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16)
연하린도 자신을 보는 나충길의 시선을 느끼고는 그를 쳐다봤다.
“대련 한 번 해보겠나?”
나충길의 물음에 연하린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부탁드리고 싶었어요.”
사실 벽태산 일행 중에는 연하린과 제대로 대련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천경완과 유서연이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강해지긴 했지만, 연하린의 성장 속도가 너무 빨라서 이젠 두 사람이 당해내기 어려웠다.
물론 협공을 한다면 연하린이 많이 모자라겠지만, 연하린은 일단 협공이 아닌 일대일 대결을 먼저 해보고 싶었다.
그래야 새로 얻은 것들이 제대로 정리될 것 같았다.
원래는 벽태산에게 부탁해볼까 했는데, 벽태산도 그날 이후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어서 부탁하기가 좀 어려웠다.
그런 면에서 나충길은 정말로 좋은 상대였다.
연하린이 나충길 앞으로 서둘러 다가가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크게 물러나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흥미로운 눈으로 연하린과 나충길을 바라봤다.
이런 고수들의 대련은 보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것이 있는 법이다.
나충길은 연하린의 몸을 타고 흐르는 기운이 굉장히 안정된 것을 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시작하자꾸나.”
나충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연하린이 빠르게 달려들었다.
어찌나 빠른지 구경하던 사람들은 연하린이 움직이는 걸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어, 하는 순간 연하린이 나충길 앞에 있었다.
연하린의 검이 나충길의 목을 꿰뚫을 듯 쏘아졌다.
쩌엉!
나충길은 연하린의 검을 가볍게 걷어냈다.
손아귀가 찌르르 울렸다.
나충길의 입매가 호선으로 휘어졌다.
“좋구나!”
그때부터 나충길이 흥에 겨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빠르게 성장하는 후배와 검을 나누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법이었다.
쩌저저저저저저정!
나충길이 본격적으로 흥을 내기 시작하자, 수십 차례의 검격이 쏟아졌다.
구경하는 사람들 눈에는 한 번 검을 휘두른 것 같은데, 실제로는 수십 차례나 내리친 것이다.
연하린은 그 모든 검격을 하나하나 쳐냈다.
그냥 쳐낸 것도 아니고 비스듬하게 빗겨냈다.
힘을 되돌릴 정도는 되지 못하지만, 어찌어찌 흘려낼 수는 있었다.
나충길의 입가가 더욱 크게 올라갔다.
쩌저저저저저정!
검격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그러면서 궤적도 미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연하린은 이를 악물고 그것들을 막아냈다.
속도는 따라잡을 수 있는데, 뒤틀리는 궤적을 파악해 흘려낼 수가 없었다.
점점 충격이 누적되었다.
하지만 연하린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이 정도는 황산에서 홍여익을 상대할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말 빠르게 나충길의 검격에 적응한 연하린은 뒤틀린 검격까지 흘려내기 시작했다.
“훌륭하다!”
나충길은 검격의 속도를 더욱 높이고, 다양한 변초를 섞었다.
연하린의 손발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조차 금세 적응해 나충길의 속도와 변화를 따라잡았다.
나충길은 감탄하며 본격적으로 힘을 쓰기 시작했다.
꽝! 꽝! 꽝! 꽝! 꽝!
검이 한 번 부딪칠 때마다 폭음이 울렸다.
폭음이 울릴 때마다 연하린의 신형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하지만 연하린의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핏!
연하린의 어깨에 나충길의 검이 스치며 피가 튀었다.
나충길이 그걸 보고는 손속을 살짝 늦췄다.
예전의 나충길이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작은 틈을 연하린이 비집고 들어갔다.
쩌저저저정!
꽈득!
나충길이 깜짝 놀라 뒤로 정신없이 물러나며 분주하게 검을 휘둘렀다.
연하린의 공격은 대부분 무위로 흘러갔지만, 그 중 하나가 나충길의 빈틈을 제대로 찌르고 들어갔다.
나충길은 다급한 나머지 검 손잡이로 연하린의 공격을 막아냈다.
검 손잡이에 쩍 하고 금이 갔다.
나충길이 굳은 표정으로 연하린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이변이 없었다. 나충길은 연하린을 압도했고, 연하린은 끝까지 분전했지만, 검이 날아가 버렸다.
“후우우. 대단하구나.”
나충길이 감탄한 눈으로 연하린을 바라봤다.
