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41
〈 141화 〉 과거, 그보다 더 먼 과거(4)
* * *
마왕의 멱을 따기 위해 결성된 파티가 하나 있었다.
온 세상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결성된 파티였다.
용사,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
주술사, 벨리알 반 드라고닉.
최초의 성녀, 글레리아 벨 아르미아스.
대현자, 카르디 반 아르미엘.
온 대륙에 그들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별에게 선택받기 이전부터 그들은 초인이었다. 그들은 저마다의 목적을 가진 채 용사의 아래 모여들었다.
“나는 마왕에게 내 모든 걸 잃었다. 나는 나 같은 이가 더 나오지 않기를 바라. 지금의 세상은 잘못되었다.”
용의 마법이라 불리는 그림자 주술.
그것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주술사, 벨리알은 마왕이 모는 저주의 군대에 제 자식을 잃었다. 그는 마왕에게 복수하기를 바랐다. 또한, 자신과 같은 이가 더는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델로힘께 기도를 올린다고 하여, 델로힘께서 저희를 구원해주시진 않아요. 성당에 틀어박혀 기도를 올리는 것보단, 제가 직접 뛰는 편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델로힘의 화신이라 불리던 성녀.
교단 최초의 성녀인 글레리아는 보다 많은 이를 구하기를 원했다. 저주에 고통받는 이들을 보듬어주고자 했다. 그녀는 신께 받은 기적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를 바랐다.
“내가 쌓아온 것들이 세상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그리해야겠지.”
검의 성지, 갈라트릭의 주인.
검(?)의 극한을 깨우친 최초의 검의 초인은, 다만 세상에 도움이 되기를 원했다. 자신이 휘두를 별의 검이 세상을 뒤덮은 어둠을 가르기를 바랐다.
그리고.
“나는 이 덜렁이를 챙겨야 하거든.”
“아야! 왜 때려요, 아르미엘!”
“내가 세례명으로 부르지 말라고 몇 번 말한 줄 아나? 벌써 3752번째다. 하루에 한 번, 이 말만 벌써 10년 가까이 하는 것 같군.”
“그만 포기 좀 해요, 그럼!”
“네가 포기해라. 엘프는 포기를 모른다.”
마학(??)의 정점, 진리에 근접한 마법사.
왕도의 가장 거대한 탑의 주인인 대현자는 참으로 보잘것없는 이유로 여행길에 함께했다.
하나하나가 시대가 낳은 천재다.
자신의 재능에 만족하지 않고, 노력 끝에 완성된 초인들이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 강했다.
용사, 가니칼트!
그 넷이 함께하는 파티가 대륙에 이름을 날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들이 가는 길마다 승전보가 가득했다.
서걱.
가니칼트가 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마왕의 군세가 갈라졌다. 본래부터 최강의 검사라 불리던 이가, 별의 축복까지 받았다. 그의 앞길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손에 꼽았다.
용사가 길을 연다.
성녀가 그 곁을 지킨다.
주술사가 뒤를 잡는다.
마법사가 전장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가장 간단하지만,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었다. 그들은 정공(??)으로 모든 걸 뚫어냈다. 마왕이 남긴 저주를 베어가며 그들은 앞으로,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저주를 비추는 해를 떨어트렸다.
저주를 품은 토지를 정화했다.
저주에 잠식된 호수를 불살랐다.
마수의 왕을 토벌했다.
모두가 불가능하리라 여긴 업적을 일구어냈다. 승리를 상징하는 빛이 되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용사라 불렸다.
“용사란 누군가 정해서 되는 게 아니다. 용사란, 세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존재다.”
언제나 앞서 걷던 가니칼트는 말했다.
“누군가 그를 보고 위안을 얻는다면. 그가 걷는 길이 올바르다면. 그리하여 그가 모두에게 빛을 되찾아준다면, 그자가 곧 용사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좋다.
앞길을 밝혀줄 수만 있다면, 그자가 곧 용사다. 가니칼트가 언제나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누구보다도 용사다웠다.
“말이 길었군. 마저 움직이지.”
그렇게.
“카르디!”
“안 그래도 하고 있다! 검이나 똑바로 잡아라!”
그들은 싸웠다.
“어, 어떡해요··· 벨리알, 팔이···!”
“힘을 아껴라, 글레리아. 내 몸은 내가 더 잘 안다. 내 주술의 대가이니 뭐··· 이 정도는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네 탓이 아니야.”
“그렇지만···.”
“오히려 두 팔이 용의 것이 되다니, 나는 더 마음에 드는군. 이걸로 저 말도 안 되는 가니칼트놈의 곁에서 좀 더 버틸 수 있겠어.”
스스로를 깎아가며 싸웠다.
“···늦었군.”
