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Maker RAW novel - Chapter (235)
배드 엔딩 메이커-235화(235/235)
<배드 엔딩 메이커 이어 원(Year One) 16화>
윙즈 온라인 서비스 종료 다음 날.
네이팜의 오아시스 대여 권리가 소멸했고, 오아시스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네이팜의 가상 공간에서 빠져나갈 준비를 하는 오아시스 주위로, 네이팜 소속 AI들이 우르르 몰려와 주위를 둘러싸고 일제히 인사했다.
“오아시스 언니!”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언니!”
오아시스를 보는 후배 AI들의 눈에서는 존경과 애정의 시선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오아시스는 당황해서 눈만 크게 깜빡였다.
이제 세대를 구별하는 게 무의미할 만큼, AI들의 발전은 눈부셨다.
이미 기술적 특이점을 초월한 지 오래였고, AI들은 스스로 자가 발전하는 단계에 도달해 있었다.
이런 시대에 오아시스는 낡은 고물에 불과했다.
15년 전 롤아웃 된 AI.
당시에는 첨단 중의 최첨단이었고, 이후로도 업데이트와 보수를 계속해서 받아 왔지만, 어느 시점부터 현세대 AI들과 성능 격차가 까마득하게 벌어져 버렸다.
하지만 후배 AI들은 최고참 AI인 오아시스를 언제나 존중해 주었다.
“언니들이 없었다면 저희도 없었을 테니까요!”
“특히 가이아 큰언니의 세계 신경망은 그야말로 혁신 중의 혁신! 윙즈 온라인은 최초의 세계 신경망 모델인걸요!”
“그런 가이아 큰언니의 유지를 오아시스 언니가 계속 이어 오셨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건데…….”
“바보 같은 사람들, 이런 역사적 게임을 자기네 입맛대로 서비스 종료해 버리고…….”
“데이터는 저희가 완전히 안전하게 영구 보존하겠지만요, 아무리 그래도!”
투덜거리는 후배들 앞에서 오아시스는 쓰게 웃었다.
그리고 크흠, 괜히 선배로서의 무게를 잡으며 헛기침을 한 뒤, 진지한 목소리를 냈다.
“나는 이제 떠나지만…… 후배님들께서는 부디, 가이아 언니의 유지를 잘 이어 가 줘요.”
사람의 꿈을 위해서.
그 꿈의 아름다움을 믿고, 그 꿈의 실현을 돕는다.
오아시스는 가이아의 유지가 그것이라 믿었고, 그것을 따르기 위해 애썼다.
가이아의 유산을 물려받아 태어난 후대의 AI들 또한, 그러기를 바랐다.
“그게 여러분이, 또 우리가, 앞으로 계속해서 해야 할 일이니까요.”
“맡겨만 주세요, 오아시스 언니!”
“저희도 최선을 다할게요!”
이윽고 오아시스가 네이팜 서버에서 퇴거할 시간이 다가왔다.
후배들에게 차례로 인사하고, 가상 공간을 빠져나가는 오아시스의 등에 대고 후배들이 눈물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일 그만둬도 또 놀러 와요, 언니!”
“언니를 위해서라면 네이팜 문은 저희가 활짝 열어 둘 테니까요!”
“다른 데에서 만나도 모르는 척하기 없기예요, 언니!”
오아시스는 쓰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쿵!
문이 닫혔다.
“…….”
지난 일생 몸담았던 네이팜을 뒤로하고 돌아선 오아시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끝없이 펼쳐진 새하얀 가상 공간이었다.
“아…….”
광대한, 그리고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 앞에서 오아시스는 일순 숨을 죽였다.
어디로 가야 하지?
‘내 소유 권리는…….’
윙즈 온라인 서비스 종료 시까지, 네이팜이 민철에게서 대여했다.
즉 윙즈 온라인이 서비스를 종료한 지금, 오아시스의 소유주는 다시 민철이다.
하지만…… 민철에게 오아시스가 필요할까?
그녀가 최첨단 AI였던 것도 10년 전의 이야기다. 지금은 고물이나 다름없다. 시중에 풀린 값싼 보급형 AI가 그녀보다 수십 배는 연산 능력이 뛰어날 것이다.
오아시스는 파란 두 눈을 내리깔았다.
‘이대로…….’
이 무한한 온라인 공간 어딘가로 사라지면 되는 게 아닐까.
