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00)
흑백무제 1200화(1200/1200)
1200화. 이전투구(泥田鬪狗) (10)
당패의 눈이 번쩍였다.
‘이건?’
이토록 먼 거리에서도 느껴질 만큼 아군과 적군의 전투는 치열한 것이었다.
한데 어느 순간, 불온하고 사이하기 그지없는 마기의 군세가 더더욱 강해졌다.
‘강해진 게 아니다. 흑제성주와 노구당이 마인들을 놓친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말의 기대는 있었다. 반쯤 은퇴한 개방의 노고수 오백에 십 년 내에 천하제일인의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모두가 확신하는 불세출의 천재가 함께 있었으니까.
하지만 역시나 무리였나 보다. 그렇다고 그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목숨을 걸고 적의 진입을 막았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만에 하나를 위해 사왕단이 이곳에 왔으니, 응당 그 역할을 해 주면 그뿐.
당악이 외쳤다.
“형님! 이 기운은 설마?!”
“나락독사진의 외진(外陣)은 서방으로 힘을 보태라!”
어느새 당패의 좌측 팔뚝에 지름이 한 자가 넘는 원형 방패가 끼워졌다.
“적이 온다!”
사아아아악.
뱀처럼 음험한 움직임으로 진형을 바꾼 삼백의 사왕단원들이 강렬한 독기(毒氣)를 피워 올렸다.
훅!
풍도박혼진 주변을 에워싼 이백의 단원들도 그렇지만, 특히 외진을 형성한 삼백 인원은 당가의 절정독공이라는 독룡신공(毒龍神功)을 팔 성 이상 익힌 자들이었다.
명문가에서도 절학으로 손꼽히는 무공을 팔 성 이상 익힌 자들만 삼백이다. 남은 이백은 칠 성 언저리에 머물러 있지만, 그들은 각종 화기와 암기술에 더 강점이 있었다.
새로 편성한 사왕단이 정예라 불리는 이유였다. 이만한 전력이라면 중원의 어떤 부대와 붙어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부대주는 내진(內陣)의 진축이 된다! 서둘러!”
“존명!”
치리링!
당악을 위시한 내진 이백 명의 좌측 팔뚝에는 지름이 한 자를 넘어 두 자에 가까운 붉은 방패가 끼워졌다. 대단한 강도를 자랑하는 것은 물론, 안쪽에 각종 암기가 장착된 비기(祕器)였다.
반면 당패를 위시한 외진의 삼백 인원은 더 소형화된 방패를 장착했으며, 그 안에는 암기가 없었다. 방패 자체가 하나의 암기이기 때문이었다.
“전방에 독사신기(毒蛇神氣)를 뿌려라!”
화아악!
외진 삼백 명이 우장(右掌)을 뻗어 독룡신공을 운용하자, 순간 비릿한 냄새와 함께 불그스름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한 명도 아니고 삼백이다. 삼백이 뿜는 독사신장(毒蛇神掌)의 장력은 명확한 색을 띠며 부드럽게 합쳐져 일순 거대한 붉은 구름을 형성했다.
당패의 눈이 번뜩였다.
독룡신공을 십 성 대성한 그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파가 뿜어져 나왔다.
화아아악!
쌍장을 내밀어 독사적운(毒蛇赤雲)을 밀어 낸다.
삼백 인원이 뿌린 독기를 혼자서 전방으로 움직이고 있다. 기공의 깨달음이 실로 엄청났다. 방계랍시고 숨죽이고 있던 세월이 사무치게 아까울 만큼 놀라운 실력이었다.
후우우우우웅.
바람을 타고 전진한 거대한 독사적운이 외진 전방 오십 장 밖에서 멈추었다. 어지간한 성문보다도 높고 좌우 너비 또한 이십여 장을 넘어가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사독(蛇毒)의 방어막이었다.
악산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완전히 차단한 사왕단.
당패가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외진 삼백 인원 모두 그를 따라 오른손을 들었다.
두두두.
침묵 가득한 진법 내부로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다.
‘삼백? 아니, 오백에 가까운 숫자다.’
신법을 펼쳐 달려오는데도 진동이 느껴진다. 그만큼 적들도 지쳤다는 뜻이리라.
당패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네놈들은 절대 우리를 뚫을 수 없을 것이다.’
그때였다.
‘……?!’
당패의 표정이 돌변했다.
‘이 기운은 뭐지?’
