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Haired U.S. Army Marshal RAW novel - Chapter (70)
70_백일 전투 (6)
이즈음 완성된 독일군의 방어전략은 대단히 치밀하고 목적이 뚜렷했다.
최전방의 방어선은 어차피 적이 공세를 시작하는 순간 어마어마한 포탄 세례에 직면한다.
따라서 구태여 최전방에는 많은 병력을 둘 필요가 없으며, 적을 저지할 정도로만 병력을 배치하고 그들조차 언제든지 두 번째, 세 번째 방어선으로 물러날 채비를 한다.
적이 최전방 방어선을 점령할 때쯤이면, 보병의 진격 속도를 포병이 따라잡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아군은 적 포병의 위협에서 해방되며, 오히려 미리 좌표 다 따놓은 ‘한때 우리 것이었던 참호’ 안에 그대로 화력을 집중해 포격을 때린다.
그리고 전투의 현황은 명백히 독일군의 의도에 가깝게 전개되고 있었다.
이 꼬라지를 보고도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전공에 미친 놈은 아니었기에, 나는 결국 한참 담배를 뻑뻑 피우며 고민하다 눈 딱 감고 사령부 지휘실로 찾아갔다.
저놈들이 내 말을 들어처먹든 안 들어처먹든, 이 상아 그립 권총이 불을 뿜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의 어처구니없는 공세는 어떻게든 손 볼 작정이었다.
사실 이 정신나간 공세의 책임소재를 계속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퍼싱 장군에까지 도달한다.
왜 참모부가 저렇게 날뛰는가? 당연히 퍼싱도 한편이니까지.
물론 퍼싱 장군에겐 받은 게 많다.
이 화려한 진급은 애초에 퍼싱이 적당히 옐로 몽키 하나 구석에 짱박기로 했다면 이루어질 수도 없는 일이었고, 나 개인적으로는 나중에 퍼싱 장군 휠체어를 미는 한이 있더라도 갚아야 할 게 많다.
하지만 그도 결국 19세기형 구식 교리의 신봉자였다.
미군 1개 사단이 2만 8천 명이라는 초거대 집단인 것도, 그놈의 소총화력 맹신도 내가 보기엔 병사들을 불구덩이에 집어넣는 미친 짓이다. 최고 사령관의 의사가 그러하니 참모들도 이를 따라간다.
두 번째 인생을 살면서 내가 어렴풋이 책 속 지식으로 알던 것과 실제 인물이 달랐던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에, 나는 무심코 퍼싱 또한 결점 없는 완벽한 군사영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그렇다면 바로잡아야지.
입으로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떠들어도 몸은 결국 유교맨이 될 수밖에 없는 뻐킹 김치맨이라면, 모름지기 윗사람이 개소리를 하면 같이 짖어서라도 뜯어말리는 게 참된 도리인 법.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보다 먼저 깽판을 부리는 인간이 있었다.
“대체 당신들이 그 비싼 짬밥을 먹고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군.”
“맥아더 준장! 그 모욕, 당장 번복하시오!”
“모욕이라니. 죽은 병사들의 유언을 채증하면 아마 똑같은 이야기가 나올걸? 혹시 병동에는 가보셨소? 아 미안하오. 가봤자 별 이야기 못 들을 거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 병사들이 병동으로 오지도 못한 채 길바닥에서 죽어가고 있거든.”
그 어느 때보다 시니컬하게 쏘아붙이는 이 인간 때문에 참모부의 분위기는 이미 시베리아로 변해 있었다.
“그거 아시오? 생미이엘 전투 직후, 메츠는 텅텅 비어 있었소. 도대체 왜 메츠를 치지 않고 저 빌어먹을 언덕으로 향한 게요?”
“그야 당연히 연합군의 대전략을 일개 사단급에서 멋대로 변경할 수 없기 때문이죠.”
“멋대로? 멋대로라고? 뫼즈-아르곤을 치는 목적이 뭐였나? 스당을 점령하기 위해서였지! 거기 철도망이 있으니까! 하지만 메츠를 함락시켜도 적 철도망의 붕괴라는 결과는 똑같이 얻을 수 있단 말이야! 당신네 책상물림들이 벌인 이 참극을 보라고!”
“대체 메츠를 함락할 수 있었다는 그 근거 없는 자신감도 이해할 수 없지만, 당신만 잘났다고 생각하진 마시오. 우리는 어디까지나 연합군의 일부고-”
“후. 됐소. 책상만 아는 당신들과 할 이야기는 없으니. 퍼싱 장군은 어디에 계시오? 내 답답해서 안 되겠군. 직접 말씀을 드리든가 해야지.”
“여기에 없으니 내게 말하시오.”
