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383
놀랐다···. 라고 말하지 않으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쉽게 죽어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일방적일 줄이야.
힘들게 모은 것들을 유현이 단 한 번의 일격으로 일소하자 페르네는 눈을 크게 떴다.
”조금 놀랐어. 지금 그거 보구였어?”
지하수로를 타고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개의치 않고 유현은 괴물의 육신을 짓밟으며 접근했다.
바보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그건 단순히 기술이었을 뿐이다.
우직, 하고 방금 전 과물들의 몸체였던 것들이 유현의 발길에 찢겨졌다.
그녀의 물음에 침묵을 유지하며 유현은 검을 들어올렸다.
귀화처럼 타오르는 검기를 보며 페르네는 눈매를 좁혔다.
역시나 삭막한 남자이다. 저런 남자가 언니는 왜 좋은 걸까.
저 남자와 대화할 때 웃던 언니는 정말로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그만큼 화가 났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얼굴을 할 정도로 저 남자를 좋아한다는 거니까. 그런 얼굴은 처음이다.
자매한테도 보여준 적 없는 얼굴을, 만나지 오래되지 않은 남자에게 보여준다一.
그런 것을 페르네가 질투하며 전신이 뜨겁게 달아올랐을 때 반대로 유현의 머릿속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한 가지 물어보지. 지금 여기 있는 너는 진짜인가?”
지금 순간 유현이 생각하고 있는 건 지금 여기에 있는 페르네가 무엇인가다.
그 물음에 페르네는 입술을 요염하게 비틀며 웃었다.
“후흣. 어떨 거 같아? 지금 여기에 있는 나는 가짜일까? 진짜일까?”
그런 걸 말해줄 리가 없다. 그런데 그런 걸 묻는 남자를 조소한다.
말하는 어투에서 느껴지는 페르네의 생각에 유현은 분노도, 부끄러움도, 그 어떤 감흥조차 느끼지 못한 채 검을 움직였다. 검기가 날카롭게 쏘아져, 상대의 몸을 찢었다.
-GRRRRRRRR!
유현이 노린 건 페르네가 아니었다.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마수로 변한 이종족들이었다.
은밀하게 기습이라도 하려고 했던 건지, 어둠속에서 녀석들은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신의 옆을 스치고 지나간 검기에도 페르네는 신기하다듯이 감탄만할 뿐.
”흐음. 눈치가 빠르네. 적당히 속여 보려고 했는데.”
뒤에서 느껴지는 검기의 여파 속에서 괴물들이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꿈틀거리는 게 느껴진다.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려는 그 몸짓들은 기괴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볼품없었다.
아직 그 한계를 시험해 본 적 없기에 페르네는 괴물들의 생명력에 놀랬다. 육신의 절반 정도가 소멸해도, 살아 움직일 수 있다는 건 도대체 얼마나 강한 생명력을 가졌다는 걸까.
그리고 그런 괴물들을 어렵지 않게 찢어 죽이는 유현의 힘에 한 번 더 놀란다.
직접 두 눈으로 보니 남자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위험했다.
—역시 이 괴물들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남자다.
그 사실에 페르네는 등줄기가 떨리는 걸 느꼈다.
감각이 언다. 그 정도로 오싹한 기운이 페르네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남자의 살기는 무섭다. 이러한 공포를 느끼는 건 얼마만 일까.
언젠가 부터인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숨겨진 공포가 부풀어 오른다.
공포라는 건, 십여 년 넘게 잊고 있었던 감정일 텐데.
몸이 떨고 있다.
페르네는 몸이 쉴 세 없이 떨리는 걸 억누르지 못했다.
손끝부터 시작해 몸을 침식해 오는 떨림은 호흡마저 가파르게 만들었다.
아아, 무섭다. 무섭지만 한 편으로는 너무나도 궁금해졌어.
이런 남자를 죽였을 때 슬퍼할 언니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그래, 죽이자.
반드시 죽여서 언니를 데리고 온다-.
그러한 전의를 한 번 더 가슴 안쪽에서부터 불태우며 페르네는 표독스러운 눈을 했다.
여유롭던 분위기는 없다. 그런 자세로 저 남자를 대하다가는 살해당한다.
요염한 얼굴에서 모든 표정이 사라져버리고, 단지 영하의 살의만이 흘러넘친다.
하지만 그런 살의가 넘치는 붉은 눈동자는 여전히 보석 같이 아름다웠다.
거기서 유현은 느꼈다. 페르네의 등 뒤에서 흘러넘치는 마이너스한 기운을.
