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18)
전생혈마-218화(218/219)
218 37. 종결 (5)
김춘식은 강산을 처음 만났던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같은 F등급 화살받이 신세.
처음에는 아무 감정이 없었지만, 그의 도움을 받고 난 이후부터 사람이란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고민했었다. 단순히 잘살기 위해서? 아니면, 남들보다는 뛰어나기 위해서? 모르겠다. 적어도 강산은, 사람들이 말하는 일반적인 기준에는 부합하지 않았다.
그를 동경했다.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었고, 그렇기에 군대에 입대하고 위험하다는 임무를 서슴없이 받아들였다.
늘 마음 한편에는 걱정이 존재했다.
이러다 죽는다면.
할머니는 혼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지만 강산에게는 가족이 없다고 해서, 그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지킬 게 있기에.
김춘식은 강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강산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은 의도한 선행이 아니라, 등을 떠밀리듯 사람들을 구했다는 사실.
당황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감탄하고 존경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그걸 가능한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두렵고 힘든데도 감당했다는 의미였으니까. 이제야 강산이 사람처럼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역사에나 나올 법한 위인이라고 생각했던 존재는, 알고 보니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나 또한.’
콰르르르르릉.
마력이 번쩍였다.
밀고 들어오는 어둠의 마력을 피해, 바알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려워도 참아 내야 해.’
훅.
퍼억!
마물의 머리를 날렸다.
마체테를 현란하게 움직이며 길을 열었고, 의도적으로 바알의 시선을 유혹하며 자신을 공격하도록 했다. 바알은 지금 힘이 약해진 상태였다. 처음에는 인식하지 못했는데, 다크 퍼니쉬먼트라는 강력한 공격을 사용한 것이 어느 정도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지금이다.’
파파파파팍-!
암기를 뿌렸다.
바알을 괴롭히며, 사람들이 거리를 좁힐 시간을 확보했다.
의도대로였다.
“블러드 레인.”
“난무-”
콰르르르르르릉!
사이토 슈스케.
나카무라 겐지.
그리고 수많은 사람.
그들이 들이닥쳤다.
바알은 거대한 팔을 휘둘러 그들의 공격을 막아 냈고, 어느샌가 그의 손에는 어둠으로 일렁이는 쌍검이 쥐어져 있었다.
[나는 바알이다-! 감히 누가 내게 대항하느냐!]콰앙!
콰콰콰콰쾅!
사람들이 쓸려 나갔다.
쌍검에 몸이 찢겨 나갔고, 죽어 나가는 사람이 속출했다.
하지만 아무도 동요하지 않았다.
바로 옆에서 방금까지 살아 있던 육신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데도, 흩뿌려지는 핏물에 머리를 박아 넣으면서 바알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도 본능적으로 알았다. 일순간이지만 바알의 파괴력이 약해진 상태라는 것을. 그렇다면 강산이 만들어 준 소중한 기회를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것을.
[죽어라-!]퍽.
파파파파팍!
한 번의 일격에.
십수 명의 사람이 죽었다.
그다음 일격을 휘두르기 전에, 수백 명의 사람이 달려들었다.
“죽어!”
“공격해!”
인해전술(人海戰術)이었다.
죽어도 상관없었다.
켜켜이 대미지가 쌓이도록, 아주 조금씩이지만 바알을 무너트릴 수 있도록.
이 자리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불태웠다.
그들은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 강렬한 의지는 결국에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어 냈다.
퍽-!
[?!!]사이토 슈스케.
그의 공격이 박혔다.
바알의 반격에 사이토 슈스케의 팔이 날아가자, 김춘식이 몸에 달라붙으며 마체테를 무차별적으로 휘둘렀다.
퍽!
퍽퍽퍽퍽퍽!
죽어도 상관없었다.
믿었다.
인간들이 승리할 것임을.
또 다른 인간들이 다리, 몸통 할 것 없이 공격해 오는 상황에, 바알의 눈에서 거대한 분노를 뿜어냈다.
