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95
제 394화
123장. 거침없는 진격 – 3화
퍼서서석!
자레드의 손끝에서 한 줌의 재가 되어 흩어지는 이카젤라의 모습을 보았을 때.
현장에 있었던 모든 흑마법사들은 경악하고 말았다. 지금의 상황은 힘을 대등하게 겨루는 현장이 아니었다.
일방적인 압살이었다.
개미가 인간에게 아무리 대든다고 한들 한 번 발을 쿵 하고 짓누르면 죽는 것이 압살 아니던가?
이카젤라는 그렇게 죽었다.
온갖 마법을 자레드에게 쏟아부었지만 전부 막혔고, 그다음에 자레드에게 목덜미를 붙잡혀 버렸다.
그 상태에서 파이어 익스플로전에 걸려들어 몸이 불타올랐고, 쇼크 웨이브에 의해 산 채로 그대로 터져 버렸다.
쉽게 말하자면, 급속으로 ‘화장’을 당해 버린 셈이었다. 그것도 숨이 붙어 있는 상황에서.
“너희 대장은 이렇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내 손에 죽었다. 저승의 명부에 이름 한 번 더 적히고 싶은 놈 있나?”
“으아아…….”
하얗게 질린 흑마법사들이 뒷걸음질을 쳤다.
자레드는 마음만 먹으면 그들을 모두 쓸어버릴 자신이 있었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껏 이 행성을 누비고 다니는 내내 느껴지던 보이지 않는 감시 때문이었다.
CCTV라고 할 만한 물체가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처음부터 누가 자신을 살피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체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정보 수집.’
자신의 능력, 행동, 습관, 생각 등등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매우 신중하게 살피고 있는 것이다. 매의 눈으로 나름의 전략 전술을 세우면서 말이다.
바로 그때.
블링크로 거리를 좁힌 자레드가 흑마법사 한 명의 멱살을 쥔 채로 물었다.
“글래버는 어디에 있지?”
“……모릅니다.”
화르르륵!
“크아아악!”
망설임 끝에 고개를 저었던 흑마법사가 앞서서 죽은 이카젤라의 뒤를 바로 따랐다.
자레드가 뒷걸음질치려던 다른 흑마법사를 붙잡고 또 물었다.
“정확한 위치까지 세세하게 알려 달라는 게 아니야. 방향만 말해. 대신 거짓말이면 넌 죽는다.”
시이잉.
흑마법사는 자신의 머리 위에 표식이 찍힌 것을 확인하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자주 쓰이는 백마법은 아니지만 적에게 표식을 남긴 뒤, 그 위치를 이동 좌표 삼아 텔레포트하는 마법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임프루브드 텔레포트’라고 부르는데, 7클래스 마법이지만 마나 소모가 너무 많아 잘 안 쓰인다.
“제가 아는 글래버 님의 위치는 바로 억, 어억, 커헉! 컥! 크아아악!”
퍼어엉!
하지만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갑자기 흑마법사가 자신의 목을 움켜쥐었고, 점점 그의 몸이 팽창하면서 그만 터져 버렸다.
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원료가 된 것처럼, 순식간에 폭발이 일어났던 것이다.
몸만 폭발한 것이 아니라, 내재된 마나까지 일거에 터뜨리는 일종의 ‘마나 익스플로전’이었다.
“흥미롭네.”
자레드는 웃었다.
살고 싶었던 흑마법사가 스스로 자폭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흑마법도 아니다.
이건 누군가가 마치 스위치를 켜듯이 ‘ON’을 눌러, 자폭의 트리거를 발동시킨 것과 같았다.
누구겠는가?
이 행성의 처음이자 끝, 그리고 제왕인 존재. 글래버만이 유일하게 용의선상에 오를 수 있을 터.
“글래버! 네가 비겁하게 어둠의 장막 속에 숨어 있는 만큼, 네 행성은 처절하게 박살 날 것이다!”
자레드가 소리쳤다.
이 자리에 글래버는 없지만, 분명히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있다고 확신한 상태에서의 외침이었다.
