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348)
사공예랑은 조용히 심호흡을 했다.
천마의 취임식에 외부 인사들을 초대하기로 결정한 다음 날부터 사공예랑은 벽태산의 특별관리에 몸을 맡겨야 했다.
정말 치 떨리는 나날들이었다.
그리고 벽태산이 왜 굳이 천마의 취임식에 외부 인사들을, 그것도 무림의 최상위에 해당하는 고수들을 중점적으로 초대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사공예랑은 벽태산에게 불려간 다음, 벽태산의 거대한 존재감을 코앞에서 마주해야 했다.
지려버렸다.
그건 불가항력이었다. 자신의 몸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버렸다.
벽태산이 특별히 무언가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존재감만 확 내뿜었을 뿐이었다.
사공예랑은 존재감만으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아마 벽태산이 마지막에 조절해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죽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 사공예랑은 벽태산의 존재감에 대항하는 수련을 해야 했다.
벽태산은 내공도 영력도 쓰지 않았다.
반면 사공예랑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용했다.
그런데도 좀처럼 버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법, 사공예랑은 조금씩, 조금씩 벽태산의 존재감에 저항할 수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이제 슬슬 견딜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마치 지금까지는 그저 맛보기에 불과했다는 듯이 벽태산의 존재감이 커져 버렸다.
사공예랑은 그대로 기절했다.
그 짓을 취임식이 열리기 전날인 어제까지 했다.
그 치 떨리는 나날들은 사공예랑이 벽태산에게 가지고 있던 애정까지 빛바래게 만들 정도로 지독했다.
아마 마지막 날, 그러니까 어제의 일이 없었다면 정말로 벽태산을 보기 싫어졌을 수도 있었다.
사공예랑은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며 살짝 얼굴을 붉혔다.
수련이 끝나면 사공예랑은 언제나 온몸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 바닥에 축 늘어진다.
그런 그녀를 벽태산의 시비들이 부축해 정성껏 씻겨주었다.
한결 기분이 나아진 순간, 시비들이 그녀를 벽태산의 침실로 데리고 갔다.
그날 평소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경험을 했다.
사공예랑은 고개를 휘휘 저어 머릿속에 폭발적으로 떠오르는 어제의 기억을 털어냈다.
이제 자신이 나설 차례다.
그동안 벽태산에게 몸으로 배웠던 것을 선보일 시간이 왔다.
“후우우. 할 수 있다!”
솔직히 좀 불안한 것은 사실이었다. 과연 자신이 존재감만으로 오늘 모인 자들을 짓누를 수 있을까?
하지만 벽태산이 된다고 했으니 될 것이다.
사공예랑은 마음을 다잡고 성큼 걸음을 옮겼다.
* * *
수많은 사람들이 천마신교에 모여들었다.
천마의 취임식에 초대된 자들이었다.
그 중에는 축하하기 위해 온 자들도 있었고, 그저 지켜보기 위해 온 자들도 있었다.
또한 천마신교에서 직접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온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들과 좀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림맹주와 흑련주였다.
그들의 뒤쪽으로 천무련주와 호무련주 등이 있었다.
무림에서 비슷한 명성을 얻고 있는 자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 축하하기 위해 참석했다.
아무튼 그들에게서는 진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모을 정도로 대단한 존재감이었다.
곳곳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림맹주와 흑련주가 함께 있는 광경을 언제 이렇게 볼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이유 중 상당부분은 무림맹주와 흑련주의 사이가 제법 친밀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전혀 의외의 사실이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모인 자들이 천마신교 안으로 들어갔다.
천마의 취임식은 천마성 앞에서 진행하기로 되어 있었다.
초대한 자들이 워낙 많았기에 천마신교 사람들까지 함께 구경하려면 그곳 외에는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그들은 전부 천마성 앞에 모였다.
사람이 워낙 많았는지라 앉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불만을 가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런 진귀한 경험을 하는데 몸이 좀 불편한 것이 무슨 대수겠는가.
그렇게 모인 자들 중에는 오대세가의 가주들도 있었다.
그들은 굉장히 심각하고 고까운 눈으로 천마성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여기 이러고 있으니 또 분기가 차오릅니다.”
하후세가주는 이를 악물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다들 그 말에 동조했다.
오대세가는 천마신교를 어떻게 해보겠다고 모여 회합을 가졌다가 아주 호되게 당했다.
당시 사공예랑의 힘을 보고는 천마가 떠올랐었다.
하지만 그때는 상황과 분위기에 먹혀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했다.
돌이켜 곰곰이 생각해보니, 과거에 경험했던 천마와는 많이 달랐다.
“어쩌면 빈틈이 좀 있을지도 모릅니다.”
“분명히 있을 겁니다. 우리가 파고들만한 구석이.”
오대세가의 가주들은 확신했다. 이번 천마는 과거의 천마와 다르다고.
