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09
“맘대로 해.”
내가 죽을 가능성은 희박하거니와, 설령 죽는다고 해도 죽은 다음에 카드들이 어떻게 되건 알 바 아니다.
“일단 신살검은 내가 갖도록 하지.”
“십억에 하나라도 내가 죽으면 신살검은 잘 찢어서 바다에 버려줘.”
내 말에 흑일삭의 눈이 일자로 찢어졌다. 사실 신살검이 어떻게 되건 알 바 아니지만 남이 원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해 주는 것은 카드를 쓰는 사람이 해서는 안 될 태도다.
플레이를 방해하는 안티 플레잉을 몸에 익혀놔야 한다고 해야 할까.
그냥 기뻐하는 흑일삭의 얼굴이 배알 꼴려서는 절대 아니다.
“아무튼.”
이제. 30층으로 가 볼까.
***
30층. 「신앙거석」이 존재하는 장소는 모래로 직조된 거대한 콜로세움이다. 설정상으로는 안에서 수없이 많은 전투가 영원히 벌어지는 곳이라고 한다.
플레이어는 이곳에서 선수로 출전하거나 관전자로 몬스터들의 혈투를 구경할 수 있다. 물론 실제로 구경해 본 적은 없었다. 내가 한 질문인 ‘몬스터들도 듀얼로 싸우나요?’라는 질문에 ‘아니요.’라는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151종이 넘는 몬스터들의 박진감넘치는 대혈투를 눈 앞에서 볼 수 있다니. 야구만큼이나 관심이 가는 이야기다.
“나는 여기까지다. ···아무튼 실패할 것 같다면 바로 포기하고 도망쳐라. 30층은 페이즈가 넘어가지 않는다면 포기가 가능한 장소니까.”
“싫은데.”
“···네 맘대로 하도록.”
“그래.”
평생 그래 왔다.
아무튼간에 도망이라는 선택지는 없다. 도망쳤다가는 다시는 탑 공략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놈들의 탑 공략을 믿을 수 없는 내 입장에서 도전 기회는 한 번 뿐이라는 이야기다.
나는 대충 손을 흔들어 흑일삭을 배웅하고 도전자의 문 앞에 섰다.
나는 숨을 들이키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모든 준비가 완벽한가?
“···아마도.”
그런데도 희미한 불안감이 가슴에 있다. 모든 준비가 완벽하다고 생각해도 듀얼이라는 것은 변수덩어리다. 이중 삼중으로 대비해 놔도 패가 말리면 한순간에 지는 것이 가능하다.
대비를 해 놔도 똥패가 오는 것은 막을 수 없다. 내 인생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에 대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단순하다. 평정을 갖는 것. 받은 패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마음이 정돈되고, 생각이 하나로 모아진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집중이 최고조에 이르며 머리에 혈류가 돈다. 나는 마음 속에 있는 불안감을 죄다 모아 바깥으로 토해낸다. 더는 내 몸에 남아 있지 못하도록.
후우. 긴 숨이 토해진다.
“좋아.”
절호조의 상태다. 내가 해 왔던 모든 듀얼에서 그래왔듯이.
“도전한다.”
주변의 시야가 점멸한다. 장소가 바뀌고 나는 콜로세움의 중앙에 서 있다. 주변을 뒤덮고 있는 수많은 관객들.
쿵! 쿵! 쿵!
거대한 소음이 바닥에서 울린다. 정확히는, 콜로세움의 일부가 쿵쿵거리며 흔들린다.
우드드드득! 관객들이 앉아 있던 콜로세움의 일부가 통째로 뜯어져 나온다. 거대한 콜로세움의 일부인 동시에 이 층의 탑주이기도 한 챔피언. ‘신앙거석’이다.
─ 내게 도전을 한 자가 바로 너냐?
“그래.”
─ 조그맣기 그지없는 놈이구나.
우렁우렁대는 목소리. 귀가 벌써부터 아프다. 나는 신앙거석을 올려다봤다. 아파트의 네다섯 배는 되는 크기다.
게임으로 만났을 때랑 직접 만났을 때의 위압감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말 그대로 산만한 적이랑 듀얼을 해야 한다니.
다행인 점은 몬스터들을 상대해오며 커진 나의 담 덕분에 오줌을 지리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보다 이제서야 드는 생각인데, 이 정도 체급 차이면 듀얼이고 뭐고 없이 손가락으로 나를 눌러 죽이는 게 더 편하지 않나?
나는 신앙거석이 이런 논리적인 판단을 하기 전에─
“듀얼!”
