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1
시선 처리Ⅰ(78%)
굳건한 정신Ⅰ(99%)
의지Ⅱ(18%)
눈빛Ⅲ(3%)
발성Ⅱ(60%)
무대 장악Ⅲ(73%)
식견Ⅰ(4%)
가창Ⅰ(0%)
언어Ⅰ(0%)
화술Ⅰ(1%)
웅변Ⅰ(0%)
4개의 작품을 걸쳐 언어, 화술, 웅변을 획득했으며 마지막에 달래 주듯 나온 ‘암기력Ⅱ’를 택했다.
단계가 상승한 탓인지 전엔 기억하기 힘들었던 숙련도까지 모조리 외워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딕션인가······.”
99에서 막혀 있던 재능이 언어를 습득함과 동시에 Ⅱ단계로 진입했다.
외국어에 대한 이해와 숙련도가 다음 단계를 위한 조건이었기 때문이리라.
꽤 길어진 목록이 태화의 마음을 달랬다.
‘아직 처음이니까. 조급해하지 말자.’
앞으로 겪게 될 작품은 수 없이 많다.
편법이 막혔다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편법이란 건 말 그대로 편법, 정당한 방법이 아니었으니까.
“······다음 건도 성태 형에게 부탁하긴 미안한데.”
다음 작품에 생각이 미치자 그는 어떤 식으로 정보를 얻어야 할지 고민됐다.
공연의 경우 연극인 사이트 ‘C&I’에서 구인 글을 확인하면 됐으나, 영화나 드라마의 오디션은 올라오는 일이 적었다.
주요 배역을 기획사와 극단을 통해 모집하고 단역정도를 일반 구인 사이트에서 찾기 때문이다.
‘물론 독립이나 저예산이 C&I에 올라오지만······.’
저예산이 저예산이라 불리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다.
그리고 그들의 일 처리 방식은 백에 아흔아홉 동일했다.
자금이 없으니 고만고만한 배우들을 오디션으로 솎아 내고, 그래도 상업 영화라며 다독인다.
스텝까지 부족해 배우가 장비를 옮기거나 반사판을 들어야 하는 일도 종종 있다.
거기에 감독이 욕심을 부려, 주연만큼은 유명인으로 데려올 경우 환경은 더욱 열악해졌다.
가장 최악인 점은 임금 체불이었다. 소속사도 끼지 않은 채 계약을 하다 보면 영화사를 폭파시키고 조연과 단역들의 출연료를 안 주는 일이 다반사였으니까.
“차라리 캐스팅 디렉터를 알아보는 게 낫지.”
디렉터들이 활동하는 사이트에 필모그래피를 올리면 이미지에 따라 연락이 왔다.
건당으로 돈이 들긴 해도 기획사가 없는 배우에겐 단비 같은 존재였다.
게다가 자신들의 신용을 걸고 연결하는 만큼 환경이 최악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적었다.
“아니면 기획사를······.”
기억나는 몇몇 기획사를 적던 태화는 곧 그 위에 줄을 그었다.
배우는 아이돌과 달리 수습 기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배역이 없다면 모를까, 이미 드라마 출연이 확정된 상태에서 먼저 접촉할 필요는 없었다.
‘일단 내일 있을 촬영하고 드라마에만 집중하면 되나?’
대략적인 윤곽을 정하고 그는 굳은 몸을 풀었다.
극 안에서 여러 번 연기했어도 몸은 책상 앞에 앉은 채로 있었으니 허리가 아팠다.
그렇게 스트레칭을 하는 사이, 작은 진동과 함께 폰이 반짝거렸다.
‘태양’이라 저장된 드라마 측 번호였다.
[밤늦게 죄송합니다. 에서 알려 드립니다. 5월 3일로 예정됐던 대본 연습이 작가님의 사정으로 취소되었습니다. 5월 5일 본 촬영에 들어가오니 양해 바랍니다.]“뭐······?”
용건만 간단히 적힌 문자를 확인하며 태화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저녁에 온 메시지엔 5월 3일 있을 연습에 대본이 일부 바뀔 것 같으니 추후 메일을 보내겠다는 말과 양해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마지막 봤던 작가의 행동을 통해 그 이유가 자신 때문임을 안 그는 묘한 뿌듯함을 느끼며 새로 나올 대본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것이 일정을 바꿀 정도의 변화라곤 태화도 예상치 못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 정말 다시 쓰는 거야?”
문득 작가 최나영의 악명이 떠올랐다.
쪽대본을 주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그리며, 바라는 방향으로 연기하지 않는 배우에게 대본을 통해 복수한다.
자기주장 강한 배우들이 그녀를 싫어하는 이유였고 넉넉했던 스케줄이 빠듯해지는 이유이기도 했다.
어쩐지 다사다난한 촬영이 될 것 같은 예감을 느끼며 태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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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홀리는 눈
정오의 햇볕 아래서 태화는 지도를 확인하며 간신히 스튜디오에 다다랐다.
‘······항상 가던 곳이라 생각하고 방심했어.’
5년 만인 만큼 사고 며칠 전 도착했던 문자를 재확인하긴 했다.
그러나 문제의 주소는 평소와 달리 신주소로 적혀 있었고, 태화는 거리명까지만 확인한 뒤 언제나 갔던 곳이라 착각한 채 발길을 나섰다.
당연히 도착한 스튜디오는 오늘 예약이 없다 전했으며, 놀란 그는 지도앱에 주소를 넣어 새로운 여정에 돌입했다.
