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14)
“됐다. 기분 상하지 않았으니. 그리고 네가 걱정해야 할 건 내 안위가 아니다.”
“하면······.”
“혹시라도 저기서 누군가 도망치는 상황을 걱정해야지.”
하오문도가 벽태산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왠지 벽태산의 기세가 약간 변한 것 같아서였다.
묘한 압박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여기가 당양이라고 했지?”
“예. 맞습니다.”
“당양에 하오문도가 몇이나 있느냐?”
“일단 하오문도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들은 예순 명입니다. 하지만 각각 다섯에서 열 명 정도의 사람을 부리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자신들이 하오문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모른다. 그저 돈이나 욕망에 휘둘려 일을 하는 자들이었다.
“싹 동원해서 혹시라도 저 장원에서 도망치는 놈이 있으면 뒤를 추적해라.”
저 장원에서 도망치는 놈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알 수 없으니 하오문도들에게 막으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저 추적해서 어디에 있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그럼 바로 벽태산이 가서 잡을 수 있을 테니까.
“명을 이행하겠습니다.”
하오문도가 고개를 숙이고는 멀찍이서 대기하는 동료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사방에서 하오문도들이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내가 저 장원에 언제 들어가면 되겠느냐?”
“최대한 서두르겠습니다. 이 각만 주시면 주위에 추적망을 깔아놓겠습니다.”
“좋아. 이 각 후에 들어가마.”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 주위를 슥 둘러봤다.
마침 근처에 작지만 운치 있어 보이는 다루가 하나 있었다.
벽태산은 다루로 들어가, 이 층 창가에 앉아 느긋하게 차를 즐겼다.
창을 통해 장원의 정문이 보였다.
* * *
고준광은 이곳에서 떠날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파기할 건 다 파기했다.
그동안 썼던 서류라든가 장부는 전부 태워 없앴다.
지금은 챙겨야 할 것들을 챙기는 중이었다.
그것도 제법 많았다.
일단 그동안 자신이 행했던 작전들에 대한 모든 것을 기록하고 정리한 서류를 챙겼다.
그리고 서도군이 남긴 것들도 챙겼다.
남은 증혈단과 개량한 증혈단도 잘 챙겨야 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저기 있는 강시들인가?”
고준광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정원을 가득 메우고 있는 반강시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반강시들이 풀썩풀썩 쓰러지는 광경도.
고준광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만, 저런 현상을 일으키는 자가 누군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벽태산!”
쓰러지는 반강시들을 지나치며 성큼성큼 걷는 벽태산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어설프게 세워둔 짚단을 쓰러뜨리는 듯했다.
정원에 모아둔 반강시의 수가 오백이 넘는다. 한데 그 오백이 전부 쓰러지는 데에는 그저 눈 몇 번 깜빡일 정도면 충분했다.
모든 반강시가 쓰러졌다.
그리고 벽태산은 그 한가운데 가만히 서 있었다.
고준광은 다급히 챙기던 걸 자루에 넣고 등에 짊어졌다. 그리고 서둘러 그곳에서 나갔다.
앞 뒤 가릴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일단 도망쳐야 한다.
그리고 정 답이 안 보이면 자결할 것이다. 자결하는 건 금지되어 있지만, 아마 이런 경우라면 주군도 이해해주실 거라 믿었다.
‘빌어먹을!’
고준광은 빠르게 전각의 반대쪽 창을 뚫고 뛰었다.
콰창!
창이 산산이 부서지며 고준광과 함께 쏟아졌다.
고준광은 바닥에 가볍게 착지하며 그대로 몸을 날려 담장을 넘었다.
남은 부하들에게 아무 지시도 못 내렸다는 사실이 떠올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장원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고준광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준비해 놓은 안가를 향해 빠르게 뛰었다.
일단 잠잠해질 때까지 숨어 있다가 몰래 당양을 빠져나갈 계획이었다.
고준광은 최대한 흔적이 남지 않게 애쓰며 몸을 날렸다.
* * *
벽태산은 영력이 흩어지기 전에 몸으로 받아들였다.
질이 그렇게까지 좋은 놈들이 아니었는지 효율이 평소보다 좀 떨어졌다.
하지만 오백 구가 넘는 숫자가 효율을 무시할 정도의 양을 선사했다.
한 놈이 빠져나가는 것이 감각에 포착되었지만 일단 내버려뒀다. 지금은 그놈을 잡는 것보다 영약을 섭취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놈은 다시 잡으면 되지만 여기서 흩어진 영약, 아니, 영력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영력을 몸에 차곡차곡 쌓은 벽태산은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전각 안에 있던 자들이 기특하게도 도망치지 않고 벽태산을 기습했다.
