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15
제 115화
43장. 바람의 정령왕, 비에나 – 2화
‘와! 이거 수위 문제없는 거야? 아, 그래. 여긴 가 아니지.’
나는 비에나의 모습을 보고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슬랜더 체형의 비에나는 군살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잘 관리된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완벽한 몸을 굳이 가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비에나는 속이 훤히 비치는 하얀 천 하나만 두른 채 우리의 앞에 나타났다.
말이 좋아 가린 거지, 그냥 나신만 겨우 면한 수준이었다.
다만 비에나 본인이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기에, 지켜보는 나와 미아가 달리 반응을 안 했을 뿐이다.
‘에서는 고대 로마 시절의 여성 의복이었던 스톨라(Stola)를 입혔지. 노출 수위 조절 문제 때문에.’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 몇몇 플레이어가 어둠의 경로로 유출된 비에나의 나체 이미지를 부지런히 찾아다닌다고 들었던 기억도 난다.
물론 나는 찾아보지 않았다.
어쩌다가 우연히, 스치듯이 보게 됐을 뿐. 정말로 우연히.
샤아아아아.
비에나가 점점 우리에게 가까워져 왔다.
나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해서 한껏 미소를 짓고 있었고, 미아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아직 그녀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적인가 싶어 두려울 수도 있겠지.
나는 미아의 손을 꼭 잡아 주며, 녀석을 안심시켰다.
“미아, 괜찮아. 나쁜 사람 아냐.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던 정령왕 비에나 님이 나타나신 거야.”
“……정말요? 비에나 님이요?”
“응, 바람의 정령왕이라고도 불리는 분이시지. 참 아름답지?”
“네! 정말 눈이 부실 정도로 예쁘고 아름다워요.”
“걱정하지 마. 설령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곁에 있으니까 안심해도 돼.”
“네, 영주님.”
미아가 내 손을 한 번 더 세게, 꼭 움켜쥐었다.
상대가 바람의 정령왕이라고 말하니, 더욱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너무 솔직하게 얘기를 했나?
어느새 비에나와의 거리가 5m도 되지 않을 거리까지 가까워졌다.
에서 만났을 때는 그녀 역시 결국은 NPC라고 생각해서 아무 감정이 없었는데.
지금은 살아 숨 쉬는 정령왕으로서 내 앞에 현신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의 상태를 스캔해 보려고 했지만.
가볍게 시도가 막혔다.
이는 그녀가 바람의 정령왕이 맞다는 반증(反證)이기도 했다.
“반가워요. 갑자기 불쑥 모습을 드러내어 미안하군요. 나는 바람의 모든 것을 주관하는 고귀한 정령들의 왕, 비에나입니다.”
자애로운 미소와 함께 악수를 청하는 비에나의 모습과 달리.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다른 정령들의 모습은 사뭇 위협적이었다.
모두가 바람의 창을 치켜들고, 언제든 지상으로 돌진할 준비를 할 것처럼 자세를 낮추고 있었다.
그 수도 무려 백 명에 달했다.
“미, 미아예요. 바, 반갑습니다. 왕님. 비에나 님. 아아, 어떻게 불러야 하죠?”
태어나서 처음으로 ‘왕’이라는 존재와 마주한 미아는 넋이 반쯤 나간 표정이었다.
그런 미아가 귀여웠는지, 비에나가 미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답해 주었다.
“편하게 비에나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나이는 무척 많이 먹었지만…… 그래도 제법 외모는 잘 유지하고 있답니다.”
비에나의 나이는 의 스토리 기준, 300살이 훨씬 넘었었다.
그러니 할머니라는 단어로는 부족하고, 조상님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입으로 말한 ‘언니’라는 호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비에나의 외모는 어렸다.
아무리 높게 쳐도, 올해로 서른넷이 된 엘라의 얼굴 나이와 거의 같아 보일 정도였다.
“네, 언니.”
“호호호. 듣기 좋아요, 미아. 실례지만 당신은……?”
비에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게로 향했다.
단지 시선이 부드럽게 얼굴 언저리를 훑었을 뿐인데,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지금만큼은 내가 ‘엑스트라’라는 것이 여실히 느껴진다.
나는 비에나를 훤히 알고 있지만, 그녀는 자레드라는 인물의 존재도 오늘 처음 알았을 테니까.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긴장은 했지만, 드러내진 않았다. 이 정도의 감정 억제는 쉽다.
“자레드입니다.”
