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참관
공손한 자세의 한립을 보고는 뢰 사백이 입을 열었다.
“이 고대의 약방을 따라 단약을 만든다면 모두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극상품의 영단일 게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많은 재료를 찾는 것이지. 당연히 약방의 원료는 이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한다. 허나 네 능력으로 그것들을 모을 수 있을지 근심이 되어 하는 이야기다.
다른 실전된 약방처럼 이미 사라진 원료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야. 사실 새로 연구되어 개발되는 약방들도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약방에서 이미 사라진 원료를 대체할 약초를 찾아낸 것에 불과해. 당연히 원래의 영약보다는 효능이 훨씬 떨어지니 수도계가 직면한 큰 문제라 할 만하지.”
상대의 말을 듣고 있던 한립도 곧 의도를 알아챘다.
“사백의 말씀은 그럼?”
“간단히 말해 약방을 얻은 후 원재료를 정 찾지 못하겠거든 다른 대용 약제를 시험해 보거라. 성공할 가능성도 있을 게야.”
한립은 말잘 듣는 제자의 모습으로 절대 후회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 보겠노라 고했다.
그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뢰 사백도 기분이 좋아지는 한편 자신의 신분 때문에 거래에서 본문 제자가 손해 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럼 이리 하자꾸나. 네가 영초가 두 뿌리이니 내 각각을 약방으로 교환해주마. 사백이 네게 너무 과한 것을 요구해서야 되겠느냐.”
이 말에 한립은 너무 놀라 멍해졌다. 그러나 곧 너무 신이나 날아오를 것 같았다. 연이어 뢰 사백에게 감사를 표하는데 이번엔 한 마디 한 마디가 그의 진심이었고 추호의 거짓도 없었다.
“약방 목록이니 골라 보거라. 단약의 효능과 필요한 원료가 간략히 적혀 있으니 보고 고르면 진짜 약방을 복제해 주마.”
그는 단숨에 옥으로 만든 서책을 꺼내 한립에게 내주었다. 목록을 받아 든 한립은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언제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목록까지 작성해 둔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문제야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은 서책을 펼쳐 상세히 내용을 살펴보았다.
“취령단(聚靈丹)과 연기산(煉氣散)으로 하겠습니다.”
“취령단, 연기산?”
뢰 사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저물대에서 옥으로 된 서책 두 개를 꺼내 주었다.
“그럼 이른 시각도 아니니 먼저 일어나 보마.”
뢰 사백은 영초를 잘 챙겨 넣고는 즉시 몸을 일으켰다. 이제 정말 재료가 다 모였으니 당장 연단을 하러 가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던 것이다. 한립도 서둘러 일어나 그를 배웅했다.
그런데 뢰 사백이 거처를 나가려는 순간 한립은 번뜩 생각이 났다. 아직 이화원의 거처에 대해서 물어보지 못한 것이다. 그는 급히 상대를 향해 이화원의 근황과 거처를 물었다.
뢰 사백은 한립이 이화원의 기명제자란 이야기에 깜짝 놀라더니 필요한 내용을 이야기해 주고는 빛과 같은 속도로 사라졌다.
한립은 뢰만학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뒤 희색을 띠며 얻어낸 약방을 꺼내 들었다.
잠시 그것을 살피며 거처로 들어가려는데 두 걸음 떼기도 전에 근처의 어떤 풍경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임 사형의 시신이 아까 뢰 사백이 던져놓은 그 자세 그대로 놓여있었던 것이다.
더 주저할 것도 없이 한립은 임 사형의 몸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역시 시신에서 저물대 하나를 찾아내었다. 그런데 상대의 저물대를 살펴볼수록 미소가 사라져 갔다.
꼭두각시는 전혀 찾을 수도 없었고 영석도 몇 개뿐인데다 일반적인 단약과 별 볼일 없는 서책이 전부였다.
‘그날 그렇게 많은 꼭두각시들을 부렸는데 어찌 하나도 없는 거지? 설마 전투 중에 다 잃은 것인가? ’
실망한 한립이 손가는 대로 서책을 펼쳐 무심히 내용을 살폈다. 그런데 눈길이 매서워지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가 의식을 흘려 넣자마자 머릿속에 대연결(大衍決)이라는 글자가 떠오른 것이다.
