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rt Student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93)
두 번 사는 미대생 93화(93/93)
< 타임스퀘어 >
[이재하 앙코르 전시]처음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더니, 결국에는 뭔가 해 버리고 말았다.
단순한 성공이 아니었다.
역대 한국 최고.
최고이자 최초라는 타이틀은 전부 쓸어가다시피 했다.
‘와, 스노우볼링 오졌네.’
학부 졸업 전시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커졌나.
솔직히 당황스러운 마음이었다.
전설이니 국민의 관심이니 뭐니 그게 다 무슨 말인가.
지금 생각해 보면 낯뜨겁기 짝이 없다.
그런데 그때는 이런 생각도 안 들었다.
이유 모를 고양감이 가슴 속에 차올라서 어떻게든 분출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지.
그렇게 멋대로 날뛴 결과물이 이거다.
한국 역사상 최고.
“난 요즘 꿈속에서 사는 것 같다.”
사무실에서 멍하니 중얼거리는데 규태가 입을 열었다.
“그냥 아예 거기서 살아.”
“······.”
“아, 왜 때려.”
“등짝이 찰져서.”
나는 혀를 쯧 차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규태, 한설 선배, 지훈 선배, 윤가영이랑 동민이.’
내 직원들.
내 아군들.
여러모로 이번 생에서 내 식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나는 이유 모를 뽕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지난 4년간 감사했습니다.”
“형님, 재하가 이제야 철이 들었습니다.”
“응, 사람 다 됐다.”
규태와 지훈 선배가 낄낄 웃었다.
틀렸다.
이 둘은 분위기 잡는 데 도움이 안 된다.
나는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한국에서 아주 일부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자유라는 게 있어요.”
“어떤 자유?”
“행동할 수 있는 자유요.”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이 받쳐주지 않는다.
“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을 구분하라고 말하죠.”
“틀린 말은 아니지.”
“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생계의 문제가 있을 때 이야기예요. 돈 문제가 있다면 저럴 수 있어요. 당장 밥벌이가 안 되는데 못 하는 일을 붙잡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럼?”
“밥벌이가 된다면 딱히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좋아하는 일을 그냥 하면 된다.
딱히 큰 문제가 있나.
밥벌이가 안 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다.
그냥 돈이 덜 벌린다 정도.
“잘 안 풀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어쨌든 안전망을 마련해 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도전할 때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죠.”
“흠, 대충 이해는 할 것 같아.”
한설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게 말인데요.”
나는 헛기침을 뱉고는 말했다.
“혹시 각자 하고 싶은 일 없어요?”
“하고 싶은 일?”
“네. 회사를 차린다든지, 아니면 뭔가 작가 일을 꾸준히 노력하고 싶다든지. 아니면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하고 싶다든지.”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일이었다.
나는 이들 넷에게 받은 게 많았다.
이번 생에서 나는 이상할 만큼 이룬 게 많았다.
그런데 그게 다 나 혼자만의 성취였을까.
아니다.
어떻게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신적인 도움을 주었든 아니면 물질적인 도움을 줬든.’
나는 이들에게 많은 걸 받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 과정에서 난 이들에게서 재능을 착취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당장 지훈 선배만 봐도 그렇다.
‘건설사에 들어가서 일을 배우고, 자기 회사를 차릴 사람이었지.’
이번 생에는 JH 디자인의 관리직이 되었다.
한설 선배도 그렇다.
‘원래는 자기 전시로 대박을 칠 사람이었지.’
지금은 내 전시의 도우미 느낌이 되었다.
물론, 아직은 모를 일이다.
내 옆에서도 충분히 주목을 받으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니까.
다음으로 윤가영도 그러했다.
‘죽이 됐든 밥이 됐든 만화에 올인했을 사람이야.’
이제는 일이 본업.
만화는 조금 뒷전으로 밀린 느낌도 들었다.
본인은 큰 불만이 없는 것 같다만.
그리고 규태랑 동민이.
“······.”
미안하지만 이 둘에게는 딱히 걸리는 게 없다.
너희 둘은, 응.
아무튼, 나는 이들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그것을 이들에게 주고 싶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말해요. 뭐든 전폭적으로 도와드릴게요. 저 이제는 그 정도 능력 있잖아요. 적어도 제가 도와줄 수 있는 분야에 관해서라면 뭐든 밀어줄 수 있어요.”
그렇게 이들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기를 잠시.
지훈 선배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지금이 딱 좋은데.”
“······.”
“나 여기서 일하는 거 마음에 드는데. 딴 데 가봐야 여기보다 잘 쳐주지도 않을 것 같고. 흠, 건축 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 하기는 했는데. 그거 여기서도 할 수 있는 일이잖아.”
그가 말을 이었다.
“나중에 사람 좀 더 뽑아다가 건축 쪽으로 분야 좀 넓히자.”
“지금 바로는요?”
