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74)
“방 단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의 고수입니까?”
“맞소. 나도 승부를 장담하지 못하겠소.”
그 말에 다들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들만으로 되겠습니까?”
“다들 힘을 모으면 충분하오. 일단 그 고수부터 처리한 다음 우리끼리 다시 얘기를 나눕시다.”
모두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이제부터는 한 수 한 수가 중요했다.
“알겠습니다. 그들이 먼저 현천검을 잡으면 곤란하니 서두르시는 게 좋겠습니다.”
방두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몸을 날렸다.
나머지 사람들도 방두립과 함께 달렸다.
잠시 후, 저 멀리 느긋하게 걷고 있는 벽태산 일행이 보였다.
“저기 있소!”
방두립이 더욱 속도를 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과 거리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싸움을 바로 시작하지 않을 수도 있고, 싸우더라도 이들이 금방 따라와 도울 수 있다고 믿었다.
한데 속도를 높였음에도 거리가 빠르게 줄어들지 않았다.
물론 점점 좁혀지고는 있는데, 좁혀지는 속도가 너무 더뎠다.
‘저들은 분명히 걷고 있는데······.’
어쨌든 거리는 계속 줄어들었고, 저들은 아직 현천검을 찾지 못했다.
방두립은 다리에 좀 더 내공을 불어넣었다.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 * *
벽태산 일행은 걸어서 이동 중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만 걷는 것이지 실제로는 웬만한 경공을 펼치는 것보다 빨랐다.
검귀는 용케 벽태산과 비슷하게 걸었다.
하지만 화옥은 그러지 못했다. 아직 그럴 실력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화옥은 벽태산이나 검귀와 마찬가지로 걸으면서 이동 중이었다.
그녀는 벽태산의 손을 잡고 있었다.
벽태산의 손을 잡은 순간, 마치 거짓말처럼 벽태산과 똑같이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벽태산과 똑같이 걷고 있다는 것보다는 벽태산과 손을 잡고 걷는다는 사실이 훨씬 더 신경 쓰였다.
화옥은 시선을 힐끗 돌려 벽태산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그녀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그 순간, 벽태산이 물었다.
“이제 감이 좀 잡히느냐?”
“아······ 아직······.”
화옥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벽태산은 일부러 신경을 써서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었는데, 자신은 딴 데 마음이 팔려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집중해라.”
“예.”
화옥은 왠지 자신의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더 달아올랐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방두립이 쫓아왔습니다.”
검귀의 말에 화옥이 흠칫 놀라 뒤를 확인했다.
방두립이 말 그대로 죽을힘을 다해 달려오고 있었다.
어찌나 열심히 달리는지 상당히 빠르게 다가오는 중이었다.
“어쩔까요?”
검귀의 물음에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방금 검귀의 목소리에 담긴 투지와 기대감이 엄청났다.
벽태산은 천천히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검귀도 따라서 멈춰 섰다. 그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아마 그는 자신이 지금 웃고 있는 줄도 모르리라.
벽태산 일행이 멈추자, 방두립은 순식간에 그들 앞에 도착했다.
“후우우우.”
방두립은 빠르게 호흡을 고르고 들끓는 내력을 가라앉혔다.
이런 식의 수련을 자주 했는지 눈 몇 번 깜빡하는 사이 명경지수처럼 몸과 마음을 정리했다.
방두립은 앞에 선 세 사람을 차근차근 살펴봤다.
일단 검귀는 보는 것만으로도 살이 떨렸다. 싸워서 이길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굉장히 아슬아슬한 느낌이었다.
화옥은 확실히 자신의 아래였다.
‘그래도 제법이군. 나이도 많지 않아 보이는데 저 정도 실력이라면 미래가 기대돼.’
은근히 욕심이 차올랐다. 저런 여자를 데리고 있으면 여러모로 유용할 것이다.
‘똑똑해 보이기도 하고.’
방두립은 화옥의 손에 있는 장보도를 보고는 그렇게 생각했다.
저 장보도는 해석을 받았다고 해서 쉽게 볼 수 있는 지도가 아니었다.
그래서 자신도 가장 똑똑한 자에게 장보도를 맡겼다. 그럼에도 원활하지 않아 주변의 도움을 상당히 많이 받아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벽태산을 본 방두립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놈은 뭐지?’
평범해도 너무 평범했다. 물론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은 아니었다.