드럼 참모장의 차가운 말에 맥아더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당신이 지휘관이오? 이건 예하 지휘관과 상급부대 지휘관의 이야기란 것도 인지를 못 하셨나?”
“퍼싱 장군은 지금 쇼몽에 내려가셨습니다. 그분이 자리를 비웠으니 참모장인 내게 말하라는 게 인지가 어쩌고 하면서 그리 거창하게 이야기할 일입니까? 정 그분 얼굴을 보고 싶거든 쇼몽까지 가시지요.”
아냐 그러지 마.
작은 맥가를 그렇게 긁으면 더 흉폭해진다고.
내 소박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이미 맥아더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딱 봐도 자존심 긁혔다, 저거.
“잠깐잠깐. 두 분 모두 진정하시고,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될지요?”
“넌 또 뭐- 아, 킴 장군. 킴 장군도 이미 시행 중인 작전에 불만을 제기하시는 겁니까?”
거참 띠껍게 굴기는.
“작전안이 성경도 아니고, 결국 최고의 전과를 위해서는 수정 좀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 겨우 첫 날인데 수정을 했다간 더더욱 일선이 혼란스러워집니다. 몽포콩 하나 점거 못 했다고 그러시오? 좌익과 우익은 잘 전진해나가고 있소.”
“제가 시찰하고 왔을 땐 꽤 시끄러웠는데-”
“시찰? 지금 남의 부대가 있는 곳을 돌아다녔단 말이오?”
드럼이 기함했다.
아 왜 그래, 궁금하면 구경 좀 갈 수도 있지. 사직아재가 마산 가는 것처럼 어··· 원정관람 같은 거 아니겠나. 내가 뭐 빠따를 치겠다고 하지도 않았고 그냥 구경만 했다고 구경만.
“잡설은 이쯤하고, 현재 전황을 보면 몇 가지 요청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일단 말이나 해보시오.”
“현재 적의 포대가 아직 제압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다른 건 모두 차치하고서라도, 항공기를 최대한 동원해서 우선 저 고지에 있는 망할 포대부터 치워야 합니다.”
나는 몇 가지 떡밥을 툭툭 던졌고, 드럼 참모장은 씨근덕거리는 상태에서도 일단 묵묵히 내 말을 들어주었다. 다행히 맥가 역시 괜히 쓸데없는 말을 더해 그의 분노를 돋우지는 않았다.
소총맹신이든 뭐든, 어차피 남의 부대 사단장인 내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는 없다.
다만 전략적 우선순위 정도에는 참견을 좀 해도 되겠지.
드럼이 잠시 고민하며 무어라 말을 하려던 순간이었다.
“보고드립니다!”
“말하게.”
“아군 경전차여단, 적의 강력한 반격에 직면! 패튼 여단장, 전사!”
뭐?
무슨 소리야.
“패튼이 죽었다고? 그 광전사가?”
맥아더 역시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패튼이 죽을 리가 없다.
당연하지만 패튼이 제대로 유명세를 타는 2차대전까지는 수십 년은 족히 남았다.
그러니 당연히 저건 오보겠지.
근데 만약에 내가 역사를 바꿨다면?
그 나비효과로 패튼이 죽었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여단의 상태는? 작전 지속이 어려운가?”
“그 점은 추가 보고를 들어야-”
“오보, 가 틀림없습, 니다.”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패튼 선배가 죽을 리가 없잖습니까.”
“킴 준장. 진정하십시오. 두 사람의 친분은 익히 알고 있지만 전장에서-”
아니, 누굴 지금 멘탈 나간 놈으로 취급하고 있네.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요. 그 사람은 히틀러 수급을 따러 갈 양반인데 죽긴 왜 죽어.
“유진. 당혹스럽겠지만.”
“아니 안 죽었대니까요?! 그 미친 중세 기사가 죽기는 왜 죽어?”
답답해 돌아버리겠다!
여기서 내가 ‘사실 제가 미래를 아는데 패튼은 아직 죽을 팔자가 아닙니다’ 같은 소릴 했다간 곧장 정신병원에 들어가겠지. 숨이 턱턱 막히네 진짜.
나는 최대한 이성적으로 말을 하려 했지만, 이 인간들은 도저히 사람 말을 들어주질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곧 새로운 보고가 들어왔다.
“보고를 정정합니다. 패튼 여단장의 생존이 확인되었습니다. 중상으로 현재 후송 중입니다.”
“거봐요! 그 인간 안 죽는다니까?!”
어쩐지 참모부에 있던 사람들이 죄다 뜨뜻미지근한 눈초리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인간들. 하나같이 내가 친한 선배의 부고를 듣고 멘탈이 단단히 깨졌다고 생각하고 있겠네.
“자자. 여기 따뜻한 차 한 잔 드릴 테니 우선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시지요.”