“어차피 지금 당장은 힘들어. 업계 분위기 자체가 너무 젊은 사람은 안 쓰거든. 뭐든 좀 연륜이 있어야 쳐 준다고 하나. 서두르지는 않고 차근차근 가려고.”
이어서 한설 선배도 말했다.
“나도 딱히 불만 없어. 내 전시는 아니었지만 센트럴 파크에서도 전시해 봤고. 정 고마우면 나중에 큰 전시 하나 개인전으로 알아봐 주던가.”
“좋습니다. 제가 가까운 시일 내에 레드 카펫 하나 깔아드릴게요.”
윤가영도 마찬가지였다.
“천천히 준비하면 되겠지, 뭐. 남들 다 알바비만도 못 벌면서 일하는데 이 정도면 복에 겨웠지.”
그다음으로 규태가 입을 열었다.
“난 이미 받을 거 받았지.”
“언제?”
“미국에 있을 때 제임스 울프였나 그 사람한테 좀 받았어.”
아.
그러고 보니까 뭐가 있었지.
마침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정신이 없다 보니까 안 물어보고 넘어갔다.
규태가 말을 이었다.
“나중에 회사 소개해 줄 테니까 경력 좀 쌓고 일 배우러 오라고 하더라. 소개해 준다고.”
계속해서 말이 이어졌다.
그런 제안이었구나.
회사 소개해 줄 테니까 거기서 일 배우고, 이후에 남아서 일을 하든 돌아가서 회사를 차리든 하라고 제안했다고 했다.
“원래 난 졸업하면 동대문으로 돌아가서 경험 좀 쌓으면서 다시 공부하려고 했거든. 그러다가 경험 쌓이면 내 회사 차리고.”
뭔가 규태다운 이야기였다.
밑바닥부터 다시 공부해서 시작한다.
기껏 한예원 시각디자인과를 들어온 사람이 하는 말치고는 좀 소박했다.
“아,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데.”
“생각보다 계획적으로 사는구나 싶어서.”
조금 놀라서 말하는데 규태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래 봬도 나중에 차릴 회사 이름도 정해 뒀어.”
“그래?”
“어.”
규태가 입을 열었다.
“시티 리퍼블릭이라고.”
그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
잠깐.
지금 뭐라고 했냐.
시티 리퍼블릭?
나는 어이가 없어서 다시 한번 물었다.
“진짜로 회사 이름이 시티 리퍼블릭?”
“아, 놀리지 마. 그냥 도시인들을 위한 패션. 그런 느낌으로 만들려고 했지.”
맞네.
시티 리퍼블릭.
한국에서 젊은 사람들한테 가장 인기 많은 의류 회사 중 하나.
마케팅보다 디자인과 박리다매로 점점 입소문을 타더니, 아예 인터넷 유통 중심으로 대박 터뜨린 회사.
‘시티 리퍼블릭이 규태랑 엮여 있었구나.’
정신이 아찔해졌다.
내가 고양이를 키운 줄 알았는데, 사자였구나.
사자는 조금 과장이고 표범이었구나.
아니, 승냥이였구나.
나는 규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미 회사를 차리기는 힘들 것 같고. 네가 여기 부사장이니까.”
“응.”
“나중에 브랜드를 여기서 차리자.”
“오, 그건 좋은데.”
“그래, 그렇게 하자.”
조금 문어발 느낌이지만 헤븐즈 도어에서 파는 상품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 보면 안 될 것도 없다.
“동민이는?”
“저는 바라는 거 없어요. 형한테 받을 거는 이미 다 받았어요.”
“그래.”
역시 기특하다.
“그래도 나중에 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고.”
“네.”
아무튼, 대강 일이 정리되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미국 다녀옵시다.”
이재하 앙코르 전시.
그 종지부를 찍을 순간이 왔다.
*
이재하 앙코르 전시는 한국에서 온갖 기록을 섭렵했다.
최고, 최초, 최대 등 온갖 타이틀을 가져갔지.
앞으로 두 번 다시 깨지지 않을 대기록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끝날 일이 아니었다.
해외에서도 개최 요청이 끝없이 들어왔다.
파리, 런던, 도쿄, 뉴욕, 홍콩, 대만 등 전 세계의 예술 중심지에서 섭외가 들어왔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는가.
전부 받아들였다.
전시에 사용된 작품들은 가능한 범주 내에서 내가 사들였다.
코인 소프트에서 들어오는 수익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이번 전시는 통째로 ‘내 전시’가 되었다.
이재하 컬렉션이라고 봐도 무방하리라.
이재하라는 작가가 작가로서 보낸 지난 4년의 결실.
그게 이 전시였다.
‘인생은 스노우볼링이네.’
망하려면 끝도 없이 망한다.
반대로 뭐든 한번 잘 풀리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잘 풀린다.
나는 후자였다.
미국 MOMA.
그곳에 방문하자 디렉터가 긴장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대했다.
“멀리서 오시느라 너무 고생이 많으셨죠? 저희는 작가님의 작품을 전시하기를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흠.”