[같잖은 인간들이 감히-!]콰르르르르릉.
수도 없이 반복되었던 멸망.
바알은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당혹스러웠다.
다크 퍼니쉬먼트를 막아 낸 것도,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불살라 공격해 오는 인간들의 의지도.
바알로서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강산.
바로 저 인간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인간이, 지금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 * *
공격을 막은 직후.
강산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체력도 온전하지 않았고, 울렁이는 속에 모든 것을 비워 냈다.
“웩-!”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을 지나쳐 달려든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바알을 공격하고 있었다.
‘……이러고 있어서는 안 돼.’
그들은 불나방이었다.
뜨거운 불길에 몸이 불탈 것을 알면서도, 미련하게 뛰어드는 불나방.
참 미련했다.
조금만 본인을 위했다면.
토벌대에 합류하지 않아도 되었다.
안락한 집에서, 이곳의 상황을 지켜보며 그냥 기도하는 것이 본인의 안위를 위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던졌다.
시련에 의한 강제가 아닌, 본인들이 직접 판단한 결단.
영웅들이었다.
그들이 강산이 만들어 낸 기회를 헛되이 하지 않듯이, 강산으로서도 그들이 만들어 낸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팍.
발을 내디뎠다.
몸을 일으키고, 앞으로 뛰어갔다.
몸이 비틀거렸다.
속도는 붙지 않았지만, 이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이 필요함을 알았다.
‘혈마검법의 마지막 단계, 신살.’
강산이 경험한 전생.
놀랍게도 서문호는 그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신살은 극한에 달한 살의로 펼치는 공격이 아니라, 심마를 이겨 내고 스스로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였다. 그야말로 엄청난 모순이었다. 하지만 서문호는 마지막 경지에 도달하지 않고도, 본인을 완전히 불태워 버리는 살의만으로도 무림을 멸망시켜 버렸다.
타다다다닥.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렸다.
퍽-!
사이토 슈스케의 팔이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팔을 하나 잃었는데도 신음을 흘리기는커녕, 우악스럽게 창을 찔러 넣는 강렬한 의지를 보였다.
김춘식도 마찬가지였다.
목숨을 걸었다.
모두가 만들어 준 기회였다.
강산의 몸에 속도가 붙었다.
빠르게 달려들며, 몸을 날렸다.
팟-
[네가 이들의 버팀목이구나!]순간.
바알과 시선이 마주쳤다.
바알의 양 뿔에서 강력한 마력이 일어나며, 다른 인간들의 공격은 모두 제쳐 두고 오로지 강산 한 명을 처리하기 위한 일격을 준비했다. 바알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강산이 인간의 희망임을. 그를 처리한다면, 결국에는 승리할 싸움임을.
[죽어라- 디스트로이-!]파바바바박!
파멸적인 기운이었다.
피하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밀려드는 어둠의 마력을 향해, 강산이 검을 들어 올렸다.
“혈마검법 육초식.”
이번 삶.
끝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그리고 루카 벨리노에게 보여 줄 것이다.
처음 아즈문의 제안을 거절했던 당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신살(神殺)!”
콰콰콰콰콰콱!
마력이 몰아쳤다.
혈마공의 들끓는 마력이 폭발하며, 세상을 집어삼킬 듯 휘몰아치는 붉은 마력이 어둠의 마력과 부닥쳤다.
콰앙!
콰콰콰콰콰콰쾅!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
두 마력의 충돌.
치열하게 맞서 싸우던 두 마력이, 어느 순간 붉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인간 주제에 어떻게 이런 힘을……!]바알이 눈을 부릅떴다.
점점 잠식되는 마력.
그 와중에 하찮은 인간들은 여전히 피하지 않았다.
달려들며 바알의 육체에 무기를 꽂아 넣고는, 어떻게든 바알을 쓰러트리겠다는 의지를 표출했다.