파도처럼 밀고 들어오는 마기 후방에서 알 수 없는 또 하나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 기운으로 말하자면, 정말이지 긴장으로 가득했던 몸에 진한 여유를 주는 평온한 기운이었다. 신비롭고도 익숙한, 왠지 모르게 마음 편한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기운이었다.
그러면서도 강했다.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밀도 높은 기파였다. 그 기파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마기가 점점 불안정하게 뒤틀리고 있었다.
‘초고수? 무극이다!’
당패의 얼굴에 희열이 떠올랐다.
‘흑제성주! 흑제성주가 따라붙었구나!’
무림맹에서 검제 남궁승은 물론 도제 종리백과도 박빙의 승부를 벌였다는 괴물이 연호정이었다.
그가 따라붙었다면 정말 안심이었다. 홀로 대문파급 전력을 자랑한다는 무극수가 뒤에서 몰아치고 있으니, 적들을 몽땅 잡아 죽이는 것도 한결 수월할 것이다.
‘모조리 한 줌 흙으로 되돌려 주마!’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출수 준비.”
독사적운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기도로 읽을 수 있었다. 어느새 적들이 백여 장 안쪽으로 진입했다.
‘팔십 장…… 칠십 장…….’
그리고.
붉은 구름 속, 검은 그림자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컥!”
“크르르륵!”
“케에엑!”
독사적운 속으로 들어온 적들이 기괴한 신음과 함께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그림자의 모습이 그러했다.
쾌재를 부르면서도, 당패는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멈추거나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그대로 뚫어?’
누가 봐도 위험해 보이는 구름이다. 장력으로 밀어 내려 하든 우회를 하든, 어떻게든 머리를 굴렸어야 했다.
한데 저놈들은 그냥 맨몸으로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게 아니고서야 어찌…….’
어쩌면 후미에서 쫓아오는 흑제성주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뭐가 되었든, 지금은 다른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들어와라.’
적운 안에서 솟구치는 검은 그림자들이 점점 많아졌다.
‘들어와!’
그때였다.
훅!
경갑 위에 피풍의를 두르고 복면으로 눈 아래를 가린 마인 하나가 기어이 적운을 뚫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훅! 파바바박!
하나가 나타나자 둘, 넷, 일곱 등 숫자가 무섭게 늘어났다. 독사적운의 매서운 독기를 뚫고 나타난 것이다.
당패가 외쳤다.
“출수!”
전방 십여 명이 우장을 휘둘렀다.
퍼퍼퍼펑!
구름처럼 풍성한 붉은 장력이 마인들의 몸을 후려쳤다.
장력에 맞은 마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누군가는 피를 토했고, 누군가는 가슴을 움켜쥐었으며, 또 누군가는 피풍의와 경갑을 마구 벗어던지며 피부를 긁어 댔다.
독룡신공의 성취는 비슷했지만, 각자가 주력으로 사용하는 독이 달랐다. 그래서 쓰러진 적들의 행동이 다 다른 것이다.
‘충분해.’
마공 역시 독공과 유사한 면이 있기에 독에 대한 저항력이 여느 무인들보다 더 강할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러나 독사적운과 독룡신장까지는 뚫지 못했다. 그간의 전투로 많이 지치기도 했을 것이다.
‘다 죽일 수 있다!’
그때였다.
후우우우우웅!!
황금빛 거대한 기운이 회오리치며 독사적운 중앙을 꿰뚫었다.
퍼어어엉!
폭음과 함께 독사적운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당패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어떻게!!’
내공 발경으로 독사적운을 날려 버리기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진기 밀도가 필요하다. 그 밀도 높은 진기를 독기가 이기지 못하고 모조리 파괴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 힘을 구사하려면 초절정고수가 최소 대여섯 명은 필요했다. 그것도 무종을 넘어 꾸준하게 진기 밀도를 올린, 비유하자면 구파 장문인급 고수가 다섯 이상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데 단신으로, 단 한 방에 독사적운을 날려 버리다니?
‘무극수?!’
그때였다.
“당가의 무사들은 모두 길을 열어라!!”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황제(黃帝)의 음성은 상상을 초월하는 위엄으로 가득했다.
당패는 저도 모르게 외진을 해제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저 위엄에 따라야 한다는 본능을 거부했다.
“누구냐!”
“싸우지 말고 길을 열어라! 어서!”
파사사삭!
당패 이전에 당악과 내진 이백 명이 먼저 진을 풀고 뒤로 물러났다.