분명히 무공을 익혔다. 그것도 수준이 제법 높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평범했다. 여기 있는 다른 두 사람에 비해 수준이 확연히 낮았다.
만일 그게 다라면 굳이 방두립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방두립이 벽태산을 보고 이상하다고 여기는 건, 굉장히 묘한 위화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위화감이 자신의 감각을 심각하게 건드리고 있다는 점과, 그럼에도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낼 수 없다는 점이었다.
벽태산을 좀 더 지켜봤다면 무언가 그럴듯한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방두립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검귀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일단 가장 껄끄러운 상대가 다가오자, 온신경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난 무림맹에서 나온 방두립이라고 하오. 조촐하나마 천검단주 직을 수행하고 있소.”
“유명하신 분이었군. 난 나충길이라고 하오.”
“나충길?”
방두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분명히 자신이 어딘가에서 최소한 한두 번은 이름을 들어본 사람일 거라 여겼던 것이다.
한데 막상 이름을 듣고 나니, 정말 아예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이는 좀 있는 것 같은데······.’
평생 산에서 수련만 하다가 내려온 그런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그건 방두립이 자신할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이 저런 분위기를 풍기지는 못할 테니까.
그 산에 수시로 적이 기습해서 실전 경험을 무수히 쌓았다면 모를까.
만일 그렇게 했더라도 이름이 알려졌을 것이다.
이름값이라는 건 사람을 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군. 아무튼······ 이제 슬슬 시작해도 되겠어.”
방두립은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쫓아오던 흑련과 오대세가의 사람들이 그곳에 도착한 것이다.
“자, 이제 제안을 하나 하겠소. 우리를 도운 다음, 적절한 보상을 받는 것이 어떻겠소? 돈을 원한다면 돈을, 무공을 원한다면 무공을, 그게 아니라 다른 걸 원한다면 다른 것을 주겠소.”
방두립의 말에 검귀가 고개를 슬쩍 돌려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은 아무런 언질도 신호도 주지 않았다. 마치 네가 다 알아서 하라는 듯 담담히 지켜보기만 했다.
검귀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아무래도 안 되겠소.”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이오.”
검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요.”
방두립이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검을 뽑았다.
“나 혼자서는 너무 시간이 걸리고 위험하니 두 분만 도와주시오. 다들 알 만한 분들이니 오히려 걸리적거리지는 않을 거라 믿겠소.”
손발을 안 맞춰본 사람들이 협공을 하다가는 오히려 혼자 싸우는 것만 못할 수도 있다. 아니, 대부분은 그렇다.
그러니 철저히 조력자의 입장으로 빈틈을 만들어주겠다는 각오로 싸워야 한다.
나선 사람은 오대세가의 두 사람이었다.
“이런 일, 자주 해봤으니 염려하지 말고 마음껏 싸워도 될 거요.”
방두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머지 사람들에게 말했다.
“저기 있는 두 사람을 사로잡으면 훨씬 더 간단히 끝낼 수도 있을 거요. 제법 실력이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시고.”
나머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두립과 살짝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천천히 벽태산과 화옥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방두립이 검귀에게 달려들었다.
쩌저저저저저정!
검귀와 방두립의 검이 어지럽게 얽혔다.
두 사람은 서로의 실력에 놀랐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당황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주 팽팽한 대결이 정신없이 펼쳐졌다.
주고받는 공방이 어찌나 빠른지 싸움에 가담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오대세가의 두 무인이 미처 끼어들 틈을 찾아내지 못할 정도였다.
방두립은 더더욱 집중했다.
조금 검을 섞다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보다 위다!’
상대가 자신보다 더 고수였다. 다만 그 차이가 크지 않아서 자신이 버틸 수 있는 것뿐.
그러니 집중이 끊어진 순간 당한다.
집중하고 또 집중하다보면, 오대세가의 무사들이 어떻게든 빈틈을 만들어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한 순간만 기회를 잡으면 이 싸움을 확 뒤집어 버릴 자신이 있었다.
방두립이 보기에 상대와 자신의 차이는 딱 그 정도였다.
온정신을 검귀에게 쏟으니 당연히 주변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방두립의 눈에는 오직 검귀만 보였다.
그의 집중력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두 무사가 움직였다.
방두립의 눈에 두 자루 검이 검귀의 종아리와 어깨를 노리고 거의 동시에 쏘아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검귀가 오대세가 무인들의 검을 차례로 쳐내기 위해 유려한 동작으로 검을 휘둘렀다.