퍼퍼펑!
어떤 놈이 바닥에 독이 든 병을 던졌다.
자욱한 독연이 주변을 휘감았다.
벽태산은 그걸 신경 쓰지 않고 움직였다. 증혼마공의 주인에게 독은 통하지 않는다.
몸에 들어오면 전부 타서 증발해 버리니까.
천장에 검을 든 사내들이 붙어 있다가 벽태산 앞에 독연이 터지는 순간 뛰어내리며 검을 내리쳤다.
벽태산은 한 발 앞으로 걷는 것만으로 떨어지는 검을 피했다.
벽태산의 한 걸음은 그냥 걸음이 아니다. 막대한 압력이 검을 쥔 사내들의 머리를 짓눌렀다.
퍼버벅!
그와 동시에 입구 옆에 숨어 있던 사내들이 검을 내질렀다.
벽태산이 손을 한 차례 휘저었다.
채채채챙!
검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서로 얽혔다.
퍼버버벅!
그리고 그들의 머리가 터졌다.
그렇게 머리가 터져 죽은 사람이 아홉 명이었다.
이제 남은 자들의 수는 세 명, 벽태산은 그들을 향해 성큼 걸었다.
투두둑!
세 사람이 동시에 눈을 까뒤집으며 그대로 쓰러졌다.
벽태산이 그들의 혈도를 제압한 것이다.
벽태산은 그들을 집어 휙휙 던져 따로 모았다.
저놈들은 나중에 하오문에게 챙기라고 지시할 것이다.
남은 놈들 중에서 그나마 지위가 있는 것 같으니 심문이나 해보라고 할 생각이었다.
물론 아는 건 거의 없겠지만 어차피 자신이 하는 게 아니라 하오문이 하는 것이니 귀찮을 일도 없었다.
벽태산은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지하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이 딱 한 명 있었다.
벽태산은 지하로 저벅저벅 내려갔다.
* * *
승도흥은 지하에 마련된 뇌옥에 갇혀 있었다.
고문은 당하지 않았지만, 잡히는 과정에서 제법 많이 얻어맞아 몸 곳곳이 욱신욱신 쑤셨다.
“후우. 이거 아무래도 여기까지인가보네.”
누군가 자신을 찾아올 수 있도록 안배를 해두었다.
하지만 그 안배는 시간제한이 있었다.
추종향이 사라지기 전까지 자신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냄새가 너무 희미해졌다.
아마 자신이 살던 집 근처에 뿌려진 추종향은 이제 웬만해서는 냄새를 맡기도 어려울 것이다.
“설마 날 찾으려고 움직이다가 이놈들에게 당한 건 아니겠지?”
승도흥은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면 고준광이 가만히 있었을 리 없다. 자신의 배후를 캐겠다고 고문을 시작했을 것이다.
의창에서 지내는 동안 계속 빈틈을 노려 간신히 신호 몇 개를 보낼 수 있었다.
그 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움직임이 있었어야 한다.
“신호가 잘못 되었거나······ 아니면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거나.”
그래도 언젠가 움직이긴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추적할 테고, 운이 정말 좋다면 나중에라도 자신을 찾아낼지 모른다.
“젠장. 이딴 놈들이랑 엮이게 될 줄이야.”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운이 너무 없다.
그렇게 신세한탄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지하 뇌옥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저벅. 저벅. 저벅.
느릿느릿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였다.
고준광은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다급히 움직였다. 만일 고준광이라면 탁탁탁탁, 하는 소리가 났으리라.
승도흥이 고개를 들어 계단 쪽을 살폈다.
한 사람이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 놈들이 아닌데? 설마······!’
승도흥의 눈에 희망의 빛이 맴돌았다. 그 희망의 빛은 이내 희열로 바뀌었다.
추종향의 냄새가 강렬하게 코끝으로 밀려왔기 때문이다.
자신이 남긴 바로 그 추종향이었다.
이내 벽태산이 뇌옥의 창살을 사이에 두고 승도흥 앞에 섰다.
“승도흥?”
“마, 맞소. 교에서······ 나오셨소?”
“아니다.”
벽태산의 대답에 승도흥의 눈이 반짝였다.
“역시. 하면 회에서 나온 거로군?”
벽태산은 담담히 승도흥을 쳐다봤다.
하지만 표정만 그럴 뿐, 머릿속은 그렇지 않았다.
‘회? 이건 또 뭐 하자는 거지?’
천마신교의 흔적이 있어서 여기까지 찾아왔다. 한데 회라니, 게다가 교에서 나온 게 아니라고 하니 바로 회라는 말이 나왔다.
벽태산이 교라는 말에 아니라고 대답한 건 그동안 계속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의 사람인 것도 아니고.
