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d Demo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219)
전생혈마-219화 (완결)(219/219)
219화 에필로그
눈을 떴다.
멍한 얼굴로 앞을 바라보자, 수많은 얼굴이 내려다보는 것이 보였다.
“일어나셨어-!”
“강산 님!”
“형!”
사람들이 안겨 왔다.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고, 복잡하게 뒤얽히는 머릿속에 이게 현실인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순백의 공간에서 아즈문은 분명하게 말했다. 시련은 끝났다고. 너희의 세상은 시험에 통과했으며, 앞으로 인간으로서 존속하는 것을 허락하겠다고.
드디어 끝났다.
기어코 승리했다.
머리로는 받아들이나,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때였다.
사람들 틈에,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아악-! 여러분! 지금 전 세계적으로 몬스터들이 소멸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우리가 해냈습니다. 우리가 승리했습니다!”
“살았다!”
“강산 님! 덕분에 우리가 살았습니다!”
“강산! 강산!”
“강산! 강산!”
사람들이 열광했다.
아직 온전하지 않은 몸 상태에, 열광적인 환호가 마치 이명처럼 들렸다.
‘정말 끝난 건가.’
그때까지도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피폐해진 세상을 수습했고, 그렇게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정말, 끝이었다.
지긋지긋했던 재앙의 연속.
마침내 그 종지부를 찍었다.
* * *
그로부터 5년 뒤.
세상은 여전히 정신이 없었다.
갑작스럽게 몬스터가 나타나고 사람들이 죽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무려 수십 년 동안 공격받았던 현실은 쉽게 아물어지지 않았다. 무너진 건물과 죽은 사람들. 피폐해져 버린 삶의 터전을 복구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다.
강산도 마찬가지였다.
강산은 지난 5년 동안 반복했듯이, 사람들과 같이 건축 자재들을 열심히 옮겼다.
“10분만 하고 쉬겠습니다.”
“다들 하던 일까지만 마무리하세요.”
바알이 죽은 이후.
사람들은 강산을 영웅으로 추대했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위인(偉人)이 되었고, 몇몇 나라에서는 그에 걸맞은 실질적인 권한까지 부여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게다가 강산교는 급격하게 세력을 부풀렸다. 사람들에게 강산은 사실상 신이나 다름없기에, 강산의 결정 한 번이면 국교로 선택할 나라가 많았다.
하지만 강산이 거절했다.
강산교.
지금처럼 평화로워진 시대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그 세력은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강산은 일개 개인일 뿐이다.
여전히 개인으로 남고 싶었고, 강산이 강산교의 해체를 발표하는 날에 전 세계 사람이 시청했을 정도로 모두가 TV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펑펑 울었다. 강산의 선택이 이 세상을 위하는 것임을 알기에, 강산교는 해체되었으나 여전히 강산을 마음에 품은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도 그랬다.
말만 봉사 활동 단체일 뿐이지, 강산을 따르는 사람들이 힘을 보탰다.
툭.
건축 자재를 내려놓았다.
집을 잃은 사람들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는 프로젝트인데, 그 자금은 전적으로 유정영과 대기업, 그리고 국가에서 지급해 주었다. 강산은 인력만 보태면 되었고, 고개를 들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빨리빨리 움직여.”
“아니, 팔도 없는 게 왜 이렇게 열정적이야.”
나카무라 겐지.
팔 하나를 잃은 사이토 슈스케.
어느새 친해진 둘이, 투덕거리면서 자재를 옮겼다.
조한별 일행은 없었다.
세상이 평화를 되찾고 그들은 각자 부모의 일을 물려받았고, 조한별은 사업적으로 성공해서 사람들을 돕겠다는 포부를, 정찬우는 매니지먼트를 운영해서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연우빈은 마법을 활용한 치료 마법의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다들 바쁘게 살면서도, 가끔은 찾아와 강산과 술잔을 기울였다.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연우빈도 이제 성인이 되었고, 투박한 손으로 술을 따라 줄 때면 웃음이 나왔다.
제시카, 에일린도 한편에서 사람들을 도와주는 모습에, 강산은 왠지 감상에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옆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방금 소식 들으셨습니까?”
“무슨 소식이요?”
김춘식이었다.
그는 군대에서 전역했다.
공로를 인정받아 별을 달았는데도, 할머니와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이유로 직책을 내려놓았다.
그날.
전군이 김춘식을 배웅했다.