그건 거대한 악의라고 느껴질 정도로, 불쾌했으며 살기가 넘쳤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짐작할 수 없는 거대한 마력.
일반적인 마력도 아니다. 이건 마소였다.
이것이 뭔지 유현은 잘 알고 있었다. 한 번 겪었던 거 아닌가.
주위의 대기가 일그러지고 있다. 마소로 인해 변해가는 공기의 감족.
’데페르라에서 느꼈던 그것인가.’
피부가 타오르듯이 날뛰는 불길한 마력에 유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것은 아직 여기서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유현의 몸을 태우고 있었다.
퍼져 나오는 마소는 공기를 점유해 나가며 생물체의 접근을 배제한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을 하려는 거지一. 그런 걸 생각하는 것보다도 먼저 몸이 움직였다.
일진의 바람처럼 땅을 박차는 유현의 움직임은 신속했다.
하지만 그런 유현을 막아서듯 뒤에 숨어 있던 다른 괴물들이 속속히 모습을 드러냈다.
어두운 밤바다를 항해하듯, 지하수로의 어둠속에서 검기가 덤벼오는 괴물을 베어 넘긴다.
검기가 흘리는 찬란한 빛에 의지한 채 유현은 어둠속을 휘젓고 다녔다.
어둠속에서 사방팔방 모습을 드러내는 괴물을 보고도 유현의 눈은 싸늘했다. 녀석들을 죽이면서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은 하나 뿐. 오로지 하나의 생각만으로 검을 움직인다.
수십의 괴물이 덤벼온다면, 그만큼 베면 될 뿐이다.
숫자는 생각하지 않는다. 죽이다 보면 끝은 오기 마련.
이러한 괴물들 따위로는 막을 수 없다.
발을 붙잡는 질척이는 진흙마냥, 겨우 그 정도인 녀석들이다.
’안에 무언가 더 있는건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괴물의 공격을 받아쳐내면서, 유현은 멀어지는 기척을 추적했다.
페르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멀어진다. 그녀가 멀어지고 있다.
그건 도망이라고 하긴 애매하다. 남겨두고 있는 필살의 수가 있다는 걸까.
애초에 이런 건 전부 생각하고 있었다.
푸른 검기를 폭풍처 럼 흘리며 유현은 페르네의 뒤를 쫓았다.
-GRRRRRRR!
죽음을 향해 달리듯 괴물로 변한 이종족들이 끊임없이 달려들었지만, 그런 것들을 베어 넘기며 달리는 유현의 속도는 페르네가 달리는 것에 뒤처지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높인다.
그것은 어둠을 달리는 푸른 질풍이었고, 그 질풍에 접근한 괴물들은 조금의 예외도 없이 온몸이 찢겨져 나갔다.
서로 떨어진 거리는 일정한 수준에서 유지된 채 둘은 수로를 달렸다.
거기서 힘들어진 건 송가연이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정령이 힘들어 하고 있었다.
-오빠. 이 앞에서 마소가 느껴지고 있어요. 괜찮겠어요?
”나는 괜찮아. 그런데 너는?”
얼핏 보니 정령의 형태가 많이 희미해졌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그 모습이 너무나도 위태롭다.
-···어느정도 버틸 수는 있을 거 같아요. 하지만 이 이상 접근하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어요. 마소의 농도가 높아질수록 정령이 접근을 거부하고 있으니까요.
정령은 마소를 싫어하는 걸까. 그리고 보면 데페르라 때도 그랬다.
갑작스럼게 폭발한 마소에 의해 정령은 갑작스레 역소환 되었고, 송가연은 피를 토했다.
그랬던 송가연의 모습이 갑자기 머릿속이 떠올라, 유현은 괴물을 죽이면서 말했다.
“위험하다고 느끼면 곧 바로 물러나.“
-하지만오빠는···.
여유롭게 괴물을 허리를 베어내, 밀어 넘기고서 유현은 피식 웃었다.
“문제없어.“
이건 단순한 허세가 아니었다. 마검이 우우웅 떨고 있다.
언제나 반항만 하던 짜증나는 녀석이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순종적이다.
괴물로 변한 수인족을 베어낼 때마다 마검은 환호를 터뜨리고 있었다.
좀 더 죽이라고, 말하며 녀석은 힘을 빌려주고 있었다.
주위를 마소가 침식해 나갈수록 마검은 오히려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마검에서부터 공급되어 오는 마력이, 유현을 돕고 있었다.
