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Haired U.S. Army Marshal RAW novel - Chapter (485)
486_반짝이는 것은 모두 금이다 (2)
SF라는 장르는 아직 메이저의 반열은 절대 아니다. 조금 거칠게 따지자면 애들이나 보는 이야기 취급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애들이 많이 보니 경제적 잠재력이라도 크다고 보이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아직 서점이 망하긴커녕 떵떵거리며 장사하고 있는 시대지만, 그 서점에도 단행본 SF 서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SF는 대부분 원 역사의 만화 잡지처럼 잡지 형태로 발간되어 나오고, 가물에 콩 나듯 나오는 단행본 책 또한 대부분 잡지에 실렸던 작품을 윤간해서 판매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샌―프랑코가 어떤 곳이냐. 어린이와 어른이의 지갑을 터는 일에서는 세계 최강이라 할 수 있는 어벤저스 아닌가? 스톤을 다 모은 타노스를 물리칠 순 없지만 그놈에게도 어린아이가 있다면 우리 고객님으로 만들 자신감이 그득한 곳이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는 SF라는 장르가 문학성이 있는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런 건 교수님들이나 문인들이 따져야지.
우리의 관심사는 오로지 하나. 팔아먹을 만한 매력을 가지고 있느냐, 다.
그런 점에서 김치맨의 민속놀이는 완벽한 컨텐츠였다. 세상에. 무주공산이라니까? 우주를 배경으로 뭐 하나 비슷한 면이 없는 종족들이 신나게 치고받는다니. 1990년대의 학생들도 미치게 만든 간지가 지금 이 시대에 안 먹힐 리가.
내 입으로 말하기 그렇지만, 사실 샌―프랑코는 남자애들을 공략하기에 가장 적격이던 전쟁놀이 완구를 팔아먹기 껄쩍지근한 입장이었다.
오직 한 우물만 판 인생 50년, 세계에서 가장 사람 많이 죽인 군인이 회사를 갖고 있지 않은가?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도의적으로 팔아먹기엔 좀 그랬다. 당장 창고에 남아도는 그리스건을 아동용 완구로 개조해서 팔아먹자는 광기의 제안도 내 선에서 커트했었다고.
하지만 퓨―쳐가 배경이라면 거리낄 게 없다. 음. 아주 좋아.
소설과 만화, 그림책을 팔아치운다.
처럼 라디오 드라마로도 만들어 팔아먹는다. 흥하면 또 디즈니와 협업해 극장용 애니메이션도 만든다.
완구를 만들고, 카드게임도 만들고, 보드게임도 만들고, 미니어처 게임도 제작한다. 아무튼 구매 욕구를 자극할 만한 건 죄 만들어 팔아먹는다. 이미 우리는 카드게임 하나 잘 만들어서 수십 년에 걸쳐 징글징글하게 우려먹은 전적이 있다.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진정한 선구자인 셈.
굳이 당면한 문제가 있다면 내 글솜씨겠지만, 그것도 상관없었다. 방정환은 떠났지만 그 거대한 크리에이터 집단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 이래서 사장이 좋은 거다.
선거가 끝난 뒤.
나는 필사적으로 기억을 되짚어 짜낸 민속놀이 초안을 본사에 던졌다.
“SF입니까? 흥미롭군요.”
“일단 히트만 칠 수 있다면 다양한 장난감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반응은 꽤 긍정적이었다.
“어떻습니까. 회사의 주력 먹거리가 될 만해 보입니까?”
“사운(社運)을 걸고 도전하기에는 살짝 우려의 여지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저희 임직원들은 무척 재미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허허. 저야 일개 고문에 지나지 않는데 어떻게 사운을 걸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이 시대에 컴퓨터 게임을 내놓을 순 없다.
그러니 첫 스타트는 ‘얼마나 이 세계관을 잠재 고객들에게 각인시키느냐’가 되겠지.
“우선 가장 기본적으로는… 역시 소설과 카드 게임을 발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홍보에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제 이름을 팔면 얼마나 홍보가 되겠습니까?”
“…생각하기 두려워집니다만.”
“형, 돌았어?”
크헤헤헤. 동생아. 남자는 원래 자기 이름 석 자에 책임을 져야 한단다.
나는 쓱쓱 손을 비비며 오랜만에 두뇌를 풀가동시키기 시작했다.
“킴 장군께서 제공해주신 설정과 시놉시스를 기반으로 저희 사내에서 소설을 쓰되, 대중의 주목을 끌기 위해 장군님 명의로 발표를 하잔 거군요?”
“그렇습니다.”
“문제없겠군요. 사실 그동안 이 회사를 경영하던 사람 중 장군님 이름을 팔아볼 생각 안 한 사람이 드물 겁니다.”
윽. 머리, 머리가 아프다.
내 머릿속에서 순간 어떤 초콜릿 바가 떠오르는 것 같았― 내가 뭘 생각하고 있었지? 별일 아닐 거야, 아마.
