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Extra in a Trash Game RAW novel - Chapter (372)
망겜 속 엑스트라가 됨-372화(372/373)
레비니아는 물살을 가르며 헤엄쳤다. 한동안 지상에서만 있었기에 이 감촉을 잊고 살았었다.
한동안은 폭풍우의 섬에서, 또 그 이후로는 아델리안과 함께.
그러니 몸에 닿는 바람이, 발아래의 대지가 너무 익숙해 망각하였던 건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둘러싼 이 바다가 본디 자신의 것임을.
그것은 나의 몸이요, 힘이며 영혼의 그릇.
깊은 심해인데도 빛을 밝힌 것처럼 사방이 환했다.
근방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읽을 수 있었고 다스릴 수 있었으며 원한다면 그 존재도 지울 수 있음이다.
거대한 몸을 뒤틀어 숨을 쉬듯 바다가 넘실거린다. 이대로 몸을 일으켜 단 한 번 크게 헤엄친다면 거대한 해일이 되어 흘러갈 수 있을 것이다.
‘아아, 그래.’
레비니아가, 자신이 바로 이 바다니까.
빛무리 해파리들이 칠흑같이 어두운 심해를 밝히며 성을 맴돌았다.
산호와 석영으로 만든 섬은 빛무리 해파리들이 내뿜는 빛을 받아 오색 빛으로 찬란하다.
석영과 산호가 맞닿은 곳은 황금으로 마감하였고 빛무리 해파리가 내뿜는 빛은 투명한 성의 벽을 타고 흘러 전체가 은은했다.
그리고 가장 아래, 조개 모양의 왕좌에 드러누워 있던 인어족 사내가 급히 몸을 일으켰다.
“…이건.”
인어왕 바룩은 자신의 잘린 팔을 움켜쥐었다.
레비니아를 탈취한 인간이 낸 상처.
소용돌이 위에서 날아온 그 오러는 끔찍할 정도로 거칠고 사나웠다.
보통은 깔끔하게 자르고 사라졌을 오러는 마치 오러 자체가 살아있는 것처럼 잘린 단면을 파고 들어가 몸을 파괴했다.
그 정도 오러 컨트롤과 기세라니.
원래라면 잘린 팔을 가져가 대는 것 만으로 다시 붙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난폭한 오러는 잘린 팔을 망가뜨리고 몸까지 파고들려 했었기에 결국 바룩은 한 팔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팔과 더불어 인간에게 잃었던 레비니아의 기운이 물결을 타고 흘러왔다.
“바룩! 바룩!”
“너도 느꼈지? 이건 레비니아…….”
“쉿.”
바룩은 저를 찾아온 형제들을 내려보았다.
파리하게 질린 안색과 빛이 탁해진 비늘.
누가 봐도 겁먹은 모습.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은 본디 로열블러드를 보좌할 용도로 산란 못에서 태어난 방계 왕족이 아닌가.
다른 인어들은 몰라도 자신들은 탄생의 근원을 알고 있었다.
레비니아가 돌아오면 모든 것을 잃을 거란 공포. 더불어 사실이 알려진다면 받을 손가락질과 눈빛이 두려울 터.
그 때문에 레비니아가 진정한 왕으로 각성하지 못하게 하지 않았던가.
“어쩌지? 분명 제대로 각성했으니 돌아오는 것일 텐데.”
“먼 곳에서부터 이곳까지 그 기운이 느껴질 정도야. 바룩, 도망가자.”
언제나 어느 날이나. 바룩을 포함한 방계의 인어 왕족들은 매일같이 상상했다.
레비니아가 진정한 힘을 되찾고 돌아와 모든 이들을 숙청하는 날을.
그렇기에 누군가는 레비니아를 죽이고 싶어 했고 또 누군가는 용서를 빌고 싶어 했지만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했었다.
레비니아가 스스로 폭풍우의 섬에 자신을 가뒀으므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안이 사라지진 않았다. 지금 당장은 인어의 모습조차 하지 못하는 아성체이나 각성하면 이 모든 바다의 주인이 될 자였으니.
그러니 인간족과의 혼인 동맹에 이용하려 했다.
상대는 탐욕스러운 인간족이며 뒤틀리고 깨진 오물 같은 자였으므로.
그렇다면 레비니아는 인간족을 증오하였을 테고 증오는 고귀한 긍지를 더럽혔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레비니아는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망가뜨렸을 터.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그 금발의 사내가 나타나며 바뀌지 않았던가.
레비니아는 도망쳤으며 혼인 동맹은 미뤄졌고 인어족은 여전히 그대로 바다의 지배자가 아닌 약탈자로 남아있다.
