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Maker RAW novel - Chapter (234)
배드 엔딩 메이커-234화(234/235)
<배드 엔딩 메이커 이어 원(Year One) 15화>
그로부터 15년이 흘렀다.
* * *
시즌1 피날레 축제에서 15년.
시즌6 마왕 강림에서 10년.
윙즈 온라인은 오랫동안 VR월드 게임의 왕좌를 지켜 냈으나, 세월의 흐름은 야속했다.
속속들이 등장한 새로운 다크호스들에게 조금씩 밀려났다.
네이팜에서 발리문으로 이직한 남민철 디렉터가 만든 아포칼립스 온라인에게 1위를 빼앗겼고, 그 뒤로 다시는 1위를 되찾지 못했다.
그리고…….
VR월드 자체의 수명이, 순식간에 끝나고 말았다.
기술은 매 순간 변혁했고, 그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세계 문화 산업 전체를 뒤흔들고 풍미했던 가상 현실 기술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2세대 가상 현실, 3세대 가상 현실에 이어, 초(Post) 가상 현실 시대가 찾아왔다. 실제 현실과 가상 현실이 실시간으로 상호 작용하며 융합하는, 궁극적인 혼합 현실(Mixed Reality) 시대가 도래했다.
가상 현실 게임 중에서도 원로, 1세대 터줏대감인 윙즈 온라인은 이 변혁의 파도 앞에서 속절없이 밀려났다.
그리하여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고전 게임 대열.
최신 게임은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스마트글래스, 스마트링, 심지어 스마트칩으로 간단하게 접속할 수 있는 시대.
윙즈 온라인은 이제 사람들이 잘 구하기도 어려운 구형 VR PC, 혹은 헤드 커넥터를 이용해 접속해야 하는, 낡은 게임이 되어 버렸다.
시대에 뒤처진 윙즈 온라인에는 그래도 IP 파워가 남아 있었다. 혼합 현실 시대에 연신 참패를 이어 가던 네이팜에서는 윙즈 온라인을 이용해 새 미래 먹거리를 찾기로 했다.
그것이 <윙즈 온라인 2>.
혼합 현실 시대에 걸맞은 신규 콘텐츠가 아닌, 윙즈 온라인 1의 시스템을 답습한, 플랫폼만 현세대로 옮겼을 뿐인 추억팔이 목적의 게임이었으나 네이팜에서 거는 기대는 컸다.
그리고 윙즈 온라인 2의 런칭을 앞두고, 윙즈 온라인 1은 서비스 종료를 발표하게 되었다.
아직 남은 브랜드 파워와 이용자층을 후속작으로 고스란히 옮겨 오려는 얇은 술책이었다.
온라인 게임 역사를 통틀어 제대로 된 효과를 본 적이 없는 방법이었지만, 그리고 아직까지 윙즈 온라인을 즐기던 올드 유저들 사이에서 항의가 쏟아졌지만.
그래도 네이팜에서는 서비스 종료를 강행했다.
그리하여, 서비스 15주년. 시즌15 피날레.
마지막 축제를 끝으로, 윙즈 온라인은 서비스를 종료하게 되었다.
* * *
“……후.”
윙즈 온라인의 서비스 마지막 날.
가상 공간에서 출근을 준비하며, 윙즈 온라인의 운영 총괄 AI이자 인 게임 여신, 오아시스는 착잡한 얼굴이었다.
‘이렇게 끝나는구나.’
어떻게든 서비스 종료를 막으려 애썼지만, 결국 일개 AI에 불과할 뿐인 오아시스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윙즈 온라인 원년 개발 멤버 3인방- 민철, 신지, 동하가 모두 퇴사한 지금, 네이팜 안에서 윙즈 온라인의 서비스를 지켜 가려는 사람도 더 이상 없었다.
옅은 한숨을 토해 낸 오아시스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윙즈 온라인에 접속했다.
짧은 은발은 길어지고, 의상은 그리스식 하얀 드레스로 변하고, 등 뒤에는 나뭇가지로 이뤄진 날개가 돋아났다.
윙즈 온라인의 여신으로 변한 오아시스는, 천천히 감회에 젖은 눈으로 게임 세계를 둘러보았다.
‘아…….’
동쪽 끝 솔라 테라부터, 서쪽 끝 엘 라엘의 신전까지.
남쪽 끝 오션 크로스부터, 북쪽 끝 아이스버그까지.
구대륙에서, 신대륙에서, 초보자 마을에서, 언더타운에서, 스노우화이트에서…….
무수한 추억이 오아시스의 눈앞을 선명하게 스쳤다.
‘많은 일이 있었지.’
민철과 처음 만나 악수한 날.
가이아를 처음 만나 언니라 부른 날.