내가 번뇌하는 동안에도 유신이를 포함한 경영진이란 놈들은 마침내 봉인을 풀고 유진 킴이란 브랜드를 사골까지 우려먹을 생각에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캐치프레이즈 벌써 나왔군요. ‘우리 세계 최고의 전쟁 전문가가 예측하는 미래.’ 어떻습니까?”
“임팩트가 부족하군요. ‘이게 미래다’ 정도면 어떨지?”
“제품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대대적으로 서평을 받을 준비도 갖춰야겠습니다.”
“뭔가 좀 심심한데요.”
내가 툭 던지자, 다들 호두까기 인형처럼 대가리를 끼기긱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무섭게시리 왜들 그래.
“혹시 좋은 방안이 있으십니까?”
“안 사고는 못 배기게 합시다. 크리스마스 선물용으로 판촉을 한다거나―”
“그야 물론이지요.”
몇 가지 방법을 더 제시해 보았지만, 사실 전쟁터만 돌아다닌 나보다 이 사람들이 장사에는 훨씬 전문가 아니겠는가.
고심 끝에 나는… 이 한 몸을 바치기로 결정했다.
“상품에 경품권, 그러니까 복권 같은 걸 넣을 수 있겠습니까?”
“복권이요?”
“예.”
“그러면 법령을 확인해 봐야 할 듯합니다만―”
“물건보단 이거 어떻습니까? 저나 유신이가 직접 당첨자들과 함께하는 행사를 진행하는 겁니다. 방 이사만큼의 파괴력은 없겠지만, 그래도….”
갑자기 장내가 조용해졌다.
모두가 심각하게 고민에 빠진 가운데,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밀러 씨였다.
“킴 장군님.”
“왜 그러시죠?”
“장담컨대, 애들이 문제가 아니라 사재기하려는 놈들이 미쳐 날뛸 것 같습니다.”
“그거 아주 좋군요.”
아무튼 돈이 벌린다 그거지?
그럼 이 한 몸 불태워 윌리 웡카가 되어주마.
* * *
존 밀러의 아들, 존 밀러 주니어는 최근 바빴다.
그가 다리 한 짝을 잃고 고향 캘리포니아로 돌아오자 그의 모친은 곧바로 실신했고 아버지 밀러는 그를 쓰다듬으며 “살아왔으면 됐다, 살아왔으면.” 만 연신 중얼거렸다.
그가 나라로부터 받은 것은 훈장.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이 상이용사 훈장을 도입한 건 우유 원정군 사건으로 정계 태풍의 눈으로 도약한 더글라스 맥아더였다.
그리고 G.I. 법안을 통한 퇴역 군인으로서의 연금과 금전적 지원, 아울러 상이군인의 재활 및 의료 지원이 제공될 예정었으니 이 또한 맥아더 정권의 핵심 치적 중 하나였다.
지원이 꼭 국가로부터만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샌―프랑코만 하더라도 재향군인을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신규 채용을 약속하였고, 특히 상이군인을 우선적으로 채용하겠노라고 공언하였다.
밀러 주니어 또한 당연히 아버지가 회사의 중역인 만큼 입사할 수 있었지만, 그는 바로 그 때문에 입사를 거절했다.
그 대신 꿩 대신 닭이랄까.
“지점 문의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역시. 해군 출신치고 아이스크림에 환장 안 할 사람이 없다니까.”
그는 헨리 킴과 함께하는 길을 선택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럴 생각은 없었다. 그랬다면 차라리 얌전히 샌―프랑코에 입사 지원서를 냈겠지.
하지만 유색인종 혼혈에 다리 한 짝까지 없는 그는 쉽사리 취직하지 못했고, 우연히 법적 자문을 위해 밀러를 찾아왔던 헨리가 방구석에 박혀 있던 그를 설득해 이 에 합류시켰다.
당연한 말이지만, 김가의 장남이 처음으로 사업을 하는데 주변에서 훈수가 없을 리 없다.
유신 킴은 바빠 죽는 와중에도 종종 찾아와 사업계획서나 전반적 경영 상태를 한번 훑어주곤 했고, 심지어 위대한 전쟁영웅 유진 킴마저 괜히 가게를 기웃거리지 않던가. 뭐 하나 떠들 거 없나 싶어 입이 근질근질해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다던데.
하도 어려서부터 엮인 탓에 가끔 헨리가 다이아 수저라는 걸 잊곤 했지만, 일을 시작하자 이 사실을 체감할 일이 훅 늘었다.
“일은 잘되어 가니?”
“네. 하루하루 재밌어요.”
“그래. 잘됐다. 언제쯤 더 외형적으로 크게 튀길 수 있을 것 같으냐?”
“네?”
집에서 가족끼리 저녁을 먹던 와중, 아버지는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내실도 좋지만, 일단 덩치부터 키우고 봐.”
“혹시 뭐 이유가 있나요?”
“왜긴 왜야. 그 아이스크림 업체가 잘되면 샌―프랑코에서 인수할 속셈이니 그렇지.”
“아니, 이걸 왜요?!”