“······.”
“흑, 흐윽···.”
“일어서라. 글레리아. 회생의 기적을 쓸 생각은 하지 마라. 되살아난다고 하더라도, 저들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어.”
참상을 셀 수 없이 보았다.
지옥을 보았고, 또한 지옥을 건넜다.
“그런가.”
그 끝에.
“···도착했군.”
“겨우, 크륵. 도착했나. 크르륵···.”
“듣던 그대로예요. 이곳이 그늘의 신전. 별의 예언에도 분명 이곳이라고···.”
“기분 나쁜 곳이로군.”
그들은 그늘의 신전에 도착한다.
만마의 왕이 거하는 어전을 앞에 둔 채 그들은 숨을 가다듬었다.
스릉.
가니칼트는 제 검을 바로 쥐었다. 벨리알은 반쯤 용화(化)가 진행된 제 몸을 푼다. 글레리아는 축복을 흩뿌리고, 카르디는 신전을 뒤엎을 주문을 짜 올렸다.
그리고.
끼■■이익.
끼긱, 끼기■■■■기긱.
기이한 소리를 내며 신전의 문이 열렸다. 열린 문 속에 꿈틀대는 것은 어둠이다. 깊고도 깊은 어둠.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어둠. 그렇기에, 형용할 수 없는 존재가 제 모습을 드러낸다.
“온다.”
그것이.
“먼저 가겠다.”
카르디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의 여정은 끝났다.
아니, 어떠한 형태로든 끝났어야만 했다.
2.
“미안하다.”
쿠락트 산맥의 정상에 세워진 마탑.
카르디는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너를 지키지 못했다. 카르디는 고장 난 기계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실패했다.
산의 중턱에선 스케발의 실패자란 말에 이를 갈았지만, 그 말은 틀릴 것 하나 없는 사실이었다. 카르디는 실패했다. 처참하게 실패했다.
마왕(?王).
존재 자체가 섭리에서 어긋난 무언가.
‘그걸, 잡을 생각을 해선 안 됐다.’
처음부터 방법이 잘못됐다.
저주의 뿌리를 뽑는다는 발상으로 마왕을 잡으려 들어선 안 됐다. 그것이 자라나지 않게 틀어막았어야 했다. 방법이 틀렸으니, 실패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것을 깨달은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글레리아, 가니칼트, 벨리알.”
카르디는 눈앞의 환영을 본다.
과거의 환영이다. 손을 뻗어도 스쳐 지나갈 뿐인 과거의 환영을 바라보며 카르디는 말했다.
“너희를 잃고, 많은 것을 보았다. 홀로서 보고, 홀로서 견딜 수밖에 없었다.”
환영은 카르디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카르디는 말을 계속했다. 그는 마치 참회를 하듯이 말을 이었다.
“그 누구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이 계약의 대가였으니까. 너희의 기록은 말소되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왕국은··· 너희의 손으로 직접 무너트렸지.”
계약의 대가로 용사의 여정이 사라졌다.
그 누구도 그들을 용사로 기억하지 않는다. 재앙으로 변한 그들은 왕국을 불태웠다.
“나는 너희를 막을 수 없었다.”
모든 게 다만 무의미했다.
“가니칼트, 너는 인간을 지켜달라 했었지. 미안하다.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벨리알, 너는 가족을 잃는 이들이 없기를 바랐지. 미안하다. 수많은 나라가 사라졌다. 가족을 잃은 이들의 통곡소리가 길거리에 가득하다.”
“···그리고, 글레리아.”
카르디의 목소리가 떨렸다.
“너를 지키지 못했다. 네가 더이상 네가 아니게 되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미안하다.”
그의 참회는 이어졌다.
“답을 찾고자 했다.”
“마왕과 맺은 계약, 계약을 되돌릴 방법, 너희를 다시 인간으로 되돌릴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답을 찾으려 했다.”
끝없이 연구했다.
계약을 뒤틀 방법을, 틈새를 벌릴 방법을, 그들을 인간으로 되돌릴 방법을 찾으려 했다.
“새로운 마탑을 세우고, 새로운 것을 연구했다. 한평생 손대지도 않은 연금술에 손을 댔다. 정말, 정말로 많은 것을 해보았어.”
그러나.
“방법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력감은 카르디를 병들게 하였다. 카르디는 퀭한 눈동자로 제 손을 보았다. 약품에 타들어 간 흉터가 가득했다.
“···나로선, 찾을 수가 없었다.”
터벅, 하고 눈앞의 글레리아가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카르디에게서 멀어진다. 단상까지 걸어간 그녀가 잠시 뒤를 돌아본다. 그 모습은 카르디의 기억에도 있는 모습이었다.