나는 대답하는 대신 심하윤 대표를 흘끗 바라봤다.
전시 관련해서 일정이 있을 때 종종 내 매니저 역할을 맡아주고는 하는 그녀였다.
그런데 그녀는 한때 수모를 당한 적이 있었다.
‘전시를 제안하는 곳마다 거절당했다고 했던가.’
이유는 나름대로 타당했다.
내 능력이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더 커리어를 쌓아서 와라.
그런 이유였다지.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정 반대가 되었다.
MOMA의 디렉터가 눈치를 살피기 바쁜데, 심 대표가 입을 열었다.
“먼저 마케팅 관련해서 이야기를 드리고 싶은데요.”
그렇게 몇 주 뒤.
MOMA 전시는 미술사에 남을 마케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유명하지만, 미국 미술계에 큰 빚을 남긴 나였기 때문일까.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방식의 마케팅이 시도되었다.
‘설마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내 광고가 걸릴 줄은 몰랐는데.’
그냥 타임스퀘어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최고급이라는 나스닥 광고판이다.
저기 렌트비가 한 달에 억대라고 했던가.
유동인구만 해도 하루에 100만 명을 가뿐히 넘는 타임스퀘어 거리답다.
‘원래는 유명 가수들 새 앨범 낼 때나 저기에 건다고 했지.’
일개 전시에 이만한 광고를 달다니.
강력하다.
그런데 심 대표가 건 조건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전시 기간 내내 타임스퀘어에 광고를 진행하고 싶어요. 또 TV에도 노출됐으면 좋겠고요. 또 뉴욕 시내 주요 버스정류장이랑 검색 엔진 키워드 광고랑 그리고 또······.]예전의 서러움을 풀고야 말겠다는 듯 온갖 조건이 넘나들었다.
내가 봐도 저거는 조금 너무하지 않나 싶을 정도의 조건들.
하지만 MOMA의 디렉터는 거절할 수 없었다.
내 몸값이 그만큼 높았을 테니까.
“조금 더 부를 걸 그랬나 싶네요.”
심 대표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리는데,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 거기서 더 불렀으면 아무리 저라도 다른 곳 가라고 했을 걸요?”
“가면 되죠.”
“······.”
“작가님 부르는 곳 많아요. 어디 뉴욕에 전시장이 MOMA밖에 없는 줄 아나.”
저기요.
그 MOMA에 발도 못 붙여서 서러워하셨던 게 이제 막 1년밖에 안 되었지 말입니다.
나는 뭐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뭐, 이것도 다 누릴 수 있을 때 누리는 거지.’
심 대표가 고생해준 게 있지 않은가.
나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이번 전시도 잘 풀렸으면 좋겠네요.”
“신화를 써야죠.”
그렇게 뉴욕 전시가 시작되었다.
예술의 도시
[미술계의 라이징 스타]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가진 작가] [뉴클리어 리] [우리는 어째서 그에게 열광하는가] [작가에게 인정받은 작가]온갖 타이틀로 내 이름이 홍보되었다.
자본을 미친듯이 쏟아부은 덕분일까.
MOMA 앞에서는 첫날부터 방문객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끝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줄을 선 사람들.
적어도 수백은 가뿐히 넘는 듯했다.
얼마나 더 모였는지는 모르겠다.
‘요란하네.’
얼마나 더 모였을까.
저게 다 내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이란 말이지.
마케팅의 힘이 장난 아니네.
[MOMA 이재하 전(展)]앞으로 4개월 동안 이어질 전시였다.
참 길다.
사람들이 미친 듯이 쌓였다.
다 좋다.
한 가지만 빼면.
“으음.”
“왜 이렇게 죽상이야.”
“그게요.”
한설 선배의 질문에 나는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누나한테 무슨 부탁을 해야 할지 고민돼서요.”
그렇다.
예전에 한설 선배와 나눴던 대화가 있었다.
내가 언젠가 MOMA에서 개인전을 열게 되거든, 부탁 하나 들어주기로 했지.
“……..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어?”
한설 선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어떻게 까먹어요. 사람이 자기 이득인 건 전부 외우고 있어야죠. 그 왜 중국에 그런 말 있잖아요. 군자의 복수는 10년 도 늦지 않다.”
“너 지금 나한테 복수하니?”
“말이 그렇다는 거죠.”
사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도 떨떠름했다.
설마 진짜로 이뤄질 줄은 몰랐는데, 이게 또 이렇게 되네.’
세상에 그 어떤 사람이 MOMA에서 자기 전시를 열게 될 거라고 자신 하겠는가.
한예원에서 전시를 가지는 사람은 교수 중에서도 드물 지경인데.
그런데 어떤 부탁을 해야 하는가.
이게 내 오랜 고민이었다.
‘집을 사달라고 할까? 아니야. 집은 솔직히 언제든 살 수 있어.’
이미 물질적인 부탁을 하기에는 도를 넘어섰다.