연하린의 표정은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나충길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흐뭇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바로 뒤에서 벽태산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검이 망가졌구나.”
나충길이 굉장히 어색한 동작으로 천천히 돌아섰다.
벽태산의 시선이 검의 손잡이에 닿은 걸 본 나충길이 얼른 변명을 했다.
“안 그래도 손잡이를 교체할 때가 되었습니다.”
벽태산이 나충길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러다 죽는다.”
그 말에 나충길이 흠칫 놀랐다. 그리고 식은땀을 흘리며 안절부절못했다.
벽태산은 연무장에 있던 사람들을 쭉 둘러봤다. 한 명 한 명 시간을 들여 응시했다.
다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불안해졌다.
벽태산은 그렇게 하고서는 돌아서서 연무장을 나섰다.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나충길뿐이 아니었다. 연무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어리둥절했다.
다들 그러고 있을 때, 소소가 슬그머니 나섰다.
“공자님께서······ 칭찬하신 거 같은데······.”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소소에게 꽂혔다.
“그냥, 그렇다고요. 흐뭇해 하셨어요.”
소소를 보는 모두의 표정이 참으로 묘해졌다. 그걸 대체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끝
혁련비광은 앞에 엎드린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빙긋 웃었다.
“잘 왔다.”
그의 말투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깃들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여기에 있는 저 두 사람은 각각 혁련휘와 혁련균 아래에 있던 자들이었다.
그것도 제법 높은 위치에 있었기에 혁련휘와 혁련균이 이끌던 세력의 제법 많은 부분을 손아귀에 쥐고 있었다.
더불어 그 두 세력이 보유하고 있던 물자들 또한 상당수 확보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미래를 위해 혁련비광에게 투신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그들이 가져온 인력과 물자가 각각의 세력이 가지고 있던 전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만 해도 혁련비광 입장에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안 그래도 벽태산이라는 이상한 놈 때문에 한껏 몸을 사리고 있는 중인데, 저들이 합류하면 그놈과 싸우는 데 큰 도움이 될 테니까.
“그만 일어나도록 해라.”
혁련비광의 말에 두 사람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자세로 섰다.
녹천학, 신웅태라는 자였는데, 혁련휘와 혁련균의 세력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였다.
그것만으로도 영입할 가치는 차고도 넘쳤다.
한데 거기에 선물까지 잔뜩 가지고 왔으니 얼마나 기껍겠는가.
혁련비광은 두 사람을 확실히 대우해주겠다고 결심했다.
안 그래도 휘하에 쓸 만한 놈들이 별로 없었는데, 마침 잘 된 셈 아닌가.
혁련비광의 힘은 쓸 만한 수하가 아닌, 오랜 세월에 걸쳐 모은 고수의 혼백이었다.
또한 각종 대법을 통해 만들어낸 강시가 혁련비광이 가진 힘의 큰 축 중 하나였다.
문제는 그 강시가 벽태산에게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는 점인데, 그 부분을 개선하느라 혁련비광은 물론이고 강시와 관계된 자들이 두문불출하다시피 하며 연구 중이었다.
혁련비광이 흐뭇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러자 녹천학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새로 모시게 된 주군께 현재 장사의 상황에 대해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장사?”
장사는 혁련휘가 활동하던 곳이었다.
또한, 혁련휘가 죽은 곳이기도 했다.
금월상단과 손을 잡고 뭔가를 해보려다가 된통 당한 것이다.
“혁련휘 세력의 잔당들이 아직 장사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 얼마나 있지?”
“숫자로만 따지면 제가 데려온 것과 비슷합니다.”
혁련비광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
당연히 탐이 났다. 녹천학이 데려온 자들의 수도 상당했는데, 그만큼이 더 있다면 욕심나는 것이 당연했다.
“그들은 이미 등을 돌리기로 작정한 자들입니다. 신경 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혁련비광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면 굳이 그 얘기를 하는 이유가 뭐지?”
“그들이 금월상단과 손잡고 싸움을 준비 중입니다.”
“그렇게 당하고 또 그 짓을 한단 말인가?”
“예. 게다가 싸우려는 상대도 벽태산입니다.”
혁련비광이 차갑게 웃었다. 그리고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고작 그놈들만으로는 벽태산을 어쩌지 못한다.
그저 발이나 잠깐 잡고 있으면 다행이리라.