“먼저 사과를 하고 싶어요. 나는 두 사람의 마법 수련을 처음부터 쭉 지켜보고 있었답니다. 잠자고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모든 시간을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바람을 다루고, 또 다루더군요.”
“예. 아네모스 고원만큼 바람의 축복을 받은 곳은 없으니까요.”
“자레드, 당신에게 고원에 가득한 바람의 축복이 느껴지나요?”
비에나의 눈빛에 호기심이 어렸다.
“물론입니다. 여왕님의 자애로운 축복이 느껴지더군요. 수련을 하는 내내, 원하는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 주셔서 정말 기뻤습니다.”
“……느껴졌나요?”
“마법사가 그걸 놓쳐서는 안 되겠죠. 하물며 바람을 부리고자 하는 마법사라면, 더욱 자연의 흐름에 집중할 수밖에요.”
“솔직히 놀랐어요. 자레드, 당신이 보인 바람 마법은 도대체 어떤 마법이죠?”
예상한 대로 비에나는 내 트랜센던스 마법에 관심을 보였다.
그럴 것이다.
1클래스 매직 미사일을 데큐플 트랜센던스까지 적용하며, 열심히 시전 연습을 했으니 말이다.
데큐플 트랜센던스가 되면, 마력을 1만 소모하는 대신…… 엄청난 양의 바람 구체를 만들어 낸다.
자그마치 5,120개의 구체다.
이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나밖에 없을 것이다.
“초월 마법. 마법이 다다를 수 있는 극의에 있는 마법이죠. 쉽게 쓸 수 있는 마법은 아닙니다.”
“많이 놀랐어요. 지금껏 바람에 모습을 숨기고 수많은 마법사들의 마법을 보아 왔지만…… 당신처럼 현란하게 바람의 힘을 부리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답니다.”
“과찬이십니다. 어쩌다 운 좋게 얻은 힘을 활용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미아에게는 자레드와는 다른, 바람과 본능적으로 호흡하고 교감하는 친밀함이 느껴져요. 마치 타고난 것 같다고 할까?”
바람의 모든 것을 주관하는 정령왕답게, 그녀의 예측은 매우 예리하고 정확했다.
‘가호를 내려 주겠구나.’
나는 확신이 들었다.
비에나와의 대화가 길어질수록, 그리고 그녀의 관심이 깊어질수록 얻을 수 있는 혜택은 늘어난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비에나가 자애로운 눈빛과 함께 미아를 불렀다.
“미아.”
“네?”
“조금만 더 내게로 가까이 오겠어요? 미아의 아름다운 바람의 노래에 감미로운 선율을 추가해 주고 싶어요.”
“……정말요?”
“호호호, 순수한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지고 놀 만큼, 정령은 그리 사악하지 않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비에나와 미아의 몸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마법이 아니라, 순수한 바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현상이었다.
“와!”
“함께 바람을 느껴 보겠어요?”
“네, 좋아요! 영주님, 다녀올게요!”
“하하하, 다녀와.”
나는 멀어져 가는 미아에게 힘껏 손을 흔들어 배웅해 주었다.
둘만의 시간.
비에나가 관심을 보인 인간 – 혹은 플레이어 – 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시간이다.
덕분에 잠깐, 시간이 붕 떴다.
순식간에 비에나와 미아의 모습이 눈앞에서 없어질 만큼, 저 멀리 사라졌기 때문이다.
“저기?”
그래서 나는 상공에서 여전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정령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에서 위저드를 즐기며 수많은 마법을 연습해 봤지만, 그때마다 늘 어려운 부분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적의 바람 마법을 받아치거나 막는 것이 아닌, 교묘하게 방향을 조정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부분이었다.
플레이어들이 우스갯소리로 ‘묻고 더블로 가는’ 마법 활용법이라고 했던 기억도 난다.
날아든 적의 바람 마법 구체의 추진력을 살짝 비틀어서, 다시 적에게로 향하게 한 뒤.
내 바람 마법을 얹어서 시전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상대 입장에서는 자신이 쏜 마법과 적이 쏜 마법을 동시에 받아야 하니, 묻고 더블로 간다는 말이 틀림없었다.
“무슨 일인가?”
그때, 바람 정령 하나가 관심을 보이며 내게 다가왔다.
나이는 나와 비슷해 보이는 남성 정령이었다.
“바람을 활용하는 방법을 하나 연습해 보고 싶습니다만.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허허, 그렇게 바람이 좋은가 보지?”
여기서 그렇다고 말하면 하수, 부끄러운 듯 웃으면 중수, 그렇다면 고수는?