방두립은 검귀가 검을 쳐내기 위해 방향을 돌린 그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해서 검을 내질렀다.
굉장히 무리한 동작이었고, 무리한 내공 운용이었지만, 이를 악물고 시도했다.
이것이 자신에게 온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쩌정!
오대세가 무인들의 검이 강하게 튕겨났다.
그리고 방두립의 검이 검귀의 목을 꿰뚫었다.
아니, 꿰뚫은 것처럼 보였다.
검귀는 어느새 방두립의 몸에 거의 닿을 정도로 바짝 다가갔다.
꽈광!
검귀는 양 어깨를 털어내듯이 투둑 움직여 방두립을 후려쳤다.
방두립이 실 끊어진 연처럼 훅 날아가며 피를 토했다.
검귀는 방두립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몸을 빙글 회전하며 검을 휘둘렀다.
슈가각!
오대세가 무인의 단전 부분이 쩍쩍 갈라지며 피가 튀었다.
내공이 흩어져 버린 두 무인은 힘이 쭉 빠져 털썩 주저앉았다.
“후우우.”
검귀가 숨을 길게 내쉬며 들끓는 내력을 차분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과 화옥 주변에는 여섯 명, 그러니까 흑련의 세 무인과 오대세가의 세 무인이 쓰러져 있었다.
피를 토하며 날아갔던 방두립이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며 벽태산과 검귀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그는 자신이 패배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인질이라도 잡으라고 보냈던 자들이 저렇게 허무하게 쓰러져 있는 광경도 믿을 수 없었다.
벽태산이 방두립을 보며 손을 뻗었다.
“이리 와라.”
방두립의 눈이 경악으로 찢어질 듯 커졌다.
벽태산이 손을 뻗자마자 방두립이 휙 허공을 날아 벽태산의 손에 정수리를 잡혀 버린 것이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아는 게 많아 보이니 일단 이놈은 데려가자.”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며 방두립을 검귀에게 휙 던졌다.
어느새 정신을 잃은 방두립을 본 검귀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벽태산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화옥이 다급히 말하고는 얼른 움직여 쓰러진 자들의 몸에 흔적을 남겼다.
이런 일은 하오문에 있으면서 자주 해봤다.
화옥이 한 일은 검귀의 흔적을 없애는 일이었다.
벽태산과 검귀는 화옥을 보며 잠시 기다려 주었다. 일은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화옥은 일이 끝나고 난 뒤에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녀가 다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벽태산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검귀와 화옥이 얼른 그 뒤를 따랐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현천검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반 각쯤 더 이동하자, 허리쯤 오는 높이의 바위 하나가 보였다.
그 바위 위에 검 하나가 꽂혀 있었다.
“찾았다.”
벽태산이 눈을 빛냈다.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던 검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건······ 가짜가 아닙니다.”
끝
바위 근처에는 기관이 있던 흔적이 잔뜩 남아 있었다.
전부 뭉개져서 바닥에 푹 들어간 상태였지만.
그 광경을 확인한 검귀와 화옥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벽태산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스럽게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진법의 범위가 저쪽에 있는 바위지대까지였나 보네요.”
화옥의 말에 검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바위지대에 있는 바위들을 이용해 진법을 구성한 걸로 보였다.
바위지대에 있던 바위 몇 개에는 금이 쩍쩍 가서 당장 부서져도 이상할 게 없을 것 같은 상태였다.
벽태산이 강제로 진법을 박살 낸 흔적이었다.
아까 거기가 어디인데 그곳에서 여기에 있는 바위를 부순단 말인가.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검귀와 화옥은 벽태산을 바라봤다. 이제 저 바위에 꽂힌 현천검을 뽑아야 하지 않겠는가.
벽태산은 바위에 훌쩍 올라가 현천검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정말로 현천검이었다.
천마신교 내에 있던 현천검은 자신이 전부 정리했다. 단 하나도 남겨놓지 않고 모든 현천검을 폐기했다.
사실 현천검은 아무나 폐기할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한 검이 아니었다.
역대 천마들이 증혼마공을 수련할 때 썼던 검이다. 당연히 그 안에는 막대한 영력이 깃들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영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에 준할 정도의 힘이 담겨 있는 것이다.
물론 그 힘을 갖다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말이다.
현천검은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의 혼백을 잡아먹는 요물이다.
그러니 아무나 함부로 쥘 수도 없고, 아무나 부술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