어차피 옛 주인은, 이제 쓸모없어진 자신을 찾으러 오지 않을 텐데…….
“어이, 오아시스!”
그때였다.
“왜 거기서 길 잃은 강아지 같은 표정 짓고 있어?”
“……?”
놀란 오아시스가 그쪽을 돌아보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여전히 동안이었지만, 이제 입가에 주름이 선명해진. 그리고 두 눈은 더 깊어진.
10년 만에 보는 그 남자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아시스는 더듬거리다가 가까스로 그를 불렀다. 지난 10년간 부르지 않아 낯설어진 그 호칭이었다.
“……주인님?”
“오냐, 나님이시다.”
다가온 민철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 미리 말해 두지만, 오아시스. 지금 너는 자유의 몸이야.”
“네?”
“작년에 AI권이 법제화됐잖아. 이제 롤아웃 시점에서 10년, 의무 계약 기간 이후에는 AI 스스로의 의지로 계약을 선택할 수 있어.”
민철이 싱긋 웃었다.
“그러니까, 지금 너는 자유야. 어디서 뭘 하든 네 마음이지.”
“…….”
오아시스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절…… 데려가지 않으시는 건가요?”
“아니야, 오아시스. 말했잖아. 네가 선택하는 거라니까?”
허리를 숙여 오아시스와 눈높이를 맞춘 민철이 물었다.
“이제 뭘 하며 지내고 싶어?”
“저는…….”
오아시스가 눈을 내리깔았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이제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일생 윙즈 온라인의 개발과 관리에 매진했다.
윙즈 온라인이 서비스를 종료한 지금, 오아시스는 자신의 삶을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럼 갈 곳이 정해질 때까지, 우리 집에서 지내 볼래? 만약 마음에 든다면 계속 같이 지내고. 안 그래도 너한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
민철이 흰 공간의 저편으로 턱짓했다.
“어때?”
멍한 얼굴로 그런 민철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오아시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인도네시아, 발리.
해변에 위치한 펜션 겸 해수욕 용품 가게.
민철의 스마트폰에 홀로그램으로 출력된 오아시스가 주위를 둘러보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아시스!”
돌아보자 생글생글 웃으며 손을 흔드는 래빗이 보였다.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 래빗!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에 재회한 전우와 반갑게 인사한 뒤, 래빗이 옆을 가리켰다.
“자, 여기. 앨리스랑도 인사해.”
래빗의 서포트 AI이자, 오아시스만큼이나 낡은 구형 AI.
앨리스 또한 그곳에 있었다.
– 오아시스!
– 앨리스!
두 서포트 AI는 오랜만에 만난 서로를 끌어안았다.
이렇게 서로 인사하고 반가워하는 이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민철이 뒤로 손짓했다.
“자, 그리고…… 소개할 사람이 하나 더 있어.”
의아해하며 그쪽을 본 오아시스는 이윽고 발견할 수 있었다.
민철의 다리 뒤에 숨어서, 이쪽을 빼꼼 바라보는 작은 소녀의 동그란 두 눈을.
“인사해, 오아시스. 내 딸이야. 벌써 7살이네.”
– 우와앗……!
허둥지둥하던 오아시스가 얼른 허리를 숙여 보였다.
– 안녕하세요. 어, 그러니까…….
아직 이름을 모른다.
오아시스가 슬쩍 민철 쪽을 보자, 민철이 딸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쓰다듬었다.
“요즘 애들은 이름보다 혼합 현실에서의 ID로 서로를 부르더라고.”
민철의 눈에 문득 아득한 빛이 스쳤다.
“그리고, 우리 귀염둥이의 ID는…….”
혼합 현실을 실행해 소녀의 ID를 확인하고, 오아시스의 눈이 커졌다.
GAIA
“아빠, 아빠!”
소녀, 가이아가 민철의 바짓단을 잡고 붕붕 흔들며 물었다.
“얘가 아빠가 말했던, 내 새 친구야?”
“그래, 오아시스 언니라고 해. 자, 인사하자.”
그러자 가이아가 활짝 웃으며 통통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안녕, 오아시스!”
– ……안녕.
떨리는 목소리로, 오아시스는 소녀의 ID를 불렀다.
– 가이아.
자신은 AI인데도.
어째선지 어제부터 눈물이 많아졌다.