혁련비광은 그런 생각을 하며 녹천학을 바라봤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때 녹천학 옆에 있던 신웅태가 입을 열었다.
“혁련균 밑에 있던 잔당들이 작당을 하고 있습니다.”
혁련비광이 눈을 번득였다.
이제 보니 둘이서 미리 말을 맞추고 온 모양이었다.
“작당?”
“자기들끼리 힘 싸움을 하다가 안 되겠으니, 방향을 외부로 돌렸습니다.”
혁련비광이 흥미로운 눈으로 신웅태를 바라봤다.
“그래서?”
“그놈들이 무한을 노리고 있습니다.”
혁련비광의 눈에서 핏빛 광망이 일어났다.
“무한을 노린다고? 양 측이 손잡고 계획이라도 세운 건가?”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저희가 조절했습니다.”
혁련비광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괜찮은 인재를 얻은 모양이었다.
“벽태산 쪽을 정리하는 건 쉽지 않을 테고······.”
혁련비광은 벽태산의 힘을 한 번 겪어봤다.
당시 겪었던 벽태산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래서 혁련휘와 혁련균이 움직이도록 교묘하게 휘저은 것이다.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두 놈이 모두 죽어버렸으니까.
혁련비광은 예전 벽태산을 만난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힘을 키우려 노력했다.
무공을 되돌아보고, 치열하게 수련했으며, 그 외에 자신이 가진 다른 힘들도 연구하고 성찰하고 노력해서 더 발전시켰다.
혁련비광은 냉철하게 비교해봤다.
과연 자신이 벽태산과 싸우면 이길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지를.
벽태산을 만나던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혁련비광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는 결국 고개를 저었다.
“아직 멀었다.”
벽태산을 상대하려면 아직 멀었다. 더구나 벽태산이 그동안 주변으로 끌어들인 힘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주변의 힘을 한 번쯤 눌러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혁련비광의 눈에서 더욱 짙은 핏빛이 뿜어져 나왔다.
주변에 자욱한 피 냄새가 흘러넘쳤다.
혁련비광 앞에 선 두 사람은 얼른 고개를 숙이고 두려운 표정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 * *
벽태산은 자신이 머무는 방 침상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최근 새로 개발한 수련법을 밤마다 시행했는데, 낮에 하면 다들 너무 혼란스러워 해서 밤에만 잠깐씩 했다.
천마이던 시절에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생소한 수련이라서 그런지 굉장히 재미있었다.
존재감을 지우는 수련이었는데, 각월객잔 전체에 그걸 적용하고자 했다.
각월객잔 자체가 너무 커서 처음에는 가끔 일부가 드러나곤 했다.
예를 들어 문을 열면 그걸 통해 내부의 존재감이 밖으로 흘러나간다거나 하는 식으로.
하지만 며칠 하다 보니 이제는 굉장히 자연스러우면서도 세밀하게 조절이 가능했다.
“음?”
한창 수련을 하던 벽태산이 눈을 번쩍 떴다.
아주 멀리서 객잔으로 은밀히 다가오는 자들이 있었다.
이 수련을 하는 동안은 감각이 좀 더 예민해진다. 의식하지 않아도 신경을 거슬리는 것들이 자주 감각을 건드렸다.
지금도 그랬다.
아주 멀리서 움직이는 놈들인데 신경을 거슬리며 감각을 계속 건드렸다.
그놈들은 이곳 각월객잔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벽태산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오늘도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 * *
어둠 속, 검은 옷에 검은 복면을 쓴 자들이 빠르고 은밀하게 달리고 있었다.
수는 모두 스물하나, 한 명이 스무 명을 이끌고 나아갔다.
그들은 절제된 살기를 품고 있었다.
오늘 목표는 각월객잔이었다. 그곳의 모든 사람을 죽이는 것이 임무였다.
지금 이곳에 있는 건 스물한 명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동원된 인원은 훨씬 많았다.
스물한 명으로 이루어진 조가 무려 세 개나 따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들은 모두 무명의 무사들이었다.
오늘 일에는 무명만 동원된 것이 아니었다. 금월상단에서도 가용할 수 있는 무사를 전부 동원했다.
아마 그들이 먼저 덮치고 나면, 뒤이어 각월객잔을 넓게 포위한 채 달려들 것이다.
금월상단에서 동원한 무사의 수는 무명의 몇 배에 달했다. 게다가 실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