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62
〈 262화 〉 축복이 아니라 저주다(3)
* * *
동부 제 3 전선, 하프리온.
비굴의 데스텔이 담당하고 있는 전선.
당연한 이야기지만, 라니아가 이곳으로 올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그곳으로 향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엮여서 좋을 것 하나 없으며 제 기분만 더러워질 뿐이었으니까.
“동부 제 3 전선, 하프리온. 그곳이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또박또박 데스텔이 담당하는 전선을 입에 담고 있다. 어째서?
‘나도 모르겠다, 시발···.’
라니아는 속으로 욕을 중얼거렸다.
일단 입 밖으로 내뱉고 봤는데, 왜 자신이 그런 말을 했는지는 그녀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암만 봐도 이성적인 선택은 아니었으니까.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그냥 감정적으로 내지른 선택이었다.
“······.”
갈라할은 침묵을 지키는 것으로, 라니아의 선택을 존중했다. 기사단장 역시 의문 어린 시선으로 라니아를 흘겨보긴 했지만, 딱히 더 말을 늘어놓진 않았다.
아무렴 다 생각이 있겠지.
그리 여기는듯한 표정이었다.
그 배려가 고마우면서도 라니아는 조금의 찝찝함을 느낀다. 이유를 덧붙이자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으나, 속이 썩 시원하지는 않다. 이것이 감정적으로 내지른 선택임을 본인 스스로부터가 이해하고 있기에.
라니아는 데스텔이 싫다.
단순히 싫은 수준이 아니라, 혐오에 가까울 정도로.
비단 데스텔 뿐만이 아니다. 라니아는 데스텔과 비슷한 선택을 하는 이들을 전부 혐오했다. 검귀, 드라카와 같은 인간들을.
‘희생을 가볍게 여기는 놈들.’
그리고.
‘누군가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주제에, 그 희생이 무가치하다고 부르짖는 개새끼들.’
그런 인간들을 라니아는 뼛속 깊이 혐오한다.
누군가의 희생이 무가치해짐을 라니아는 병적일 정도로 꺼렸다.
그래서, 그때도 자신은 그러했던 것이리라.
「비켜. 내가 갈 테니까.」
라테나일 수호전의 결말.
데스텔에게 붙은 비굴이란 칭호.
그 사건의 내막을 전부 들은 뒤, 병상에 누워있었던 라니엘은 로브를 걸친 채 전장으로 향했다. 잘 움직이지도 않는 몸을 끌고 기어코 그리했다.
「위험합니다, 잿빛 마법사님.」
「그곳은 이미 점령됐으며, 다시 탈환하기 위한 작전은 차후에······.」
만류하는 기사들을 제치고 라니엘은 점령당한 라테나일 고성으로 향했다. 그렇게 그곳에 잔류한 배교자의 마수를 단신으로 뚫어내고, 결국에 라테나일 고성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갑각룡은 이미 떠나 그곳에 잔류한 배교자의 세력이 적었다곤 하나, 당시 라니엘의 몸 상태 또한 정상은 아니었다. 결국에 라니엘은 또다시 큰 부상을 입어야만 했다.
이성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천천히 부대를 꾸리고, 작전을 세워 탈환해도 늦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라니엘은 그리하지 않았다. 만신창이가 되면서까지 작전을 강행했다.
「무가치하다고 말했냐, 데스텔.」
보여줘야 했으니까.
「그래, 어쩌면 무가치할지도 모르지. 재앙 앞에 우리는 한낱 인간일 뿐이고, 재앙의 변덕으로 유지되는 전선은 무의미할지도 몰라. 그럴지도 모르지.」
보여줘야만, 했으니까.
「그렇다고, 그 희생까지 무의미한 건 아니지.」
「널 살리겠다고. 너 하나 살리겠다고 도망치지도 않고 시간을 번 기사들, 네가 도망친 전장을 책임진 갈라할의 동료들, 그 속에서 죽어간 이들.」
「그들의 희생은 무가치하지 않았어.」
수많고 수많은 희생.
「네가 이 자리에 서 있으니까. 기어코 그들은 널 살리는 데 성공했으니까.」
버려진 목숨들.
「그걸 무가치하게 만든 게 누군지 아냐?」
그들의 희생이 무가치하지 않았음을.
라니엘은 보여줘야만 했다.
데스텔의 멱살을 잡고 라니엘은 언성을 높였다.
「너야, 이 버러지만도 못한 새끼야.」
과거를 떠올리며 라니아는 인상을 구겼다.