그런 상황에서 레비니아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것은 예전처럼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연약한 마나의 잔향이 아니었다.
희미하지만 강인하며 끈끈한 기운. 분명 힘을 일부라도 되찾았으리라.
그러니 방계들이 저리 나오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바룩은 달랐다. 그동안 왕좌를 비워둔 왕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바룩은 하나 남은 팔로 거대한 산호 창을 쥐었다.
“병사들을 불러라. 레비니아가 각성했다고는 한들 우리 또한 왕의 피를 일부 이은 존재들.”
이 모든 것들을 그냥 넘겨주고 패배자가 되어 모래 밑으로 납작하게 기어 들어갈 것인가.
“혹은 일말의 가능성을 탐닉할 것이냐.”
바룩의 말에 다른 인어 왕족들이 서로 눈짓했다.
어차피 도망친다 한들 한계는 온다.
그리고 손에 쥔 것을 놓기도 싫었다. 그렇다면 발악 정도는 해봐야 하는 게 맞는 법.
“…그래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난 것도 아니야.”
“그 힘을 다루는데 분명 서툰 부분이 있겠지.”
정신을 차린 듯 병사들을 모아 인어성 앞에 배치하며 더불어 갑옷과 무기를 챙기는 이들을 바룩은 바라보았다.
산호와 철갑 조개의 껍질, 혹은 해양 몬스터의 가죽과 해룡의 비늘.
그런 것들로 무장한 인어들과 근처에 있던 다른 인어 왕족들이 급히 합류했다.
수백의 병사들이 도열하고 인어 왕족들이 은은한 오러와 물의 마나를 뿌리며 이 근방 해역을 지배한다.
이곳을 가득 메운 바다의 물방울 단 하나까지도 레비니아에게 적대적일 터.
너무 먼 곳까지 가버린 이들은 뒤늦게 도착하여 레비니아의 피로 물든 붉은 성을 바라만 보겠지.
바룩이 하나 남은 손으로 창을 들고 저 멀리 빛무리 해파리가 양옆으로 물러나는 심연을 응시했다.
“뭘 준비하는 거지…….”
“적? 아니면 대형 몬스터?”
“일단 긴장해. 뭐가 되었건.”
일반 병사들이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차마 본래 너희의 주인 되는 자가 우리에게 오고 있노라 말할 수 없었던.
인어 왕족들의 비겁함이 레비니아를 숨겼다.
다만 거대한 것이 오리라. 그것을 견디고 저항해야 함을 일컬었을 뿐.
그리고 저 멀리서 모든 것을 휘감은 존재가 흐르는 물결처럼 다가왔다.
물 위에 비친 달처럼 은은히 빛나는 몸과 바다에 녹아내린 듯한 긴 머리칼, 물색의 눈동자.
화려한 티아라가 머리 위에 앉아있었으며 물의 마나가 형상화된 천이 몸을 휘감고 날개처럼 일렁인다.
그 뒤로 인어족과 해양 몬스터가 마치 융단처럼 낮게 깔려 따르며 거대한 격은 마치 온 대륙의 바다를 뭉쳐놓은 듯 이 공간을 물들였다.
“아…….”
“신이시여…….”
인어성 앞에 도열해 있던 병사들이 레비니아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자신의 진정한 지배자가 누구인지를.
인간족이 공기가 없으면 숨조차 쉬지 못하는 것처럼.
인어족은 바다가 없으면 살 수 없듯이.
근원.
탄생과 죽음. 그리고 안식까지. 자신을 둘러싼 이 바다 그 자체임을.
산호로 된 창을 모두가 같이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다.
인어 왕족 또한 이 심연 속에 강림한 이가 자신의 적법한 주인임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세포 하나부터 소름이 돋고 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거절, 혹은 거부. 어쩌면 거역.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음을.
바룩 또한 말 그대로 이해했다. 자신의 모든 반역은 그야말로 허락이었음을.
삶의 의지와 더불어 맹목적인 믿음마저도 본디 가지고 있었어야 하는 근원이었음을.
모두가 천천히 고개를 조아리는 가운데 레비니아가 빛으로 일렁이는 몸으로 자신의 소유물들 앞에 내려앉았다.
* * *
비공정의 엔진실.
바다 빛 진주가 허공에 떠있었고 그 주위로 아지랑이 같은 것들이 피어오르다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진다.
나는 그것을 가만히 보다가 설산의 눈물이 든 병을 쥐고는 마개를 열었다.
“얼마나 걸릴까.”
설산의 눈물이 지닌 마력을 뽑아 일부 안정화시키며 동시에 거친 기운을 잠잠하게 만드는 것.