대연결을 조건으로 임 사형이 목숨을 거래하려 든 것이 몇 시진 전인데 이렇게 쉽게 찾아낸 것이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대연결 공법을 아무렇게나 저물대에 갖고 다닌 임 사형의 행동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너무 우둔했던 것인지 아니면 영악했던 것인지 판단조차 어려웠다. 한립이 일단 내용을 훑어보니 그가 말한 대로 사성까지의 구결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사성까지의 대연결 공법이 끝난 후에 괴뢰진해(傀儡眞解)의 경문이 나타난 것이다.
그 안에는 어떻게 각 등급의 꼭두각시 요수와 꼭두각시 사병을 만들어내는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대연결을 익히면 결단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근거 없는 유언비어는 고려대상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차피 자신의 손에 떨어졌으니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나중에 천천히 고려해 봐도 늦지 않았다. 그때 무언가가 또 떠올랐다.
황룡 등은 뢰만학의 천둥 속성의 공격에 당해 저물대까지 남김없이 타버렸으나 그들이 미처 거두지 못한 꼭두각시들은 아직도 남아있을 터였다.
그는 서둘러 진을 빠져나가 손바닥만 한 인형으로 변한 꼭두각시들을 찾았다. 한립의 예상과 달리 대부분이 뢰만학의 검광에 쓸려 재가 되었지만 20개 정도는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신이 난 한립이 얼른 몸을 움직여 그것들을 모았다.
그는 일단 거처로 돌아가 두 개의 약방을 살펴볼 예정이었다. 계획대로 내일 날이 밝으면 사부 이화원을 찾아가 쓸 만한 공법을 얻어내야 했다.
* * *
다음날 아침 신풍주를 탄 한립이 태악산맥 동부로 날아올랐다. 어제 뢰만학에게 들으니 이 사부의 거처가 그쪽 산봉우리 아래에 있으며 거처에 찾아가면 만나볼 수 있을 거라 하였다. 신풍주를 타니 금세 뢰만학이 말한 부근에 도착했는데 풍경도 좋고 꽤나 구석진 곳이었다.
산봉우리 아래로 떨어지는 거대한 폭포 앞에서 한립은 말을 전하는 부적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무어라 속삭이고는 놓아주자 부적이 바로 빛으로 변해 폭포를 뚫고 사라졌다.
향불을 하나 태울 시간이 지나자 폭포가 열리며 거대한 동굴이 드러났다. 이어서 30세 정도의 아주 마른 사내가 문인과 같은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 그는 한립을 보며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한립 사제지? 난 사부님의 문하에 있는 대제자 우곤이라 해. 앞으론 우 사형이라 불러줘.”
“대사형을 뵙습니다.”
“대사형이라 부를 것 없고 그저 어 사형이라 부르면 된대도. 사부님께 이야기 들었어. 한 사제가 혈금시련에서 큰 수확을 얻어서 공을 세웠다지?”
연이어 다정한 태도로 나오는 우곤의 모습에 한립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하지만 상대가 기명제자에 불과한 자신에게 이리 살갑게 구니 오히려 불안해졌다.
“한 사제의 자질이 뛰어나지 않다 들었는데 이미 축기에 성공했다니 더욱 축하할 만한 일이야. 맞다. 사부님께서 사제를 기다리고 계시니 일단 녹파동(綠波洞)으로 들어가자.”
물길을 지나치자 눈앞이 밝아지며 산골짜기가 드러났다. 새가 지저귀고 수목과 꽃들이 울창한 아름다운 풍경에 심지어 진귀한 작은 짐승들까지 뛰어 놀고 있었다.
“이건…….”
그가 본 눈앞의 풍경이 어딘가 이상했다. 이화원이 귀여운 동물들을 좋아해 기른다는 것이 의외였던 것이다.
“하하! 사제도 너무 의외라 놀랐지? 사제뿐 아니라 이곳에 처음 오는 손님들은 다 깜짝 놀라더라고. 저 녀석들은 사부님께서 기르시는 게 아니라 사모님의 보물들이니까 절대 상하게 해선 안 돼. 사모님께서 절대 용서 안 하실 걸?”
키득거리는 우곤에게서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 엿보였다.
“사모님이요?”
“그래. 우리 사모님은 축기기 중기의 수준이시지만 사부님과 사이가 무척 좋으셔. 우리에게도 상냥하시고 잘 대해주시지”
우곤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한립이 우곤을 따라 거대한 동굴로 들어서자 대청에 이화원과 아름다운 여인이 함께 있었다.
자신의 사부는 역시 냉랭한 표정이었지만 한립이 들어오자 웃음 비슷한 것을 만들어냈다.
