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Haired U.S. Army Marshal RAW novel - Chapter (356)
357_백일 천하 (2)
괴벨스와 그 무리들의 선전선동은 정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독일인들 중 더 이상 괴벨스를 신뢰하는 이들은 사실 뼛속까지 나치 수준을 넘어 대뇌피질에까지 하켄크로이츠를 박아 놓은 골수 중의 골수가 아닌 이상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물론 밉살맞은 폴란드를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저 천하의 원수 프랑스를 발아래 무릎 꿇릴 때까지는 모두가 그 놀라운 업적을 찬양하고 히틀러를 신의 사자로 숭배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영국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항전을 이어나가고 있다.
소련을 물리쳐야 한다며 온 나라의 젊은 남자들을 죄 데려가 놓고선 어느 순간 ‘어디어디를 새로 정복했다’는 말이 전혀 흘러나오고 있지 않다. 이겼다는 말만 요란할 뿐.
사막의 여우라며 당장 이집트를 정복할 것처럼 떠들던 롬멜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조차 없다.
믿음직한 동맹이라던 이탈리아는 내란이 터져 나라마저 두 쪽이 되었다.
어두컴컴한 밤이 되노라면 저 서쪽에서부터 연합국의 폭격기가 떼로 몰려와 소중한 집과 공장에 폭탄을 떨어뜨려댔다.
그리고 수십 년 전 들었던 그 이름, 오이겐 킴의 검은 손길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나라 꼬라지 봐라.”
“배급이나 늘려주면 좋겠어.”
“매일 내 머리통 위에 폭탄이 떨어지지 않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 올리는 거랑 동부 전선에 자원병으로 나가는 게 더 살 확률이 높을까?”
“당연히 동부 전선이지. 거긴 미군 원수 괴벨스도 괴링도 없잖아.”
대체 이 빌어먹을 전쟁은 언제 끝난단 말인가?
독일 국민들은 지친 지 오래였지만, 차마 연신 으르렁대는 나치가 두려워 입 밖으로 그 불만을 표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영국군 50만 포위 섬멸!
다시 한번 파리를 향해 진격!
한동안 잠잠했던 대승리 소식을 저리 괴벨스가 까악까악대며 부르짖는 걸 보니 이겨도 보통 크게 이긴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용의 그림에 눈동자를 그리듯 다시 한번 괴벨스가 성명을 발표했다.
[아미앵, 마침내 제3제국의 품으로!] [대독일국의 자랑스러운 아들들은 간교한 악마 오이겐 킴이 이끄는 미군을 격파하고 마침내 아미앵에 입성했다.] [우리는 다시 한번 과학적으로 게르만족의 우수성과 아리아인이야말로 세계를 지배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였다! 최후의 한 걸음, 적의 완전한 파멸까지 앞으로 한 걸음 남았다! 국민들이여, 일치단결하여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자!]오이겐 킴의 요새, 아미앵 함락!
지쳐버린 독일인들조차 이 경이로운 소식에는 잠시 고개를 들고 눈을 반짝였다.
정말, 정말 이길 수 있는 건가?
그렇다면 이 전쟁도 곧 끝나는 것인가?
어느 순간부터 날마다 오던 폭격이 갑자기 뜸해지기 시작했는데, 정말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설마?
한편 괴벨스 또한 총통을 설득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었다.
“총통 각하. 국민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주셔야 합니다. 국민들은 각하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됐네.”
“각하…!”
“됐다니까!”
전쟁이 점차 불리해지면서 히틀러는 더 이상 연설을 하지 않게 되었다.
히틀러는 열차를 탈 때도 자동차를 탈 때도 두꺼운 커튼을 치거나 아예 야밤에만 이동했다. 공식적인 이유는 암살 위협 때문이라고 설명되었지만 총통의 측근들은 ‘폭격으로 엉망이 된 도시를 보기 싫어서’가 진짜 이유임을 다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아미앵 점령에 흡족해진 히틀러는 괴벨스에게 연설 준비를 하라 지시했고, 이 충직한 사내는 열과 성을 다해 사상 최대의 거대한 선동을 준비했다.
그런 그들의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미영 연합군은 괴벨스의 승리 발표 바로 다음 날 사상 최대의 항공력을 동원해 베를린에 뜨거운 사랑과 정열을 퍼부었다.
히틀러의 연설은 취소되었다.
여전히 베를린은 황폐했다.
***
아미앵 함락 소식은 무슨 대낮에 버섯구름 피어오르듯 전 세계를 강타했다.
