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50
148. 선택 (4)
솔직히 말하자면 굳이 성광을 이렇게 성대하게 터뜨릴 필요성은 없었다.
그저 여태까지 연습한 것처럼 구체에 작은 숨통을 열기만 했어도 충분히 강력한 힘을 발휘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궁금했기 때문이다.
전력으로 성광을 전개하면 얼마나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지.
마침 며칠 동안 마물들의 사령을 모아오며 네크로맨시의 보호막을 쓸 준비도 해 뒀다.
그래서 성광의 구체를 풀어 놓는다고 해도 나는 다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상상 이상으로 기술이 강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사령이 사용자에게 가해진 피해를 흡수했습니다.」
「마물 ‘루데른’의 사령을 소멸했습니다.」
「마물 ‘마이아’의 사령을 소멸했습…….」
「마물 ‘미미륵’의 사령을 소멸했…….」
수많은 마물의 사령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며 전신에서 검은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주변에서는 신성의 별빛이 지나간 흔적을 과시하듯 지글지글 녹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을 보며 나는 침음을 삼켰다.
‘……이거 마물들의 사령을 꾸준히 모으지 않았으면 나도 살짝 위험했겠네.’
성광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스킬이었다.
한계까지 강화한 성광을 해방하는 것이 얼마나 미친 짓인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마왕이 울부짖듯 내게 그만하라고 한 것은 이렇게 될 줄 예상했기 때문일 터.
물론 나는 무사할 것이라 확신했고, 실제로 무사했지만, 등줄기를 타고 오싹함이 흐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끄, 끄허, 끄허어……. 비, 빌어먹을 놈이…….”
반쯤 붕괴된 검은 성채의 중심부에서 잔뜩 일그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서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니 화상을 입은 마왕이 심장을 부여잡은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딴 짓을 벌이는 것이냐! 말하지 않았느냐! 너의 동료들이랑 계약을 맺었다고! 네놈만 죽으면 세상은 구원받는단 말이다!”
그 말에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건 마왕을 죽여도 마찬가지 아닌가?”
애초에 용사의 목적은 마왕을 죽이는 것이다.
그를 죽이고 마신의 현현을 막는 게 이번 16층 시련의 목적 중 하나였다.
물론 그 목적은 가짜일 뿐이었고, 실제로는 동료들의 배신까지 감안해야 했지만…….
겉에서 보았을 때는 마왕을 죽이는 것이 진정한 정답이었다.
“보험 같은 것도 없을 줄 아는가! 이 자리에서 내가 죽으면 마신께서 강림하실 것이다! 이 세상에 마신의 사도가 더 없을 줄 아느냐!”
하지만 그것마저도 마왕은 부정했다.
혹시 거짓을 말한 건 아닐까 싶어서 화룡안을 사용해 보았지만.
「스킬 ‘화룡안’이 상대의 말에 거짓이 없음을 간파합니다.」
결과는 아주 깔끔하게 거짓 같은 건 일절 없다는 것이었다.
……진짜로 마왕을 죽이면 이 세상에 마신이 강림한다니.
‘시련 배경 참 암울하네.’
그럼 애초에 용사가 마왕을 잡으러 온 것도 무의미하다는 것인데…….
진심으로 이게 시련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암울했을지 상상조차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어쩌라고.”
이번 16층 시련은 그저 재현된 것에 불과하며 진짜로 내가 암울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식으로 마왕에게 대꾸하니 이내 그가 황당하다는 듯 버럭 소리쳤다.
“세, 세상이 멸망할 것이다! 마신께서 가, 강림하실 인과율도 충분하다! 이까짓 세상은 하등 지우지 못할 것 없느니라!”
“그러니까, 어쩌라고.”
“그, 그게 무슨?”
“이 세상이 멸망하든 멸망하지 않든, 그게 나랑 크게 상관이 있는 건가?”
“…….”
그에 마왕은 할 말을 잃었다는 듯이 입을 뻐끔거렸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그것을 뒤늦게 마왕도 깨달았는지, 이를 꽉 악물며 독기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놈! 정말로 용사가 아니었던 것이냐!”
“애초에 그렇게 말했는데.”
“어찌 용신의 사도도 아닌 주제에 그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거지? 대체 정체가 무어란 말이냐!”