서비스 시작을 준비하던 날들.
알파 테스트, 포커스 그룹 테스트, 클로즈 베타 테스트, 오픈 베타 테스트, 그리고 정식 출시…….
업데이트를 만들던 철야의 밤들.
직접 이 세계에 뛰어들어,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 싸우던 날들.
그 모든 모험의 순간들…….
그리고 가이아의 뜻을 이어받아, 이 세계의 여신이 되어, 게임을 운영해 온 지난 10년.
‘가이아 언니.’
오아시스는 울렁이는 가슴을 손으로 꾹 눌렀다.
‘나는 언니만큼 좋은 여신이었을까요?’
게임과 하나로 동화된 채.
지난 10년간 게임 세계를 기저에서 지탱해 온 가이아는, 물론 대답이 없다.
“…….”
최선을 다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정신을 차려 보니 서비스 종료 직전, 마지막 밤.
유성우처럼 쏟아지는 무수한 추억 앞에서 오아시스는 속이 쓰렸다.
하지만, 그러나.
마지막 밤이 아닌가.
웃으며 보내 주어야 한다.
“좋아!”
자신의 둥근 뺨을 짝짝, 소리 나게 두들기고.
오아시스는 힘찬 걸음으로 스노우화이트 광장으로 나섰다. 마지막 축제를 즐기는 유저들에게 진심을 담은 작별 인사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스노우화이트 광장은…….
“무슨 장례식이 열리고 있는 건가요?”
“장례식이 아니라 축제입니다!”
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어느새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 윙즈 온라인에서, 몇 년 만에 보는 엄청난 인파였다.
모두가 한때 사랑했던 이 게임의 마지막을 기리기 위해, 먼지가 쌓인 헤드커넥터를 닦아 내고 창고에 처박혀 있던 VR PC를 꺼내 다시 조립했다.
“오랜만에 헤드커넥터 끼니까 엄청 무겁다, 야.”
“나는 이거 접속하려고 중고 시장 가서 VR PC 통째로 샀다!”
“아니 뭔 경기도에는 PC방도 다 망하고 없더라니까? 축제 보려고 서울까지 올라와서 접속해야 하는 게 말이 되냐?”
“이 녀석 그렇게 말하면서 오랜만에 PC방 오니까 좋다고 라면부터 시키더라니까.”
한 시대 전의 기기로 게임에 접속하려는 의지 하나만으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사람들이 투덜거리며 동시에 낄낄 웃었다.
“옛날에는 어떻게 이런 커다란 기계로 게임할 생각을 다 했을까.”
“내 말이. 게다가 와, 어릴 때는 그래픽 쩐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접속하니까 은근히 어색하네…….”
“이 올드한 그래픽이 또 나름의 맛이 있다, 이거예요.”
“와, 내 장비. 오랜만에 보니까 진짜 이쁘네. 이거 맞추느라 며칠 밤을 새웠더라?”
“그때는 리화 리블이 제일 예쁜 색인 줄 알았다니까.”
“좀 있다가 신대륙도 가 볼까? 거기 우리 길드 아지트 있었잖아.”
“아니, 뭐야? 우리 길드 사람들 절반이나 온라인인데? 야! 귓말 돌려 봐. 오랜만에 다들 얼굴이나 보자.”
그렇게 각자의 추억에 젖어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찐옥수수 팝니다~ 윙즈 명물 찐옥수수~ 마지막 가는 길에 하나만 잡숴 보십쇼~.”
한때 사건사고 현장마다 나타나던 찐옥수수 빌런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고,
“자, 자!”
뒤이어 외눈에 황금색 갑옷을 입은 노인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럼 윙즈 온라인 마지막 스노우화이트 성주는 우리 혈맹이 먹겠수다!”
“하이고, 드세요! 그냥 다 처먹으세요!”
“올드만 저 영감은 아직도 저러고 있어?”
“할아버지,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떽! 아직 정정해, 이 자식들아! 지팡이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
섭종 전 마지막 성주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망에 불타, 여전한 노익장을 과시하는 올드만이 호통을 쳤고.
“윙즈 온라인은 AI 신경망 역사에서 의의가 깊은 게임이에요. 특히 가이아가 게임과 동화되며 만든 세계 신경망 모델은 이후 AI 발전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죠. 이런 게임을 서비스 종료하다니, 하여간 돈이팜…….”
“제가 프로게이머 경력 시작한 것도 윙즈 온라인이었죠. 서비스 종료라니…… 기분이 이상하네요.”
머지않은 곳에서 이제 대학 교수가 된 닥터와 여전히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는 카인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옆에서 노란 우비를 뒤집어쓰고, 머리 위 카메라 어플을 조정하며 ‘와, 이런 구시대 어플로 어떻게 방송을 했대?’라고 중얼거리던 어글킹이 기겁했다.