솔직히 말해서, 조금 과소평가했다.
물론 내가 기자들 만날 때마다 맥주 안주로 나온 볶은 땅콩 까먹듯 입만 열면 아미앵이 어쩌고 하면서 아미앵의 인지도와 어그로를 백 점 만점에 백사십 점으로 만들어놓긴 했지.
근데 그래도 그렇지, 내 입지가 이 정도였다고? 조금 많이 당황스럽거든요?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총사령관!”
“자자. 분노는 고혈압의 원인이 되고, 고혈압은 심신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일단 차분하게 릴랙스, 릴랙스-”
“헛소리하지 말고!”
샤를 드골은 틀림없이 정치인이면서도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 으음, 아직 정치 입문한 지 얼마 안 되셔서 그러시는구나. 조금 더 뻔뻔해지셔야 합니다.
자, 잠시 진정하고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아미앵은 지금까지 토미, 양키, 제리, 잽스, 빠게뜨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적의 유저들에게 사랑받는 곳이었습니다(캉브레를 선호하는 분들을 제외하면 말이죠).
문제는 아미앵의 인기가 넘사벽인 나머지 다른 전장의 선호도가 매우 떨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특급요리사 유진 킴과 연합군 총사령부는 서부 전선의 문제점을 단순하게 해결하기보다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균형을 맞추고자 합니다.
우리는 아미앵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대신, 소속 단체를 미군에서 독일군으로 변경할 겁니다.
물론 아미앵의 전략적 가치는 그대로이기에 기존 유저들에게 영향은 적겠지만, 아미앵을 사랑하던 분들에겐 이제 조금 더 ‘까다로운 선택’이 필요하게 될 겁니다.…
“아미앵이 함락당했단 소식이 퍼진 직후, 내가 파리를 안정시키기 위해 얼마나 용을 썼는지 아시오?”
“물론 제 변경된 전략을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전 대통령 각하를 믿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웃지 마시오. 한 대 때리고 싶으니.”
“허허허. 이거 한 대 피우시고 노기를 가라앉히시지요.”
나는 예전에 드골에게 선물받았던 그 뭐시기 프랑스 담뱃갑을 꺼내 두 개비를 뽑아 들었다.
“그 와중에 한 갑 챙길 시간은 있었고?”
“챙기다니요. 제가 프랑스를 너무너무 사랑하는데 시간이 왜 필요했겠습니까. 항상 준비되어 있는 걸요.”
“기가 막혀서 원.”
나의 혼신의 프레젠테이션은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아미앵에 독일군을 밀어넣는다.
거대한 포위망을 만든다.
두들겨 팬다.
???
PROFIT!
처음엔 시큰둥한 기색이 역력하던 드골의 얼굴은 내 발표가 진행되면서 점점 상기되고 있었다.
“이 계획대로만 된다면 독일군도 끝장이겠군. 올해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독일이 무너지겠어.”
“그럴 리가요.”
“그게 무슨 말이오. B집단군을 포위해 섬멸하면 저놈들에게 남은 병력이 뭐 얼마나 있다고?”
“저는 저 미치광이들이 고작 집단군 하나 섬멸되었다고 순순히 백기를 들 거라곤 전혀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항복하면 다행이겠지만.”
“고작? 고작이라고?”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절대 항복 안 할 겁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최후의 한 명까지.”
원 역사가 증명하지 않는가.
지난 1차 세계대전 때와 달리, 연합국은 절대 ‘협상’ 따위를 통해 이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다. 독일을 완벽하고도 철저하게 굴복시키지 않으면 2~30년 뒤 또 똑같은 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르잖은가.
그리고 독일 또한 그때와는 다르다.
카이저와 융커 대신 희대의 정신병자 집단인 낙지 새끼들이 나라 전체를 새까맣게 물들인 상황.
“아미앵을 허무하게 내준 건 무척 당황스럽고, 프랑스의 국가 수반으로서 결코 좌시할 수 없지만-”
“거 불가항력이었다니까요. 거기서 미군 수십만이 갈려 나갔어야 만족하셨을 겁니까?”
“독일 놈들을 훨씬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다는 점은 내 마음에 쏙 드는군. 그래서, 프랑스가 장군을 위해 뭘 해주면 되겠소?”
“프랑스 육군 제1군은 언제쯤 실전 투입이 가능해집니까?”
“아아. 누가 기름과 탄약을 빼앗아가는 바람에 조금 시간이 걸리는군.”
와. 정말 쪼잔해. 쫌팽이야 쫌팽이.
