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234
234화. 자령 선자와 마주치다
두 백의 노인은 담담히 전송진에 다가가 몸을 굽혔다. 한참을 살핀 그들은 서로 시선을 마주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송진에 문제가 없습니다. 이곳을 지나가면 허천전의 외전이니 이후의 일은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말을 마친 그들은 지체 없이 전송진에 올랐다. 그 결과 하얀 빛이 반짝이며 둘은 모습을 감추었다.
이어 대청의 선사들이 서로서로 눈치를 살폈다.
다른 이들의 주저하는 모습과 달리, 만천명의 일행은 망설임 없이 기둥에서 뛰어내려 전송진 속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다른 이들도 앞다퉈 전송진에 올랐다.
전송진이 끊임없이 번뜩였고 순식간에 대청 안 선사들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현골 상인도 그들 틈에 섞여 먼저 움직였다. 한립은 눈을 빛내며 극음 사조 등이 있는 곳을 살폈다.
하필 그때 극음 역시 한립을 쳐다보고 있어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서둘러 눈을 피한 한립은 마음이 더 없이 불안해졌다.
보아하니 극음은 절대 자신을 놔주지 않을 것 같았다. 울적한 마음을 감추고 벌떡 일어선 그는 당차게 앞으로 나섰다.
극음이 한립의 모습을 끝까지 살피며 냉소하자 옆에 서있던 오축이 참지 못하고 작게 물었다.
“사조님, 저 녀석에게 신경을 쓰시는 듯 한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지요?”
극음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다. 그저 쓸모가 있는 녀석이라 살필 뿐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지금까지 극음의 총애를 받아온 오축으로서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청역 거사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우리도 출발하시지요. 이제 남은 이가 얼마 없는 듯 합니다.”
“그러시지요. 더 늦었다간 전송진이 사라지고 다음 전송진까지는 한 달을 기다려야 할 겝니다.”
말을 마친 극음이 오축을 데리고 검은 구름으로 변해 떨어져 내렸다. 그 뒤를 청역 거사가 유유히 따랐다.
온 부인은 벌써 옥기둥을 내려가 있었는데 분명 극음 등과 한 데 얽히고 싶어 하지 않은 듯 했다.
* * *
전송진을 지나오자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막막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황량하기 그지없는 작은 언덕에 도착한 한립은 곳곳을 돌아보았다.
그는 조금 당황스러웠는데 주변엔 사내 둘과 여인이 있을 뿐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 여인이 한립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바로 자령 선자였다.
그녀와 함께 있던 사내는 다른 곳으로 전송된 듯했다. 한립은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으며 귀찮게 됐다는 생각을 했다.
나머지 사내 둘은 하나는 희색 의복을 입은 노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흑색 장포로 온 몸을 가린 복면인이었다.
노인은 그렇다 치고 복면인은 온 몸에 어두운 녹색 기운을 흩날리는 것이 한눈에도 마공을 익힌 수사임을 알 수 있었다.
자령 선자가 반갑게 한립에게 다가가니 그 둘의 시선이 한립에게 향했다. 노인의 눈빛은 호의적이었으나 복면인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한립 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둘의 시선을 받으며 어떤 내색도 하지 않았다.
“한 선배님께서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보아하니 죄송스럽게도 장로님의 도움을 받아 이 관문을 통과해야 할 듯 합니다.”
그녀도 조금 민망한지 미안한 기색으로 말문을 떼었다.
“자령 소저가 수행이 크게 늘어 축기 후기에 이른 것은 축하할 일이오. 하지만 이곳에 오는 것은 너무 큰 모험인 듯 한데? 결단기 수사라 해도 허천전에선 안전을 장담할 수 없소.”
그의 말에 자령 선자의 맑은 얼굴에 씁쓸한 기색이 떠올랐다.
“소녀 역시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만 장로님께서도 보시다시피 결단은 앞두었지만 자질도 부족하고 보양할 만한 단약도 거의 없어 천금을 주고 겨우 허천전 지도를 구하게 된 것입니다.