그 옆의 여인은 한립이 보기에도 무척 예뻤으나 이화원 면전에서 어찌 뚫어져라 보겠는가! 그저 대충 시선을 주고는 공손히 예를 취했다.
“제자 한립, 사존(師尊)을 뵙습니다.”
“일어나거라! 이 분이 너의 사모이니 인사 올리거라.”
이화원이 한립의 태도에 만족하며 옆에 있던 여인을 가리켰다.
“사모님을 뵙습니다.”
“그리 예를 차릴 것 없네. 일어나게.”
부인이 고개를 숙이는 한립을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한립, 며칠 전 네가 축기에 성공했단 보고를 받았다. 솔직히 믿겨지지 않아 크게 놀랐음이야.”
“운이 좋아 축기에 성공하긴 하였으나 사실 저도 크게 놀랐습니다.”
“운도 자질이지, 태생적으로 자질이 뛰어난 이도 결국에는 운이 좋은 것뿐 아니겠느냐.”
“아! 그것은…….”
이화원이 고개를 저으며 저리 말하니 한립도 더 이상 겸양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됐어요. 오랜만에 본 제자에게 잔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알겠소, 부인. 아무튼 부인의 목숨을 살려준 은인인 셈이니 반드시 그 보상을 해줘야지.”
이화원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여인을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한립에게 할 이야기가 있으니 너희들은 먼저 나가 보거라.”
“네, 알겠습니다!”
우곤은 공손히 인사를 하고 부러운 눈길로 한립을 보고는 뒷걸음질 쳐서 빠져 나갔다.
“은인이요? 보상이라니…….”
바보같이 중얼거리는 한립을 본 여인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부군, 잘 설명을 해주셔야죠. 아직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데 언제까지 당황스럽게 하실 거예요.”
“이제 말이지만 내가 널 제자로 받아들인 이유가 따로 있었다. 네 천지영초가 탐이 나 너를 명의상 제자로 받아들였지. 물론 네 영초의 반절을 가져가 본래 축기단 두 개의 보상이 하나로 줄어들었지만 이후 내 이름에 기대어 다른 이들이 함부로 대할 일은 없을 테니 너에게도 그리 손해는 아니라 여겼다. 어쨌든 네 자질로 축기단 한 알이 더 있다고 축기에 성공할 것 같지 않았으니 말이다.”
태연한 얼굴로 이런 사실을 늘어놓는 이화원은 자신이 아주 합리적인 일 처리를 했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네게 영초를 가져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인이 수련 중 문제가 생겨 생명이 위독한 지경에 이르렀네. 다행이 네가 찾아온 천지영초를 써 위험한 고비를 넘길 수 있었지. 이후 수 년 간 다른 영초들을 이용해 해약을 만들어내 얼마 전에야 부인이 건강을 회복했다.
그런데 부인이 네게 반드시 보상을 해야 한다고 하더구나. 어쨌든 네가 구해온 영초가 그녀를 구했으니 네가 바로 그녀의 생명의 은인이라 할 수 있겠지.”
사모의 생명이 위중했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이화원의 안색이 변하고 눈빛이 흉흉하기 이를 데 없어졌다. 둘 사이의 감정이 깊은 듯 했다.
“부인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니 확실히 맞는 말이라 여겼다. 그래서 네가 축기기에 이르지 못한 제자라 해도 정식 제자로 받아들이려 했지. 그런데 네가 축기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느냐? 이전에 네가 축기에 성공하면 정식으로 문하에 들이겠다는 약속을 했으니 그건 보상이라 할 수 없겠지. 아무래도 새로운 보상을 생각해 봐야겠구나.”
그가 결국에 모든 사정을 털어놓자 한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립이 먼저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는데 이화원의 입에서 보상이란 단어가 등장하다니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하자꾸나. 네 표정으로 보아 갑작스런 이야기에 당황한 것 같으니 일단은 하루를 푹 쉬고 내일 아침 사부님께 원하는 것을 말씀 드리거라. 네 사부가 평소 그리 대범한 성격이 아니시니 잘 생각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여인이 이화원을 보며 장난스럽게 웃더니 한립에게 따스하게 말했다. 그 말이 이화원을 꽤나 난처하게 했는지 그가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
한립이 잠시 머뭇거렸지만 사모가 저리 말하자 거절하기도 어려워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이후 이화원은 우곤을 불러들여 한립에게 이곳을 안내시켜주라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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