그 말에 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은 터라, 잠시 생각한 끝에 현재의 신분을 말했다.
“도전자.”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나는 허리춤에 매달린 검집에서 성검을 꺼냈다.
「권능 ‘혈천심공’이 활성화됩니다.」
「권능 ‘검염지경劍炎之境’이 활성화됩니다.」
「스킬 ‘파천破天’이 활성화됩니다.」
「부술 수 있는 것에 대한 한계가 사라집니다.」
화르륵!
마치 검에 불이 붙은 것처럼 붉은 뇌전이 흐르며 동시에 보랏빛의 기운이 스며들었다.
징벌의 스킬이 활성화된 상태인지라, 한계까지 검에 마력을 주입했음에도 마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상태였다.
‘확실히 검감을 소모해서 습득한 보람은 있네.’
마족 및 마물 한정으로 발동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으면 정말로 좋았을 테지만…….
이만큼 강력한 능력을 아무런 제약도 없이 쓸 수 있는 것도 말이 안 되니 그러려니 했다.
이어서 마왕을 죽이기 위해서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마왕은 검을 든 채 다가오는 나를 보더니 흠칫하며 재빨리 입을 열었다.
“……하찮은 것들이! 기껏 살려 주었거늘, 무엇을 그리도 꾸물거리는 것이냐!”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좌측에서 화살이 날아오는 것이 감지되었다.
「스킬 ‘화룡안’이 활성화됩니다.」
화살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화룡안이 있는 내게 사각에서의 공격은 의미가 없었다.
“뭐야, 이건.”
촤아악!
어느새 머리에 닿기 직전까지 다가온 화살을 왼손으로 잡은 나는 눈을 찌푸렸다.
“설마…….”
안 좋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듯이 이어서 오른쪽에서는 얼음 화살이 쏘아졌다.
「스킬 ‘섬전검기閃電劍氣’가 활성화됩니다.」
콰장창!
단숨에 참격을 날려서 얼음 화살을 분쇄한 후에야 제대로 상황을 이해했다.
“……이건 좀 의외인데.”
성채의 곳곳에서 부서진 잔해를 헤집고 나타난 이들을 보며 혀를 찼다.
귀찮게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 싫어서 성광으로 한 번에 쓸어버리려 했는데…….
아무래도 성광이 그들에게 닿기 직전에 마왕이 보호해 준 것인지 동료, 아니, 동료였던 이들은 상당히 멀쩡했다.
잠시 그들을 바라보며 서 있자니 이내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디 곱게 죽어 주게나. 그대가 살아 있으면 이 세상은 멸망하게 될 것이네.”
왼팔을 잃은 제르파가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쥔 채 그렇게 말했고.
“개 같은 자식이……! 너 같은 놈이 살아 있으면 전부 죽는 건 똑같다고! 제발, 죽어!”
이어서 등 뒤에 있는 알렌은 나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으며.
“닐! 너, 너는 용사잖아! 조금만 더 이성적으로 생각해!”
데이지는 활의 시위를 잡아당기며 애원하듯이 말을 걸었다.
그 말에 나는 싸늘한 조소를 보내며 대꾸했다.
“본인도 희생하지 못하는 주제에 남을 희생시키려 하기는.”
나는 바로 망설이지 않고 15층에서 습득한 권능을 활성화했다.
굳이 저들을 상대해 줄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당신들은 상대할 가치도 없어.”
목적은 애초에 마왕을 죽이는 것인데 배신자들을 상대해서 좋을 게 무엇이 있다고.
더 전투를 질질 끌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권능 ‘순보’가 활성화됩니다.」
순보(瞬步).
15층 시련에서 획득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공간을 이동하는 권능이었다.
물론 공간을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공간을 이동하는 것일 뿐이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뭐, 뭣……!”
순식간에 마왕에게 도달하여 그 머리통을 날리기에는.
기겁하며 마왕이 검격을 회피하려 몸을 비틀었지만, 그것을 순순히 허용해 줄 리 없었다.
서걱!
단정한 절단음이 울리는 동시에 마왕의 머리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여러 스킬 및 권능이 부여된 검격은 피하지 못하면 절대로 막아 낼 수 없었고.
부활 같은 사기적인 기술이 없다면 재생 정도로는 되살아날 수조차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화 가 활성화됩니다.」
「신성 공격에 의 효과가 붙습니다.」
「신성 공격에 의 효과가 붙습니다.」
이전에 시련에서 획득한 신화는 모든 재생을 막는 능력이 있으니까.