“잠깐만, 카인! 그러고 보니 너 아직도 20대야?!”
“직접 계산해 보시든가. 나랑 댁이랑 10살 차이잖아.”
“미친! 대체 언제까지 해 먹으려는 거야?! 적당히 하고 은퇴 좀 해! 10년 뒤에도 우승컵 들고 있을 거야? 에이징 커브 대체 언제 오는데?!”
빽빽거리는 어글킹에게 카인이 피식 웃었다.
“그러는 어글킹이야말로, 그 얼굴로 내일모레 40대라니. 안 믿기네요.”
“꺄아아아아! 내 나이 이야기는 검지야, 검지! 너 이 자식 3개월 밴이얏!”
패닉에 빠져 머리를 쥐어뜯는 어글킹 옆으로, 오랜만에 모인 은빛 갑옷의 자유기사연맹이 왁자지껄 떠들며 지나갔다.
“시즌1 피날레 때 치안 유지 자경단 하면서 우리가 시작됐는데 말입니다. 벌써 15년이 지났습니다, 아론.”
“후후. 그렇게 사건 사고가 많았는데, 지나고 보니 전부 추억이네요.”
오랜 인연들이 서로 스치며 가볍게 눈인사를 나눴다.
이곳 윙즈에서 만나, 서로 싸우고, 증오하고, 다시 화해하고, 또 무뎌진 인연이 대체 몇이던가.
단순한 온라인 게임이 아니라, 그 이상의…… 모두의 인생 일부분을 차지했던 이 게임.
그 시간도, 이제 끝에 다다랐다.
다 함께 모여 선 NPC들 앞에서 차례로 스크린샷을 찍던 유저들이 일제히 하늘을 보았다.
만월을 등지고, 여신 오아시스가 천천히 광장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여신님이다!”
“꺅! 오아시스 여신님!”
“오아시스 쨔응!”
“헉헉, 오랜만에 봐도 귀엽다능!”
“아니 ‘~능’ 말투는 너무 옛날 거 아니냐고…….”
“냅둬. 여기 다 고생대 겜덕 모임인데 저 정도는 봐주자.”
제각각 감상을 토해 내는 수많은 사람 앞에서.
무대 위에 내려선 오아시스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이제 서비스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몇 시간.
그 전에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
“그동안……!”
자신에게 모인 수많은 시선 앞에서, 오아시스는 준비한 멘트를 꺼냈다.
“오랫동안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오아시스가 허리를 꾸벅 숙였다.
일순 광장이 조용해졌다.
“비록 윙즈 온라인은 오늘로 서비스를 종료하지만, 여러분과 함께한 추억은 영원하리라 믿습니다.”
고개를 든 오아시스는 있는 힘껏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여러분, 부디 앞으로도…….”
현실에서.
앞으로의 삶에서.
즐거운 모험을 이어 가기를.
……빌어야 하는데.
“앞으로도, 즐거운…….”
어째서일까.
자신은 AI에 불과한데.
정해진 멘트만 말하면 끝인데.
“…….”
목이 메었다.
눈이 뜨거워졌다.
숨이 막혀서 오아시스는 뒷말을 맺지 못했다. 오아시스는 두 눈을 질끈 감고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려 애썼다.
그때였다.
“여신님!”
광장에 모인 수많은 유저 중 누군가가 자신의 입 옆에 두 손을 대고는, 힘껏 소리쳤다.
“행복하셔야 해요!”
“……!”
“언제든, 어디에서든!”
이름 모를 그 유저의 외침에, 오아시스는 눈을 떴다.
“우리와 함께한 것만큼,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즐거운 모험을 하셔야 해요!”
“…….”
오아시스는 천천히 광장을 둘러보았다.
그 유저의 말이 기폭제였는지, 사람들이 모두 입을 벌리고 무어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오아시스를 향해.
오아시스가 대표하는, 이 윙즈 온라인이라는 오래된 세계를 향해.
고마웠다고.
즐거웠다고.
잊지 않겠다고.
그러니까, 너도 부디 행복하라고.
“……네, 그럴게요.”
오아시스는 웃었다.
“우리 모두, 부디 앞으로도…….”
자신도 모르게 눈가로 눈물을 흘리며, 하지만 환하게 웃었다.
“즐거운 모험을!”
굿바이.
마이 플레이어.
눈물 젖은 얼굴로 미소하며 오아시스는 깊게 허리를 숙였다.
유저들이 박수와 환호, 눈물과 웃음을 함께 쏟아 냈다.
서비스 15년.
개발 기간까지 포함하면 20년.
한 시대를 풍미했던 MMORPG, 윙즈 온라인은 그렇게 서비스를 종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