허천전에 귀한 영초가 많다 들어 운이 좋으면 적당한 것을 구해 나갈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요. 저도 첫 번째 관문만 통과한다면 더 이상 모험을 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한립도 그녀의 말에 탄식했다.
그도 삼전중원공과 대연결 그리고 엄청난 영초로 결단을 강행하지 않았다면 결단에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자령 선자로서는 더욱 절박할 것이다.
옛 생각이 들자 약간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천뢰죽도 그녀에게서 얻은 것이고 많지는 않으나 그래도 매년 영석을 바쳐왔으니 인정상 외면하기가 편치 않았다.
“이왕 자령 소저와 함께하게 되었으니 당연히 신경은 쓸 것입니다. 하지만 한 모가 감당하지 못할 위기가 생긴다면 소저의 목숨은 스스로 구명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 합니다, 한 장로님! 저도 대책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령 선자가 한립의 답을 듣더니 고운 얼굴로 활짝 웃는데 마치 얼굴에서 빛이 나는 듯 아름다웠다.
한립은 일순 멍해졌다가 자신의 추태를 깨닫고 어서 고개를 돌렸으나 은은하게 얼굴이 화끈거림을 느꼈다.
여인은 천하절색이라 볼 수는 없었으나 웃는 모습은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한립은 크게 놀라고 말았다. 대연결이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다면 고명한 미혼술이라도 걸렸다 짐작했을 것이다.
방금 자신이 보인 모습이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조금 긴장된 마음으로 슬며시 자령 선자를 살폈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아름다움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의문이 증폭되었을 때 회색 옷의 노인이 걸어왔다. 그는 포권을 하며 한립과 자령 선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저는 천태도(天台島)의 갈립이라 하온데 두 선사의 존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한립은 머릿속 의문을 지우고 포권을 하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저는 한립이고 이쪽은 묘음문의 자령 선자라 합니다.”
그는 한립이 이름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으나 묘음문 자령 선자라는 말에는 조금 놀란 것 같았다.
“묘음문 자령 선자의 위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리 직접 뵈니 영광입니다.”
노인은 말은 이렇게 하였지만 눈에는 의혹이 가득했다. 들리는 소문과는 달리 그다지 특출 나지 않은 자령의 외모 탓이었다.
자령 선자는 상대가 예의상 하는 말임을 알고는 그저 웃음으로 답했다. 노인도 감정조절이 능한 사람이라 순식간에 평소의 얼굴로 돌아와 한립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같은 곳으로 전송된 것도 인연이라 할 수 있는데 함께 움직이는 것이 어떠십니까? 이곳은 원혼들이 득실대는 곳이니 결단기 수사라 해도 원혼에 잡아먹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합니다.”
갈립이 말을 하며 얼굴을 굳히는 것이 허천전에 대해 잘 아는 듯 했다. 상대가 원혼들을 언급하자 한립도 새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립 등이 밝고 선 언덕은 희미한 광채가 외부의 귀무를 막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안심하고 상의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서 있는 언덕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회백색의 귀기가 서린 안개가 가득 차 있고 음산한 바람과 귀신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이런 상황을 보며 그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역시 귀무로 인해 흐릿하긴 했으나 절대 궁전 안처럼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버려진 황야의 한복판 같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자령도 근심 어린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제가 듣기로 첫 난관인 원귀의 땅은 이전엔 그리 위험한 곳이 아니었다 합니다. 하지만 귀기가 어린 안개 속에서 죽어간 선사들이 쌓일 수록 점점 더 흉흉해 졌지요.
원귀의 땅에서 목숨을 잃은 선사들은 원한이 가득하고 강력한 법력을 지닌 원귀가 되어버리니 이곳을 새로 찾는 살아있는 선사들을 질투하고 미워한다더군요.
일단 그들과 마주치면 죽이지 않고서는 몸을 뺄 수가 없지요. 그래서 최근 몇 번의 허천전 원행에선 이곳에서 더욱 많은 수사들이 죽어 나갔다 합니다. 게다가 마지막 원행에서 한 무리의 선사들이 지능이 높은 귀왕을 마주쳐서 단 한 명만 살아남고 전부 몰살당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귀왕? ’
한립은 의아한 눈빛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그가 원귀들의 등급이 정확히 어떻게 나뉘는지는 모르나 귀왕 급의 강력한 원혼이라면 결단 후기의 수사에 상당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거기다 지능까지 높다면 더욱 상대하기 까다로울 것이다.