과거의 그 압도적이던 천마의 분위기와 존재감은 고작 어린 여자아이가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오대세가의 가주들은 눈에 불을 켜고 새로운 천마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만일 자신들의 추측이 맞아 떨어진다면, 그렇다면 계획했던 일을 그냥 포기할 필요가 없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동조할 것이다.
천마신교가 무서운 이유의 구 할은 천마 때문이다.
한데 그런 천마가 모자라다면 과연 천하 무림의 패자들이 가만히 있을까?
천마신교를 지금 어떻게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결코 막을 수 없다.
천마신교를 무너뜨릴 유일한 기회가 바로 지금이었다.
“시작하겠습니다!”
우렁찬 외침이 울려 퍼졌다.
드디어 새로운 천마가 나오는 것이다.
천마성 앞에 높은 단상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천마성 꼭대기에서 누군가 훌쩍 몸을 날려 단상에 사뿐히 내려섰다.
사공예랑이었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번 천마가 여자라는 소문은 익히 들었다. 하지만 저렇게 어릴 줄은 몰랐다.
과연 저 어린 여자가 진짜 천마일까? 혹시 가짜를 내세우고서 자신들을 놀리려는 건 아닐까?
모두의 머릿속에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특히 오대세가의 가주들은 눈을 번득였다. 역시 자신들의 예상대로였다. 저 여자는 강할지언정 진짜 천마가 될 수는 없었다.
다들 그렇게 판단을 내린 순간, 사공예랑으로부터 거대한 존재감이 일어났다.
사공예랑의 존재감이 천마신교 전체를 뒤덮었다.
사실 사공예랑도 속으로 놀라는 중이었다. 그동안 벽태산에게 당하기만 해서 자신이 이 정도까지 해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어쨌든 성공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러자 존재감이 더욱 커졌다.
“크윽.”
누군가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다리를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사공예랑은 좌중을 슥 둘러본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천마다.”
그녀가 말하는 순간 존재감이 두 배로 높아졌다.
천마 한 번 보겠다고 여기서 기다리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 순간 우수수 주저앉았다.
서 있는 자들도 상당수가 어금니를 꽉 물고 간신히 버틸 뿐이었다.
고작 한 마디 뿐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사공예랑은 슬쩍 미소를 짓고는 돌아서서 훌쩍 몸을 날렸다. 그녀는 그렇게 천마성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좌중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그때까지 버티고 서 있던 자들이 툭툭 쓰러졌고, 주저앉은 사람들은 그대로 누워 축 늘어졌다.
그때 무수한 사내들이 그곳으로 우르르 다가왔다.
그들은 하오문도들이었다.
“지존께서 내리신 보신단입니다. 이걸 드시면 한결 나아지실 것입니다.”
하오문도들은 쓰러진 자들 위주로 보신단을 나눠주었다.
놀랍게도 보신단을 먹은 자들은 그 자리에서 벌떡벌떡 일어났다.
몸만 보하는 것이 아니라 다친 심력까지 보해주는 명약이었다.
물론 만든 사람은 초서란이었고.
“향후 칠 일 동안 잔치를 벌일 예정입니다. 다들 기분 좋게 즐겨 주시고, 축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오문도들이 그렇게 열심히 일했다.
그 덕에 다들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 중에는 오대세가의 가주들도 있었다. 그들은 보기좋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하오문도가 건네는 보신단을 먹었다.
부끄럽고 처참했다.
사공예랑이 자신이 천마라고 말하는 순간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으니까.
무려 오대세가의 가주씩이나 되는 자들이 그걸 버티지 못한 것이다.
그들의 눈빛에 체념이 어렸다. 역시 천마신교는 천마신교였다. 또한 천마는 천마였다.
이곳에 모인 자들 대부분이 그런 생각을 했다. 천마신교에 대해 남아 있던 일말의 의구심이 싹 사라졌다.
다들 마음이 정리되고 나니, 홀가분해졌는지 표정이 좋아졌다.
그렇게 천마신교 내에서 잔치가 시작되었다.
* * *
벽태산은 천마성 꼭대기에 서서 존재감을 죽인 채 잔치가 벌어지는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실 아까 사공예랑이 올라왔을 때, 살짝 도움을 주었다.
아무리 특별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저기에 모인 자들을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찍어 누르기에는 살짝 모자랐다.
그래서 그 살짝 모자란 부분만 보태주었다. 아주 교묘하게.
그래도 나중에 사공예랑의 존재감이 치솟아 모두를 굴복시킨 것은 그녀 혼자서 이뤄낸 것이었다.
그 짧은 순간 깨달음을 얻어 한 단계 진화한 것이다.
역시 재능 하나는 최고 수준이었다.
벽태산은 한참동안 천마신교의 전경을 내려다봤다.
이제 여기서 할 일은 다 끝났다.
비검과 검귀, 그리고 혼천마가 남아서 사공예랑을 돕기로 했다.
