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99)
흑백무제 1199화(1199/1200)
1199화. 이전투구(泥田鬪狗) (9)
그때부터였다.
‘조금 힘들군.’
황룡신왕공의 진정한 시작을 맞이하며, 구사하는 무공 및 신왕기(神王氣)로 언령(言令)에 가까운 힘을 전파해 노구당을 이끌었다.
노구당이 함께 마음을 맞추던 전우였다면 그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덕분에 혈황단의 실체를 알았으니, 꽤 무리했어도 득은 본 셈이었다.
그러나, 정기신이 하나 되지 않았다더라도 과거 사천에서 붙었던 육사제장보다 훨씬 더 막강한 고수 셋과 싸웠다. 심지어 그때 육사제장은 살점이 떨어져 나간 기괴한 몸뚱이였던지라 생전과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절대자로 향하는 길목 위에 섰으나, 아직 진정한 초월자는 되지 못했다. 세 명의 고수를 포함해 집단전을 벌였으니 지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가라!!”
혈황단의 누군가가 외치자 마인들이 다시 돌진했다.
타구대진이 무너진 상황이라 더는 그들을 막을 방벽이 없었다. 연호정은 습관처럼 도끼를 휘둘렀다.
퍼어억! 파바바박!
혈황단의 진짜 대단한 점은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황룡신왕공은 사신무의 비기와 혈교 최악의 마공인 오색지옥공의 합작으로 완성되었다. 파마(破魔)의 공능이 지대하며, 특히 광혈교의 마공에 유독 강한 면모를 보인다.
그러나 혈황단은 오히려 익힌 마공이 최고 수준이 아니기에 더더욱 황룡 앞에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 힘의 역학 관계란 그처럼 오묘한 데가 있었다.
퍼엉! 퍼어어엉!
가까운 놈들은 금룡이무(金龍二武)의 권장으로 쳐 죽이고, 떨어진 놈들은 광룡부와 흑백쌍룡부의 어검비술로 때려죽이던 연호정은 순간 등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몸을 옆으로 날렸다.
콰아앙!
또 한 번 대지에 꽂히는 미친 벼락이 사방으로 전광을 뿜었다.
다시 봐도 대단한 힘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암살자의 무공과도 비슷했다. 찰나지간 저만한 공력을 끌어올려 내친다는 건 연호정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함천이 외쳤다.
“길이 열렸다! 모두 교주님께 가라!”
“와아아아!!”
그때, 노구당의 당주 홍해표가 외쳤다.
“다시 진을 펼쳐라! 놈들을 막아!”
혈황단이 달리 혈황단이 아니라면, 노구당도 달리 노구당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용호풍운의 타구대진을 재형성, 돌진하는 마인들을 틀어막는 속도가 대단했다. 무리하게 진기를 끌어올리느라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만, 그들은 그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다.
“네놈은 나와 싸우자!”
함천은 끈질기게 연호정에게 따라붙었다.
부웅! 쩌엉! 쩌어엉!
함천의 광뢰도와 연호정의 광룡공이 부딪치며 화려한 충격파를 일으켰다.
연호정의 얼굴이 무심하게 굳어졌다.
‘이상하군.’
황룡신왕공의 막강한 힘이 줄어들자, 자연스레 그 공백을 이성과 타고난 전략안이 채웠다.
‘왜 굳이 셋이지?’
이혼술로 발현된 전대 사제장의 숫자는 함천까지 셋.
정기신이 하나 되지 못했다고는 하나, 전대 육사제장보다 훨씬 완성도 있는 몸으로 들어온 저들의 전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둘까지는 애매할 수 있어도, 셋이라면 성천의 삼제(三帝) 중 하나는 확실하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즉, 혈황단은 삼제급 고수가 오백이 훌쩍 넘는 마인들을 이끌며 교주를 호위하는 부대인 셈이었다.
그 정도면 광신도의 수장을 호위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다. 실제로 어디서도 저만한 호위 부대를 찾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연호정은 한 가지 의문을 느꼈다.
‘셋이라면 넷도, 다섯도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저들은 이미 죽어서 육(肉)을 잃은 상태, 교주를 호위한다면 마인의 수를 줄이고 전대 사제장들을 모조리 끌어다 붙이는 편이 훨씬 효율적일 텐데.’
호위 부대로 일천은 지나치게 과하다.
전력이 아닌 숫자를 말함이다. 오히려 초고수를 다섯으로 늘리고 실력 좋은 마인 이삼백으로 구성했다면 더 확실한 호위가 가능했을 것이다.