드럼 참모장은 조금 전까지 틱틱대던 B사감이었던 주제에 갑자기 조카를 걱정하는 삼촌에라도 빙의되었는지 내게 차 한 잔을 건네주고는 반강제로 날 내보내버렸다.
결국 제대로 된 작전에 대한 논의는 하지도 못했다. 여기선 맥아더를 믿을 수밖에.
그렇게 나를 내쫓은 맥아더와 드럼은 다시 어메이징한 입씨름에 돌입했지만 이미 거기에 내가 끼어들 자리 따위 없었다.
하, 그놈의 오보만 아니었어도 진짜.
역시 살아서건 죽어서건 사방에 민폐를 흩날리는 민들레 같은 양반이다. 나중에 문병 가서 놀려주기나 해야지.
***
퍼싱을 위시한 쇼몽 참모부는 전략을 수정하지 않았다.
대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부대를 더욱 쪼았다. 끔찍한 일이다.
그나마 내가 이야기했던 것 중 아르곤 구릉지대에 있던 포대 제압 정도는 실현되었다. 마침내 지긋지긋한 포탄 세례에서 벗어난 미군은 더더욱 공세를 가열차게 전개해 무수한 피를 수금하던 몽포콩산을 함락시켰다.
계속 뿌리던 비는 그냥 ‘비가 내린다’ 수준에서 ‘존나게 폭우가 내립니다! 살려줘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되었고, 단선 비포장도로에 의지하던 미군의 진격은 더더더더욱 정체되었다. 아무리 마셜이 초인이라 해도 도로가 하루아침에 뻘밭으로 바뀌는 상황에서 보급을 지속하기란 어려웠다.
그리고 당연한 결과로, 퍼싱은 9월 내내 끊임없이 공격당했다.
프랑스 정치권은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가는 미군의 공세에 빡 돌아버렸는지 포슈를 더욱 채찍질했고, 심지어 클레망소 수상은 퍼싱을 짤라버리고 새 인물을 박아넣자고 공공연히 떠들기까지 했다. 포슈는 당연히 퍼싱을 극딜했고, ‘이 따위로 일할 거면 진짜 지휘권을 내놔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마침내, 퍼싱도 결단했다.
“생미이엘 전투에 투입되었던 부대를 전방으로 보내고, 현재 소모가 심한 부대는 후방으로 돌려 재편하겠소.”
하지만 거기에서 93사단은 배제당했다.
또 그놈의 인종 문제인가? 아니면 나?
내가 꾸역꾸역 분노를 억누르는 동안에도 미군은 신나게 갈려나갔고, 퍼싱의 두 번째 결단이 뒤를 이었다.
“제1군 지휘관에서 물러나겠네.”
“장군!!”
“나는 일선에서 빠지고 쇼몽에서 원정군 사령관으로서의 업무에 전념하지. 1군 지휘관은 리젯(Hunter Liggett) 소장을 임명하겠소.”
그리고 그는 그 뒤로 쭉 인사명령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1군의 덩치가 너무 커서 그동안 작전의 효율이 저해되었다 판단되기에 제2군을 신설하겠소. 2군 사령관엔 불러드 장군.”
“알겠습니다.”
“캐머런 5군단장, 귀관은 해임이오.”
“대체! 어째서 저 망할 참모장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신단 말입니까! 이건 명백히 상급부대의 작전 미숙이었습니다!”
“귀관의 공격정신 부재야말로 더 큰 문제였다고 생각하오.”
그 이후로도 무수한 사단장들의 목이 뎅겅뎅겅 날아갔다. 하지만 1군 사령관직조차 내려놓은 퍼싱의 서슬에 버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유진 킴 준장.”
“예, 장군.”
“참모부에서는 여전히 93사단의 투입에 관해 우려스러운 반응일세.”
“단순히 전과가 문제가 아닙니다. 흑인 부대가 배치될 경우 병력의 통제나 다른 부대의 사기 문제가 있을 수-”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퍼싱은 옆에서 또 헛소리를 주절거리는 드럼 참모장의 말을 댕강 잘라버리고 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내가 여기서 뭐라 말해야 할까?
네가 애들 다 죽여놓고 그렇게 폼 잡지 말라고?
지금까지 답답해 숨 넘어가는 줄 알았다?
그냥 내가 죽고 만다, 이 개자식들아.
나는 품에서 수첩을 꺼내 한 장 부욱 찢고는, 그대로 손가락을 깨물었다.
“킴 준장!”
“대체 무슨 짓인가!”
“동양에는 혈서라는 훈훈한 전통이 있지요.”
존나 아프잖아 이거. 삼국지 그거 순 개뻥이었다. 나관중에게 저주 있으리.
“시체포대 2만 8천 장을 준비해주시지요. 그걸 전부 쓰거나, 승전보를 가져오거나. 둘 중 하나는 확실하게 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