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284
말을 알아들은 건지 천설화는 던져준 단검을 쥐어 잡고서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유현도 달려오는 천설화를 보고서 단검 한 자루를 더 꺼내들었다.
제대로 자세를 잡기 무섭게-.
탕, 하고 어둠속에서 불똥이 튄다.
순간이지만 사늘하게 빛나는 그녀의 눈이 선명히 보였다.
“——!”
공격을 실패했음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덤벼들었다.
규칙도, 절도도 없는-. 그런 그녀의 공격이 유현한테 먹힐 리가 없었다.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그녀의 공격을 막아낸다.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걸 그녀도 안 건지 움직임이 더욱 매섭게 변했다.
공격이 통하지 않자 그녀는 단순 무식하게 속도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곧 그녀가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좀 더 제대로 차분하게 지금 싸움을 돌아볼 수 있다면 단순히 속도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짐승처럼 땅을 박차, 짐승처럼 사납게 소리를 지르며 단검을 휘두른다.
그녀가 기절하기 전에 보여주었던 생기 없는 그 시체 같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지금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생기 어린 눈을 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살기와 광기에 뒤섞여 보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싹함을 느끼게 하지만. 부정적인 면으로 그녀의 눈은 생명력이 넘쳤다. 유현은 그녀의 눈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적어도 귀신처럼 죽어 있는 눈을 하는 것보다는 낫다.
목과 심장만을 집요하게 노리며 파고드는 공격을 유현은 어린 아이 손 비틀 듯 가볍게 쳐내며 더욱 그녀의 공격을 유도했다. 유현은 지금 자리에서 그녀를 시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너무 좁군.’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지루한 공방에 유현은 눈을 가늘게 하고는,
“—-윽?”
유현을 죽이기 위해 열심히 움직여주고 있던 천설화의 목을 향해 갑자기 손을 뻗었다. 정확히 천설화의 빈틈을 노리고 들어온 손길에 그녀는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었다.
눈앞으로 뻗어오는 손길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저항할 수 없다는 그 공포에 그녀가 순간이나마 몸이 굳는 순간, 난폭한 손길은 그녀의 옷덜미를 콰득 쥐어 잡아 허공에 내던졌다.
좁은 방, 그 안에서 유현은 그녀를 창문으로 던졌다.
아이리스의 가호와 훈련된 근력은 천설화 정도의 가냘픈 몸쯤은 손쉽게 내던질 수 있었다.
쨍그랑-.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린다.
유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되면 일행도 전부 잠을 깼겠지.
소리에 민감한 사람은 방 안에서 벌어지던 싸움에 이미 눈을 떴을 터.
그런 생각을 하며 유현은 천설화가 날아간 창문으로 몸을 움직였다.
가볍게 바닥에 착지하자 유현은 이미 밖에 나와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자에게 너무 난폭하게 구는 거 아니야? 이거야, 정말 사랑받지 못할 남자네.”
목소리의 주인은 란슬렛이었다. 팔짱을 낀 채 어이없다듯이 유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눈매가 뾰족하게 휘어져 있는 것이 화가 난 듯하다.
그녀의 눈매가 험악하게 변한 이유를 유현은 알고 있기에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여관 안에서 싸움질을 했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있나.
유현이 여관 주인이었어도 란슬렛 처럼 화가 났을 거다.
“깨진 창문 값은 내일 변상 할게. 그 외에 가구를 망가뜨린 값도.”
“그렇다면 다행인데. 그것보다 저 쪽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란슬렛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에는 천설화가 있다.
2층에서 떨어진 충격에서 이제야 벗어난 건지 몸을 비틀거리며 겨우 몸을 든다.
내팽개쳐졌으면서도 단검을 손에서 놓지 않은 채 잘도 쥐고 있었다. 나름 멀쩡해 보이지만 몸을 제대로 움직이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혹시 죽일 생각이야? 내 여관 근처에 시체가 뒹구는 건 조금 곤란한데.”
“저렇게 좋은 인재를 내가 왜 죽여.”
싸늘한 목소리로 란슬렛이 묻자 유현은 설마, 하며 웃었다.
지금 이건 그녀와 놀아주고 있을 뿐이다. 유현은 단 한 번도 살기를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나저나 광폭화를 가진 여인이라. 취향이 제법 독특한데. 설마?”
“…무슨 의도로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한 생각은 안하면 좋겠는데.”
“그러면 이런 시간에 여자를 방 안에 불러서 날뛰지나 말던가.”
돈을 준다고 하지만 그래도 역시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듯하다.
뾰족하게 선 그녀의 어조에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최대한 노력해 보지.”
그 때 쯤에서 충격에 몸을 추스르고 있던 천설화가 드디어 제대로 자세를 잡는다.
“흐음?”
단검을 꽈득, 쥐고는 주변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던 란슬렛이 미간을 찌푸린다.
저건 마치 사냥감의 틈을 엿보는 늑대처럼 보인다.
천설화의 살기는 유현뿐만이 아니라 옆에 있던 란슬렛에게도 옮겨졌다.
스산하게 빛나는 천설화의 눈동자는 분명 란슬렛을 보고 있다.
“나까지 싸움에 끼어들기는 싫으니, 이만 물러나도록 할 게. 여관 안에 있는 일행에게는 내가 잘 말하도록 할 테니까 적당히 하고.”