‘걸어서 10분 거리라 다행이지······.’
늦지는 않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로 태화의 몸은 식은땀에 젖었다.
건물 안에 들어서자 한 여성이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의류 쇼핑몰 블랙라벨의 이사 최라희였다.
“태화 씨, 2개월 만이네. 잘 지냈어? 근데 땀이······. 오늘 그렇게 더웠나?”
“아······ 하하. 안녕하세요, 이사님.”
태화는 애매한 웃음으로 그녀의 혼잣말을 넘기며 주변을 둘러봤다.
평소 가던 곳과 달리 화려하고 세련된 내부가 눈에 띄었다.
벽에 걸린 인물 사진들도 하나하나 인상적이었다.
“장소가 바뀌었네요?”
“흠흠! 돈 좀 썼지. 우리가 개업한 지 벌써 3주년 되거든!”
그녀는 턱을 세우며 자랑스레 말했다.
친구랑 둘이 하던 사업이 점점 커져 이젠 나름 억대 매출의 사업자가 되었으니 자부심을 가질 만도 했다.
“이참에 태화 씨 사진을 화보처럼 찍어서 메인창에 팝업시켜 보려고. 물론 그에 따른 계약서는 따로 작성할 거고 비용이나 추가 금액은 최고로 맞춰 줄게. 나 믿지?”
고용주가 말하는 ‘나 믿지’는 ‘오빠 믿지’만큼이나 신뢰도 없는 말이었으나 그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업계 표준을 상회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온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사고로 연락 못 한 그에게 실망했다는 문자를 연달아 날렸지만, 후에 이유를 알리자 병문안까지 와 줬던 사람이다.
다리를 잃고도 나름 괜찮게 끝난 관계였다.
“물론 믿죠. 근데 인혜 씨가 안 보이네요?”
엘리베이터에 들어선 태화는 아까부터 느껴지던 허전함의 정체를 깨달았다.
항상 화장과 의상을 맞춰 준 인혜가 없었다.
“인혜는 먼저 가서 대기 중이지! 확실히 돈 들인 곳을 달라. 준비실도 어찌나 잘 꾸며져 있던지······.”
재잘거리는 라희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치며 그는 층마다 적혀 있는 설명에 감탄했다.
건물 한 채를 통째로 쓰는 만큼 여러 콘셉트가 가능했고, 심지어 수중 촬영장까지 갖춰져 있었다.
‘······굉장하네.’
층에 도착한 태화는 복도에 걸려 있는 인물들을 감상했다.
유명 연예인뿐 아니라 노인과 어린이, 심지어 화상을 입은 남자도 찍혀 있었다.
사진 너머로 느껴지는 피사체들의 매력이 작가의 실력을 대변했다.
“엄청 유명해. 해외에서도 무슨무슨 상 받았다던데 그보다 여기 예약하는 데 세 달 걸린 거 알아? 유명인들만 받는다고 엄청 뻗대는 걸 내가······.”
그가 화상 입은 남자의 사진 앞에 멈춰 서자 라희는 또다시 쫑알거리며 푸념 반 정보 반을 내뱉었다.
태화는 감상을 뒤로 미룬 채 재빨리 목적지로 향했다.
5년 만에 듣는 것이지만 이사의 수다는 여전히 참기 괴로웠다.
***
“어서 와요! 잘 지냈어요?”
준비실에 도착한 태화를 인혜가 반갑게 맞이했다.
언제 봐도 기운 넘치고 활기찬 아가씨였다.
“항상 이리 반겨 주니 기분 좋네요.”
“태화 씨랑 작업하는 건 언제나 즐겁거든요!”
그녀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빈말이 아니었다. 그와 작업하면 자신에게 대단한 재능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만큼 태화는 인혜에게 특별한 모델이었다.
“오늘은 이것부터 입고 나오시면 돼요.”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그녀를 뒤로하고 태화는 탈의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여름을 겨냥한 탓에 옷감 자체가 얇고 시원했다.
세안까지 마친 뒤 자리에 앉자 오늘도 어마어마한 붓과 케이스들이 그를 반겼다.
저런 걸 항시 하는 여자들에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럼 일단 결 정리부터 ······태화 씨, 혹시 나 몰래 좋은 거 먹었어요? 피부가 왜 이리 좋아졌지? 뭐지?”
스킨을 들이밀던 인혜는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고 당황했다.
원래부터 좋았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2개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깐 달걀처럼 보드랍고 완벽한 피부가 그녀를 반겼다.
“립 서비스가 기분 좋네요.”
“그런 게 아니라······. 진짜 먹거나 관리받은 거 없어요? 혼자만 알 테니까, 네?”
제발 알려 달라 조르는 그녀를 보며 태화는 작게 웃었다.
인혜의 말대로 좋은 걸 먹긴 했다.
아침에 먹으면 금이라 불리는 사과 하나.
물론 평범한 사과는 아니었다.
[이둔의 황금 사과]브라기의 아내, 청춘의 여신 이둔이 재배한 사과. 미용에 효과적이다. 영속성은 없지만 몸과 얼굴이 20대로 돌아가니 주의할 것. (현실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어려움 난이도를 깨고 추가 보상으로 얻었던 물건.
미용에 좋다는 말에 어머니가 생각났으나 후술된 주의 사항을 보고 태화는 그 자리에서 사과를 먹었다.
여신이 재배한 과일답게 효과는 빠르고 좋았다.
약간 있던 잡티나 점들이 말끔히 사라졌으며 머리카락은 탄력이 넘쳤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