[던전 앤 스토리]가 대박을 치면서 통장에 썩어 넘치는 게 돈이었다.남운과 상민은 아예 홍대 앞에 빌딩을 샀다고 했다.
나도 돈 많다.
굳이 한설 선배한테 뭘 해달라고 보기에는 좀 그렇지.
“그래서 너 나한테 무슨 부탁을 할 건데?”
“좀 더 생각 좀 해 볼게요.”
“그래, 실컷 해.”
한설 선배는 아예 포기한 눈치였다.
그리고 내 머릿속은 한층 더 복잡해졌다.
정말로 뭐든 부탁하면 들어줄 눈치이기 때문.
‘그럼 무슨 부탁을 하지.”
뭔가 그럴듯한 거 없나.
한설 선배한테만 요구할 수 있는 거.
한설 선배만 내게 해줄 수 있는 거.
그런 거 없나.
고민이 고민의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기를 한참.
‘아.’
곧 한 가지가 떠올랐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누나”
“응?”
.
“그게요. 제 부탁이 뭐 냐면 요.”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었다.
“앞으로도 저랑 계속 작품 만들어 주세요.”
그렇다.
한설 선배의 손재주는 한국에서 최고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니, 그 이상이지.
이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한설 선배만큼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드물다.
혼자서 일할 게 아니라면, 작가는 누구나 조수가 필요하다.
딱히 조수라고 할 것도 없다.
일할 때 옆에서 말동무를 서 줄 사람이 있으면 했다. 그리고 그 역할은 한설 선배만 맡아줄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누나랑 계속 같이 일하고 싶어요. 어디 가지 말고, 그냥 제가 잘해 줄 테니까 저랑 같이 계속 일해요. 지분 달라고 했죠? 잘 쳐 줄게요.”
그런데 한설 선배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계속 바라보더니 말했다.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내가 이래서 너랑 같이 다녔나 보다.”
“네?”
“나 인기 많아, 학교에서 고백도 자주 받는 거 알지?”
“가끔 봤죠.”
가끔 봤다.
한설 선배는 작가 특유의 신비주의가 있다 보니까 주변에서 남자들이 절로 붙었다.
그런데 그게 왜.
“나한테 접근하는 애들 보면 다 그게 있더라고, 나랑 자꾸 이상한 일을 하고 싶어 해.”
“이상한 일이요?”
“같이 어디 여행 가자고 하거나, 영화 보러 가자고 하거나, 먹으러 가자고 하거나 그런 거 있잖아.”
그게 왜 이상한 일이야.
정상 아닌가.
“작품 만들기도 바빠 죽겠는데 이상한 데 끌고 다니면서 시간 뺏으려고 하고.”
“그래, 내가 선심 썼다. 앞으로도 너랑 같이 작업해 줄게.”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넘어갔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한설 선배가 내 볼을 손가락으로 잡더니 말했다.
“그러니까 좀 더 제대로 고백 좀 해 봐.”
“…….”
그 순간 머리가 굳었다.
들켰네.
어떻게 알았지.
‘안 들킬 줄 알았는데’
좀 더 옆에 붙잡아 뒀다가 천천히 도전하려고 했더니마는.
생각해 보니까 그러다가 1년쯤 지나기는 했다.
음.
좀 너무 걸린 감이 있기는 했다.
그래도 티는 안 내지 않았나.
나 자신도 떨떠름한데 한설 선배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너 평소 하는 것처럼 구렁이 담 넘어가듯 대충대충 하려고 하지말고, 좀 제대로.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있지도 않을 것 같은데 나 실망스럽게 만들래?”
“음.”
“한 번만 더 기회를 준다.”
기회라.
나는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고백할 타이밍이기는 하다.
하면 받아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또 잘못하면 평생 바가지 긁힐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전생의 아이큐 140과 이번 생의 아이큐 140을 합쳐 총 280의 아이큐로 최선을 다해 고민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누나, 제 인생의 뮤즈가 되어 주세요.”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나는 순간 직감했다.
‘망했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뭔가 예술적인 멘트를 던져 보겠다고 열심히 고민 했는데, 좀 아니었나.
쿠궁. 머릿속으로 번개가 내리꽂혔다.
‘이 멍청아, 네가 무슨 카사노바라고 대사를 고민해, 전생에도 솔로였으면 솔로 답게 기본이라도 할 것이지. 원래 다 기본인 거 몰라? 그림도 다 선 긋기부터 시작하는 거잖아.’
하지만 열심히 자책해 봐야 이미 늦은 일이다.
그렇게 반쯤 자포자기하고 있는 참이었다.
한설 선배가 입을 열었다.
“그래, 이재하니까 이 정도면 됐다.”
“네?”
“잘했어. 이 정도면 어디 가서 자랑할 만큼은 되겠네.”
나름대로 만족한 표정, 그러더니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오늘 저녁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네.”
일단은 잘 풀린 것 같다.
