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48
아카데미 담당 일진 48화
백일진은 언철진의 기세를 가늠했다. 언철진은 기운을 갈무리할 생각도 없는지 날카롭고 흉폭한 기운을 드러내고 있었다.
백일진은 일전에 장안시티에 나갔을 때, 만났던 스텔론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때 그 녀석보다 더 강한 것 같군.’
천마검도 그의 기세를 느끼고는 부르르 진동하면서 백일진에게 말했다.
-조심해라. 위험한 놈이다.
물론 실제로 전투가 일어난다면 백일진이 이길 확률이 높다고 생각은 했지만, 천마검은 항상 최악의 경우를 함께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순식간에 심장이 뚫리기라도 하면 그냥 즉사다. 하긴, 그래도 네놈은 기습에만 약하지, 정면에선 반응이 꽤 좋았으니. 아니, 그래도 네놈이 멍청하게 당할 수도 있으니. 아니면…….
계속 혼자서 뭐라고 중얼거리는 천마검 때문에 두통이 온 백일진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싸울 일 없으니 좀 조용히 해라. 부탁한다.’
하지만, 언철진은 그 눈썹을 꿈틀거린 것이 자신에게 하는 것인 줄 알았는지, 눈을 좁히고 기세를 더욱 높였다.
“뭡니까.”
“네가 백일진이 맞냐고 물었다.”
“맞습니다.”
언철진은 품에서 수첩을 꺼내더니 뭔가를 확인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그것을 내밀어 보여주고는 백일진의 손목을 붙잡았다.
“백일진, 학교폭력 4건. 대상은 노스 윈드의 간부들. 신고가 들어왔다.”
“그래서요.”
“뭐?”
“전쟁 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번 아카데미 공문을 보니 전쟁 중에 일어난 사건은 전부 불문에 부치기로 했다던데 아닙니까?”
언철진은 그 말을 듣고 수첩을 다시 한번 들이밀었다. 수첩 안 어디에도 백일진이 어떤 동아리에 소속되었다는 정보는 없었다.
“너는 소속된 동아리가 없을 텐데?”
그때, 황보철수가 백일진의 손목을 붙잡고 있는 언철진의 팔을 떼어내며 끼어들었다.
“철진이 형, 일진이 우리 파티시에에 가입했어.”
“파티시에?”
“중앙 소속 제과제빵 동아리야.”
팔을 빼낸 백일진이 가만히 언철진을 응시하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쏘아붙이고는 몸을 돌렸다.
“제대로 알아보시고 행동하시죠. 이게 선도부장이라는 사람이 직접 움직일 만한 일입니까?”
“…….”
“찰스, 수정, 가자.”
“응, 같이 가. 아 참, 철진이 형, 다음에 봐!”
“철진 오라버니, 다음에 봐요.”
백일진과 황보 쌍둥이가 떠난 게시판 앞.
“크하하하하-!”
게시판 앞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언철진이 미친 듯이 웃었다.
‘확실히 보통 녀석이 아니군.’
사실, 그는 백일진이 제과제빵 동아리 파티시에 소속으로 전쟁에 참여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찾아온 것은 백일진이라는 놈이 어떤 녀석이길래 노스 윈드의 간부들을 단신으로 때려눕혔는지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마음에 들어.’
* * *
교실에 들어온 황보수정이 백일진의 앞자리에 앉아 몸을 돌렸다.
“일진.”
“응?”
“네 능력이 뛰어난 건 알지만 아까처럼 행동하면 위험해……. 정말 다칠 수도 있단 말이야.”
“맞아, 내가 본 철진이 형은 정말 위험한 사람이야. 엮이지 않는 게 좋아.”
옆에 있던 황보철수도 황보수정의 말을 거들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걱정이 묻어 나왔다.
“혹여나 네가 싸우기라도 할까 봐, 심장이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알겠다. 조심하도록 해보지.”
황보철수가 뭐라 말을 더 보태려고 한 순간, 단계홍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공전형 67번 황보철수, 앞에 봐라.”
“네, 넵!”
단계홍은 들고 온 유인물을 교탁 위에 내려놨다. 각 분단의 가장 앞에 앉은 학생들이 나와 그것을 들고 배부했다.
“보면 알겠지만, 모레가 바로 극기훈련 날이다. 2박 3일간 훈련을 받고 오는 거지. 더 길었으면 좋으련만, 이미 일주일 치 수업을 통으로 날렸기 때문에 더 길게 하긴 힘들다. 아쉽지?”
“후우-”
“하아.”
