목으로 한기가 밀려들어왔다.
그러나 차갑기는 해도 이것이 내게 영향을 줄 순 없었다.
나는 음양판을 들고 다니는 조 스승님에게 설음화양선무를 전수받았기 때문이다.
스승님께서 내게 이를 전수할 때 한 말이 있다.
그것이 바로 순응이다.
그녀가 천음지체이든 북해빙궁의 한기를 다루는 무공을 배웠다고 한들, 나는 한없이 선법에 가까운 설음화양선무를 전수받았다.
그래서 한기 역시도 다룰 수 있게 되어, 그녀의 기운에 순응할 수 있다.
설백이 내게 말했다.
“강 랑은 이를 버티지 못하면서도 나를 받아줬고 내게 다가왔어.”
“설 매……뭔가 오해가 있는 듯 한데……”
핑계를 대려고 하는데 그녀가 말을 끊었다.
“너와 맞닿고 있는 손이 아무렇지도 않아.”
그렇겠지 한기에 맞춰서 순응하고 있으니 말이다.
차라리 양기로 대응할 걸 그랬나?
그랬다면 오히려 공력 대결로 이어져서 그녀도 고통스러웠을 거다.
“강 랑은 그렇지 않아.”
‘칫.’
의심이 더욱 깊어지니 비술의 구결을 외워야 겠다.
정신을 지배하진 못하더라도 혼란스럽게 해서 시간을 끌어야 한다.
“아아!”
손목을 잡고 있는 그녀의 입에서 야릇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운휘야. 통하나봐.
‘…….이상해. 이거 뭔가 잘못 됐어.’
-뭐가?
이 여자 정도의 정신력과 내공 수위라면 이를 억지로 버틸 수 있다.
한데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고 있다.
아무래도 구결을 외우는 것을 그만둬야 할 것 같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 분위기다.
“설 매. 아무래도 나는 이만 나가봐야 할 것 같소. 폐하께서 찾으시면 보고를 드려야 하니…..”
그때 그녀가 입김을 내며 내게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내가 찾던 남자였어.”
‘!?’
그 순간 그녀가 손목을 잡은 채 나를 끌어당겼다.
이를 버틸 수 있지만 찰나에 고민하다 그녀의 장단에 맞춰 가까이로 붙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방심을 틈 타 혈도를 제압해야 겠다.
-진짜?
차라리 그녀로 변장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녀의 직위가 특별군 부총독이라 그런지 중앙 천막에 자유로이 들어갈 수 있어 보인다.
파궁귀 초사라는 자도 몇 마디하고 바로 들어갔으니 말이다.
공력을 순간적으로 끌어올려야 하니 방심하는 틈을 노려야 한다.
그때 그녀가 내가 저돌적으로 입을 맞췄다.
“읍!”
그녀의 혀가 입을 파고들었다.
이 여자 아무래도 내가 강 천인장이든 뭐든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그렇다면 잘 됐다.
조용히 손을 뒤로 가져가 목 쪽에 있는 훈혈을 노리면….
-꽉!
“헉!”
순간 나는 놀라서 움찔하고 말았다.
혈도를 제압하는 것에만 집중하느라 그녀의 손이 곧바로 밑으로 향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전희고 뭐고 없고 욕망에 타올랐다.
홍조로 물든 그녀의 눈빛은 나를 잡아먹을 듯 하다.
-뭐 해! 빨리 혈도를 눌러!
그러고 싶은데 그녀의 차가운 손이 그곳을 움켜잡고 있다.
훈혈이 점해지지 않으면 까딱하면 남자로서의 인생이 망하는 수가 있다.
그때 설백이 붙잡고 있는 내 손목을 자신의 속살이 보이는 얇은 경장의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아.’
나도 어쩔 수 없는 남자인가 보다.
손이 부드럽고 물컹한 그곳에 닿자 그녀에게 잡힌 곳이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설백의 입 꼬리가 야릇하게 올라갔다.
그녀가 거친 호흡 소리를 내며 내게 속삭였다.
“너도 원하잖아.”
-촥!
그와 함께 자신의 치마를 찢고서 드러난 하얀 두 다리를 뛰어올라 내 허리로 감쌌다.
서로 하반신이 닿는 순간 그녀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흐으응.”
그 목소리가 너무 자극적이면서 야했다.
그녀는 당장에라도 나와 관계를 맺으려는지, 거친 짐승처럼 바지를 벗기려 했다.
그러나 그 손은 도중에 멈춰질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철컹거리는 이곳으로 다가오는 갑주 소리가 들렸다.
“아아……”
그녀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순간 나는 그녀의 목 뒤의 훈혈을 점했다.
-타타탁!
“너!”
순간적이지만 칠성 공력을 가했기에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버티지 못했다.
눈을 부릅 뜨고서 내게 뭔가를 말하려던 그녀가 이내 눈이 스르르 감겨서 축 늘어지고 말았다.
-이 여자로 분장할 거야?
그건 무리일 듯 싶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보니 고작해야 열한두 걸음 내로 도착한다.
설백을 부축하고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방으로 짐작되는 곳에 침상이 놓여져 있었다.
나는 설백을 그곳에 눕힌 후에 이불을 덮어주고서 배를 쓰다듬는 척 했다.
-차르륵!
천막의 입구가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염 장군이었다.