잘 풀린 거 맞나.
뉴욕 전시는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처음부터 심상치 않더니마는, 나중에 가서는 점점 불어났다.
하루 평균 관객 수 2만 명, 그 해에 있었던 모든 전시 중 1위를 달성한 기록이었다.
믿기 힘들 정도의 대사건.
한국 예술계를 비롯해 온갖 분야에서 내 이름이 대서특필되었다.
[이 시대의 이름, 이재하] [코리안 인베이전의 주인공] [이재하를 아냐고요? 왜 모르겠어요.]전 세계에서 내 이름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해외 국가의 인정에 목말랐던 시기이기 때문이었을까.
한국은 제2의 이재하를 만들기 위해 바빠졌다.
원래 그랬다.
누구 하나 잘났다고 하면 제2, 제3의 뭔가를 만들려고 하는 게 한국 사회의 습성 아니었던가.
[이재하 DNA] [이재하는 어떻게 해서 예술가가 되었을까] [내 아이를 이재하 처럼 기르는 41가지 방법] [이재하의 습관] [이재하처럼 생각하고, 이재하처럼 행동하라]서점에서도 내 이름을 건 책들이 불티나게 팔렸다.
물론 내 동의는 구하지 않은 서적들이었다.
내 사진과 이름을 마구잡이로 가져다가 쓰는 게 어이가 없긴 했지만, 대한민국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미술 학원의 숫자 늘어나] [서울 내 미술 교육업종의 수 1년 사이에 380% 폭증] [미대 입결 급상승]미술 교육 수요가 대폭 늘어났다.
예전에는 취미 수준에서 미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많았다면, 이제는 아예 진로 차원에서 미술을 지망하는 사람이 늘었다.
몇 년 사이에 한국이 바뀌었다.
배고프지 않은 미술을 넘어서, 배부른 미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미술이 전파되었다.
[헤븐즈 도어 해외 진출] [헤븐즈 도어 뉴욕 3호점 개업]헤븐즈 도어는 이제 한국을 넘어서, 세계 최대 예술가 집단으로 부상했다.
[현재까지의 소속 작가 수: 1198명.] [앞으로도 소속 작가 계속해서 늘려갈 것. 하지만 수에만 집착하는 것 아니다. 점포 하나당 작가 2명을 유지할 예정이라고 발표.] [헤븐즈 도어의 브랜드는 작가와 함께 키워나가는 것] [전국 대학과 산학협력 맺어. 교육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아.]이제 헤븐즈 도어는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작가의 실력을 어느 정도 보장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창업 신화의 뒤에는 두 명의 거인이 있었다.
오경진과 심하윤.
한국 예술계에서 가장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있다는 두 명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JH 디자인은 이후로도 계속해서 시도를 늘려갔다.
JH 디자인은 초창기 종합 디자인 에이전시를 겨냥했던 만큼, 실제로 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의류.
건축.
웹디자인.
JH 디자인은 온갖 분야에서 능력 있는 인재를 영입하며 계속해서 저변을 확장했다. 그
뒤로도 후발주자는 계속 따라붙었다.
하지만 상징성과 매출 면에서는 JH 디자인을 이길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년, 이재하라는 이름은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홍대 시내.
그곳의 길거리에서 남자 둘이 걸어 다니며 중얼거렸다.
“…… 와, 사람이 뭐 이렇게 많냐.”
“그러게, 장난 아니네.”
한 명은 긴 머리카락을 질끈 묶었고, 한 명은 키가 훤칠했다.
워낙에 튀는 외모인 만큼 주변 지나치는 행인들은 그들을 흘끗흘끗 바라보기 바빴다.
“형님, 보이십니까? 다 저를 보고 저러는 겁니다.”
“너는 철 좀 들어라. 머리도 좀 자르고.” ”
아, 제 머리가 왜요. 여기에 얼마를 쏟아부었는데.”
“와, 들으니까 더 열 받네.”
그렇다. 규태와 지훈이었다.
둘은 투덜거리면서도 홍대 한복판을 걸었다.
“와, 저기 저거 아직도 있네요.”
“어떤 거?”
“저기 술집에 그려진 벽화요. 저거 저희가 10년 전에 그린 거잖아요.”
규태의 말이 사실이었다.
초창기 그들이 그렸던 작품이었다.
그게 여전히 벽에 걸려 있었다.
“벌써 저거 그렸던 게 10년 이 나 지났나.”
“시간이 빨리 가네요.”
10년 동안 벽화 하나를 안 지우고 계속 유지했다는 게 대단하다.
코팅이 벗겨지고 색이 바래 조금 지저분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울 수는 없었다.
이재하가 직접 그린 작품이다.
낙서 한 점만 끄적여도 몇백만원에 팔린다는 이재하.
술집 입장에서도 저걸로 가게를 홍보하고 있으니 어쩔 수 있나.
그런데 홍대 전역이 벽화로 뒤덮여 있다시피 했다.