모든 게 처음이었다.
끝까지 결속해서 싸우는 인간들.
그들은, 이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결말을 만들어 냈다.
[인정하마. 너희는 구원받을 자격이 있음을.]어둠의 마력이 찢겨 나갔다.
파괴적으로 들이닥친 붉은 마력이, 그대로 바알을 집어삼켰다.
콰앙-!
콰콰콰콰콰콰콱!
* * *
휘잉-
툭.
강산이 지상에 추락했다.
마지막 일격.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바알을 베어 냈다는 온전한 감각을 느끼자마자, 한계에 도달한 육체가 힘을 잃어버렸다.
“강산 님-!”
“얼른 강산 님을 치료해!”
주변이 부산스러웠다.
사람들이 달려와, 자신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참 웃긴 게.
팔을 하나 잃은 사이토 슈스케도, 피로 흠뻑 물든 얼굴의 김춘식도 본인의 몸을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라 강산의 눈앞에서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미련한 사람들이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죽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 와중에도 본인이 아니라 자신부터 챙겨 주다니.
피곤했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먹구름이 가신 하늘은 맑았고, 왠지 모르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정말 끝난 게 맞을까.’
전생의 영혼들.
그리고 바알까지.
모두 이겨 냈다.
하지만 아즈문이 다음 시련을 예고한다면, 어쩔 수 없이 끌려가야 하는 운명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때였다.
[서른 번째 고난과 시련을 통과하셨습니다.] [약속된 보상이 주어집니다.]익숙한 메시지였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옅어졌다.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점점 사그라지며, 강산의 시야에 생소한 광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 * *
순백의 공간이었다.
그곳에 누군가 있었다.
사람의 형체와 같은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데도, 강산은 본능적으로 누군가 ‘존재’함을 느꼈다.
아즈문.
그가 분명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데도, 아즈문은 생각을 읽었다는 듯이 진실을 말해 주었다.
[수많은 차원의 멸망이 반복될 때마다, 너희 인간은 절망하고 원망하며 내게 항상 진실을 물었지.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나는 수많은 차원을 만들어 내면서 무엇 하나 의미를 두지 않은 것이 없다.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 너희가 생명체라고 여기지 않는 것들, 그리고 미물(微物)이라 표현하는 것까지. 내게는 소중한 내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모든 차원은 결국에 인간들이 모든 것을 차지했다. 세상을 헤치고, 본인들만의 이득을 추구했지. 어느 세상에서는 인간들이 득세하지 않을지라도, 그와 비슷한 생명체들이 똑같은 결말을 반복했다.]몬스터.
그들도 같았다.
그들 또한 시험을 치렀고, 패배했기에 이 세상을 공격하는 역할을 맡았다.
[나는 그저 궁금했을 뿐이다. 왜 너희여야만 하는지. 너희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을 가혹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너희가 무심코 지나가며 짓밟는 개미들의 생명은, 인간들의 기준으로는 하찮을지언정 내게는 인간과 동등하다.]아즈문은 선도.
악도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기준일 뿐, 창조주가 내려다보는 세상에서 인간은 독과 같았다.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본인만의 이득을 위해 같은 인간들조차도 나락으로 빠트리는 이기적인 영혼들. 그들은 그 선택이 본인을 갉아먹는다는 사실도 모른 채, 무한의 굴레에서 속죄를 반복했다. 영혼에 켜켜이 쌓이는 업을 돌려받는 그 삶에, 그들이 원하는 구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희는 다르다. 강산, 너는 달랐다.]처음부터 길은 하나였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겨 내 증명해 내는 것.
그 결과까지 도달하기 위해 제안되는 수많은 유혹은, 인간을 스스로 파멸시키는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처음이다. 시험에 통과한 세상이.]화악-
빛이 밀려들었다.
그 환한 물결이, 강산의 영혼을 휘감았다.
[나 아즈문이, 너희의 세상이 존속(存續)하는 것을 허락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