검기는 쉴 세 없이 강한 기세를 흘렸고 유현의 육체는 점점 강인해 지고 있었다.
괴물의 심장을 잡아먹고, 마소를 빨아들이는 마검은 유현에게 힘을 지원해 주고 있었다.
그것은 마검이 이제야 유현을 주인으로서 인정해서가 아니다.
단지 서로의 이해가 일치 했을 뿐이다.
마검은 더욱 많은 먹이를 원했고, 유현은 좀 더 강한 힘을 원했다.
페르네를 쫓는다. 어두운 수로를 달리며 어느새 유현은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리던 페르네가 다리를 멈추었고, 괴물들도 더 이상 없었다.
수백 미터를 쉬지 않고 달리며, 괴물을 죽이면서 전진해 왔으면서도 유현의 호흡은 평온했다.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고요한 숨결을 흘리며 유현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페르네가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는 싱긋 웃는다. 그 웃음은 역시 페르시와 닮았다.
하지만 그녀의 것은 온화하면서도 부드러웠다면, 페르네는 차갑고 냉혹해 보였다.
둘의 미소는 완전히 서로 다른 색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망설임 없이 죽일 수 있다.
아무리 같은 몸과 목소리를 가졌어도 너무나도 다른 미소가 유현의 망설임을 지워버렸다.
유현은 나직이 목소리를 흘렸다.
“여기가 끝인 건가?”
도착한 그곳은 넓은 공동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사방으로 수로가 연결되어 있어, 탁해 보이는 물들이 강처럼 흐르고 있다. 유현은 알 수 있었다. 여기가 지하수로의 중심이라는 걸.
썩은 내가 넘쳐흐르는 동시에, 주위로 농밀하게 퍼져있는 마소가 검은 손길을 뻗으며 유현의 몸을 태우고 있다. 어두운 탓에 잘 보이지 않지만 주위는 보랏빛의 세계겠지.
마검이 마소를 흡수하고 있는 탓에 진행은 느렸지만 차근차근 침식은 진행되고 있었다.
폐를 타고 들어온 마소가 몸 안을 태우는 걸 느끼며 유현은 페르네를 쳐다봤다.
고통은 점점 증폭되어 몸안의 곳곳에서 퍼져나간다. 침식이 진행될수록 고통은 심해지겠지.
그녀도 고통스러울 텐데도 쿡쿡 웃고 있었다.
이윽고 한참을 웃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정말로 여기까지 따라을 줄은 몰랐는데. 함정이라는 걸 생각하지는 않았던 거야?”
우우우웅!
조소를 품은 요염한 목소리가 공동을 울리기 무섭게 유현은 발밑에서 진동을 느꼈다.
사방에서 물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연결된 수로가 가두고 있던 물들이 중력을 역전하듯 치솟는다. 그리고 거기서 모습을 드러내는 건 검붉은 빛의 고깃덩어리였다.
저것도 마수의 일종인 걸까.
더러운 고깃덩어리로 밖에 보이지 않는 동그란 형태의 그것은 저주스러운 마력을 아낌없이 흘리고 있었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난다. 너무나도 기괴한 육괴였다.
-오빠···. 저건I 데페르라에서 봤던 거랑 똑같아요!
경고하듯 송가연이 말도 그렇고, 마검의 반응을 보니 마수는 맞는 거 같다.
마수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마소의 농도가 급격히 오르는 걸 느낀다.
거기서 페르네는 아아, 황홀에 잠긴 얼굴을 하며 말했다.
“여기서 너는 죽는 거야. 이 괴물에게.”
그와 동시에 그녀의 등 뒤로 아공간이 열렸다.
페르시가 쓸 수 있으니, 페르네가 쓰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녀가 꺼낸 건一.
”···요정의 시체인가.”
죽은 지 오래되지 않은 듯한 요정의 시체였다.
그것을 보고서 유현은 어쩐지 누군지 알 것만 같았다.
요정 로베리아-. 계속해서 아공간에 보관되어 있었다면 저렇게 죽은지 오래되지 않은 것만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게 이해가 된다.
아공간에서 툭 하고 요정의 시체가 떨어졌고, 그와 동시에 동그란 형태를 지닌 육괴가 반응했다. 그 움직임은 유현이 반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육괴는 요정의 시체를 집어삼키고서 지진이 일어날 정도로 강하게 몸을 떨었다.
그리고서 눈이 멀 정도로 강한 마력의 빛이 육괴에서부터 토해졌다.
그건 데페르라의 신전에서 봤던 것과 완전히 동일한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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