교가 자신의 것이지 자신이 교의 사람인 건 아니지 않은가.
“나이가 얼마 안 되는 걸 보아하니 회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일단 들어와서 이거나 좀 풀어주게.”
승도흥이 자신의 발목을 가리켰다.
그의 발목에는 커다란 쇳덩이가 이어진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다.
“내공을 금제당해서 당최 뭘 할 수가 없군. 그러니 일단 이걸 풀고 위에 가서 다른 사람을 불러오게. 혹시 의원은 같이 안 왔나?”
벽태산은 승도흥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기만 했다.
“뭐 하고 있나? 어서 움직이지 않고. 위에 있는 놈들을 다 잡았지? 그 중에 고준광이라는 놈은 절대 놓쳐선 안 되네. 그놈이 머리니까.”
“아무래도······ 넌 여기에 좀 더 있어야겠구나.”
벽태산은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위로 올라가 버렸다.
승도흥은 당황한 눈으로 벽태산을 불렀다.
“어이! 이봐! 그냥 가면 어쩌나! 날 풀어줘야지! 내공을 못 쓴다니까? 발목 아프다고! 이봐!”
* * *
위로 올라와보니, 장원을 열심히 정리하고 있는 하오문도들이 보였다.
그 중 아까 벽태산과 함께 있던 자를 발견해 그에게 다가갔다.
“아, 공자님.”
하오문도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외부 정리는 거의 끝나갑니다. 이제 전각을 정리해야 하는데, 어찌 할까요?”
“정리해라. 세 놈이 살아있으니 따로 챙기도록. 그리고 지하 뇌옥에 한 놈이 갇혀 있는데, 잘 감시하고.”
“예. 알겠습니다.”
“도망친 놈은?”
“한 놈이 도망쳤는데, 당양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들키진 않은 모양이군.”
“저희가 상정했던 것보다 감각이 둔했습니다.”
하오문도가 상정한 것은 호무련주였다. 상대가 호무련주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여기고 추적한 것이다.
그래서 아주 먼 곳에서 조심스럽게 지켜보며 추적할 수밖에 없었다.
거의 당양에 있는 하오문도의 칠 할을 동원했다.
“가자.”
벽태산의 말에 하오문도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얼른 안내를 시작했다.
고준광이 숨은 안가는 원래 머물던 장원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었다.
“저곳입니다.”
하오문도가 손가락으로 작은 전각 하나를 가리켰다.
정말 평범한 전각이었고, 그 주변에도 비슷한 모양의 전각이 잔뜩 있었다.
곳곳에 기루와 주루, 객잔이 있었고,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아마 여기는 밤이 되어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밤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닐지도 모른다.
사람 속에 숨기 위해 만들어둔 안가인 모양이었다.
전각 안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전각을 관리하는 사람을 비롯해 요리를 하거나 전각을 지키기 위한 무사들도 있었다.
물론 무사들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다. 굉장히 평범했다.
그리고 그건 주변에 있는 다른 전각들도 다 비슷했다.
“그놈 얼굴 확인했느냐?”
“예. 제가 확인했습니다.”
“좋아. 일단 따라와라. 그리고 밖에서 기다리다가 내가 신호하면 들어와.”
“예.”
벽태산은 빠른 걸음으로 전각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안으로 쑥 들어갔다.
안에 들어간 벽태산은 감각에 닿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하나 제압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였다.
열 손가락에서 연이어 쏘아져 나간 지풍이 그들의 아혈과 마혈을 점했고, 다들 풀썩풀썩 쓰러졌다.
삼 층짜리 전각이었는데, 각 층에서 벽태산이 머문 시간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렇게 삼 층에 도착한 벽태산은 마지막 남은 사람을 쳐다봤다.
처음 여기에 들어올 때부터 이놈이 고준광이라는 걸 확신했다.
이놈 빼고 나머지는 너무 평범해서 이놈 혼자 존재감이 너무 튀었다.
“내가 묻고 싶은 게 아주 많다.”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며 고준광에게 성큼 다가갔다. 순식간에 고준광 앞에 도착한 벽태산은 막 뭐라고 말을 하려던 고준광의 정수리를 툭 내리쳤다.
콰직.
고준광의 눈이 위로 휙 돌아가며 풀썩 쓰러졌다.
“힘이 약간 과했나?”
벽태산은 창밖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자, 하오문도가 헐레벌떡 삼 층으로 올라왔다.
“이놈 맞나?”
“맞습니다. 분명히 그놈입니다.”
벽태산이 씨익 웃었다.
“좋아. 돌아가자.”
벽태산이 고준광을 들고 아래로 내려가자, 하오문도가 주위를 세심히 둘러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