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turned as a genius violinist RAW novel - Chapter 257
257화
솔직히 아무렇지도 않으려 애썼지만,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렇게 시간이 지나 있는 게 아닌가.
그만큼 열심히, 치열한 노력으로 달려온 시간이었다. 치료와 재활, 연주를 병행하는 인고의 시간들.
드디어 그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얼마 전의 평양 공연도 잘 마무리했겠다, 서진은 가까운 이들끼리 완치 기념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모친인 선희를 비롯해 지연, 이자크, 윤수, 하윤, 찬윤, 이준, 서준 등등… 주로 한국에 체류 중인 가까운 이들을 중심으로 모인 것이다.
“서진아, 진심으로 고생했어. 이제 꽃길만 걷자!”
“축! 완치!”
엄밀히 말해 ‘완치’는 아니지만, 이 질병에 한해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완전히 치료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치료 완료’에 가까운 의미로서.
암 수술 및 항암치료 후 5년간 재발하지 않으면 의학적으로 그렇게 정의하는 것처럼, 일정 기간 동안 병세가 악화되지 않으면 이 병 역시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다.
“그럼 이제 웬만하면 걱정 안 해도 되는 거야?”
“글쎄. 완전히 그런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제 투병 중은 아니라는 게 중요한 거지.”
물론 유전인자 자체가 사라지지 않은 한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역시 암과 마찬가지였다. 암의 발병 요인 중 가장 큰 원인이 특정 암에 취약한 유전적 요인을 보유했느냐의 여부인 것처럼, 이 병 역시 일단 유전인자가 남아있는 한 완벽히 나을 수는 없었다.
없던 암도 생기는데 재발은 더더욱 쉬운 일. 완치된 후에도 언제든 숨은 암세포가 다시 증식해 전이되거나 할 수 있는 것처럼, 서진의 병 또한 마찬가지인 것이다.
하지만 현재 서진은 증상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치료 약을 통해 유의미한 수준의 개선 효과를 보이고 있기에 충분히 희망적이었다.
거기에 재활을 통해 일상생활뿐 아니라 연주를 하는 것에서도 거의 불편한 없이 가능해진 만큼, 이 병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완치라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 정말 고생했다.”
“네. 감사합니다. 어차피 유전적 요인 자체를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니까, 적어도 예후가 좋다는 의미에서… 일단은 이것만으로도 다행이지요.”
앞으로 평생 관리하고 살아야 한다는 건 이미 받아들인 지 오래였다. 그래도 예방약도 있고, 증상 발현 시 그걸 완화시켜주는 치료제도 있으니 괜찮았다.
“맞아. 그래도 이게 어디야. 우리 서진이, 진짜 자랑스럽다! 장하다!”
“선배, 너무 멋져요!!”
“우리 아들, 정말 고생 많았어.”
“모두 도와주신 덕분이죠.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모두에게 고마워.”
“어어, TV 틀어봐. 방송 나올 시간이다!”
몇 달 전 녹화했던 방송 프로그램.
그게 바로 오늘 방송될 예정이었다.
찍은 지는 제법 됐는데, 그 후 추가로 씬을 더 촬영하느라 이제야 방영하게 된 것.
“오오! 나온다, 나온다!”
-참, 한서진 씨는 얼마 전, 북한에서도 공연을 하고 오신 걸로 화제인데요…,
바로 이 부분이 나중에 추가로 넣은 부분이었다. 평양 공연이 워낙 화제라, 기존 촬영분에 더해 따로 인터뷰를 더한 것.
-예. 제게도 무척이나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방송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건 기분이 무척 이상한 일이었다. 화면에 나오는 모습이라 해봤자 주로 연주하는 모습이거나, 짧은 인터뷰 정도가 전부였는데….
게스트와 패널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떠드는 모습을 보는 데 민망함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다름 아니라 저들이 떠들고 있는 내용들이 하나같이 제 얼굴에 금칠을 해대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21세기 음악사를 다시 쓴 천재니, 한서진 사조의 창시자로서 클래식의 재 부흥기를 이끄는 주인공이니…,
-맞습니다. 하나의 사조, 거대한 흐름이라는 걸 이루려면 어느 한 사람만의 힘으로는 안 되는 게 보통의 이치지요. 하지만 한서진 씨는…,
-현재 클래식계의 전체적인 동향이 그렇다지요? 한국으로 클래식 음악계의 중심지가 옮겨오게 되는 현상에 서구권도 처음에는 당황하는 눈치였다가…, 이게 참, 이제는 오히려 다들 당연하게 생각한다지요?
-맞아요. 어느 순간부터 그냥 모두 당연히 여기고 있지요. 단순히 그들만의 리그였던 클래식 시장을 넘어,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장르 여기저기에도 한서진의 곡이 쓰이고 있으니까요. 그 결과, 21세기 클래식의 중심지가 아예 한국이 되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네. 특히 한서진 씨는 한국적 색채의 곡을 많이 만들어 주셨지요. 러시아쪽 애수와도 닮은 듯하면서도, 우리만의 고유의…, 그리고 그러한 요소들을 대중적으로도 과감히 결합했고요…,
-…아, 예….
“와, 너 엄청 어색해!”
“알거든?”
확실히 영상 속의 서진은 엄청나게 부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예. 초반에 동유럽 쪽의 민족주의 민속악 색채에 영향을 받았거든요. 그들 국민악파 음악가들에게 늘 감명받았던 바가 있는지라…,’ 라며 어쩌고저쩌고 기계적인 답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현재 비 클래식 권역에서조차 한서진씨의 영향을 받아 클래식이 그렇게 인기라죠? 남미나 동남아, 심지어 아프리카 각국에서도 나름대로 자신들의 전통음악과 현대 대중음악을 녹여 ‘한서진 사조’에 부합하는 클래식 곡들을 작곡하는 게 대세라고…,
-대중들이 현대음악에 익숙해질 날이란 영원히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제 그 단계를 넘어 새로운 사조로 나아가고 있다니, 정말 감회가 새롭군요.
