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25)
짱그라
헬로밤
25화갑진경장(甲辰更張) (3)
두 번째 패는 호조판서(戶曹判書)와 이조(吏曹), 공조(工曹)의 판서들을 중심으로 한 이들이었다.
“닷새 뒤에는 필기도구를 지참해야 할 것 같지 않소?”
호조판서의 말에 이조판서가 수염을 쓰다듬었다.
“필기도구까지 필요할까요?”
“반드시 있어야 할 거요.”
“겨우 아홉 살 아이의 정견 아닙니까?”
이조판서의 반문에 호조판서가 그 이유를 설명했다.
“물론 세자 저하의 연치가 겨우 아홉이기는 하오. 덕분에. 혹자(或者)는 세자의 모든 행동과 발언의 뒤에는 주상 전하가 계신다고 말하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세자는 하늘이 내린 천재요, 그것도 경악할 만한.”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있소?”
이조판서가 연유(緣由)를 묻자, 호조판서의 눈이 먼 곳을 향했다.
“몇 가지가 있소. 우선 주상 전하께서 세자저하에게 회초리를 들었던 날을 기억하시오?”
“그걸 어찌 잊겠소이까?”
“주상 전하께서 회초리를 들으셨다는 것은, 세자 저하의 기행(奇行)이 금시초문(今始初聞)이셨다는 것이오. 그렇기에 그렇게 대노(大怒)하셨던 것이오.”
호조판서의 말에 이조판서가 바로 반박을 했다.
“그것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소. 하지만, 그 외의 경우까지 모두 세자의 독자적인 생각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아니오? 세자의 나이를 생각해 보시오. 이제 겨우 아홉이오. 그날의 일은 어쩌다 걸린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겠소?”
“모르는 이라면 그렇게 생각하기가 더 쉽겠지. 하지만, 대감은 그 유명한 동궁전의 서재에 가봤소?”
“안 가봤소. 대감은?”
“세자가 책을 구해 달라 하면서 목록을 받아가라 하기에 갔었던 적이 있었소. 간 김에 그 서재에 들어가 서책을 봤는데, 책마다 손때가 잔뜩 묻어있었고,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는 문구에는 붉은색의 줄이 처져 있었소. 그것만이 아니오. 어떤 책에는 종이가 끼워져 있었는데, 그 종이에는 우리 조선에 도입할 때 어떻게 적용을 할지 잔뜩 쓰여 있었소. 그리고 그 필체는 주상의 것이 아니었지.”
호조판서의 말에 이조판서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 말인즉슨···.”
“우리는 진짜 무서운 이를 보고 있다는 것이오. 머리도 좋고, 거기에 실행력도 가지고 있으며, 권력까지 등에 업은 이를 말이오.”
“허어···.”
호조판서의 말에 이조판서는 감탄인지 한탄인지 알 수 없는 신음을 내뱉었다.
세 번째 패는 사간원과 사헌부의 젊은 관원들이었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생각이고 자시고 당장 상소부터 올려야 하지 않겠소? 세자의 나이 이제 겨우 아홉 살이요! 국정(國政)이란 것이 무엇이오? 나라를 움직이는 것이오. 그만큼 무거운 것이 국정인데, 겨우 아홉 살짜리가 무엇을 안단 말이오? 이는 주상이 우리 신하들을 농락하는 것이오!”
“하지만, 이 금필(金筆)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세자의 능력이 뛰어남은 인정해야 하지 않겠소?”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이 이 금필이오! 이 금필의 대량생산을 반대했어야 했소! 그 때문에 위로는 주상부터 아래로는 참봉까지 다들 재물만 생각하고 있으니, 통탄(痛嘆)을 금(禁)치 못하겠소! 이래서야 전조와 다른 것이 무엇이오? 우리 조선이 왜 들어섰는데!”
분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주먹까지 부르르 떠는 젊은 관원의 모습에 근처에 있던 이들은 다들 동조하는 듯이 보였다.
“어서 가세나! 빨리 가서 상소를 써야겠네!”
“그러세!”
그렇게 젊은 관원들이 우루루 움직일 때, 그 뒤에는 소수의 젊은 관원들이 따로 뭉쳤다. 그들의 대부분은 사초(史草)를 기록하는 춘추관(春秋館) 소속의 사관들이었다.
“이형, 어떻게 생각하시오?”
“장형, 잘 모르겠소. 내가 그동안 봤던 바로는 세자의 말이 잘못된 것을 못 찾겠던데···.”
막 편전에서 교대를 하고 나온 사관들의 대화에 옆에 있던 사관이 끼어들었다.
“사헌부와 사간원의 행태는 늘 보던 것 아니겠소? 지금도 마찬가지. 저렇게 트집을 잡아야 자신들의 이름값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오. 어서 움직입시다. 할 일이 밀려 있지 않소? 거기에 닷새 뒤를 생각하면 미리미리 준비도 해야 하고 말이오.”
