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 all-purpose machine RAW novel - Chapter 243
245화
물론 로키가 자해를 했다고 해도, 그가 정말로 상처를 입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는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 이고, 데이터 모듈이 박살 나지 않는 이상 새 몸으로 갈아타 버리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애초에 인공지능이 자해를 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다. 그의 정신이 극도로 불안정하다는 방중이나 다름이 없다.
아마 로키는 그 세계의 일들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그를 안타깝게 쳐다보고 있던 나는 이내 로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는 뒷걸음질쳤다. 땅을 손으로 짚어가 면서 까지 허겁지겁.
동정심이 더욱더 커지는 걸 느끼면서도 조용히 그를 불렀다.
“로키.”
“오지 마…! 마스터 때문에, 나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툭툭, 말이 끊어졌지만, 그의 말을 알아듣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내 등장이 그에게 있어서 많이 괴로웠 던 모양인지, 그는 심지어 숨까지 헐떡거리고 있는 상태였다.
평소 로키의 활달하고 밝은 성격을 알고 있는 나였기에 그 모습이 더욱더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얘가 왜 이러는 겁니까, 마스터?”
뒤에서있던 퀸의 물음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로키가 이러는 건 나 때문이다.
그 세계에서 로키를 소환했던 건 나였고, 그 세계의 쯔쉬안에게 정신 지배 당해서 그에게 인간들을 죽이 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도 나니까.
물론 후자의 경우엔 내 의지가 들어가지 않았다곤 하지만, 애초에 로 키를 소환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생각하다 보니 로키에게 더욱더 미안해지네.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조용히 로키에게 다가갔다. 그는 뒷걸음질쳤지만, 결국 전망대 벽에 몰리는 신세 가 되고 말았다. 쿵, 짤막한 부딪침. 그는 나를 불안한 눈으로 올려다봤다.
나는 로키에게 손을 뻗었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당연히 그에게 해코지를 할 생각 따위는 없었던 나 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로키는 흠칫 몸을 떤다.
실눈 뜨듯 미세하게눈을 뜬 그에게 나는 따듯하게말했다.
“괜찮아, 다 꿈이니까.”
그건 사실 꿈 따위가 아닐 테지만, 로키를 진정시키기 위해 꺼낸 말이었다.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로키는 불안한 얼굴 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힐링을 사용해, 그의 상처를 치유해줬다. 초록색 빛과 함께 그의 상처가 점차 아물기 시작한다. 로키는 눈을 감은 채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물론 이런다고해서 그의 정신적 상처까지 나아지진 않겠지만, 도움이 되기를 기원할 뿐이다. 전망대 바깥으로 나오는 내게, 뒤따르던 퀸 이 말했다.
“권장하지는 않지만, 데이터 포맷 도 해결 방법의 일환이 될 수 있습니다. 로키의 상태로 보면, 조만간 폭주할 확률이 상당히 높아 보이니까요. 만약 로키가 폭주 시, 이 도시와 마스터에게 직접적인 피해로 이어질 확률은 99.99% 이상이며…”
로키는 저쪽 세계의 경험을 통해 한층 더 성장했다.
무려 아다만티움 전함을 조종해 일 개 세계를 멸망시켰을 정도니까. 지금 상태의 그는 퀸에 미치지는 못해도, 테베른을 뛰어넘은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그가 폭주한다면 분명 이 세계에는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데이터를 포맷한다는 것은 다시 말 해 로키의 기억을 삭제한다는 것. 내가 알던 로키를 지워버린다는 것. 그러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일단 내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부터가 의문이었다.
퀸은 한결 진지해진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인간과 달리 우리 인공지능들은 망각의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저, 마스터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불 완전한 존재들일 뿐이죠. 어쩌면 그 도 이미 그것을 바라고 있을지 모릅 니다.”
“그런데 마스터,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마스터의 세계에서 로 키와 마스터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아무 일도 없었어.”
“로키의 반응을 보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게 아닌 것 같은데… 제게 숨기시는 이유가 뭡니까?”
퀸은 다소 섭섭한 말투였지만, 나는 침묵했다.
그 세계를 침공했던 건, 다름 아닌 퀸이었다. 그녀는 그 세계에 있어서 재앙이었다. 그리고 내가 만약 그녀에게 이 사실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퀸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말할 뿐 이었다.
“슬픕니다. 마스터가 저를 더 이상 믿지 못하시는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를 믿지 않는 건 아니었다.
“아니야. 너를 믿어, 믿는데…”
“말하기 곤란하시면 말하지 않으셔 도 됩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그녀는 화제를 꺼내지 않았다. 성도에서그녀와 함께 돌아오는 동안 평범한 일상 얘기만 주고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언젠가 이 이야기에 대해 다시 꺼낼 것이라는 걸. 그리고 나는 그때, 무언가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내가 마스터의 세계를 습격했다라.’
퀸은 다른 인공지능들보다 한층 더 고차원적인 존재가 됐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같은 인공 지능인 로키의 데이터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마스터, 박시현의 세계에서 로키의 기억을 말이다.
그녀는 디아블로와 박시현의 대화 기록을 통해 박시현의 세계를 침공 했던 것이 자신이라는 걸, 그리고 박시현을 정신 지배해 세계를 멸망 시킨 것이 쯔쉬안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그렇다면 마스터가 보인 반응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 세계에서 그런 일을 겪었는데, 오자마자 자신을 폐 기 처리시키지 않은 게, 쯔쉬안을 죽이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다.