이미 판단은 끝났다.
흑마법사는 물론이거니와 이 행성을 떠돌고 있는 수많은 ‘잔챙이’들은 죽여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레드는 이 행성이 자연적으로 진화하고 태어난 생명체가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엔드리스 행성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유영하는 다양한 ‘데이터’의 흔적이 생명을 얻는 공간이었다.
아마 여기서 자신이 죽는다면, 추측컨대 또 다른 자레드가 이 자리에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물론 제왕의 입맛에 맞게, 그에 대한 반감(反感)은 의도적으로 삭제당한 채로 살게 되겠지.
그리고 나중에 지구와 연결되면 던전의 보스 몬스터든 아웃브레이크로 현신하는 존재가 되든.
까다로운 적이 되어 각성자들을 열심히 지옥으로 인도할 것이다.
또, 인도된 영혼의 ‘데이터’들은 여기서 두 번째 삶을 살아가게 되겠지. 매우 끔찍한 일이다.
이 일의 원흉은 더 고민할 것도 없이 글래버다. 그리고 행성을 구성하는 시설들이다.
“네가 늦게 나타나는 만큼, 이 저주 받은 행성에서의 네 권위도 바닥을 치게 될 거다!”
자레드는 더욱 힘주어 말했다.
이제부터 전력을 다해서 엔드리스 행성을 구성하는 코어와 발전 시설을 파괴할 생각이었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이 행성을 구성하는 악의 근원이자 재앙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파아아앗!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레드의 몸이 파공음을 내며, 남쪽을 향해 전속력으로 비행하기 시작했다.
최대치의 초월 마법으로 구현한 플라이 마법은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는 엄청난 속도였다.
물론 조용한 비행이 되지는 않았다.
중간에 지상을 거닐던 개체들의 눈빛이 바뀌더니, 이내 자레드를 향해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의도적으로 글래버에게 이성을 거세당한 다음, 그의 의지에 따라서 공격을 하는 듯했다.
대형 석상, 거대화된 이족 보행 오징어, 온몸이 가시로 뒤덮인 독수리 등등…….
자레드는 다양한 생물체와 싸우면서 남하했다.
각각의 생물체는 한눈에 봐도 각자 다른 세계에서 온 것이 확실할 만큼 생김새가 달랐다.
어쨌든 자레드를 귀찮게 만들고 싶어 했던 모든 방해 공작들은 하나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남쪽의 끝자락에 다다른 자레드의 시야에.
치이익! 푸우우!
치이이익! 푸우우우!
희뿌연 증기를 뿜어내며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수많은 증기기관이 보였다.
마치 20세기 초반의 증기기관을 보는 듯했지만, 뿜어내는 에너지의 파장은 공간에 ‘왜곡’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근대의 시설과 근미래의 개념이 한데 뒤섞여 있는 느낌. 이 행성은 여러 가지로 참 특이했다.
“글래버, 네놈이 직접 나서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내 앞길을 막을 수 없어.”
자레드는 스스로 오만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입가에 잔뜩 미소를 머금은 채.
슈아아아아! 콰아아아!
전력으로 행성의 ‘코어’를 부수는 폭파,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머뭇거림이라고는 손톱의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삭제의 시작이었다.
* * *
“귀찮게…….”
글래버가 왕좌에서 일어섰다.
이 행성의 지배자이자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피조물들에게 ‘파괴의 신’이라고 불리는 명칭과 달리.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는 왕좌에서 몸을 일으킨 글래버의 모습은 대단히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글래버는 왕좌 옆에 놓아 둔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았다.
늘 보았던 모습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런 모습이었다.
“…….”
글래버가 시선을 자신의 두 발로 자연스럽게 내리자.
쉬이이이이!
처업! 처어업! 차착!
푸른빛과 안개를 뿜어내고 있는 특수 시설에서 출발한 신발 형태의 아티팩트가 바로 채워졌다.
자레드가 이 광경을 봤다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를 떠올릴 법한 변신이었다.
고오오오.
신발을 신은 순간, 가냘픈 마른 여자의 다리 같았던 글래버의 하체가 붉게 달아올랐다.