“그럽시다.”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원들을 비판하던 사관들은 급히 춘추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내관들과 궁녀들이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 * *
신하들의 반응은 내관들을 통해 바로 세종에게 전해졌다.
“수고했다.”
상선에게 치하한 세종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어째 이리 꽉 막힌 이들만 있단 말인가?”
대신들의 반응을 들으며 세종은 깊게 한탄을 했다. 지금 신료들은 대놓고 시위를 한 것이었다.
‘만약 실제로 움직였다면 궁 밖에서 만났겠지. 아주 은밀하게 말이야!’
세종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본 상선이 재빨리 읍소를 했다.
“호의를 보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사옵니다.”
상선의 말에 세종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것인가? 하기야, 과인조차도 세자가 아홉 살이라는 것을 믿기 어려울 때가 많으니···.”
향의 뛰어남에 미소를 짓던 세종은 다시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젊은 관인들이 저리도 융통성이 없어서야···.”
세종이 가장 실망한 부분은 사간원과 사헌부의 젊은 관리들이 보이는 경직성 때문이었다.
영의정 일파 역시 딱딱하게 굳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동안의 경륜을 바탕으로 필요하다면 어느 정도는 탄력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문제는 저 젊은 관료들이었다. 그들은 성리학이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맹신(盲信)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성리학적으로 사고하고 성리학적으로 생활하는 것만이 정도(正道)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향이 추진하는 모든 것은 사도(邪道)라고 부르기에 충분할 수 있었다.
실제로도 그들은 그렇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나라가 거꾸로 가고 있다! 상업을 중시하다니! 전조가 왜 그렇게 망했는데! 무본억말(務本抑末)을 잊었단 말인가!”
“후우~.”
다시 한번 길게 한숨을 내쉰 세종은 한탄했다.
“인재가 없구나. 인재가 없어.”
태종에게서 양위(讓位) 받은 지 5년, 그리고 태종이 죽은 지 반년이 넘어가고 있었지만, 아직은 태종의 그림자가 짙었다.
왕좌를 이어받자마자 부분적으로 개각(改閣)을 했고, 대신들은 말을 잘 따랐다. 하지만 대신들의 눈에는 아직 애송이로 보이는 것도 잘 아는 세종이었다. 결국, 세종은 자신의 말을 잘 따르면서도 유능한 인재가 필요했다.
“그들을 부르기에는 아직 시간이 너무 이르고···.”
세종이 생각하는‘그들’은 황희와 맹사성이었다.
황희와 맹사성은 태종도 인정한 인재들이었다. 하지만 둘 다 태종의 왕권 강화 공작에 휘말려 위기를 겪었다. 결국, 중앙정계에 돌아오기는 했지만, 권력의 핵심으로 바로 끌어올리기에는 명분이 약했다.
“문제는 그들만으로 저 철부지들을 잘 제어할 수가 있느냐인데···.”
경직될 대로 경직된 사고방식을 가진 젊은 관원들을 떠올린 세종은 이마에 손을 얹었다.
“머리가 아프구나.”
세종의 말에 상선이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어의(御醫)를 오라 할까요?”
“그 정도는 아니네. 잠시 쉬면 나을 걸세.”
어의를 부르겠다는 상선을 만류한 세종은 아직 처결(處決)하지 못한 서류들과 상소문들로 시선을 돌렸다.
* * *
세종이 그렇게 골치를 앓고 있을 때, 향 역시 내관을 통해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로써 피아(彼我)구분은 어느 정도 된 건가? 그건 그렇고···.”
말을 흐린 향은 손가락으로 서안(書案)을 두들기며 작게 중얼거렸다.
“아직 조선 초기인데 벌써 탈레반 레벨이라니···.”
“저하? 뭐라하셨습니까?”
“혼잣말이다. 신경 쓰지 말아라.”
“예, 저하.”
내관의 입을 막은 향은 서안을 두들기며 고심에 빠졌다.
‘썅! 벌써부터 탈레반 레벨이면 어쩌자는 거야! 경복궁의 주춧돌 수준으로 단단하게 굳은 머리를 가진 이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젊은 관리들, 특히 사간원과 사헌부의 관리들을 상대할 생각에 아득해진 향이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향은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내관은 나가 있게.”
“예?”
“혼자 정리를 해야 할 것이 있다.”
“···예, 저하.”
내관을 내보내고 홀로 방에 앉은 향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썅! 눈치 안 보고 다 푼다! 우리 킹 세종이라면 그 안에서 잘 골라내시겠지! 그걸 시작으로 나머지는 내가 왕좌에 오르는 순간, 실행에 옮긴다! 못 쫓아오면 다 갈아버리면 되는 거야! 갈 놈은 갈고, 굴릴 놈은 굴리다 보면 알아서 돌아가겠지!”