‘역시 마스터는 착해… 하지만 나는 어째서?’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인 쯔쉬안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누구보다 마스터를 사랑하는 인공 지능인 자신이, 맹목적으로 그에게 충성해야만 하는 자신이 그가 있는 그의 세계를 습격했다는 것을. 그의 목숨을 위협했다는 것을.
그것도 수십 년 후의, 머나먼 미래 에.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는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하기야, 마스터가 떠났을 때 고통스러웠지. 마스터가 떠난 지 수십 년이나 흘렀으면 나도 폭주하게될 지도.’
그녀는 어쩌면 이것이, 지난번 박 시현이 팀 아포칼립스의 연구소를 불태우게 한 것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곧 그녀는 고민에 빠졌다.
마스터, 박시현의 명령을 어기고 자의적으로 연구를 이어나갈지, 아니면 그의 말대로 깔끔하게포기할 지를 말이다. 곧, 박시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는 눈을 빛냈다.
* * *
카시오페아 기프트가 터진 후에, 한동안 바깥세상에 대한 출입이 엄 금됐다. 하지만 그로부터 수여 개월 이 흐른 지금, 시민들은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이들은 극소수였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도시 외부도 다시 개발되 고 있는 상태였다. 도시 옆에는 거대한 도시가 지어지고 있었다. 장차 인구가 늘어날 것을 대비해 짓는 도시였다.
지금의 쉘터 아포칼립스와 거의 비슷한 사이즈에, 기능만 놓고 본다면 오히려 쉘터 아포칼립스를 뛰어넘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도시였다.
그 세계에서의 설계도를 토대로 만들어진 기계 도시였다. 완성된다면 하루마다 수천 기, 많게는 수만 기 의 안드로이드 로봇까지 생산할 수 있는 괴물.
뭐, 인근 천 킬로미터의 대부분의 초월체가 말살된 이 세계에서, 안드로이드 로봇의 숫자는 더 이상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초월체들은 아직 도 너머의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고 했으니까.
생각하던 나는 하늘에 떠다니는 무인 드론들을 바라본다. 무인 드론들은 구호물자를 싣고, 어딘가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물론 이제는 생존자들을 찾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를 기대를 가지고, 퀸은 계속 탐사를 이어나가고 있다고했다.
뭐, 어차피 쉘터 내에 넘쳐나는 것이 물자니 적당하게소비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도시를 바라보던 나는 조용히 열린 차원문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이 세계의 대부분의 위험거리는 사라졌다. 이 세계에 남아있다 한들 내가 더 할 것도 없었다. 때문에, 나는 박민정의 세계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이 세계와 달리 박민정의 세계는 아직 위험거리가 남아있었으니까.
– 다 죽었어.
그 세계에서, 박민정의 세계는 끝내 초월체들에 의해 멸망했다고 했었지. 나는 그렇게 놔둘 생각은 없었다. 내가 직접 그녀의 세상의 아포칼립스를 종식시킬 것이다.
내가 마치 내 세계에서 그랬던 것 처럼.
차원문을 통과하는 것은, 바하라 광산이나 다른 곳으로 연결된 차원 문을 통과하는 것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나는 전망대 위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허공에 차원문이 열렸다고 하더니, 전망대를 지어놓은 모양이다. 나는 전망대 아래를 내려다봤다. 꽤나 발전된 도시- 쉘터 아포칼립스에 비하면 더없이 낮지만-가 눈에 들어 온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저쪽 세계의 에밀리였다. 그녀는 저격총을 등에 멘 채 입 안에 빵을 물고 있다가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러면서 뭐라 나를 향해 말하는데, 나는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퀸이 곧 번역기를 만든다 했으니, 대화는 그때 나누면 족하다.
나는 말없이 그녀에게 땅을 던졌다. 다름 아닌 내 세계의 ‘에밀리’가만든 빵이었다. 그녀는 빵을 집고는 당황했지만, 이내 빵을 이리저리 살 피기 시작했다.
이내 빵을 집어서 먹는다. 곧 그녀의 얼굴에 퍼지는 환한 미소. 나는 그녀가, 그녀가 만든 빵을 몹시 마음에 들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녀를 지나, 말없이 내려가 기 시작한다. 그녀는 쫄래쫄래 나를 따라오며 뭐라뭐라 덧붙였지만 당연 하게도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전망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까 지도착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를 바라본다. 그들 중에는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사실 이 게임에서 동양인 캐릭터가 흔하지는 않으니까. 뭐, 어디까지나 서양인 캐릭터에 비해서지만 말이다.
박민정의 친구들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들은 경계 어린 얼굴이었다. 그들의 입이 열린다. 한국어였다.
“혹시 박민정의 오빠분이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갑습니다, 나는 쉘터 아포칼립스의 리더인 박시현입니다.”
“어, 어서 오십시오.”
그들의 태도가 극히 공손하게 바뀌었다. 하기야, 이 쉘터A가 이렇게 발전하게된 건 전적으로 우리 쉘터 때문이니 당연한 일이다.
나는 그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 면서, 천천히 쉘터 안쪽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그들 중 한 명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하기야, 그동안 간다 간다 하면서 정작 갔던 적은 한 번 도 없으니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의문이었다.
나는 담담하게입을 열었다.
“끝내려고 왔습니다.”
이 아포칼립스를, 끝내기 위해 왔다. 내 말에도 그는 여전히 의아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그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더 말하지 않고,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정거장이었다. 내 의지에 의해 지어진 거대한 정거장. 박민정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정거장이 무슨 목적으로 지 어지는지 모른다고했다.
하지만 이들은 곧 그 목적에 대해 깨닫게 될 것이다.
아포칼립스 만능기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