김춘식이 강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국에서 기어코 영혼을 분리하는 실험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곧 에릭 로버츠 몸에 있는 팽무정의 영혼을 추출할 예정이고, 그 영혼은 미국의 극악무도한 사형수의 몸에 가둔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아, 참고로 그 사형수는 식물인간입니다. 매일 병실에 누워서 세금만 축낸다는 말이 많았는데, 적절한 몸에 적절한 영혼이 들어가게 됐습니다.”
“에릭 로버츠는요?”
“글쎄요. 대통령으로서의 복직은 힘들겠지만, 정치권에서 그를 원한다는 말이 많습니다.”
“그래요? 그거 좋은 소식이네요.”
* * *
쉬는 시간이었다.
도시락을 챙겨 먹고 잠시 그늘 밑에 앉아 있자, 김춘식이 이번에는 맥주를 들고 와서는 옆에 앉았다.
“한 캔?”
“좋죠.”
맥주를 받았다.
칙, 김이 빠지는 소리에 시원하게 들이켰다.
김춘식이 말했다.
“참 아직도 이렇게 평화롭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가끔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 저는 백현으로 존재했고, 백현은 팽무정이 죽은 뒤에도 정파의 쓰레기들을 처리하겠다는 목적에 암살자로 살더군요. 몬스터들의 공격에 세상이 혼란스러운데도, 본인의 삶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악인들과 싸우다가 처참하게 죽습니다. 결국에, 붙잡히고 말거든요.”
서로를 보지 않았다.
강산은 말없이 맥주를 마셨다.
“잊을 만하면 꾸는 꿈입니다. 처음에는 참 가슴이 아팠는데, 지금은 이해합니다. 정파의 쓰레기들에게 가족이 모두 죽었다면, 저도 백현처럼 살았을 테니까요. 강산 님. 강산 님은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십니까? 저도 꿈에서 깰 때면, 백현에게서 전달되는 감정에 치가 떨립니다. 제가 이 정도라면, 강산 님은 복수의 기회를 거절하기 쉽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그렇죠.”
부정하지 않았다.
쉽지 않았다.
마지막 스스로의 목숨을 끊었던 서문호에게, 강산 또한 복수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때였다.
한 아이가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누가 데려왔는지 모를 그 아이는,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콰당-!
“악!”
아이가 비명을 질렀다.
무릎이 빨갛게 물들었다.
눈물을 글썽이며 바라보는 아이의 시야에, 두 어른이 다가와 아이의 상처를 살폈다.
“아빠가 천천히 가라고 했잖아!”
“아이고, 못살아.”
아빠가 아이를 번쩍 들었다.
치료하겠다고 데려가는 그 모습에, 아이는 서글프게 울면서 아빠의 품에 꼭 안기는 모습을 보였다.
왜일까.
웃음이 나왔다.
아이에게 부모가 존재하는 삶.
넘어지면 몬스터에게 죽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는 그런 삶.
강산이 말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건 제 삶이지 않습니까. 그나저나, 할머님은 괜찮으세요?”
“아, 할머니요?”
김춘식이 익살스럽게 웃었다.
“아주 건강하다 못해 요새는 옆집 할아버지까지 꼬실 기세입니다. 아주 청춘이에요, 청춘. 제가 보기에는 백 살 넘게 사실 것 같은데, 그때 잔치에 초대할 테니 꼭 참석해 주세요.”
“푸핫, 그래요? 알겠어요. 무조건 참석할게요.”
“오늘도 퇴근하는 길에 떡볶이를 사 오라던데. 할머니들은 이가 약해서 그런 거 못 먹는 거 아닙니까?”
“글쎄요. 이빨도 청춘이신가 보죠.”
웃음을 터트렸다.
좋았다.
이렇게 소소하게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이렇게 소소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이.
다행이었다.
불행하다고 해서 포기해 버렸다면.
지금과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없었을 테니까.
“날씨가 좋네요.”
사람들을 바라보며, 강산은 맥주를 들이켰다.
* * *
한밤중이었다.
서문호가 벌떡 일어났다.
“허억, 허억.”
“여보, 괜찮아요?”
“……괜찮아. 잠시 나쁜 꿈을 꾼 모양이야.”
아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서문호는 아내를 진정시키더니, 잠시 바람을 쐴 요량으로 밖으로 나갔다.
‘정말 이상한 꿈이었어.’
꿈속.
서문호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가족이 모두 죽었고, 그 일에 복수하겠다고 미쳐 버려서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여 버리는 말도 안 되는 꿈이었다. 그런데 너무 사실적인 느낌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아무래도 며칠 전에, 하북팽가에서 부탁한 일을 처리한 것이 문제인 것 같았다. 팔자에 무림과는 연관이 없는 사람이 그들과 어울리다 보니, 이런 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
그때였다.