그들은 천마신교가 안정되는 것이 결과적으로 벽태산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내린 선택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 세 사람이 보였다.
비검과 검귀, 혼천마는 무림맹주와 흑련주가 있는 곳에서 웃고 떠드는 중이었다.
저 멀리 끝자락에는 천추신의와 일침괴, 의선이 보였다.
그들이 있는 곳은 기루에서 나온 기녀들이 모인 장소였다. 기녀들도 천마의 취임식을 보고자 나온 것이다.
하여튼 한결같아서 보기 좋았다.
시선을 슬쩍 돌려보니 벽태산의 시비들이 보였다.
그녀들은 오랜만에 잔치를 돕지 않고 모여서 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져 있었다.
표정을 보니 굉장히 즐거운 모양이었다.
심지어 화옥까지 함께 있는 걸 보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맴돌았다.
연하린은 초서란과 함께 있었다. 그리고 언제 저기로 간 건지 사공예랑도 끼어 있었다.
근처에 있는 누구도 사공예랑이 천마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존재감을 확 죽여서 신경을 쓰지 않게 만든 것이다.
세 사람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얼굴을 한껏 붉힌 채 웃고 있었다.
얘기를 듣고자 한다면 들을 수 있지만, 벽태산은 굳이 그러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저들이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천경완과 유서연이 사람들 시선이 잘 모이지 않는 곳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천경완이 쩔쩔 매다가 이내 유서연의 손에 이끌려 어딘가로 사라졌다.
창백해진 천경완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절로 웃음이 났다.
이번엔 시선을 좀 더 멀리 가져갔다.
승도흥이 현천진을 살피는 모습이 보였다. 현천진을 만난 순간부터 계속 저 모양이었다.
저렇게 집착하면 오히려 안 보이는 것들이 생기는 법이다. 하지만 그걸 깨닫기 위해선 또 집착을 해봐야 한다.
벽태산은 그냥 두기로 했다. 승도흥은 스스로 집착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충분히 개척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밖에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심지어 오대세가에서 온 가주들도 확인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확인한 후, 이 모든 광경을 한꺼번에 관조하듯 바라봤다.
갑자기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벽태산은 자신이 새로운 경지로 올라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과 지금까지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과의 인연이 한결 단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영력과는 또 다른 경지의 힘이었다.
“재미있구나.”
벽태산은 자신이 무엇을 더 할 수 있게 되었는지 차분히 정리하며 천마신교의 전경을 내려다봤다.
벽태산의 입가가 슬며시 위로 올라갔다.
더없이 좋았다.
끝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흐른다.
천마신교에서 사람들을 초대해 천마의 취임식을 연 지도 벌써 십 년 가까이 되었다.
그 십 년 동안 무림은 큰 변화 없이 세월과 함께 흘러갔다.
다만 작은 변화들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일단 천마신교가 문을 활짝 열었다.
이제 더 이상 천마신교는 예전처럼 무시무시함만을 강조하는 세력이 아니었다.
천마신교 근처에 크고 작은 마을들이 생겨났다.
이는 천마신교가 서역과의 교역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천마신교의 거친 무사들은 서역으로 오가는 험난한 길을 거침없이 다녔다.
서역과의 교역이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졌고, 자연스럽게 천마신교에서 서역의 물품을 구입해 천하 각지로 나르는 상단들이 많아졌다.
물론 천마신교의 거래대상은 오직 현천상단뿐이었다.
하지만 현천상단은 그 모든 물량은 독점하지 않고 절반 정도를 풀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천마신교 쪽으로 상단들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편의를 위해 작은 거점을 두고 움직였고, 그 거점들이 마을로 발전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천마신교의 변화는 무림의 정세에도 제법 영향을 미쳤다.
아니, 정확히는 천마신교를 아우르고 있는 현천장의 영향이었다.
천마신교의 변화는, 사람들에게 천마신교가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켜 걷기 시작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엄밀히 따지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천마신교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서역과 교역을 하고 다른 조직들과 관계를 맺으며, 문을 열고 사람들을 받아들인다는 건 그런 뜻이나 다름없으니까.
그 과정에서 그동안 비밀리에 천마신교가 운영하던 사업체들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예전에는 멀리 있던 천마신교가 바짝 다가온 것이다.
그 결과, 무림이 전체적으로 얌전해졌다.
사람들은 대부분 현천장 아래에 천마신교와 하오문이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 둘이 손을 잡으면 그 누구도 현천장의 눈과 귀를 피할 수 없다고도 여겼다.
그래서 다들 예전과 달리 함부로 힘을 쓰지 않았다.
예전이라면 곳곳에서 자잘한 분란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을 것이다.
큰 전쟁을 할 정도로 악화될 가능성은 없지만, 각 세력들을 조금 불편하게 할 만한 분쟁이 예전에는 제법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