갈립이 한립의 표정을 보더니 다시 입을 뗐다.
“비록 귀왕과 마주칠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함께 움직인다면 확실히 더 안전할 것입니다. 제가 비록 나이를 많이 먹긴 했으나 귀신들의 손에 죽어 원혼으로 떠돌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노인의 말은 솔직 담백했다. 자령 선자도 더는 끼어들지 않았다. 총명한 그녀가 상대의 제안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방금 원귀의 땅에 대해 설명한 이후 얌전히 한립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립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 바로 갈립의 말에 답하지 않고 일단 한 쪽에 서있던 흑의인을 본 것이다.
“갈립 선사께선 저 분에겐 묻지 않으십니까?”
그 말에 갈립의 얼굴이 좋지 않게 변했다. 노인은 조금 주저하다가 씩씩대며 말했다.
“흠, 저 마두는 언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막 전송되어 왔을 때 호의로 함께 하자 청했건만 냉담히 꺼지라고 말하더군요. 이 늙은이의 성격이 좋지 못했다면 이렇게 끝내지도 않았을 겁니다.”
노인은 저 자에게 무척 화가 나 있었다. 반면에 한립은 흑의인에게 조금 흥미가 생겼다. 그는 고개를 돌려 마도 선사에게 소리쳤다.
“선사는 함께할 마음이 없는지요? 결단기 수사 여럿이 연합한다면 귀왕을 마주친다 해도 위험을 피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립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선명하게 상대의 귓가에 들렸다. 하지만 그 는 냉랭히 이쪽을 한번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노인이 그런 흑의인을 향해 콧방귀를 뀌었다.
“한 선사 제가 무어라 했습니까! 남의 호의를 무시하는 자이니 저희 셋만 함께 움직이시지요.”
노인은 상대가 자신을 수모 준 일을 연연해하는 듯했다. 한립은 가볍게 웃었다. 이때 자령 선자의 표정이 달라졌다.
“어머!”
한립도 그녀를 따라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흑의인이 홀로 귀무로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아무래도 홀로 이곳을 지나려는 듯했다.
“죽고 싶어 환장을 했나 봅니다. 홀로 귀무를 뚫고 가다간 십중팔구 이번 관문을 넘지 못할 텐데요.”
한립은 노인의 조소를 개의치 않고 눈을 가늘게 뜨고 흑의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는 상대가 죽고 싶어 환장했다고 믿지 않았다. 아마 이 난관을 극복할 특수한 수단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흑의인이 백광과 귀무의 접경지역까지 가자 소매 안에서 녹색 광채가 분출되어 떨어져 내렸다. 놀랍게도 원숭이를 닮은 조그만 영수였다.
작은 원숭이는 키가 한 자 정도에 온 몸을 덮은 청록색 털들이 은은히 빛을 산발하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코고 높게 들려있고 커서 얼굴의 반이 코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한립은 의아하게 여기며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옆에 서 있던 노인의 안색은 크게 달라졌다.
“제혼(啼魂)이 아닌가! 어쩐지 그리 거만히 굴더니만 저런 영수가 있었다니.”
노인과 자령 선자는 작은 원숭이를 쳐다보며 꽤나 놀란 눈치였다. 한립만이 한쪽 눈썹을 끌어올리며 물었다.
“제혼이라, 어찌 저는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제혼은 천지영기를 받아 태어난 영수가 아니라 마도의 어떤 문파에서 제련해 만드는 영수와 원혼의 중간쯤 되는 독특한 생명체입니다. 비록 평소에는 별다른 쓰임이 없으나, 태생적으로 혼백을 잡아먹으니 아무리 대단한 원혼을 마주해도 코로 흡입해 뱃속으로 집어넣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곤 순식간에 녹여버린다니 대단한 영수인 게지요.”
자령 선자의 얼굴에 부럽다는 기색이 떠올랐다. 그러나 곧 표정을 거두며 탄식했다.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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