하지만 천설화와 장난 칠 생각은 전혀 없기에 란슬렛은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여관 안에 들어가 버렸다. 이미 여관 안은 소란스럽다. 창문 깨지는 소리가 났으니-.
그렇지만 유현은 천설화에게 의식을 집중했다.
“———”
기회를 엿보듯 주위를 맴돌던 천설화가 땅을 박찬다. 시체처럼 가느다란 다리가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유현에게 달려나간다. 동시에 뻗어오는 단검.
천설화가 내지르는 새하얀 일섬을 눈에 담으며 유현은 뒤로 물러섰다.
“——–!”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을 피한 유현은 그녀의 팔을 붙잡고는 사정없이 그녀의 몸을 내팽개쳤다. 가벼운 몸은 유현의 힘에 조금도 저항하지 못하고 떠올라 허공을 난다.
보통의 존재라면 허공을 부유하는 몸을 어찌하지 못해 바닥에 그대로 추락하겠지.
하지만 놀랍게도 천설화는 달랐다.
떠오른 몸을 어떻게든 비틀어 발부터 땅에 닿고는 가볍게 땅에 착지했다. 꼴 사납게 등부터 추락할 줄 알았던 유현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광경이었다.
‘호오.“
스르륵, 발끝이 밀리며 착지의 충격을 아무렇지 않게 흘려내는 그녀의 모습에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말로 그 순간 그녀는 짐승처럼 보였다. 본능에 의한 동작인 건가.
방금 그녀의 동작을 보고서 유현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이 흥분은 그녀가 가진 잠재력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바닥을 기듯 엎드리는 자세를 취하던 천설화가 몸을 든다.
이번에는 어딘가 그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젠 무작정 공격을 해오지 않는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유현을 관찰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방 안에서 보여주던 본능적인 움직임과는 조금 달라졌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성장이라도 한 건지 그녀는 상대를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유현은 좀 더 그녀와 놀아주기로 했다.
거듭된 관찰에도 빈틈이 발견되지 않는 건지 그녀는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 선택은 좋았다고 유현은 생각하면서도, 그녀를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지루할 뿐.
그럴 때마다 유현은 일부러 빈틈을 내보이며 그녀의 공격을 유도했다.
함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그녀는 쉽게 끌려나왔다.
유현은 그녀가 덤벼올 때마다 철저하게 농락했다.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해주면서 그녀에게 희망을 불어넣고는 철저하게 수비한다. 다만 반격은 하지 않는다.
지금 이렇게 연약하게 변해 있는 몸으로 그녀가 어느 정도의 움직임을 보일 수 있을지 유현은 끝까지 관찰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지칠 줄 모르듯 공격해오던 그녀에게도 한계가 올 수밖에 없다.
“….한계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점점 느려지고 있는 그녀의 공격을 느낄 때였다.
시작이 그러했듯이 마지막도 똑같았다.
갑자기 그녀는 바닥에 쓰러졌다.
*
며칠이 지났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싸움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바닥과 나무에 남아 있는 검기의 흔적에 그는 호오, 감탄했다.
자신의 하수인이 죽었다.
그 사실에 분노는 없다. 단지 호기심을 느낄 뿐.
꽤나 뛰어난 검사의 손에 죽었으니, 그것에 분노를 느낄 이유는 없다.
당연한 일이었다. 약한 자가 강한 자의 손에 죽는 건.
하수인은 그의 명령을 따라 착실하게 임무를 수행했지만, 운이 없었다.
그러니 하수인의 무능함을 욕할 것이 아니라 상대의 뛰어남을 먼저 칭찬해야겠지.
그는 천천히 주위를 돌아다니며 싸움의 흔적을 둘러보았다.
별 저항도 하지 못하고 죽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주위의 흔적.
압도적인 힘에 하수인은 목숨을 잃었다.
그렇기에 하수인의 시체에서 기억을 엿보려고 해도 그가 얻을 수 있는 건 단편적인 정보뿐이었다.
싸움이 끝나고 제단 안까지 내려간 건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발자국도 남아 있었다.
‘여기까지 온 건가?’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가니 문이 열려있다.
며칠 동안 관리되지 않았을 뿐인데 시체 썩는 냄새가 한 층 더 심해져 있다.
나름 오랜 시간 들여 만든 결계도 하수인이 죽자 사라졌고.
정글에 생명력이 돌아오고 있는 걸 이 자리에서도 느낄 수가 있다.
그는 지하에 만들어져 있는 마법진 위에 올라서고는 피식 웃었다.
사라진 결계는 복원하면 된다. 하수인이 죽었지만 결계를 위한 축마저 사라진 건 아니다.
남아있는 축을 이용해 결계를 복원하고 진행하던 일을 계속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곳을 어떻게 지키느냐겠지.
마법진을 파괴하지 않은 건 조사를 위해서일까.
이곳을 들켰다는 건 조금 마음 아픈 일이지만 그래도 본래 예상했던 것보다 오래버텼다.
그 동안 일은 원활하게 진행되었고, 이제야 겨우 난초에 한 번 부딪쳤을 뿐.
다시 이곳을 찾아올 손님을 위해 그는 준비를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