“누가 보면 완전히 예술의 도시인 줄 알겠습니다.”
“외국에서는 벽화 보러 한국 오기도 한다던데.”
“이야, 관광 상품이네요.”
실제로 홍대에 벽화 투어를 오는 사람이 꽤 흔했다.
그렇게 규태와 지훈은 계속해서 걸었다.
한참 걸어서 도착한 곳은 헤븐즈 도어 7호점.
홍대점이었다.
건물을 통째로 사들여서 3층짜리 가게를 지어놨는데, 그곳 아래층은 초저녁부터 불이 꺼졌으면서 3층에만 불이 들어와 있었다.
“기다리겠다. 얼른 들어 가자.”
“옙.”
그렇게 두 사람은 계단을 올라갔다.
곧이어 3층에 들어간 순간이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저거 일 준비 돕기 싫다고 요령 피웠네.”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었다.
“와, 다들 시간이 나긴 났나 보네요?”
“어쩔 수 있나. 바빠도 부르는 데 와야지.”
김연우가 중얼거렸다.
사람이 가득하다.
그런데 아직 두 명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정도면 괜찮게 사는거 같다.
김연우가 중얼거렸다.
“재하랑 설이는 좀 늦나?”
그렇다.
그 두 사람이 안 왔다.
“오늘은 재하 보러 온 건데, 걔가 안 오면 좀 아쉬운데.”
“귀여운 후배, 박규태는 어떻습니까.”
“응, 아니야.”
규태가 시무룩해졌다.
그 모습에 지훈 선배가 큭큭 웃더니 말했다.
“재하 오늘 점심에 입국했어요. 집에 들러서 짐 풀고 오느라 조금 늦는데요.”
“입국?”
“네, 외국에서 전시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허어, 아주 글로벌하게 노시네.”
김연우가 뒷목을 긁적이더니 말했다.
“혼자서만 너무 잘나가는 거 아냐? 이러면 국내파 서러워서 살겠나.”
“작가님이 서럽기는요.”
가만히 듣고 있던 김봉식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작가님도 지금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 준비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 그거랑 이게 같아요? 기껏 해 봐야 코딱지만 한 나라에서 전시 좀 한다. 고 뭐가 되나. 그냥 우물 안 개구리지.”
“그 우물이 지금 세계 미술 시장에서 5위 정도 합니다.”
“…….. 좀 빨리 크긴 했네?”
그 말대로였다.
10년 사이에 한국 미술 시장은 수십 배나 성장하면서 전 세계에서 5위를 달성했다.
그것도 아직 시장이 작다뿐이다.
작가 개개인의 기량이나 세계적인 수요에서는 미국 바로 다음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다.
전생에 중국 작가들이 가져갔던 위치를, 지금은 한국이 가져갔다.
“코리안 인베이전 ……….”
“언제 유행어를 지금도 꺼냅니까.”
“좀 재밌기는 하잖아요. 이재하 나가신다! 미국 쾅! 일본 쾅!”
연우가 경박하게 깔깔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모두가 생각했다.
‘저런 게 한국 미술계에서 거장 대접을 받으면서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를 연다니.’
그러는 참이었다. 이종이 교수가 입을 열었다.
“연우 학생은 학부생 때부터 변한 게 없어서 보기 좋습니다.”
“……”
“다음에 작업실에 한 번 찾아오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저, 그게.” “같이 작품 이야기라도 하지요.”
이종이 교수의 보이지 않는 압박 아래 연우가 쪼그라들었다.
그렇다.
이 종이 교수는 재하에게만 유독 관대하다뿐이지, 다른 학생들에게는 꽤 엄격한 편이었다.
그렇게 분위기를 보는 와중이었다.
똑똑. 가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크게 외쳤다.
“피자 왔습니다.”
“오.” “누가 피자 시켰어?”
“난 아닌데.”
“일단 받고 보자.”
남운이 누구보다도 재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덜컹. 그러고는 문을 연 순간이었다.
“……”
“까꿍, 제가 왔습니다.”
이재하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 뒤에는 한설이 있었다.
“얼른 들어가, 다리 아파.
“넵.”
“그러니까, 이번에는 이탈리아로 간다고?”
“네, 그렇게 됐습니다.”
내가 싱글벙글 웃는데, 지훈 선배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
“미국에서 전시할 줄 알았더니 갑자기 웬 이탈리아로 간대?”
“일이 그렇게 됐어요.”
“그쪽에 유명한 미술관이 있나?”
“한 번 맞춰 보실래요?”
지훈 선배가 잠시 고민 하더니 말했다.
“밀라노.”
“땡입니다.”
“바티칸.”
“그것도 땡입니다.”
“그럼 뭔데? 내가 모르는 뭐가 있나?”
그가 감이 안 잡힌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나는 웃으며 말했다.
“힌트를 드릴게요. 올해 6월 부터 시작하는 전시예요.”
그 순간이었다.