일천의 숫자는 호위보다 전투 부대에 더 적합한 숫자다. 무공을 배운 부대로서는 특히 그러했다.
‘광혈교쯤 되는 조직이라면 최적의 효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 그런데도 굳이 일천이나 두었단 말인가.’
이 의문은 전대 사제장의 숫자가 셋에서 끝났다는 데에서, 나아가 전대 사제장이 죽어도 더는 그 힘이 남은 혈황단에 전달되지 않는다는 데에서 시작했다.
‘이런 부대는 숫자가 줄면 줄수록 호위 능력도 급속도로 떨어지게 마련이다. 한데도 굳이 일천이나 두었고, 심지어 그 일부는 전대 사제장들의 힘을 불러오는 역할로 쓰였다.’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가득상만큼은 아니어도 연호정 역시 심신이 크게 지쳤던바, 최상의 상태였다면 진즉 떠올렸을 의문이 적과 싸우는 중에 찾아왔다.
‘왜 이놈은 나만 잡으려고 하지?’
쩌어어엉!
함천의 맹공을 유공(柔功)으로 받아 내며, 연호정이 연신 뒤로 물러났다.
이내 그가 다다른 곳은 혈황단의 중단부였다. 그러자 함천의 눈이 흔들렸다.
쩌저저정!
괴성을 지르며 돌진해 더 빠른 공격을 감행한다.
적의 빈틈을 보고 응수타진할 생각이 없다. 연호정이 혈황단과 가까워질수록 함천의 공격은 더 과격해지고 빨라졌다. 섬세함 없이 몰아치는 그 공격엔, 승리보다는 어떻게든 연호정을 밀어붙여 혈황단에게서 떼어놓으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의도가, 드디어 연호정의 눈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호위 마인들이 죽어 나가는 걸 신경 쓰지 않았다. 한데 지금은 신경 쓰고 있어.’
생각이 거기에 다다르자 처음 싸움이 벌어지기 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자신은 후개와 무슨 말을 했던가.
‘그런 전력이 광혈교주의 호위 부대란 말이오. 교주의 무력을 믿었든 명령 때문에 전선을 지키고 있었든, 그 먼 거리를 떨어져 있었음에도 교주에게 이상이 생긴 걸 알고 찾아오는 길이오.’
‘애초에 일천 호위 부대와 영적으로 이어졌다는 것도 무림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소. 무극수 정도면 상단전의 활용 능력이 극에 이른다고는 하나, 이놈들의 사술은 그것과 또 다르단 말이오.’
무림의 상식을 벗어난 사술.
백음귀라는 놈들의 이력(移力)과는 또 다른, 원조일 것이 분명한 광혈교의 이 사술은 왜 교주의 호위 부대에 존재하는가?
이놈들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실제로 그놈들은 공격보다 수비에 능하다는 보고가 많았소.’
‘아마 교주의 호위 부대일 것이오.’
공격보다 수비.
교주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부대이니 당연하겠지만, 광혈교의 무공은 근본적으로 파괴력을 중시하며 아무리 수비로 일관해도 특유의 과격한 공격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한데도 이놈들은 달랐다. 강철처럼 단단한 마공을 익혔음에도 미쳐 날뛰기 전까지는 수비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공을 익힌 한 어지간해서는 수비가 좋다는 평가를 받기 힘들 텐데도.
이유가 무엇일까?
호위 부대가 일천이나 되는 이유, 전대 사제장들이 셋밖에 되지 않는 이유, 함천이 이제야 자신을 호위 부대에게서 떼어놓으려 하는 이유.
그때, 연호정은 또 하나 기억에 남겨 두었던 가득상의 말을 떠올렸다.
‘당가의 방계 어르신 당유광이라는 분이 말씀하시기를, 광혈교주 놈이 이런 소릴 했다고 하오. 이름 모를 어떤 놈이 대사(大師)의 목숨줄을 쥐려고 사람을 보냈다나…….’
‘대사?’
‘우리에게 대사라고 하면 무허대사님이나 맹주님 정도가 떠오르지만, 놈들이 굳이 그분들을 대사라고 칭하겠소? 여하간 광혈교주가 중원에 온 데엔 나름의 목적이 있었던 것 같소.’
누군가가 대사의 목숨줄을 쥐고 휘두르려 한다. 그리고 광혈교주는 어떤 식으로든 그 대사라는 인물과 연관되어 중원에 온 것이다.
자세한 이유가 어찌 되었든 목적이 있는 것 같다는 말 자체가 그 대사라는 인물이 중원에 존재함을 뜻한다.
