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Rune Book 3: Bloodied RAW novel - Chapter (140)
룬의 아이들 블러디드-142화(142/143)
142화. 차고 달고 쓴 동전 (35)
막시민은 이자가 누구인지 바로 추측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새롭게 알게 된 두 세력의 싸움 틈바구니에서 동분서주하느라 충분히 머리가 복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시민이 대꾸할 틈도 없이 마부 차림의 남자가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당신은 누군데 멋대로 앉는 거지?”
“나? 여기 이 친구한테 볼일이 있는 사람이오. 그러는 당신은 얼굴을 보아 하니 친구 사이는 아닌 것 같고, 여기서 무슨 작당을 하시나?”
‘작당’이라는 말에 마부 차림의 남자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아아, 네놈이 이 녀석이 훔친 물건을 빼돌렸나?”
“뭘 빼돌려?”
회색 코트는 거만하게 어깨를 들썩여 보였다. 그런 까닭에 진짜로 상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은 잘 전달되지 않았다. 마부 차림이 험악한 얼굴로 대꾸했다.
“말 돌리지 말고. 당장 내놓지 않으면 이 녀석은 우리가 데려가겠다.”
이번에는 회색 코트가 민감한 반응을 보일 차례였다.
“뭐? 데려가? 누구 마음대로?”
두 남자가 서로를 노려보며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사이에 낀, 심지어 양손을 하나씩 붙잡힌 막시민은 다급히 머리를 굴렸다.
다짜고짜 나타나 자신을 뒤쫓아왔다고 하는 회색 코트의 정체는 무엇인가? 아이언페이스의 부하들과 한패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경매장에 와 앉아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회색 코트는 이 쇼를 꾸민 정체불명의 의뢰인인가? 그래서 권총이 사라지자 당황해서 쫓아 내려와 하필 막시민 리프크네를 찾아내어…….
리프크네?
순간, 막시민은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 그 이름은 이곳의 누구도 모른다. 회색 코트는 의뢰인의 편도, 도둑의 편도 아니었다. 이자는…… 심볼리온이다.
심볼리온은 경매장에도 막시민을 찾으러 와 있었던 것이다. 막시민이 여기 온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을까? 당장은 짐작이 가지 않지만 어쨌든 심볼리온은 이곳에 와서 경매장까지…… 잠깐, 그럼 이스핀은?
그때 회색 코트가 다른 손으로 주머니에서 뭔가를 끄집어내더니 막시민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게 뭔지 알겠지?”
물론 알고 있었다. 앵초 모양으로 깎은 사파이어 귀걸이.
막시민은 당혹감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마음속에서 이스핀이 그리 쉽게 붙잡힐 리 없다는 목소리와, 동시에 이들은 마법사라는 목소리가 싸웠다.
저것이 마차 안에서 봤던 이스핀의 귀걸이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이스핀이 귀걸이를 잃어버릴 다른 이유 또한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그보다는 드레스를 입은 이스핀이 제대로 싸우기 힘들었을 것이고, 저들이 이스핀을 이길 수 없었더라도 순간 이동으로 납치할 수는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커져갔다. 마치 킨 교수가 네냐플에서 자신을 보라색 방으로 데려갔을 때처럼.
이윽고 막시민이 물었다.
“어디 있지?”
“안전한 곳에 모셔뒀지. 워낙 사나우셔서 말이야. 아주 힘들었다고. 그럼 이제 얌전히 따라오실까?”
그 말에 대꾸한 것은 마부 차림이었다.
“어딜 데려가? 이놈은 내 몫이다.”
“시시한 빚이라도 있나 보지? 그런 건 관심없어. 난 공무를 집행중이다.”
회색 코트와 마부 차림은 계속 으르렁댔다. 하지만 둘 다 행동을 취하지 못한 이유는 각자 막시민의 손목을 하나씩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둘의 대화는 점차 ‘내가 찍어둔 얼간이한테 상회 입찰하지 마라’에 가까워져갔다.
“이까짓 놈이 별것은 아니지만 내가 마음만 먹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데리고 사라질 수 있어. 네놈까지 같이 끌려가고 싶지 않다면 그 손 놓으시지?”
“이런 놈을 잡아가기 위해 순간 이동씩이나 쓰려고? 그런데 네놈한테는 전혀 힘이 느껴지지 않는데? 그까짓 실력으로는 손모가지 한 토막도 가져가기 힘들 것 같군그래.”
둘 다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모양이었고, 양보할 기세가 아닌 둘 사이에서 양손을 붙들린 막시민이 탈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선택권은 자신에게 있는 것 아닐까?
점차 생각이 정리되었다. 심볼리온의 추적을 따돌리게 해주려고 네냐플 교수들에다가 쥬스피앙과 친구들까지, 그토록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언페이스의 포로가 되는 것보다는 심볼리온에 출두하는 편이 낫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상식이란 게 있겠지. 오토마톤을 분해하지 않는다고 사람을 죽이지는 않겠지.
무엇보다 이스핀이 혼자 끌려가도록 놔둘 순 없다고 생각했다. 별 도움은 안 될지라도, 적어도 책임을 나눠 질 순 있잖아.
전부터 말했지만 그게 뭐였든 너 혼자 맞설 필요는 없어. 나한테도 동전은 몇 개 있고, 그걸로 살 만한 먼지 묻은 사탕도 선반 구석쯤엔 틀림없이 있다고.
판단을 내린 막시민은 긴 다리를 쭉 뻗었다가, 마부 차림이 앉은 의자 다리를 힘껏 걸어 잡아당겼다. 갑작스러운 공격을 예상 못 한 마부 차림은 뒤로 자빠져 엉덩방아를 찧으며 막시민의 손을 놓쳤다. 그 틈을 타 막시민은 회색 코트를 향해 소리쳤다.