김연우 선배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더니 말했다.
“너 그거 설마……… 베니스 비엔날레는 아니지?”
베니스 비엔날레.
세계 3대 미술상 중 하나이자, 그중에서도 가장 큰 권위를 지니고 있다고 인정받는 시상식이었다.
다른 두 개의 상인 휴고보스상과 터너상은 각자 한계가 있었다.
휴고보스 상은 기업의 상업적인 잣대가 컸고, 터너 상은 영국인만 받을 수 있는 상이었다.
나는 씨익 웃고는 말했다.
“정답입니다. 거기서 상 받기로 했어요.”
“…… 아이고야, 배 아파.”
김연우 선배가 충격받았다는 듯 책상 위에 엎어지더니 중얼거렸다.
“아니, 누구는 한국에서 바닥이나 닦고 있는데.”
“예술의 전당이 무슨 바닥이에요.”
“봉식 아저씨, 말하는데 끊지 마요. 아무튼, 갑자기 무슨 베니스 비엔날레 야. 후배한테 밀리기나 하고, 이거 서러워서 살 수가 있나.”
그렇게 말하는 게 썩 웃겨서 나는 큭큭 웃었다.
“휴고보스 상도 받았는데 베니스 비엔날레도 당연히 받아야죠.”
“그렇게 말하는 게 더 나빠.”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그 말대로였다.
휴고보스 상은 이미 몇 년 전에 받았다.
오히려 베니스 비엔날레 상을 늦게 받았다고 말함이 옳았다.
“그쪽 심사위원 중에서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좀 있었나 봐요.”
“왜?”
“원래 거기가 주목받는 사람이 상 받는 거 싫어 하잖아요. 적당히 인지도 없는 사람이 예술성 하나만으로 상을 받았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 해요.”
“오히려 너무 떠서 싫어한다는 거네.”
“그렇죠.”
베니스 비엔날레가 좀 그렇다. 지나치게 유명하면 오히려 상을 못 받는 다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내가 겪 어본 바 그 말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규태가 끼어들더니 물었다.
“심사위원들이 그 꼴인데 이번에는 어떻게 받았고?”
“제임스 울프 씨가 도와줬어요.”
“그 사람이?”
규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깐. 그 사람 살아 있었어?”
“잘만 지내던데?”
“그동안 말 한마디 없었잖아.”
“리처드 아이브스 때문에 그랬지. 그때 일 때문에 마음에 상처 많이 받았다. 고 뒤에서 주식이나 굴리면서 쉬고 있었는데, 요즘 다시 나아졌나 보더라.”
“흠, 그래서 뭐 어떻게 된 건데.”
“아직도 팀 에이펙…. 이 아니라 아티펙스에 미련을 못 버렸나 보더라. 그 래서 거기 대표로 상 하나 받아오라고 나를 밀어줬지.”
말 그대로였다.
팀 아티펙스의 출범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예 날 대표로 팔아먹으려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겸사겸사 베니스 비엔날레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
“이제는 상 받는다고 엄청나게 기쁘지도 않다. 그냥 상은 받으면 받는거지.”
“와, 싸가지.”
“그냥 제 기분이 그렇다는 거예요. 뒤에서 이런저런 영향력 싸움이 오간다. 는 거 생각해 보면 좀 그렇던데요.”
낄낄 웃는데, 연우 선배는 아직 미련을 못 버린 듯 내게 물었다.
“그래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상을 받는 건 받는 거고, 어떤 상을 받는데.”
“그게 말이죠.”
나는 잠시 뜸을 들렸다. 그러고는 말했다.
“황금사자상이요.”
“……..”
잠시 실내가 조용해졌다.
황금사자상, 베니스 비엔날레의 최고상이자, 현재 세상에 존재하는 미술상 중에서 최고의 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상이었다.
“국가전?”
규태가 물었다.
사실 베니스 비엔날레의 황금사자상은 둘로 나누어져 있었다.
국가 단위로 참가해서 받는 국가관 황금사자상과 작가 개인에게 주는 본전시 작가 황금사자상,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아니, 본전시.”
“돌았네. 본전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아 왔다고?”
규태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한국인 중에서는 최초 아닌가.”
“뭐, 최초지.”
“그런데 뭐가 그렇게 태연해.”
“아니…… 요즘은 그냥 그래서.”
“와, 재수 없어.”
연우 선배가 끝내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지훈 선배가 물었다.
“그럼 지금은 한국 잠깐 들어왔다가 곧 다시 나가는 건가?”
“아무래도 전시 준비해야 하니까요. 조만간 다시 나가야죠.”
“아쉽다. 얼굴 본 것도 오래간만인데.”
지훈 선배가 섭섭하다는 듯 말하는데 나도 마찬가지였다.
“저도 마음만 같아서는 한국에 아예 붙어 살고 싶은데, 요즘은 시기가 그렇네요.”
그 말대로였다.