극기훈련이라는 말에 똥을 씹은 듯한 얼굴이 된 학생들의 탄식이 쏟아져 교실을 가득 채웠다.
“켈켈- 이 녀석들, 지금도 신입생이니 유급생이니 서로 나뉘어서 기 싸움하고 있지?”
“…….”
“그래서 이번 극기훈련의 테마는 협동심, 전우애, 동지애가 될 것이다.”
학생들은 표정을 굳힌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켈켈’ 웃은 단계홍이 칠판에 준비물을 적었다.
‘뭐라고 적는 거야.’
중원 문자로 적었기에 마법 전형 학생들은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악취미가 발동하지 않았는지, 단계홍은 애꿎은 마법 전형 학생을 일으켜서 괴롭히지는 않았다.
“준비물은 여분의 속옷 다섯 벌, 체육복 다섯 벌. 끝이다.”
생각보다 간단한 구성에 학생들은 맥이 빠졌다. 신입생 하나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교수님 2박 3일인데 왜 여분의 옷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가요?”
“켈켈- 가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아무튼, 내일은 공강 날이니 푹 쉬고 모레 컨디션 좋게 보자꾸나.”
지우개로 칠판을 전부 지운 단계홍이 어물쩍 앉아 있는 원진에게 눈치를 줬다.
“차렷, 경례.”
“수고하셨습니다.”
* * *
‘음!’
백일진의 눈이 번뜩 뜨였다. 그는 마른세수를 한 다음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항상 늦잠이 문제군.’
어제는 강의가 없는 공강 날이었기 때문에 거의 24시간을 가득 채워서 잠을 잤는데도 불구하고,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이 들었다.
-네놈은 어떻게 매일 패턴이 변하질 않는 게냐.
“흠…….”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달리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잠이라는 게 생각처럼 쉽게 줄어드는 게 아니니.
백일진은 다급하게 몸을 추스르고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완연한 봄이 왔는지 따스하게 풀리는 날씨에 어느새 만개한 벚꽃들이 나풀나풀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백일진은 한가하게 꽃구경이나 할 겨를이 없었다.
“일진!”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슬쩍 고개를 들자, 저 멀리 망고나시를 입은 채 선글라스를 착용 중인 황보철수와 루즈한 체육복을 입고 있는 황보수정이 보였다.
“일진! 빨리 와.”
“미안하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괜찮아. 우리 버스는 저쪽이야.”
아카데미의 정문에는 마정석 버스가 나란히 주차되어 있었다. 그들은 특수 임무반이라고 쓰여 있는 버스로 걸음을 옮겼다.
황보철수가 잠깐 버스를 둘러보면서 이곳저곳을 어루만지더니,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와, 나 버스는 처음 타봐. 생긴 것 봐! 진짜 멋있게 생겼네.”
황보수정도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을 것 같아!”
이미 제시간에 등교를 마친 학생들은 버스 앞에 우글우글 모여 있었다. 그들의 옆에 선 백일진이 버스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워프 게이트를 사용하지 않는 거지?”
“잘은 모르지만, 워프 게이트가 너무 비싸서 그럴걸. 아마 단가가 10배는 차이 날 거야.”
“그렇군.”
어느덧 정해진 시간이 되니 버스의 문이 열렸다. 그걸 본 학생들이 어수선하게 술렁이더니 순서대로 줄을 섰다.
그런데 한참이 지났는데도 대기하는 줄이 줄어들지 않았다.
‘뭐지?’
고개를 빼꼼 내밀어 확인해 보니 줄 가장 앞에 서 있는 학생들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선배들 먼저 앞자리에 타시죠?”
“미쳤냐? 대가리에 돌이라도 맞았어?”
“…….”
“깝죽거리지 말고 들어가라.”
“쳇.”
아무리 이번 기수 신입생들이 유독 유별나다 하더라도 상대는 아카데미에서 1년을 더 보낸 유급생, 기 싸움을 이길 수는 없었다.
“흥, 선배면 다야?”
“어쩔 수 없잖아. 빨리 올라가기나 해.”
투덜거리던 신입생들은 마지못해 버스에 먼저 올라타 앞 좌석부터 순서대로 채워 나갔다.
그 신입생 사이에도 서열이 가장 아래인 치누타 느어드라는 학생은 담임 교수인 단계홍의 옆자리에 앉았다.
신입생들이 전부 좌석에 앉고 나서야 유급생들이 느지막하게 버스에 올랐다. 가장 뒤에 서 있던 백일진과 황보 쌍둥이는 그들이 오르고 나서야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이야, 맨 뒷자리를 비워놓네.”