파스락.
저 멀리.
수풀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서문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황급히 몽둥이를 챙겨 와서는, 수풀 너머의 무언가를 예의주시했다.
야옹-
“……고양이였구나. 여긴 무슨 일이니?”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툭 튀어나왔다.
겁 없이 다가오는 모습에, 서문호는 고양이를 안아 한참을 돌봐 주었다.
다음 날.
서문호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그거 사실입니까?”
“아니, 진짜라니까. 그 팽무정이라는 녀석이, 자기 여동생을 겁탈한 사실을 숨기려다가 들킨 모양이야. 그래서 지금 한바탕 난리가 났다고. 정파 무림에서는 그를 처단하겠다고 지금 재판을 열 예정이라는데, 어휴.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인지, 자기 가족을 건드릴 수가 있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팽무정이라니.
그 사내가 분명했다.
은자를 들고 와, 자신에게 부탁했던 그 사내.
그런 나쁜 사람과 연을 맺었다고 생각하니, 하루 종일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도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팽무정은 가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참수당했고, 시간이 흘러도 은자와 관련해서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날 이후로 서문호는 다짐했다. 절대 무림과 연관된 사람들과는 연을 맺지 않으리라고.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으앙, 으아아아앙!”
벌컥!
문이 열렸다.
산파가, 땀으로 얼룩진 얼굴로 손짓했다.
“얼른 들어와!”
“아내는요. 아내는 괜찮습니까?”
“괜찮으니까 들어오라는 게지.”
서둘러 들어갔다.
아내는 기력이 빠진 채로 희미하게 웃고 있었고, 산파가 보자기로 감싼 아이를 건네주었다.
“아주 건강한 사내아이야. 축하하네.”
보자기 안.
아직 눈도 뜨지 못하는 아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목청이 어찌나 좋은지, 쩌렁쩌렁 우는 소리에 서문호가 얼굴 가득 웃음을 보였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딸 하나에 아들 하나.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그는 정말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 * *
순간.
루카 벨리노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여긴 어디지? 왜 내가 여기에 있는 거지?’
마지막 기억.
분명히 팽무정을 저지하고 죽임을 당했다.
이제는 억겁의 세월에 갇혀, 다음 기회가 주어질 때까지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런데 너무 일렀다.
눈앞에 높은 고층 건물들이 보였고, 오른손에 말랑하고 따뜻한 감각이 느껴졌다.
“엄마- 저기 아빠야!”
“소피아?”
딸이었다.
소프트아이스크림을 한 손에 쥐고 있는 딸이, 멀리서 다가오는 사내를 가리켰다.
고개를 돌렸다.
남편이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끔찍한 악몽이었다.
수도 없이 반복했던, 결국에는 남편의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악몽.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도망치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이제 곧 떨어지는 괴물로 인해서 남편은 곤죽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런데.
“루카, 소피아.”
남편이 활짝 웃었다.
다가와서는, 딸의 얼굴에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꺄르르륵.”
“우리 딸.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 줄 알아?”
일련의 상황.
루카 벨리노는 사고가 정지되었다.
이상했다.
왜 하늘에서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는 거지?
분명히 몬스터가 나타나야 하는데.
멍하니 서 있는 모습에, 남편이 일어서더니 루카 벨리노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
말문이 막혔다.
그제야 알았다.
아즈문의 제안은 애초에 함정이었다.
누군가를 희생시키면서까지 본인이 살아남으려는 발악은, 그대로 업보로 돌아와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시련의 굴레를 만들어 냈다. 이번에는 달랐다. 루카 벨리노는 스스로를 포기했다. 자신을 희생할지언정, 강산의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힘을 보탰다.
악업의 공로가 아닌.
선업의 공로였다.
강산이 기어코 세상을 지켜 내면서, 그녀는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실수를 돌이킬 기회가 아닌.
새롭게 살아갈 기회를.
눈물이 왈칵 치밀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남편을, 그대로 와락 안아 버렸다.
“루카? 정말 무슨 일 있는 거야?”
남편이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에게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진 않았다.
오랜 세월.
아무도 기억하지 않길 바라는 처절한 시간일 뿐이다.
처음으로 돌아왔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루카 벨리노는 옷을 완전히 적실 정도로 펑펑 울며, 연약한 소녀처럼 안겨서 환하게 웃었다.
“아니, 그냥 반가워서. 정말 반가워서 그래.”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