“그 웃기게 생긴 펭귄을 인수하고 대금은 전부 샌―프랑코 계열사 주식으로 줄 거니까. 잡음 안 나오게 최대한 회사의 가치를 튀길 수 있는 방향으로 좀 해보는 걸 추천한다. 아, 이건 아빠 의견이 아니라 샌―프랑코 법무 쪽 의견이란다.”
아.
상속이구나.
하여간 부잣집 놈들이란. 갑자기 배알이 아파져 왔다. 혹시 빨갱이들이 정답을 알고 있던 게 아닐까? 그들이 핍박받는 이유가 순전히 진실을 알았기 때문이라면?
“도련님 잘 모시고. 너도 꼭 챙겨 달라고 신신당부하더라.”
“저, 저요?”
“그래.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던 너 끄집어내줘, 한몫 챙겨 달라고 부탁까지 해, 상하관계나 은혜 그런 걸 떠나서 그만큼 올곧게 자란 분도 드물어. 킴 장군님도 그렇지만―”
“세상에!”
역시 비열한 빨갱이들 같으니. 자유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모르는 그 러시아인들은 평화를 파괴하려는 침략자가 틀림없다. 내가 누구? 샌―프랑코 주식 오우너. 세상에. 입안에 굴리면 굴릴수록 달달해지네.
그렇게 기쁨의 댄스를 출까 말까 고민하던 와중, 밀러 주니어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 사람이 있었다.
“앨리스는요?”
“응?”
“앨리스 걔 성격에 가만히 있진 않을 거 같은데.”
“킴 장군님이 전담 마크하기로 했다.”
“장군님이 마크를요?”
10분도 되지 않아 격침당할 딸바보가 연상되는데.
하지만 밀러는 걱정도 팔자라는 듯 피식 웃으며 스푼을 휘저었다.
“네가 맨날 애들한테 허허거리는 장군님만 봐서 그렇지, 원래 킴 장군 전공은 그 아가리질이야. 한번 당하기 시작하면 어어 하는 순간에 인생까지 통째로 베팅하고 평생 따라가게 된다고.”
“어조가 굉장히 자전적이신데요.”
“그렇지. 93사단에서 코가 꿰여버려서 이 나이 먹도록 이러고 있잖니.”
어떤 이들은 유진 킴 또한 위선자라고,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흑인들을 써먹었을 뿐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밀러는 그들의 그 히스테릭한 반응을 이해는 할지언정, 그들과 함께할 순 없었다. 유진 킴이라는 인물이 어디 흑인들을 끌어들이지 않았다고 해서 출세를 못 했겠나? 본인이 그걸 몰랐을까?
미래를 열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의 옛 사단장은 끊임없이 저 두툼한 차별의 성벽을 두드리고 있으리라.
다른 이들은 몰라도, 저 프랑스의 진흙탕과 아미앵의 지옥도가 그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한 밀러는 믿음을 꺾을 수 없었다.
“아무튼 너는 네 할 일만 똑바로 하기나 해. 괜히 민폐 끼치지 말고.”
“예에.”
* * *
밀러 가족이 저녁밥을 챙겨 먹기 전.
워싱턴 D.C.는 캘리포니아보다 저녁이 빨리 닥치는 관계로, 펜타곤 인근의 한 고급 식당엔 사람들이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바, 바, 반갑습니다. 도경 킴이라고 합니다.”
“아버지께 말씀은 많이 들었어요. 앨리스 킴입니다.”
도경이 가슴속으로 인생 헛살지 않았다, 역시 대원수님은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며 만세 삼창을 외치고 있을 때.
앨리스는 팔근육에 힘을 바짝 주고 힘껏 고기를 썰었다.
이번이 일곱 번째. 이것만 끝내면 기나긴 시련이 끝난다. 헤라클레스처럼 과업이 열두 개가 아니라 차라리 다행인가.
도로시 여사의 시집 좀 가라는 잔소리가 이제 집에서 썩 나가라는 소리로 진화해버렸다. 아빠는 어떻게 애교라도 떨어서 넘길 수 있지만 엄마는 무섭다.
‘아빠가 좀 도와줄까?’
‘제발 엄마 좀 말려줘요. 썩 안 가면 엄마 친구 아들 중에 한 명 골라서 그냥 보내버린대요.’
‘아빠 부탁을 좀 들어주면 반년은 너희 엄마가 잔소리 못 하게 막아주마.’
‘1년.’
‘안 돼. 반년.’
‘부탁 좀 들어달라는 거 보니까 저 아니면 안 될 일인 것 같은데, 1년은 해주셔야 하지 않아요?’
‘나더러 도로시를 1년씩이나 막으라니.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단다. 차라리 스탈린이랑 한 판 붙고 말지.’
그 대가가 이거였다.
아니, 해도해도 너무하지. 어떻게 군인만 일곱 명을 소개해준단 말인가? 전역한 군인이든 현역 군인이든 결국 다 군인 아닌가?
앨리스는 또 속았다.
애초에 거세진 도로시의 잔소리부터가 유진의 청탁 때문이었음을 알았다면, 그녀는 아마 아빠를 향해 라이플을 갈겼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