‘영적 연결…… 이력…… 풍도박혼진…… 대사…… 교주의 생사…….’
그 순간.
연호정은 모든 답을 깨달았다.
콰아아앙!
교차한 흑백쌍룡부 일격으로 함천을 밀어 낸 연호정이 외쳤다.
“노구당원들은 길을 열어라!!”
우우우우우웅!!
진세를 뚫고 들어가는 황룡의 의지다. 장곤과 대죽신개는 홀린 듯 타구대진을 흩어 내고 길을 열었다.
그러자 혈황단의 마인들이 열린 길을 통해 파죽지세로 달려 나갔다. 부서진 둑을 뚫고 쏟아지는 강물처럼, 악산을 향해 달려 나가는 그들의 기세는 거의 광기에 젖어 있었다.
“이, 이게……!”
노구당원들은 당황하여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연호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함천 역시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이는 득의양양함을, 연호정은 놓치지 않았다.
“이놈! 이제야 나와 제대로 싸워……!”
참마도를 고쳐 잡고 자세를 잡던 함천은 순간 연호정의 모습이 흐릿해지는 것을 보았다.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이형환위!!’
퍼어어억!
어느새 등 뒤에서 나타난 연호정이 함천의 오른팔을 통째로 잘라 버렸다.
한 팔을 잃은 함천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잘린 그의 오른팔에서 허연 기운이 흘러나왔다.
연호정의 눈이 번쩍였다.
‘마기.’
황룡신왕공에 당한 자. 광혈교의 고위 마공을 익힌 자.
저 허옇게 흘러나와 흩어지는 마기는, 천적인 황룡신왕공에 당한 흔적이다.
“이놈!”
콰앙!
금룡번천장으로 함천을 날려 버린 연호정이 순식간에 장곤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부터 혈황단은 내가 쫓겠소. 노구당은 남은 적을 상대하고, 이곳의 길목을 지키시오.”
장곤이 빠르게 물었다.
“성주. 어찌하여 저들을 그냥 보내 준 것이오?”
“광혈교주를 진짜로 죽일 수 있는 기회요.”
“뭐, 뭐라고?”
“나아가, 중요한 단서까지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오.”
연호정이 노구당주 홍해표에게 말했다.
“흑제성주로서 말하오. 저자를 해치우고, 마인들을 쫓아오고 있는 사천 무림 병력을 통솔하여 북방을 지킬 수 있도록 하시오.”
“북방 말이오?”
“확실하지는 않소만, 만에 하나를 위해 사천에 전선을 깔아 두는 게 좋겠소. 나를 믿는다면 부디 그리해 주시오.”
가만히 연호정을 바라보던 홍해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흑제성주 연호정이 삼교와 오랫동안 싸운 사람이며, 그 능력이 하늘에 닿았다는 것을 알고 있소. 우리야 이미 반쯤 은퇴한 거지들이니 설령 실수했다 한들 욕하지는 못할 것이오.”
“부탁하겠소.”
파아아앙!
연호정이 혈황단의 뒤를 쫓아 달려 나갔다.
“이, 이거 괜찮은 거유?”
대죽신개의 말에 홍해표가 한숨을 쉬었다.
“안 괜찮으면 또 어쩔 거야? 막말로 우리가 이번 전쟁에 대해서 아는 게 얼마나 있다고.”
“아무리 그래도…….”
“흑제성주의 명성은 이미 무림맹주 이상이다. 그 영향력 또한 성천에서도 최고라 할 만해. 무공 실력이 아닌 그간의 실적과 결과로 증명한 영향력이다.”
“…….”
“그가 그렇다면 이유가 있겠지. 옛날처럼 호기심에 미쳐서 여기저기 코부터 들이밀고 다니던 버릇은 이만 내려놓자고.”
“쩝.”
“뭐, 그건 그렇고.”
홍해표가 바닥에 널린 시신들을 바라보았다.
그 시신 중에는 죽은 노구당원들도 있었다. 그 숫자가 거의 일백에 가까웠다.
“갈 때 되면 알아서들 먼저 가자고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많이들 떠날 줄은 몰랐는데…….”
살기 어린 홍해표의 눈이 함천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노구당원들이 피워 내는 기세가 함천에게로 몽땅 집중되었다.
“그 원한은 풀어야겠지.”
하얗게 질린 함천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쉬울 거다.”
부웅.
노구당원들이 타구봉을 빙빙 돌리며 다가갔다.
“원래 개 잡는 게 우리 전문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