─듀얼을 외쳤다. 다행이야. 상대가 듀얼밖에 모르는 듀얼 모지리라서.
듀얼이 선언되자마자 필드가 급변한다. 내 등 뒤에서 거대한 모래시계가 만들어진다. 시간 카운팅을 하던 모래시계와 퍽 닮은. 하지만 훨씬 커다란 크기의 모래시계.
[듀얼 스타트!]“내 턴, 드로우.”
나는 패를 뽑아들었다. 최대한 초중반부를 버틸 수 있는 카드들과 단독으로 효율을 보일 수 있는 카드들만 집어넣은 덱이다.
좋아. 패는 나쁘지 않다. ‘처형’까지 걸리는 시간은 10턴. 이 첫 패와 드로우 패만으로 시간을 벌어야만 한다.
“···턴 엔드.”
─ 네가 탑을 오르며 쌓아왔던 모든 업이 네게 향하고 있다.
[신앙거석의 특이성, 「업보의 모래알」이 발동합니다.] [「모래알」이 당신의 덱에 쌓이기 시작합니다!]사르르르륵! 모래가 엄청난 기세로 내 덱 위로 부어지기 시작한다.
[턴 종료까지 걸리는 시간동안 1초에 1장씩, 「방해의 모래알」이 당신의 덱에 추가됩니다.] [남은 「모래알」스택 : 2037] [2036] [2035]···
─ 거대한 모래쥐를 소환하지.
+
【거대한 모래쥐】
【1 mana】
【0/4】
+
신앙거석의 덱의 덱 파워는 그리 강하지 않은 편이다. 오히려 약하다. 상대와의 밸류 교환을 통해서 시간을 벌고, 상대방의 덱에 방해 카드를 잔뜩 쌓아놓은 다음 일방향적인 듀얼을 하는 것이 놈의 전략이니까.
사르르륵! 모래알이 점점히 내 덱에 쌓아올려진다. 전략인 건 알지만 그래도 지루하네. 턴이 지나가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데 갤러리에서 흑일삭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제기랄. 벌써 덱에 쌓인 방해 카드들이 60장을 넘었어. 이럴 거였으면 덱을 최대한 두껍게 가져왔어야지!”
다 들린다. 훈수를 금지시키고 싶은데 주변의 소음에 묻혀서 제대로 들리지 않을 게 뻔하다.
지금 내 덱은 100장을 겨우 넘는다. 덱의 최대 매수인 200장에 비하자면 절반도 되지 않는 수치. 언뜻 보기에는 멍청해 보일 수도 있다. 뭐. 구경하는 사람이 훈수를 두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니 이 정도는 봐 줄까. 흑일삭 말고도 주변에서 야유가 터져나오고 있기도 하고.
“저 자식. 업보의 모래알을 얼마나 쌓아온 거야?”
“언뜻 봐도 100개는 넘어 보이는데?”
“150개 정도 되지 않을까?”
“멍청아! 20개도 넘어! 저 멍청이. 그러고서도 신앙거석님에게 도전하다니!”
···아무리 그래도 20이 큰지 150이 큰지 모르는 놈들이 훈수하는 건 좀 기분이 나쁘네. 나는 고개를 돌려 소리의 진원지를 바라봤다. 미어캣처럼 생긴 몬스터 몇 마리가 보인다.
얼굴 딱 봐 뒀다. 이거 끝나고 보자.
사르르르륵! 내 덱에 모래가 쌓아올려지는 과정이 끝난 것은 신앙거석의 턴 제한 시간이 90초가 모두 끝나고서였다.
─ 턴을, 종료하지.
“내 턴.”
덱 안에 있는 모래의 비율은 대략 절반 가량. 절반의 확률이면 프로 듀얼리스트인 나 정도 되면 모래알 대신 덱에 있는 카드를 반드시 뽑는 확률이다.
그게 바로 실력이라는 거지.
나는 확신에 가득찬 채 자신만만하게 카드를 뽑아들었다.
“드로우!”
+
【모래알】
【사용 불가】
【사용할 수 없는 카드입니다.】
+
사실 진짜 실력이라는 것은 드로우와 크게 관련이 없다. 덱에서 바라는 대로 카드를 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머저리나 하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덱을 제대로 구상하고 플레이하는 것이 듀얼리스트의 실력인 법. 바로 지금처럼.
“나는 신기루의 기사를 소환!”