염 장군이 잠이 든 것처럼 새근거리며 누워있는 설백과 나를 보더니 혀를 차며 말했다.
“어지간하군. 쯧쯧, 가세나. 폐하께서 부르시네.”
“알겠습니다.”
염 장군이 고개 짓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물었다.
“자고 있나?”
“네. 피곤했는지 잠이 들었습니다.”
“나오게.”
염 장군은 다른 말 없이 내게 따라오라고 하였다.
다행히 의심하지 않는 것 같다.
하긴 일개 천인장에 불과한 자가 천하십이절이라 불리는 벽을 넘은 고수를 어찌해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물론 그녀가 방심하지 않았다면 나라고 해도 점혈을 하기 쉽진 않다.
나는 염 장군을 따라 조심스럽게 천막을 나갔다.
밖으로 나가서 중앙 천막 쪽으로 가면서 염 장군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군문에 투신한지도 이십여 년이 되었지만, 무림 출신의 인사들은 하나 같이 마음에 들지 않어.”
“…….”
“본 장이라면 천하십이절이고 뭐고 간에 제멋대로인 계집을 기용하지 않았을 걸세. 군에 기강이 떨어지지 않나. 쯧쯧.”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대놓고 연인 관계일 수도 있는 나 강 천인장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말이다.
내가 이야기할 수도 있을 텐데 신경쓰이지 않나?
그때 염 장군이 묘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설마 저 계집에게 빠진 것은 아니겠지?”
“네?”
“자네의 임무는 저 계집의 비위를 맞춰서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거지. 정말로 계집에게 빠져들라는 게 아니야.”
‘아!’
이런 비밀이 있었구나.
정말로 연인 관계가 아닌 모양이다.
-그럼 저 여자도 속고 있는 거네.
글쎄.
그건 모르겠다.
내가 볼 때 설백이라는 저 여자 생각보다 감이 좋았다.
정말로 속은 것일지 아니면 속은 척하면서 자신의 감정적 욕구를 채웠는지는 알 길이 없다.
만약 후자라면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로 변질된다.
하나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 뭔가 메마른 감정을 채우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쨌거나 다행이네. 너 당할 뻔 했잖아.
소담검이 키득거렸다.
당하기는 뭘 당해.
상황에 맞춰서 대응을 한 거지.
아무튼 간에 황제가 불렀으니 이제 저 천막 안에 숨어있는 법구의 행방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품속에 가려서 추침판을 살폈다.
중앙 천막을 가리킨 바늘이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 안에 확실하게 법구가 있다.
-그 황제인가 뭐시기랑 파궁귀 초사도 있잖아.
그뿐이겠는가.
설백을 제외한 나머지 천하십이절이라 불리는 고수들도 저 천막 안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래도 설백을 기절시킨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전력을 어느 정도 깎았으니 말이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 틈을 노려서 자경정이 가진 법구를 빼앗고 유인해야 겠다.
-그걸로 유인하려는 거지?
그래.
무엇이든 들어가는 복주머니에 뜻밖의 물건이 있었다.
그것은 법구 천둔의 모조품이었다.
이것은 아마도 검선 스승님께서 챙겨주신 것일 거다.
자경정을 유인하게 만들기에 적당한 물건이었다.
가짜라고 하나 가짜 천둔으로 대도천둔검법의 오의 뇌검천둔을 펼치기만 해도 놈의 눈이 뒤집힐 거다.
천막의 대청 판목에 오르며 염 장군이 내게 말했다.
“폐하께서 묻는 말에만 답해야 하는 것 정도는 잘 알겠지?”
“그렇습니다.”
나도 금상제와 말을 섞을 생각 따윈 없다.
염 장군이 먼저 천막의 발을 걷어 올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뒤를 따라 들어가니 안쪽에 대장군이 대나무 발이 쳐져 있는 곳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서 머리를 조아린 채 있었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건가?’
대나무 발로 안쪽을 가려놨을 줄이야.
염 장군이 안으로 들어가 대장군의 뒤에 마찬가지로 한 쪽 무릎을 꿇고서 고개를 숙였다.
그가 내게 눈짓을 했다.
이에 나 역시 그의 뒤 쪽으로 가서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안에 못 들어가면 의미가 없는데.’
이 대나무발 앞에서 보고를 하고 끝나면 기껏 변장하고 잠입한 게 헛수고가 되어버린다.
그리 된다면 조금 무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일단 상황을 지켜봐야 겠다.
한데 안에서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진기로 천막 전체를 둘렀으나 안으로 들어오니 소리가 들린 것이다.
“아직까지도 그곳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데, 짐이 그 자의 농간에 넘어간 것은 아니겠지?”
짐?
이 목소리는 금상제의 것인가.
스스로를 짐이라고 표현할 자는 오직 황제뿐이다.
“아직 그 자가 말한 곳까지 4리 정도 남아있으니, 그때 가서 벌할지를 결정하시어도 늦지 않을 듯 사료되옵니다. 폐하.”
‘…..이 목소리.’
들어본 적이 있다.
매우 공손한 말투라 이질적인데 분명…..
그때 머릿속으로 남천철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운휘! 놈이다!
‘뭐?’
-전주인을 해한 그 자의 목소리를 내가 어찌 잊겠나!
-두근!
나는 심장이 빠르게 떨려왔다.
그렇다면 이 안에 외눈의 금안의 사내, 존주가 있단 말인가?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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