좀 저처럼 마음씨 넓은 대인이 되실 수 없습니까?
***
누가 유럽짜장 아니랄까 봐, 프랑스인이 옹졸한 건 정녕 종특이란 말인가?
아미앵 함락 이후 나는 정말이지 배 터지게 세계구급으로 욕을 먹고 있었다.
쓰러진 이후 퇴물이 되었다는 둥,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둥, 사실 그동안이 다 거품이었다는 둥.…
더 떠들어라. 더.
당연한 말이지만, 저 승냥이 같은 언론의 찌라시들은 각국 정부와 연합군 당국이 반쯤 방임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
적을 속이려면 먼저 아군부터 속여야 하는 법.
나는 최대한 ‘돔황챠!! 독일군이 너무 막강하닷!!’ 하고 온갖 엄살을 떨어대며 정말 아미앵을 어쩔 수 없이 상실한 것처럼 필사의 할리우드 액션을 벌이고 있었다.
갑자기 히틀러가 자다 일어나서 ‘아미앵은 함정이다! 전군을 물려라!’ 해버리는 순간 나는 별 뾰족한 재미도 못 보고 명성만 깎인 멍청이가 되지 않는가. 도박장에서 호구를 위해 열심히 돈을 잃어줬는데 호구가 벌떡 일어나버리면 나만 새 되는 것과 똑같다.
“총사령관님!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아미앵이 함락되었는데 어째서 장군께선 말이 없으십니까?!”
“해명을 부탁드립니다!”
“파리는? 파리는 안전합니까?”
“물론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파리는 그 어떤 도시보다 안전합니다. 시민 여러분들께선 저를 믿고 생업에 종사해주시기 바랍니다.”
난리도 아니구만.
“몽고메리 장군이 킴 총사령관의 전략전술에 많은 문제가 있으며 이번 패배는 정해진 일이었다고 논평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아잇 씨ㅂ- 크흠. 답변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장군님! 장군님!!”
아주 개판이야 개판. 내가 저 꼴을 만들긴 했지만 어째 배알이 살살 뒤틀리는구만.
베르사유의 총사령부로 돌아와 완전히 기자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뒤에야 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자. 작전 준비는 잘되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독일군은 확실히 끝장날 겁니다.”
“다들 표정 관리 똑바로들 하시고. 기자들에겐 항상 다 죽어가는 면상으로, 세상 다 산 것처럼 구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좋아. 역시 다들 스페셜리스트들이야.
“군수사령관?”
“예.”
“다시 한번 강조드리겠습니다. 다가오는 추수감사절엔 연합군 전 장병이 1인 1칠면조를 뜯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그렇게나… 중요합니까?”
“당연하지요.”
아니, 그 끔찍한 짬밥 먹고 살던 한국군도 명절엔 병아리 사이즈긴 해도 삼계탕 받았다고.
롬멜 때려잡을 때도 그랬지만, 원래 군대에선 먹을 거 잘 나오는 게 최고의 사기 관리 수단이자 정신공격이다. 포위망 안에 처박힌 독일군 친구들도 우리가 제공해주는 칠면조를 먹으면 참 좋겠는데. 포로수용소에서.
그리고 마침내.
– 적의 강력한 저지선을 뚫고 알렉산더 원수의 영국군 제21집단군이 칼레 근방에 도달했음.
– 아미앵을 점령한 독일군 B집단군이 영국군의 측후방을 노리고 있음. 미 육군이 측면을 엄호하며 아미앵의 적과 교전 중.
– 패튼이 이끄는 제7군, 메츠 함락에 성공. 다음 지시를 요청.
– 미 육군 제6집단군, 북상 개시. 패튼이 점령한 메츠를 인수한 후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를 공격할 예정.
결국 전쟁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뿌요뿌요와 다를 게 없다.
꾸역꾸역, 게임 터지기 직전까지 착실하게 뿌요를 쌓아 놨다가 한번에 다 콤보 격발하면서 빠요엔 빠요엔 빠요엔 하고 끝없이 날려줘야 이길 수 있지.
모델 같은 괴물을 상대하는데 깔짝깔짝 잽만 날려보냈다간 무슨 꼴을 당할지 어떻게 알아?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류 게임의 끝은 항상.
[“사상 최대의 포위망” 유진 킴의 대전략, 마침내 시동!] [“아미앵은 독일군을 위한 무덤이 될 것.”] [“아미앵에 집착하는 이들은 별 달고 있을 자격 없어.” 끝없는 질타!]인성질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