“좋습니다. 갑시다!”
다시 불길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작았고 시전 시간도 짧았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는 여파가 있어서 백작부인은 비명을 질렀다.
마부 차림은 기둥에 세차게 머리를 부딪히고도 팔을 뻗어 막시민의 발목을 잡아채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의 얼굴이 낭패로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직후, 식당 입구로 달려 들어온 이스핀과 조안느는 식당 안에 벌어진 소란을 보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막시민은 와 있었을까?
이스핀은 의자가 나동그라지고 사람들이 쓰러진 테이블 앞으로 달려갔다.
“방금 여기…….”
근처에는 귀부인 한 명과 마부 한 명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법 시전의 후폭풍에 휘말린 사람처럼 제정신이 아니어서 뭘 봤다고 설명할 상태가 아니었다.
급사들이 달려와 그들을 부축해 한쪽에 눕혔다. 넘어진 찻잔에서 홍차가 흘러나와 테이블 아래로 뚝뚝 흐르고 있었다.
이스핀은 우뚝 선 채 주변을 휘둘러봤다. 뒤에서 조그맣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앉아 있던 사람이 사라졌잖아……. 두 명인데…….”
“마법이었지? 그런데 아까보다는 별일 없네?”
이스핀이 홱 몸을 돌리자 그들은 허둥지둥 사람들 틈으로 숨어버렸다. 그들이 겁을 집어먹은 이유는 이스핀의 드레스가 여기저기 찢어진 데다 뺨에는 핏자국까지 남아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파국을 예감한 이스핀의 눈빛이 상대를 꿰뚫어버릴 듯했기 때문이다.
그때, 기둥 옆에 놓인 트롤리가 눈에 띄었다. 아래 칸에 놓인 검은 코트를 본 이스핀의 표정이 다시 변했다.
다가가 코트를 꺼내 펼쳤다. 틀림없었다. 막시민의 것이다.
“…….”
강연이 끝난 뒤에 식당에서 만나자고, 그렇게 이야기했지. 하지만 자신은 미코니스의 계략에 휘말려 자리를 비우고 말았다. 막시민은 강연이 끝나고 돌아와서 자신을 기다렸을 것이다. 잠시 자리를 비운 줄로만 알았겠지. 심볼리온이 그들을 찾아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심볼리온이 막시민을 데려갔을까? 또는 다른 누군가가? 강연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톱니는 만났을까?
그때 문득, 테이블에 찻잔이 하나뿐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두 명이 사라졌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옆에는 케이크 같은 것을 먹었던 듯한 접시도 남아 있었다. 손끝으로 만져보니 이미 부스러기가 딱딱하게 굳었다.
홍차가 쏟아진 잔 안쪽에 덜 녹은 설탕처럼 보이는 것도 남아 있었다. 손끝으로 찍어 혀에 갖다 대자 단맛이 확 퍼졌다.
막시민은 홍차에 설탕을 넣지 않는다. 케이크처럼 단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즉, 이건 모두 다른 사람의 것이다. 막시민은 이 테이블에서 편안히 차를 마시다가 납치된 것이 아니었다. 막시민이 누군가와 마주앉아 있었다면 다른 용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코트는 왜 벗었을까? 변장을 하려고? 코트가 트롤리에 놓여 있었던 것을 보면 급사로 변장했던 것일까? 하지만 심볼리온 앞에서 변장은 아무 의미가 없잖아. 대체 누구를 속이려 했던 거야? 아이언페이스의 부하들이라도 만났을까? 헬레나 때문에? 톱니 때문에?
모르겠어.
누굴 상대했는지도, 변장까지 해가며 무엇을 하려 했는지도, 난 모르겠다고.
그 이상을 생각하는 건 내 몫이 아니잖아. 네가 잘하잖아. 그러니까 같이 해보자고, 혼자 짊어지려 하지 말라고, 네가 그렇게 말했잖아. 그랬으면서 이렇게 사라져버렸어. 한 명은 모든 걸 해낼 수 없다고 했으면서.
결국 그 생각으로 되돌아오고 만다. 늪에 빠진 불행한 소녀.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치다가 친절한 사람이 내민 손을 붙들지만 상대방이 물밑으로 가라앉고 나서야 알아차린다. 자신은 수백 년을 살아온 물요정이며 이미 수많은 사람을 그런 식으로 늪에 처넣었음을.
망연자실해진 이스핀의 눈가에 붉은 기운이 번져갈 때 한 젊은이가 사람들 틈을 뚫고 다가왔다. 그는 이스핀의 얼굴을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실례합니다만, 혹시 이스핀 샤를 씨인가요?”
이스핀은 고개를 홱 쳐들고 상대를 노려봤다. 아까의 기억 때문에 이름을 대며 말을 거는 자는 심볼리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젊은이는 눈물이 쏟아질 듯한 눈을 한 아가씨가 사납게 쏘아보자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머뭇거렸다. 긁히고 찢긴 드레스며 한쪽만 남은 귀걸이에 핏자국까지, 여러 모로 범상한 아가씨 같지는 않았지만 그가 들은 설명대로라면 찾는 사람이 틀림없었다.
“마, 맞으신 거죠? 맞는 것 같은데. 저기, 제 친구가 이걸 전해주라고 해서요.”
젊은이, 루시안 칼츠는 주머니에서 냅킨으로 둘둘 만 것을 꺼내 내밀었다. 기계적으로 받아든 이스핀이 냅킨을 벗기자 깃털 모양으로 세공한 황금 몸체에 흑진주가 박힌 아름다운 오토마톤 권총, ‘카나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