-글쎄요…. 그렇게 거창한 이름까지 붙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사조니 하는 건 후대에 붙이는 거니까요.
서진은 그렇게 손을 내저었지만, 지금의 음악계는 훗날 정말로 클래식 시대의 재 부흥기로 명명될 그런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건 전부 한서진이라는, 작곡가이자 연주가. 그리고 지휘자이기도 한 단 한 명의 음악가의 공이라 할 수 있었다.
금칠에 떨떠름해하는 것은 서진뿐으로, 아예 오늘의 인터뷰는 작정하고 이쪽으로 나가는 모양이었다.
서진은 저놈의 TV를 꺼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분명 녹화 때는 굉장히 평범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왜 이쪽으로만 집중해서 편집이 된 거람….
아니 진짜, 이 정도로 이런 얘기만 했던 건 아닌데, 긴긴 이야기 중 소소한 수다는 다 잘라내고 편집해 놓으니 진짜 금칠 퍼레이드였다.
-제가 장담하건대, 한서진 씨는 ‘하모베’와 나란히 그 이름이 역사에 길이 남으실 겁니다!
-아, 한서진씨는 이미 21세기를 빛낸 가장 위대한 천재로 뉴스위크지에 선정된 바 있다는 걸 모르시나 보군요.
-오오, 그래요?
-네. 20세기를 빛낸 위대한 천재로, 무려 아인슈타인과 나란히 선정된 사라 정. 그리고 21세기를 빛낸 위대한 천재로는 김연아와 나란히 한서진 씨가 뽑히셨지요.
이 타이밍에 화면에 화려한 자막이 마구 도배되었다. 이쯤 되니 서진은 방송에 출연한 것을 후회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함께 있는 가까운 이들의 마음은 전혀 다른 모양이었다.
특히 선희는 지연과 나란히 팔짱을 낀 채, 세상 자랑스러운 얼굴로 아들이 나오는 TV 화면에 빠져들어 있었다.
못 말려 진짜….
차마 꺼버릴 수도 없으니 서진은 마음을 비웠다.
-맞아요. 21세기 클래식의 중심지를 대한민국으로 만드신 분이시니까요. 참, 한서진 씨의 이름을 딴 악단, 콩쿨, 재단에 이어 이제 공연장도 만들어진다면서요!?
그랬다.
아이작 스턴 홀처럼 서진의 이름을 딴 공연장, 무려 한서진 홀이 건설 중인 것이다.
-네. 그 부분은 저도 기대가 큽니다. 빨리 완공되어 보다 많은 분들께 제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물론이지요. 한서진 씨는 단연 최고라는 수식어를 차지할 만한 분이니까요.
하지만 그 찬사에 서진은 정작 단호히 부정했다.
-…글쎄요. 그건 조금 과찬이신 것 같습니다. 저는 음악에 있어 ‘최고’란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사람마다 다들 저마다의 취향이 있으니 말이지요.
-하하. 그런가요. 한서진 씨는 역시 듣던 대로의 분이시군요. 그럼… 조금 다른 걸 묻고 싶군요. 모두가 가장 궁금해할, 그런 질문인데요. 한서진씨께서 지금의 위치에 오시기까지, 그 가장 큰 요인이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음.
잠시 고민하던 서진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제가, 지병이 있어 꽤 오랜 시간 투병을 해왔던 건 모두 아실 겁니다.
-….
서진의 말에 장내가 잠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러한 장애물이 있었기에, 먼 길을 돌아온 덕에 이러한 결과가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손 문제로 쉬어가느라 시작했던 작곡, 그리고 나아가 지휘까지. 그 모든 것이 지금의 자신을 있도록 만든 요소들이니까요. 그리고 몇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증세가 시작한 이래,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재활과 치료를 비롯해 힘든 시간이긴 했지만… 그 시간이 오히려 저를 더 성숙하게 만들어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숙연해진 분위기 가운데, 진행자가 마지막 질문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솔직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젊은 나이에 이미 많은 것을 이룬 한서진 씨인 만큼, 어깨도 무겁고 앞으로 나아갈 길도 고민이 많으실 텐데요. 앞으로의 포부랄까, 계획이나 목표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그 질문에 서진은 여태껏과 다르게 더없이 편안한 미소를 띠었다.
화면 속 서진이 곧바로 대답하는 대신, 마지막 답변을 생각하는 사이.
방송을 지켜보고 있던 서진 역시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늘 자신의 곁을 지켜준 고마운 이들. 지금 이 순간 역시 모두 함께하고 있었다.
늘 느끼던 것이지만, 오늘따라 새삼스레 생각하는 바였다.
정말로 많은 이들과 함께 걸어온 길이라고. 결코 저 혼자 잘나서 이만큼 해온 것이 아니라고.
이렇게 자신을 축하해주기 위해 달려와준 모든 이들. 함께 울고 웃고 노력해 온 모든 순간들.
새삼스레 소중하고 고마웠다.
“…….”
어깨 위에 얹어지는 누군가의 다정한 손길 속에, 드디어 인터뷰의 마지막 답변이 들려왔다.
-거창한 목표라기보다는…,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평생, 건강이 허락해주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연주도 하고 많은 발자취를 남기고 싶습니다. 제 음악을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는 한, 그리고 함께 해주는 소중한 이들이 있는 한, 무슨 일이 있어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요.
함께 음악이라는 길을 걸어온 소중한 이들에게 둘러싸인 채, 현실의 서진 역시 화면 속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빛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END
(credit to kind overseas read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