자신이 역린처럼 느끼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타인의 희생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행위였다.
좌절할 수는 있다.
막힌 벽 앞에 절망할 수는 있다.
그러나, 끝끝내 포기해선 안 된다.
타인의 삶을 희생시켜 연명된 삶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해선 안 된다. 그것이 라니아가 가진 신념이며 역린과도 같은 것이다.
‘포기해버리면, 도망치면 전부 무가치해지니까.’
어렸을 적에 심어진 역린이다.
라니아는 제 고향이 불탔을 때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델로힘 교단 출신의 성기사들이, 마을에 마수들을 밀어 넣고 마을째로 불사 지른 당시의 일.
하나의 마을을 버려 마수를 막고자 했다.
그러나 성기사들은 실패했다.
불길은 기어코 마수들을 다 태우지 못했고, 살아남은 마수들이 불길을 넘어 나타나자 성기사들은 도망쳤다. 그들이 도망치는 모습을 불길 속에서 라니아는 똑똑히 보았다.
「도망쳐라!」
「작전은 실패다, 더 뒤로 물러서서.」
「버려라!」
타들어 가는 마을.
잿더미가 된 마을 사람들.
뜨거운 열기에 막혀오는 숨.
그리고, 아지랑이 너머로 도망치는 성기사들.
그리하여 무의미해져 버린 죽음.
당시 제 눈에 아로새겼던 그 풍경을 라니아는 결코 잊지 못한다. 잊지 않기에 희생을 가벼이 여기는 모든 행동을 라니아는 경멸했다. 진심으로 혐오했다.
“···쯧.”
라니아가 짧게 혀를 찼다.
그 모습을 갈라할은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2.
여행의 피로를 풀고, 자세한 것은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지. 그렇게 말한 기사단장을 뒤로하고 집무실을 빠져나온 순간이다.
“데스텔에게 망신을 주고 싶으십니까?”
문득 갈라할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짧게 손가락을 튕겼다. 갈라할과 나를 푸르스름한 마나가 감쌌다. 목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뒤따라 걷던 클로에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 이상을 느끼진 않았다. 나는 그것을 확인하고 갈라할의 질문에 질문으로서 답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말한 그대로입니다. 데스텔이 굴욕을 느끼기를 바라십니까?”
얼핏 들으면 설교하는듯한 문장이긴 하나, 갈라할의 어조는 평탄했다. 그저 물어보려는 의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처럼.
“···그건 왜 물어봐?”
“이성적인 선택은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라니아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고.”
내가 입을 다물었다.
갈라할은 침묵하지 않았다.
“굴욕을 주려는 의도는 아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라니엘이 받은 모욕을 되갚으려는 의도도 아닌 것 같고··· 그냥 마음에 안 드는 것 아닙니까?”
“···뭐를.”
“데스텔의 방식이 말입니다.”
내가 갈라할을 흘겨봤다.
갈라할은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데스텔이 비굴이라 불리게 된 계기는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어.”
“그럼, 그날 제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도 알고 계시겠군요.”
물론 알고 있다.
내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데스텔을 죽을 때까지 팼다는 거?”
“하하. 소문이 과장되긴 했나 봅니다. 실제로는 얼굴에 주먹을 두세 번 정도 갈겼습니다.”
“충분히 많이 팬 것 같은데.”
“예, 그때는 너무 감정적으로 행동했죠.”
감정적이었다, 그렇게 갈라할은 말했다.
“당시 데스텔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닙니다. 저도 매번 느끼는 것이니까요. 모든 게 무가치한 게 아닌가, 내 존재가 의미가 있나··· 하고 말입니다.”
씁쓸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다만, 그것을 기사들의 앞에서 말하는 건 견디지 못하겠더군요.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그냥, 싫었다고 해야 할까요.”
“···버린 목숨이 무가치해지니까.”
“예. 그때 목숨을 잃었던 기사들이, 제 동료들의 죽음이 모욕받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요.”
“이해해.”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건 틀렸다고, 옳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데스텔과 같은 방식을 이해를 할 수 있더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알고 있다.’
이게 고집이고, 치기에 불과하다는 것은.
“치기죠.”
“고집이기도 하고.”
하지만.
“용사에겐 필요한 고집이라 생각해.”
누군가는 가져야만 하는 고집이다.
나는 말없이 클로에를 흘겨봤다.
클로에가 용사가 된다면.
훗날 전장에 서게 된다면.