+
【신기루의 기사】
【물 속성】
【1 mana】
【소환 : 덱에서 랜덤한 5마나 이상의 소환수를 패로 가져옵니다.】
【1/1】
+
내 덱에서 카드 한 장이 뽑아져 나온다. 뽑혀져 나온 카드는 「물의 기사」. 적 소환수를 지울 수 있는 좋은 카드다.
덱에 방해류 카드들이 가득차기 시작할 때의 대응 방법중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서치류 카드들을 많이 집어넣는 것이다. 서치 카드들은 확정적으로 카드들을 뽑아 올 수 있다.
운에 기댈 필요가 사라지는 카드들이라는 거지.
사르르륵!
내가 플레이하고 있는 와중에도 여전히 「모래알」스택은 착실하게 쌓이고 있다. 오우. 시원하구만.
“자! 이제 빨리 턴 종료해! 조금이라도 스택이 적을 때!”
고래고래 지르는 흑일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어플러그 사 올 걸 그랬나. 신앙거석도 그렇고, 주변 갤러리도 그렇고. 시끄럽기 그지없다. 이거 사실 대지의 시련이 아니라 소음공해의 시련 아니야?
나는 흑일삭의 말을 들은채도 하지 않은 채 패를 확인하고 다음 플레이를 생각했다.
사르르륵!
음. 기분 좋게 쌓이는구만. 나는 가을전어처럼 통통해지고 있는 덱을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턴 종료하라니까! 머저리!”
턴 종료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번 턴부터 모래알이 모두 쌓일 때까지.
끝
턴이 넘어가는 시간은 길디길었지만, 게임의 템포는 반대로 빨랐다. 신앙거석의 덱 자체의 마나 커브가 낮게 만들어져 있는 탓이다.
애초에 상대의 플레이를 방해하는 특이성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마나 커브가 높을 필요가 없는 탓이다. 영리한 덱 구성이라고 할 수도 있다. 누가 조언했는진 몰라도 똑똑하고 덱 메이킹에 조예가 있는 소울 커맨더스 프로인 것이 분명하다.
물론 저것만이 신앙거석 덱의 전부는 아니긴 하다.
···애초에 저 덩치로 듀얼하고 있는 것부터가 영리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은 차치하자.
─ 신앙의 거석병을 소환.
+
【신앙의 거석병】
【mana 3】
【소환 : 상대에게 카드 한 장을 뽑게 합니다.】
【3/4】
+
마나 코스트가 5에 접어들었는데도 아직도 저레벨 카드들인 위니 위주의 소환들이 메인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합리적인 선택으로 발생하는 덱의 구성이지만 반대로 내 입장에서는 큰 노력을 쓰지 않고도 필드를 구축할 수 있으니 괜찮다.
오히려 이득이라는 말이다.
[당신의 턴입니다.]나는 패를 뽑아올렸다. 이번 패도 꽝이다. 덱의 두께가 900장을 넘어섰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앞으로의 턴 동안 추가적인 카드들의 보급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니 지금 있는 패들로 남은 턴들을 버텨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특정한 목표를 상정하고 짠 덱이니만큼 버틸 확률은 꽤나 높다.
“나는 「환상향의 문」을 시전하지.”
+
【환상향의 문】
【3 mana】
【적 전체에게 데미지를 2 줍니다. 무작위 하수인 하나를 발견합니다.】
+
내 앞에 떠오르는 세 장의 카드들. 나는 「썩은 누더기젤리」를 골랐다. 3/5에 도발이 달려 있는 데다가, 유언으로 새 도발 소환수 「미니미 누더기젤리」가 나오는 하수인이다.
템포가 빨라진 현재 환경에서는 외면받는 소환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최고의 선택지다.
“우우! 막을 생각만 하지 말고 공격 카드를 골라!”
뒤에서 흑일삭의 야유가 터져나온다. 아니, 어떻게 이 탑에서 만나는 놈들은 죄다 훈수충인 건지 모르겠다.
내 덱을 구성하고 있는 세 가지 축. 하나는 ‘서치’, 그 다음이 ‘발견’ 카드들. 서치가 덱에 있는 카드들을 방해 카드들을 무시하고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선택했다면 조건에 맞는 무작위 카드들을 핸드로 생성하는 ‘발견’카드는 대응 능력에서 서치에 비해 월등하기 때문에 채용했다.
단순히 덱에 있는 카드들을 가져올 수 있으니 서치 카드가 무조건적으로 우세한 카드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발견’이라는 테마는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이 서치에 비해서 비교 우위가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전문 음식점과 뷔페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우우! 밸류 낮은 발견 카드나 쓰고 있고! 꺼져라!”
“우우우! 이 못생긴 인간종 말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