이내 혈관이 확장됐고, 마치 급속 생성을 하듯이 근육이 만들어졌다.
불과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매끄러웠던 다리는 어느새 보디빌더를 연상케 하는 근육질로 바뀌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프스스스!
맨발로 지면을 내디디던 다리 대신, 자유롭게 공중을 거닐도록 신발이 균형과 출력을 잡았다.
이윽고 왕궁 내의 특별 관리실에 도착한 글래버는 모든 상황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왕궁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기는 하나,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존재는 오직 글래버 하나뿐이었다.
그래도 됐다.
모든 것이 많은 아티팩트에 의해 자동으로 이뤄지고 있었기에.
요리를 하는 것도, 왕궁을 경비하는 것도, 청소를 하는 것도 전부 아티팩트의 몫이었다.
심지어 외로운 글래버의 마음을 달래 주는 것도 여성형 자아를 부여받은 아티팩트의 몫이었다.
-제가 도와드릴 것은요?
특별 관리실 안으로 들어서자, 방 한옆에 놓여 있던 검이 목소리를 냈다.
바로 글래버가 아끼는 무기이자 동시에 대화 상대이기도 한 에고 소드 ‘미리나’였다.
“신경 쓸 것 없다.”
-언제든 불러 주세요.
“후우…….”
삑삑. 삑. 삑.
글래버의 손가락이 특별실 내부에 설치된 다양한 장치들 사이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우리 연합의 그 어떤 행성과도 연락이 닿지 않는군. 내부 문제였다면 분명히 우리에게 교신이 들어왔을 텐데……. 단계적으로 하나씩 격파를 당한 건가? 동시에 통신을 차단당하고?”
글래버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현재 엔드리스 행성의 남부를 박살 내고 있는 ‘그놈’이 우발적으로 벌인 일은 아닌 듯했다.
놈의 단계적 설계에 완벽히 당했다.
그러니 글래버도 지금의 상황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생존 신호 한 번을 못 보냈다라……. 설령 기습에 당했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 단 한 차례의 신호도 못 보냈다는 것은…….”
리더의 죽음.
그리고 코어의 완파.
현명한 글래버는 너무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차원 연합이 무너졌다.
여덟 개의 행성 중 일곱 개의 행성이 저 불청객의 손에 줄줄이 당해 버린 것이다.
심지어 구조 신호를 단 한 번 보낼 틈도 없이 순식간에 당해 버렸다. 각 행성의 왕은 죽었다.
수십 개가 넘는 수정구에 나타난 화면 속에선 자레드가 코어를 보이는 족족 박살 내고 있었다.
코어를 찾아내서 정말 가루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맹폭을 퍼부었다.
분풀이도 아니고, 난사도 아니었다.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코어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구 침공은 이렇게 물 건너가는 건가?”
글래버는 인상을 찌푸렸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정도가 아니라, 재로 비벼서 쓰레기통에 버려 아예 먹지도 못하게 만든 수준이었다.
“아냐, 아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글래버가 완전히 허를 찔릴 정도로 단계적으로 행성을 박살 내면서 온 녀석이라면!
자신이 생각하는 그 이상의 많은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역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쉽게 공간을 누비고 다닐 수 있는 놈이라면, 반대로 거꾸로 타고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즉, 저 불청객을 어떻게든 생포하기만 하면…… 그놈의 머릿속에 있는 수많은 지식과 기억, 경험들을 전부 해체할 수 있다.
그 기억과 경험, 지식 속에는 분명 놈의 움직임을 간단히 제어할 뭔가가 있을 것이다.
“네놈을 내가 갖겠다.”
시종일관 일자였던 글래버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그리고 드넓은 왕성의 한복판으로 나와서는 양팔을 벌린 채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다음 순간.
우우웅! 우우웅!
왕성 전역 곳곳에 배치된 특수 시설에서 출발한 다양한 아티팩트가 글래버에게로 날아들었다.
강화의 시작.
완전체의 글래버가 나서는 것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글래버의 가슴도 두근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