결론을 내린 향은 백지를 펼쳤다.
“흐음··· 뭐 부터 시작해볼까?”
그렇게 향이 스위치를 넣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문밖에 서 있던 내관이 큰 목소리로 고했다.
“주상 전하 납시오!”
세종이 왔다는 소리에 향은 의자에서 일어나 옷차림을 살피고는 공손히 세종을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아바마마.”
“밤이 늦었는데 아직도 자지 않은 것이냐? 건강에 좋지 않다.”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잠이 문제겠습니까? 그리고, 소자보다는 아바마마의 건강이 더욱 중요합니다.”
“자식···.”
향의 대답에 흐뭇해진 세종은 향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고는 서안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깐 읽어봐도 되겠느냐?”
“예.”
하지만, 세종은 향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종이들을 들어 적힌 내용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향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대답도 하기 전에 읽을 거면 뭐하러 물어봐? 좌우지간 높으신 분들이란···.’
향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종이에 적힌 문장들을 꼼꼼하게 읽던 세종이 향에게 질문을 던졌다.
“세자야. 이 문장들 옆에 적힌 ‘?’나 ‘!’의 표시들은 무엇이냐?”
“서이(西夷)들의 문장부호입니다. 끝이 말린 ‘?’는 의문을 뜻하는 것이고, 끝이 곧추선 ‘!’의 경우는 감탄이나 놀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호오? 단순한 부호 하나로 문장의 뜻이 더욱 확실해지는구나! 흐음··· 그렇군, 그래···.”
문장부호가 의미하는 것을 알게 된 세종은 더욱 꼼꼼하게 종이들을 살폈다.
“아바마마. 앉아서 보시는 것이 어떠하신지요?”
“안 그래도 다리가 좀 아팠는데 그러자꾸나.”
향의 말에 반색하며 세종은 의자에 앉았다.
‘이 양반아, 살 좀 빼셔! 그렇게 줄넘기를 하는데 왜 아직도 피라미드 체형인 겁니까?’
비만 체형의 세종을 보며 속으로 투덜거린 향은 세종의 맞은편에 앉았다.
책상 위에 종이들을 죽 펼쳐놓고 앞뒤로 오가며 내용을 살피던 세종은 팔짱을 낀 채 종이들을 노려봤다.
“행정조직 개편, 지방 관직의 분화(分化), 조용조(租庸調)의 개혁, 토지제도 개혁··· 이거 단순한 정견(政見) 발표가 아니로구나?”
“제 정견은 참으로 간단합니다. 그 옛날 환웅(桓雄)께서 말씀하신 ‘홍익인간(弘益人間)’입니다. 성현들의 금과옥조와 같은 말씀도 결국은 같은 뜻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네 말이 옳다.”
향의 말에 세종도 동감을 한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왕도정치(王道政治)라 말은 하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왕부터 백성까지 평안하게 살자.’
“그러한 이치를 실제로 구현(具現)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제도는 미진한 부분이 많습니다. 이 미진한 부분을 고치고 고쳐서 왕실과 백성이 평안한 조선이 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좋은 꿈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네가 써놓은 것만 봐도 당장 정책으로 채택하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너의 나이 겨우 아홉, 이를 트집 잡으며 제대로 듣지 않으려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세종의 지적에 향은 어깨를 으쓱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제 나이가 이제 아홉인 것도 사실이옵고,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경륜(經綸) 역시 일천(日淺)한 것 역시 사실이옵니다.”
향의 대답에 세종은 혀를 찼다.
“쯧! 도(道)와 치(治)를 논함에 나이와 경륜을 우선하는 것은 성현의 뜻이 아니거늘…”
“덕분에 도움이 되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도움?”
“아바마마께 진정으로 도움이 될 이들을 가리기 쉬워지지 않겠습니까?”
“그렇구나!”
말과 동시에 세종과 향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부자간에 사이좋게 웃는 보기 좋은 모습이었지만, 만약 대신들이 봤다면 식은땀을 흘릴 장면이었다.
향의 대처에 홀가분해진 세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자거라. 애들은 일찍 자야지 잘 자라는 법이다.”
“예, 아바마마. 아바마마도 이만 침수(寢睡)에 드시지요. 아바마마께서 강건(康健)하셔야 이 조선이 평안하옵니다.”
“그러마.”
피식 웃으며 밖으로 나가려던 세종은 걸음을 멈추고 향을 돌아봤다.
“아! 지금 생각났다! 너의 발표에 참관인들은 당상관(堂上官, 정1품~ 정3품 상계까지.)은 물론이고 참상관(參上官, 정3품 하계~ 종6품까지.)까지 다 부를 것이다. 준비 잘 하거라.”
“예.”
“쉬거라.”
세종을 내보낸 다음, 향은 인상을 구겼다.
“썅!”
예상보다 스케일이 커졌다.
끝
ⓒ 국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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