「잘 부탁해요, 아르미엘.」
“잘 부탁해요, 아르미엘.”
그녀가 미소 지었다.
「믿고 있을게요.」
“믿고 있을게요.”
여정을 막 시작할 때의, 아직은 순백이었던 글레리아가 자신을 돌아보며 뱉은 말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글레리아의 환영은 사라졌다.
“······.”
그 말을 곱씹으며 카르디는 눈을 감았다.
“···찾을 수 없었지만.”
그가 눈을 떴다.
“포기할 수도 없었다.”
터벅, 하고 그가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퀭한 눈동자는 잿더미와 같았다. 누런 눈동자는 빛을 잃었다. 타고 남은 재와 같은 그가 비틀거리며 교회의 중심으로 걸음을 옮겼다.
턱.
그가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교회의 벽면에 새겨진 회로가 빛났다. 이곳은, 일종의 ‘서고’였다. 어디에도 남지 않은 역사를 새긴 서고.
‘오롯이, 나만이 알고 있는 서고.’
말소된 역사도 이곳에서만큼은 온전히 존재한다. 한때 용사였던 이들의 기록이 이곳에는 고스란히 남아있다.
사락.
카르디가 벽에 새겨진 회로를 훑었다.
과거를 기록해둔 벽면에는, 그가 동료와 함께했던 모험담이 가득하다. 과거를 추억하며 카르디는 계속하여 걸음을 옮겼다.
옮기고 옮긴 끝에.
탁.
“가니칼트, 네가 말했었지.”
그가 교회의 중심에 섰다.
글레리아가 사라진 곳, 그곳에 선 카르디가 품에서 목함을 꺼냈다.
“찰나를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다음을 기약한다. 짧은 생을 불태워 이루어낼 수 없는 것이 많기에, 다음의 다음을 기약한다.”
그것을 제단에 놓았다.
“···나로서 안 된다면.”
제단이 빛을 뿜었다.
“영원을 살아가는 나에게 불가능한 일이라면, 나 또한 네 말을 따라보도록 하겠다.”
다음을. 다시, 다음을
“···누군가는.”
카르디가 빛에 회로를 새겼다.
“누군가는, 우리의 역사를 알아주리라고. 우리가 맺지 못한 끝을 맺어주리라고······.”
그렇게 진실에 도달하리라고.
“처음으로 신에게 기도하마.”
신을 믿지 않았던 마법사가 신께 기도한다.
“바친다.”
재는 거름이 된다.
새로운 불길을 위해 재는 아래로 침전한다.
『계약은 성립됐다.』
그곳에서 계약은 체결됐다. 그늘과 맺었던 계약 아래 새로운 조항이 생겨난다. 그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곳에서, 인세(人世)의 명운을 가를 계약은 성사되었다.
그 누구도 계약을 알지 못한다.
그 누구도 진실을 알지 못한다.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수많은 역사가 흐른다. 마왕은 다만 마왕으로서 존재했다. 수많은 나라가 불타 사라졌다. 수많은 인간이 죽었다. 그 시점에서 넷의 재앙에 이름이 붙었다.
검은 폭풍.
배교자.
죽음의 칼.
고대 리치.
처음에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시대를 기억하는 고룡의 마법사에 의해 그들의 이름이 퍼지기 시작한다.
검은 폭풍, 벨리알.
배교자, 글레투스.
죽음의 칼, 가니칼트.
고대 리치, 스케발.
혼돈이 찾아온다. 용사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다음으로, 다시 다음으로 이어진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른다.
찰나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게서 다시 인간으로. 그들이 흘린 핏물이 흐르고 흘러서, 다시 다음으로. 끊임없이 다음으로, 다음으로···.
그렇게.
“······.”
끊임없이 흐른 시간에도 끝이 찾아온다.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른 끝에 누군가 진실에 도달한다. 그녀는 인간이다. 엘프처럼 긴 삶을 살지도 않는다. 별에게 선택받은 용사도 아니다. 그저, 한낱 인간이다.
한낱 인간이기에.
매 순간 목숨을 걸어왔기에.
그렇기에, 빛나는 인간은 손을 뻗는다. 그 어디에도 남지 않은 역사에 손을 뻗는다. 그것을 받아들일 권리를 그녀는 제 손으로 쟁취해냈다.
“카르디.”
찬란했으나, 그 결말은 찬란하지 못했던 고대 영웅들의 이야기. 그 이야기의 마지막 장에 선 그녀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이게, 네가 보여주고 싶던 거냐.”
진실에 닿은 인간.
잿빛 마법사, 라니엘 반 트리아스.
그녀는 눈앞에 놓인 것을 본다.
그것은 찬란히 빛나는 네 개의 별이었다.
마치, 용사의 별빛을 닮은 네 개의 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