데스텔보단 갈라할에 가까운 용사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니, 데스텔이 머무는 장소를 선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선택은 네가 하는 거겠지.”
내가 클로에의 머리를 두들겼다.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그걸 선택하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었으므로. 클로에는 눈을 멀뚱멀뚱 뜬 채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라니아 교수님?”
“응.”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음···.”
할 말을 고민하다가, 내가 나지막이 말했다.
“힘내보자, 우리.”
3.
밤이 깊었다.
클로에는 잠이 오지 않아 몸을 뒤척였다. 당장 오늘은 카테론 고성에서 머무르나, 내일도 이곳에서 머무르리란 법은 없다.
내일부턴 전장에 나서야 하리라.
각오는 하고 있었다지만, 잠자리가 뒤숭숭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클로에는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섰다. 고성의 복도는 한산했다.
산책이라도 할 생각으로 클로에는 복도를 걸었다.
중간중간 기사들을 마주치긴 했지만, 클로에가 이곳을 방문한 손님임을 알고 있는 기사들은 가면 안 되는 곳에 대한 주의만 가볍게 줄 뿐, 클로에를 방으로 돌려보내진 않았다.
클로에는 계속해서 걸었다.
그러다 하염없이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카테론 고성의 망루, 탁 트인 전망이 눈에 들어온다. 밤하늘 아래 타오르는 횃불들을 흘겨보며 클로에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여기 전망이 좋긴 하지.”
“꺄, 꺄아아아··· 읍!”
한숨을내쉬자마자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클로에가 기겁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비명은 오래가지 못했다. 의문의 존재가 클로에의 입을 틀어막은 까닭에.
“읍, 으읍···!”
“누가 보면 잡아먹는 줄 알겠네. 카테론 고성에서 어떤 간 큰놈이 기사단장의 손님을 건드려? 걱정 마. 그만큼 용감한 놈은 아니니까. 오히려 그 반대지.”
“으, 으읍···?”
의문의 존재가 클로에의 입을 틀어막았던 손을 내렸다. 그리곤 깊게 눌러쓰고 있던 두건을 벗었다. 달 아래 남자의 회색 머리칼이 흔들렸다.
“···데스텔 님?”
“이야, 오랜만이네. 밖에서 왔는데 날 비굴이라고 안 부르는 애는.”
데스텔이 웃음을 터뜨리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내가 관리하는 망루에 누가 올라가길래, 누군지 하고 봤더니 차기 용사 후보였네. 이 야밤에 여기는 무슨 일로?”
“···음,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아서요.”
“아직 견습도 안 됐다고 했나.”
“네, 아직 시련을 못 받아서···.”
“복잡할 만도 하지. 나도 전장에 처음 왔을 때는 밤잠을 설쳐댔으니까.”
후우, 데스텔이 짧게 숨을 내뱉었다.
“이름이 클로에라 했나.”
“네, 데스텔 님.”
“소문은 들었다. 성류(??)랬나, 아무튼 특이한 체질이라고. 너도 타고난 부류구나.”
“타고난 부류···요?”
“어. 타고난 부류.”
턱을 괸 채 데스텔이 망루 아래를 내려다봤다.
망루 아래에는 망을 서는 기사들이 횃불을 든 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을 가리키며 데스텔이 말을 이었다.
“누군가의 희생을 받아먹고, 계속해서 연명해야 하는 이들이지. 죽을 용기가 없다면, 죽을 때까지.”
“···네?”
“싫어도 알게 될 거다. 네가 받은 축복이란 그런 거니까.”
피곤에 찌든 목소리였다.
아래를 내려다보던 데스텔이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데스텔은 망루에 놓여있는 의자 하나를 끌고 와 클로에의 앞에 놓았다.
“잠깐 이야기 좀 할까.”
낮에 보았던 인물과는 인상이 제법 다르다.
클로에는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막 용사가 되는 네게 안 좋은 말을 잔뜩 할 생각은 없다. 정의롭고 이상적인 건 멋진 일이지. 거기에 힘이 따라준다면 더 좋고.”
데스텔이 망루에 기댄 채 말했다.
“그냥,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말이다.”
그가 제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틱, 티딕 하고 손끝에서 별빛이 점멸했다. 클로에의 찬란한 별빛과는 다른··· 은은한 별빛이다.
“이 별빛이란 게 마냥 축복만은 아니란 소리다.”
그가 툭 내뱉었다.
“축복이 아닌 저주야. 이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