JH 디자인과 전시 일이 해외로 확장되면서 요즘은 워낙 바쁘기 짝이 없었다.
한예원에서 명예교수 일로 타 대학과 친선 업무도 있었고,
‘무슨 월드투어 도는 아이돌도 아니고.’
덕분에 한국에 입국한 것도 오래간만의 일이었다.
거의 4개월 만이었나.
“그래서 여기 왔지 않습니까.”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규태.
지훈 선배.
연우 선배.
동민이.
김봉식 아저씨.
이종이 교수님, 정상희 교수님.
오경진 회장님.
심하윤 대표님.
그 외에도 동민 씨를 비롯해 몇몇 사람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본다면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한국 미술계의 살아 있는 거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있기 때문,
‘이 사람들이 다 내 사람이라는 거지.’
어쩐지 가슴이 뿌듯해진다.
사실 오늘은 이 일 때문에 방문한 것도 컸다.
그래.
이제 드디어 그 말을 꺼낼 타이밍이 왔다.
흠흠.
나는 헛기침을 뱉고는 말했다.
“저 혼자서 나가 있기는 조금 억울해서, 다 같이 나가는 건 어떨까 해요.”
“뭐?”
“오래는 아니고 잠깐 해외여행 좀 단체로 다녀오자고요.”
갑자기 해외여행이라는 말에 모두가 어리둥절해하는데, 나는 한설 선배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저희 이탈리아에서 결혼합니다.”
그 순간이었다.
파티룸이 정적에 휩싸였다.
내가 뭘 잘못 말했나 싶은데 규태가 중얼거렸다.
“아니, 언제 하나 싶더니 이제야 하네.”
“놀랍지도 않다.”
“음. 그러게.”
반응이 묘하다. 좀 놀라주면 뭐가 덧나나.
“아니, 반음이 왜 이렇게 심심해요.”
억울한 마음에 중얼거리려니 지훈 선배가 말했다.
“야, 너 지금 나이가 몇이야.”
“형보다 네 살 어려요.”
“얼버무리지 마. 서른도 넘겼겠지.”
“이거나 저거나.”
“슬슬 결혼할 때가 됐는데 왜 아직도 안 하고 있었어.”
“예전에 설이 누나랑 약속한 게 있었거든요. 내가 미술계의 정점에 오르면 결혼하자고.”
“그게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이고?”
“저라고 이렇게 상을 늦게 받게 될 줄 알았습니까. 저 말 할 때는 오늘 내일 받을 줄 알았지.”
“아이고……. 이 미친놈…….”
지훈 선배가 뒷목을 잡더니 말했다.
“농담이지?”
“네.”
나는 큭큭 웃고는 말했다.
“저 이유도 있긴 했는데요. 조금 더 멋진 프러포즈를 생각하다 보니까 계속 뒤로 밀리더라고요.”
“그래, 사귀기까지 4년 걸렸으니까 결혼까지 이만하면 양호하다.”
대충 다 이해해 주는 눈치.
그리고 나는 씨익 웃더니 말했다.
“그런데 기왕 하는 결혼식을 평범하게 결혼식으로 진행하려니까 조금 심심하겠더라고요.”
“그럼?”
“어때요? 다 같이 작품 하나 만들어 보는 게.”
“…… 작품?”
“각자 하나씩만 도와줘요. 규태가 드레스랑 옷 만들어 주고, 형이 식장 디자인해 주고, 교수님이 주례 서주시면 제 인생의 영광일 것 같습니다. 종주 씨 가 노래 불러주시면 제가 또, 큰 감사 하겠습니다.”
인생은 DIY 다.
결혼식도 DIY로 하면 다른 건 몰라도 평생 기억에 남을 결혼식이 될 것 같다.
그렇게 장대한 계획을 늘어놓으려는데 한설 선배가 내 가슴을 팍 치더니 말했다.
“그냥 농담이고요. 조금씩만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흠.”
“어떻게 할까?”
“안 그래도 요즘 심심하던 참이었는데 잘됐네.”
“교수님도 적적하셨죠? 같이 가서 몇 달 지내는 거 어떠세요.”
“전 언제나 좋습니다.”
곧 실내가 결혼식 기획 이야기로 떠들썩해졌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만하면 괜찮게 사는 것 같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글쟁이 이한이입니다.
두 번 사는 미대생을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글을 쓰는 데 도움을 주신 모든 지인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전작을 쓰면서 갑자기 집필을 시작했던 터라 처음에는 다소 정신이 없었는데, 그래도 독자님들의 사랑 덕분에 어찌저찌 잘 달려온 것 같습니다!
이번 작품은 제 세 번째 작품이었는데요.
그중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라 쓰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작은 조금 더 느긋하게 여유를 가지고 써 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독자님들이 심심해지시기 전에 다시 오겠습니다.
슬슬 겨울입니다.
좋은 날씨, 좋은 평화,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글쟁이 이한이 올림.
< 타임스퀘어 > 끝
ⓒ 이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