학생들이 전부 탑승했음에도 버스의 가장 뒷좌석은 비어 있었다. 백일진과 황보 쌍둥이는 당연하다는 듯 그 자리에 가서 앉았다.
“뒷자리가 좋은 건가.”
“몰라, 일단 넓잖아!”
뒷좌석의 한 자리가 비자, 황보철수가 남궁종수를 불렀지만, 예자원의 옆에 앉아 있던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거절했다.
“남자란 자신의 여인과 함께할 때 더욱 멀리 가는 법이지.”
남궁종수와 늘 붙어 다니던 남사모 인원들은 그의 행동을 보고 저들끼리 수군거렸다.
“존스가 우리보다 먼저 연애를 할 줄이야.”
“에헤이, 쉿. 예자원 선배가 아니라잖아.”
“설마, 존스 혼자 짝사랑하는 거 아니야?”
학생들은 소풍이라도 가듯 버스 안에서 과자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마도공학 오디오로 유행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노래를 부르거나 끝말잇기 같은 게임을 하기도 했다.
“야, 옆에 마도공학반 버스 따라온다.”
“저 싸가지 없는 새끼들. 어디서 특임반을 앞질러 가려고 해?”
“기사님! 추월당하면 안 돼요!”
웬일인지 단계홍은 그런 것들을 보고도 ‘켈켈-’ 웃기만 할 뿐,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그것도 잠시, 그들은 금세 수마에 빠져들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버스가 목적지에 가까워졌다.
입가에 침까지 흘려가며 잠을 자던 이들이 한둘씩 일어났는지 안전벨트 풀리는 소리가 버스 곳곳에서 들려왔다.
“켈켈- 도착했구나. 모두 짐 챙겨서 내릴 준비 하거라.”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한 버스가 주차를 마쳤다.
처음 타보는 버스에 멀미를 호소하던 황보철수는 시퍼레진 안색으로 입을 막은 채 뛰쳐나갔다.
“크리스탈, 일진. 먼저 내릴게. 우욱-”
백일진은 멀미를 하지 않았기에 느긋하게 버스에 앉아 있다가, 다른 학생들이 전부 나가고 난 후에야 몸을 일으켰다.
밖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깡 산골이었는데 눈앞에는 언제 지어진 지도 유추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건물이 덩그러니 지어져 있었다.
‘흠, 2박 3일 동안 저기서 자는 건가?’
[라콘 산 유스 호스텔]아직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모기와 파리 떼가 들끓는 것이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건물 바로 앞에는 운동장인지 연무장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공터가 있었는데, 자칫하면 구정물에 빠질 수 있는 도하 훈련장,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낀다는 11M 레펠, 번지점프대까지 다양한 기구들이 방치되어 있었다.
“저것들 관리된 거 맞아?”
“아니, 저거 번지점프 줄 네 피부처럼 삭은 거 봐. 저거 탔다가는 그대로 인생 하직할 것 같은데?”
“넌 그냥 뒤져도 될 것 같아.”
“왜 극기훈련이 지옥이라고 했는지 벌써 감이 온다.”
다른 반 학생들도 낯빛이 창백해진 채 한탄을 내뱉었다. 연무장을 보며 중구난방으로 서 있는 학생들 앞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자, 집중! 집중합니다.”
우렁찬 소리.
신입생, 유급생을 합해 천 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여 있었지만, 모든 학생이 그 목소리를 또렷이 들을 정도로 큰 소리였다.
시뻘건 캡 모자에 뾰족한 선글라스, 가슴 근육 때문에 터질 것 같은 검은색 반팔 상의에 두꺼운 가죽 워커.
매년 이곳에 훈련을 오는 학생들은 그의 첫인상을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단단하다.’
작년에도 극기훈련을 경험했던 유급생들은 그를 본 순간, 바짝 긴장해 입을 다물었지만 아쉽게도 신입생들은 그런 것을 알아챌 눈치가 없었다.
“저 사람 누구야?”
“몰라? 교수님은 어디 가셨지?”
“슬슬 배고픈데 과자 남은 거, 좀 있냐?”
저벅저벅.
방금 말을 한 학생들 사이로 붉은 모자를 쓴 사내가 들어왔다.
“누, 누구…….”
“학생들, 제가 집중하라고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콰아아앙-
말을 마친 붉은 모자는 학생 두 명의 뒤통수를 우악스럽게 휘어잡고는, 잡고 있는 머리통들을 박수 치듯 사정없이 맞부딪혔다.
“본 교관은 극기훈련 기간 동안 학생들의 태도와 행동에 따라서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