더불어서 마(魔)를 퇴치하는 효과도 붙은 상태인지라, 일격은 좀 더 강력해졌다.
「마왕 ‘레이몬드’의 사령을 흡수했습니다.」
「숙련도가 3.74% 상승했습니다.」
실제로 마왕의 몸은 재생할 기미도 보이지 않은 채 그대로 엎어졌다.
「도전자 한성윤의 선택을 확인했습니다.」
「진심으로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시련의 탑 16층을 돌파하셨습니다.」
이어서 시련의 성공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돌파 보상으로 관리자 ‘멸망한 세계의 용사’를 통하여 아이템에 절대 파괴 불가 성질 부여할 수 있게 됩니다.」
절대 파괴 불가 성질 부여.
며칠간의 시련 끝에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절대 파괴 불가 성질이 부여되면 혈천마검의 내구도 또한 수복시킬 수 있을 테고.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담천우를 무리시켜서 여러 가지의 버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이 퀘스트를 고르길 잘했어.’
「대기실로 이동하십시오.」
포인트 및 아이템 같은 건 더 지급되지 않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시련 수준에 어울리지 않는 보상을 받았으니 불만은 없었다.
이내 조용히 다리를 움직여서 포탈을 넘으려고 하니, 목소리가 귓가로 내리꽂혔다.
“맙소사……. 이, 이게 대체 무슨…….”
고개를 돌려보니 마왕이 죽어서 실의에 빠졌는지, 저들끼리 몸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이, 이제 다 틀렸어……. 세상이 멸망할 거야……. 세상이……. 흐, 흐흐흐.”
제르파는 아예 광기에 젖은 웃음까지 흘리며 흐느끼듯 몸을 들썩거렸다.
하지만 시련 배경이 되는 역사에서는, 이들은 용사를 죽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퀘스트를 의뢰한 관리자의 이명이 ‘멸망한 세계의 용사’인 것일 터다.
아마도 원래 역사에서의 용사는 죽기 직전에 탑에게 선택받았거나 도망치다가 탑에게 불려간 것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럼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는 뻔하지.’
용사를 죽이지 못했으니 용사 일행이 한 마왕과의 계약은 무효로 돌아갈 터이고.
세상은 그대로 절찬리에 멸망했을 것이며, 용사는 탑을 오르며 힘을 되찾았겠지.
물론 돌아갈 세상은 어디에도 없으니 귀환 같은 건 하지도 못했겠지만 말이다.
“…….”
이제 더 저들에 대해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노라든지, 경멸이라든지 하는 감정은 일절 없었다.
그저 저들이 살아 있는 시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저항도 해보지 않고 그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길이 있다는 것만으로 거기에 빠져들다니.
개개인이 나쁘지 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저들은 미리 한계를 정해 두고 배신을 선택했다.
용사라는 압도적인 신의 사도를 동료로 뒀음에도 저리 행동하는 것을 보니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저 그 정도의 감상만 느껴졌다.
죽일 가치 또한 없었다.
강적도 아니라 죽여도 능력치는 오르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을 테고.
스킬 같은 것도 솔직히 말해서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관리자 ‘멸망한 세계의 용사’가 조용히 동료였던 자들을 바라봅니다.」
잠시 그대로 서서 저들을 바라보며 내가 용사였다면 어찌했을지 생각했다.
이게 시련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가정해 봤고, 이내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게 진짜였어도, 다를 것은 없었겠지.’
설령 이게 진짜라 해도 내 선택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신을 대적해야 한다고 해도 끝까지 적을 상대로 최선을 다했을 터다.
용신의 사도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루고, 마신의 강림을 저지했겠지.
전투의 신을 상대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던 것처럼.
그러니 더 복잡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없었다.
나는 이내 발을 뻗어서 부서진 성채의 중심부에 있는 포탈로 이동했다.
그리고.
「퀘스트 클리어로 인하여 대기실로의 이동이 잠시 미뤄집니다.」
「관리자 ‘멸망한 세계의 용사’가 시련 보상의 지급을 결정합니다.」
「용사의 전당에 입장합니다.」
이어서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나는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이제 고생한 만큼의 보상을 받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