내 질문에 리프가 대답했다.
―못해도 한 달 이상은 걸릴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
신년선물로 가디아에게 주면 되겠네.
천천히 병을 기울여 허공에 설산의 눈물을 붓자 그것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느리게 부유했다.
그리고는 바다 빛 진주의 근처로 끌어 올려지듯 감기더니 진주의 표면을 한 겹 덧씌운 듯 일렁거리며 아지랑이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엔진의 마나 축적률. 0.0001% 동조 중
비공정에서 안내 멘트가 울렸다. 저 수치가 얼마 만에 한 칸 더 오를지는 모르나 당분간 헛된 소모를 하지 않으면 괜찮을 것이다.
골렘 생산이나 비공정으로 전투 같은 걸 하지 않는 한 설산의 눈물이 보조하는 마나 전부 축적될 테니.
내가 엔진실에서 나가 케인과 제로가 있는 선실로 가는데 발밑에서 아주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상승 중입니다.
“벌써?”
아니 나는 가뮈르 만나러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려 했는데?
“아니, 지금 어디 가려는 거야.”
내가 얼른 뛰어 선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서자 중앙에 다리 꼬아 앉아 밖이 보이는 화면을 응시하던 케인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 엘프 장로를 만나러 가려던 게 아닌가.”
“가뮈르 이자식아, 가뮈르,”
몇 번을 봤는데 아직도 이름으로 제대로 안 부르고.
내가 이마를 짚자 제로가 웃으며 다가온다.
“아델리안 님께서 가뮈르 님을 보고 간다고 하셔서, 그쪽으로 운행 중입니다. 한 5분 정도면 도착할 겁니다.”
“아니 굳이 비공정을 띄워서 갈 필요 있냐고.”
갑자기 이 큰 걸 띄워서 가뮈르에게 가면 안 놀라겠냐고.
일단 5분 거리라도 미리 연락을 해야 할 거 같아 세이렌을 쥐는데 케인이 입을 열었다.
“어차피 모를 테니 상관없지 않나.”
네 머리 위로 전술핵 조준해도 그리 말할 수 있냐.
있겠지.
케인은 그런 놈이다.
난 그냥 포기하고 제로를 바라보았다.
“마력 파장으로 완벽한 은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기척을 지우는 것에만 집중하면 드래곤이라도 감지 못할 거라고.”
말하던데요 하듯 제로가 케인을 바라본다.
그래,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에서 공격만 안 하면 드래곤 레어고 테이트리아 황성이고 상관없이 정찰 가능하구나.
그렇구나.
“갑자기 비공정 떠올라서 지진이나 하다못해 바닥이 꺼졌을 텐데 그건 어찌하려고.”
누가 봐도 갑자기 동산 하나 아래로 판 것처럼 푹 꺼졌으면 이상하지 않냐는 내 말에 제로가 녹색의 보석안으로 케인을 바라본다.
그래 케인이 한국에서 새마을 운동인가 할 때 있었으면 맨손으로 간척사업도 했을 텐데.
나도 비공정 관리자로 등록되어 있는지라 비공정 내부에 화면을 띄워 원래 있던 곳으로 정찰 골렘을 보내니 바닥이 아주 깔끔하다.
잔디까지 파릇한 걸 보면 위장이 아주 탁월했다.
나는 아주 당당하게 나를 바라보는 케인을 응시하다가 이마를 짚었다.
“가뮈르 만나고 올 동안 사고 치지 마라.”
나는 정령의 숲 상공에 멈춘 비공정에서 아래를 바라보았다.
실제로는 투명하지도 않고 바닥에는 비공정의 지하실이 있겠지만 이 공간은 어찌 된 건지 유리벽 위에 서 있는 기분이다.
나는 내 발아래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어찌하면 저들에게 들키지 않고 내려갈지 고민했다.
“제가 호위로 따라가겠습니다.”
마나를 조금이라도 다룰 줄 알면 비공정의 출납을 텔레포트로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아주 잠시 은신 효과도 받을 수 있다고 제로가 말했다.
그냥 마나 못 쓰는 내 잘못이지, 또.
내가 투덜거리자 제로가 하하 웃으며 내 팔을 가볍게 쥐었다.
“가뮈르 보고 올게.”
내가 케인과 리프에게 인사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뜨니 시끌벅적한 시장 한가운데였다.
제로가 후드를 쓰며 동시에 내 얼굴도 후드를 얹어 가려준다.
“그럼 가자.”
케인이 입에 올린 녹음의 고리와 더불어 요정의 기사에 관해 말할 게 있으니.
나와 제로는 가뮈르의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