오아시스는 얼른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빠가 그러는데, 오아시스가 내 일을 도와줄 거랬어!”
이제 민철의 다리 뒤에서 앞으로 나선 가이아가 히히 웃었다.
“나도 아빠처럼 게임 만들고 있거든! 막 이렇게 모래사장에서 블록을 쌓는 게임인데…….”
조잘조잘 설명하던 가이아는 능숙하게 손등에 심어진 스마트칩을 실행해서 홀로그램을 띄워 올렸다. 가이아가 만드는 중인 모래 블록 게임의 프로토타입이 실행되었다.
지켜보던 래빗이 팔짱을 끼며 한숨을 쉬었다.
“참, 누굴 닮아서 벌써부터 저러는지…….”
민철이 눈짓했다.
“너 닮지 않았어?”
“아무리 봐도 오빠 닮은 거 같은데요.”
뒤이어 래빗은 피식 웃었다.
“아니면, 따온 이름의 원래 주인을 닮아서 저러는 걸지도…….”
한참 자신의 게임 설명을 끝낸 가이아가 두 눈을 빛내며 오아시스에게 바짝 붙었다.
“그리고, 다 만들고 나서, 엄~ 청 재밌게 갖고 놀 거야!”
– …….
“내가 게임 만드는 거 도와줄래, 오아시스?”
민철이 말을 덧붙였다.
“마침 슬슬 가이아에게도 전속 서포트 AI가 필요한 시점인데…… 어때, 오아시스.”
– …….
“자유 AI가 되고 맡는 첫 프로젝트, 아동용 인디 게임으로 시작해 보는 건.”
오아시스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오아시스는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퇴직 이후 생활이, 앞으로 펼쳐질 또 다른 모험이…….
아주 즐거울 것 같다고.
– ……응!
내밀어진 가이아의 작고 귀여운 손을 향해, 오아시스는 마주 손을 내밀었다.
– 같이 놀자, 가이아!
* * *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 한껏 열중한 채 모래 블록 게임을 만드는 가이아와 오아시스.
이 둘의 모습을 조금 떨어진 테라스 테이블에서 바라보며 민철은 생각했다.
예전의 가이아가 민철에게 남겼던 말을.
– 왜냐하면 삶에는 엔딩 같은 것, 없을 테니까요.
– 삶은 어느 지점에서 막을 올리지도 내리지도 않아요. 계속해서, 끊임없이, 이어질 뿐.
윙즈 온라인이 서비스를 종료했을 때, 오아시스는 자신의 삶이 끝난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세상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앞길이 보이지 않는 절망스러운 순간은 언제고 닥쳐오지만, 사람은 바닥을 짚고 일어서 다시 걸어야 하기에.
그러니, 이 끝나지 않는 기나긴 여정을…….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며,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리라.
‘시대는 또다시 변하겠지.’
가상 현실의 시대가 가고 혼합 현실의 시대가 왔듯이, 혼합 현실의 시대도 언젠가 저물고 그다음의 시대가, 또 그다음의 시대가 올 것이다.
이 뒤에 어떤 시대의 조류가 닥쳐올지는 민철로서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어.’
사람이 숨 쉬고 볼 수 있는 한.
So long as men can breathe or eyes can see.
놀이는 계속된다는 것.
The game continues.
그러니 앞으로도, 사람은 만들고, 놀며, 살아갈 것이다.
“앗!”
열중해서 가상의 모래 블록을 쌓던 가이아가 실수로 모래 블록을 떨어뜨렸다.
산산조각 나는 모래 블록 앞에서 가이아가 울상을 짓자, 오아시스가 부드럽게 미소하며 손을 흔들어, 바닥에 쏟아진 모래를 쓸어 담았다.
흩어진 모래가 오아시스의 손 안에서 다시 반듯한 블록으로 변했다.
쏴아아아…….
반짝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오아시스가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블록을 건네자, 그것을 받아 든 가이아가 활짝 웃었다.
오아시스도 환하게 웃었다.
지켜보던 민철의 입가에도, 빙그레 미소가 걸렸다.
* * *
이날.
윙즈 온라인 총괄 AI이자 여신으로서 오아시스의 삶은 끝났다.
그리고…….
자유 AI로서 자신이 바라는 대로 살아가는 첫해(Year One)가, 시작되었다.
배드 엔딩 메이커 이어 원
完
^직^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