당패가 이를 악물었다. 그야말로 놀라운 정신력이었다. 노구당원들도 의심 없이 받아들인 그 목소리에, 그는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는 누구요!”
“흑제성주 연호정이다!”
당패의 눈이 충혈되었다.
마인들 뒤, 거대한 도끼를 어깨에 걸친 채 달려오는 한 명의 청년이 보였다.
당패가 발작적으로 외쳤다.
“이게 무슨 짓이오! 설마 당신, 삼교와 손을 잡은 것인가!”
“닥쳐라!!”
분노 가득한 음성이었다. 당패는 물론 외진 삼백 인원 모두가 비틀거렸다.
분노를 넘어 살기까지 느껴지는 음성, 무림의 선봉장으로서 그냥 넘길 수 없는 오욕이었다. 그 자존심과 분노가 고스란히 실린 일갈이었다.
“가주가 나에 대해 말한 바가 있을 것이다! 당장 길을 비켜!”
그 순간, 당패는 출격 전 당관의 말을 떠올렸다.
‘민폐 덩어리인 개방 거지들의 말을 들을 필요는 없다. 의협으로는 누구 못지않지만 방식이 우리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조언은 듣되, 행동은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다만, 연호정 그놈의 말은 절대 허투루 듣지 말아라. 싸가지 없는 놈이긴 해도 삼교를 향한 증오와 선봉장으로서의 책임감은 중원 제일이라 할 만한 놈이다.’
‘믿을 만하다는 뜻이로군요.’
‘그래, 믿을 만하다. 어쩌면 무림맹주보다도 더.’
아무리 그런 대화를 나누었다 해도 이런 상황에서 연호정의 말대로 움직이기는 쉽지 않았다.
당패의 고민이 길어진 사이, 어느새 마인들은 이십 장 안쪽까지 들어왔다.
“개죽음당하지 말고 길을 열어! 놈들과 싸워선 안 돼!”
순간 당패의 눈이 번쩍였다.
단순히 길을 열라는 말보다 놈들과 싸워서는 안 된다는 말이 그의 각오를 굳혔다.
“나락독사진 전원 진을 해체하고 후방으로 물러나라!”
스스스스.
안 그래도 연호정의 언령에 물러나야만 한다고 생각하던 그들이었다. 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순식간에 뒤로 빠졌다.
함께 후방으로 빠지며, 당패는 풍도박혼진을 바라보았다.
왠지 풍도박혼진의 검은 막이 더 심하게 출렁거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빌어먹을!’
파바바박!
지쳐서 그런지 마인들의 돌진은 사왕단의 움직임보다 조금 느렸다.
그러나 사왕단원들은 섬뜩함을 느꼈다. 시뻘겋게 충혈된 두 눈을 부릅뜬 채 풍도박혼진으로 향하는 그들의 모습은 거대한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부나방과 비슷했다.
‘도대체 뭘 할 생각이냐!’
모두가 불안감 가득한 눈으로 풍도박혼진을 볼 때.
선두의 마인 하나가 몽롱한 목소리로 외쳤다.
“혈신강림(血神降臨)!”
“일심제신(一心祭身)!”
“혈신강림!”
“일심제신!”
뒤이어 울려 퍼지는 외침.
쩌렁쩌렁한 소리에 광기가 물씬 묻어 나왔다. 오백에 가까운 마인들이 한마음으로 외치는 그 목소리엔 상상키 힘든 광신이 가득했다.
와중에 처음 소리쳤던 마인이 풍도박혼진을 향해 뛰어들었다.
당패는 저도 모르게 외쳤다.
“안 돼!”
푸스스!
박혼진의 검은 막에 닿은 마인의 몸이 순식간에 쪼그라들다가 연기로 화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수많은 마인이 무언가에 홀린 듯 박혼진의 막을 향해 뛰어들었다.
푸스스스스스!!
뛰어들 때마다 연기로 화하는 마인 부대.
피가 터지는 것도 아니요, 팔다리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걸 바라보는 사왕단원들은 묘한 공포를 느꼈다.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기에 두려움이 찾아온다. 그것은 당패와 당악도 마찬가지였다.
타아아앙!
멀리서 날아온 연호정이 사왕단 앞에 섰다.
“그대들은 혹시 모르니 백 장 밖으로 물러나 대기하시오.”
당패가 소리쳤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연호정이 서늘하게 웃었다.
“광혈교주가 깨어날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