“저는 오래전부터 바람이 모든 속성의 중심이라고 늘 생각해 왔었습니다. 그것은 진리입니다.”
“역시 참된 마법사로군! 본질을 아주 잘 알고 있어!”
정령도 칭찬에는 약하다니까.
“깨어 있는 자로군.”
“이름이 자레드라고 했나?”
“바람 마법의 수준이 상상을 초월하던데, 다시 한번 보여 줄 수 있겠나?”
고수의 대답 한 방에 거리를 두고 나를 지켜보기만 하던 정령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잘됐다. 살아 숨 쉬는 바람의 스승님들이 나와 함께하신다!
* * *
‘비에나 님과 미아의 여행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군? 그만큼 미아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이 많은 거겠지. 차라리 잘됐어.’
나는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돌아오지 않는 미아를 보며,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그 시간만큼, 나도 정령과 함께 뒤섞여 속성으로 바람 마법 대응법을 수련 중이었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억지로 각도를 확 틀어 버리려 하면, 바람은 절대 그 부름에 순응하지 않아. 크게, 반원을 그리듯, 여유를 가지고 방향을 전환할 수 있도록 바람길만 잡아 주면 되는 거지.”
“와, 하나를 가르쳤는데 최소한 셋, 넷 이상은 아는 것 같은데? 역시 인간 마법사는 달라도 뭔가 다르군.”
다수의 정령이 저마다 앞을 다투어 지식을 전수해 줬다.
말이 여러 군데에서 들어오다 보니 시끌벅적하기는 했지만, 모두가 유용한 조언이라 허투루 넘길 것이 없었다.
‘좋아. 좋아.’
감이 잡히고 있다.
충분히 익히기만 하면 상대가 하이클래스의 바람 계열 마법을 시전해도, 능히 반격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정령 다수가 한곳에 뭉치기 시작하더니, 손을 휘저으며 순식간에 거대한 바람의 창을 만들어 냈다.
7클래스 마법인 윈드 스피어와 외형이 매우 유사했다.
“이번에는 이런 형태의 공격으로 하지. 자신 있나, 자레드?”
정령 아르도르가 소리쳤다.
비에나의 곁을 밀착 수행하고 있는 보좌관 격의 정령으로 정령 내에서는 서열이 높은 존재였다.
그는 내게 깊은 관심을 가졌는지, 다양한 형태로 바람을 부리며 나를 열심히 괴롭(?)히고 있었다.
“걱정 말고 날려 주시죠!”
자세를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과 함께 호흡하며, 밀착 강의를 받을 기회는 흔치 않다. 아마 평생을 통틀어도 자주 오지 않을 것이다.
정령들은 폐쇄적이라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을 처음 만난 오늘 완벽하게 ‘뽕’을 뽑을 생각이었다!
이윽고.
쿠아아아아아!
굉음과 함께 윈드 스피어가 매섭게 내게로 날아들었다.
“하아아압!”
일갈하며 정신을 집중했고, 모든 마력의 힘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순응, 유도, 유혹, 진정.
아르도르에게서 세뇌에 가깝게 지도받은 내용을 기반 삼아, 나는 윈드 스피어의 방향을 비틀기 시작했다.
억지나 강제는 없었다.
그저 바람길을 조심스레 깔아 주고, 바람 구체가 그 길을 따라 순응하며 경로를 바꾸게 유도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유혹하는 연인처럼 농염하고도 아찔한, 아름답고 조화로운 자태였다.
마치.
바람의 춤을 추는 듯했다.
자연을 힘으로 억누르는 지배자가 아닌, 순응하는 협력자로서 아주 자연스럽게…… 윈드 스피어의 방향을 틀었다.
이 모든 과정에는 깊은 생각도, 과도한 집념도, 실패하면 안 된다는 불안감도 없었다.
무아지경.
바람과 내가 하나가 된 듯, 그저 가야 할 길을 선택할 뿐이었다.
바로 그때.
솨아아아앗!
내 옆을 제법 거칠게 지나가던 윈드 스피어의 경로가 극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반원!
내 몸을 중심으로 녀석이 회전하기 시작했고, 이내 방향을 틀어 아르도르가 있는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성공이었다!
9클래스 마법사도 쉽게 할 수 없을, 바람을 다루는 기술을 기어이 터득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축하합니다! 당신은 6클래스 진입을 위한 깨달음, 도전의 최소 조건을 갖추는 데 성공했습니다!]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6클래스를 향한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