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ren of the Rune Book 3: Bloodied RAW novel - Chapter (141)
룬의 아이들 블러디드-143화(143/143)
143화. 차고 달고 쓴 동전 (36)
그날 두 사람이 마법으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 급사를 찾아냈으므로 막시민을 데려간 건 심볼리온일 가능성이 컸다. 다만 또 다른 사람이 두 명 같이 앉아 있었다는데 혼란 통에 사라져버려서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이게 그런 식으로 해결될 문제였으면 그날 나부터가 밖에서 어슬렁대던 놈들을 다 베어버렸을 거다. 아니, 실은 너 혼자 보낼 게 아니라 나도 안에 들어갔어야 했던 거지.”
구스타브는 그날 호텔 밖을 경계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누구든 하긴 해야 했겠지만 에투알이 맡기에는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은 임무이긴 했다.
일이 그렇게 됐던 건 도벨 백작의 딸인 조안느와 달리 구스타브는 평민 출신이었기에 별나게 차려입고 안에 들어가는 자체를 껄끄러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하의 상심이 이틀째 이어지자 그도 그런 결정이 후회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날 그곳에 심볼리온이 나타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실은 지금도 이유를 몰랐다. 대체 어떻게 알고서 호텔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걸까?
그날 에투알이 그랑도프 호텔에 갔던 것은 콜레트를 통해 막시민이 팬지 파빌리온의 강연에 참석하고 공녀 연하는 식당에서 기다릴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공개된 장소였기에 어느 정도의 위험은 계산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진짜로 위험하다고 생각했다면 조안느도 자연스럽게 입장하기 위해 드레스를 입기보다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복장으로 숨어드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리 루이를 아르노와 함께 가도록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조안느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은 그만둬. 난 내 행동을 후회하는 것뿐이야. 갑작스럽게 일이 벌어져서 흥분했던 거지. 그래서 냉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어.”
“우리 임무는 연하의 안전뿐이야. 연하께서 상심하고 계시니 신경이 쓰이지만, 리프크네는 본래 우리의 임무 밖이었어. 그 녀석이 연하께 중요하다는 걸 고작 며칠 만에 알아차리긴 어려웠잖아.”
베네트를 통해 망한 카페 3층의 사무실을 알아낸 에투알들은 조용히 공녀를 따라다니며 주변을 감시했다.
그 과정에서 샤를로트가 막시민과 제법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까지는 알았지만 필요에 따라 태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공녀이니만큼 상대가 쓸모가 있어서 그러시는 것이겠지 생각했다. 오를란느의 공녀께서 네냐플 학생과 친구처럼 지내야 할 이유가 달리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표적과 거리를 유지하며 주변을 살피는 것을 에투알보다 잘하는 자들도 없다. 샤를로트조차 그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서 심볼리온의 등장이 더더욱 어처구니없었다. 만약 그자들이 공녀를 추적중이었는데 에투알이 알아채지 못했다면 그런 망신이 또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조안느도, 구스타브도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공녀의 상심도 문제였지만 에투알의 명예도 달린 문제였다.
“그런데 말이야. 그날 심볼리온이 갑자기 나타난 것 말고도 이상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 팬지 파빌리온의 강연이 진짜로 강연이 아니라 경매라는 것은 몰랐을 수 있다 쳐. 하지만 ‘톱니’라는 자는 오긴 했던 거야? 매들로 소자작은 왔던 걸까?”
“모르지. 리프크네가 사라져버렸으니. 칼츠가의 도련님이라는 분은 물건을 연하께 전해주라는 부탁만 받았던 것 같고.”
“그 도련님이 리프크네의 네냐플 친구라며? 칼츠가는 부잣집이라니까 경매에 초대를 받은 건 이상할 거 없겠지. 하지만 우연히 경매장에서 마주친 친구한테 그렇게 중대한 물건을 맡긴 것은 놀랍잖아. 그 도련님이야말로 경매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분을 우리가 붙잡을 권한은 없었잖아. 하지만 백작께 부탁드리면 살롱에 초대하거나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구스타브, 넌 슈니발트 백작을 믿어?”
구스타브가 당황해서 눈을 크게 뜨더니 조안느가 앉은 쪽으로 왔다.
“무슨 소리야? 그분이 지금 연하를 보호하고 있잖아?”
“그래. 오랫동안 연하를 섬긴 분이고, 그분이 없었다면 연하께서 켈티카에 머물며 활동하시는 것도 불가능했겠지. 그런데 이번 일은 정말 이상해. 연하께서는 오직 백작이 수집한 정보에 의지해서 호텔에 갈 계획을 짠 건데 켈티카에서 막강한 인맥을 자랑한다는 백작이 문제의 행사가 경매인 줄도 몰랐다니. 만나기로 한 자들은 나타났는지도 알 수 없고, 그 대신 느닷없이 심볼리온이 나타나다니. 우리한테 연하를 호위하러 가라고 한 것도 백작이었거든? 난 말이야…….”
조안느는 미간을 찌푸린 채 머리를 넘기며 한참을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백작께서 리프크네를 심볼리온에 넘기려고, 판을 짠 게 아닌가 싶단 말이야.”
눈발이 날리자 거리의 행인은 일찌감치 줄어들었다. 슈니발트 저택에서 남쪽으로 내다보이는 거리, 두 에투알이 대화하고 있는 곳에서 백 걸음쯤 떨어진 상점가에서 두 사람이 식당 앞에 걸린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서지 코트 차림의 남자와 두건 달린 망토로 온몸을 감싼 여자였다. 흰 강낭콩을 곁들인 칠면조 콩피와 그물버섯 소테, 세 가지 치즈, 라즈베리 절임과 와플…….
“보이시죠. 저기, 종루가 있는.”
“응.”
여자는 대답하며 손가락으로 메뉴판 한 곳을 가리켰다. 하지만 눈은 슈니발트 저택을 흘끔대고 있었다.
“네. 마이그너 남작가에는 한 번도 간 적이 없습니다.”
“백작과는 무슨 사이지?”
“모르겠지만 보통 사이는 아닌 듯합니다. 마차며 드레스는 그렇다 치겠는데 감옥을 빌려준 것은 놀랍죠.”
“알았어. 나머지는 내가 알아보지. 탐정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나?”
“소식이 없습니다. 그자들이 누군지는 혹시 알아내셨습니까?”
“증거는 남기지 않았어. 명부에는 이름이 없었고, 투숙명도 가짜더군. 초대도 받지 않았는데 마법을 써서 들어갔던 것 같아. 제대로 된 마법사라면 쓸 수 있는 수단은 많으니까.”
“마법사들이 왜 탐정을 노린 겁니까?”
“그거야말로 내가 물어볼 말이군. 쫓기고 있는 줄도 몰랐다고? 네 재주를 생각할 때 믿어지지 않는데.”
“…….”
남자는 대답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입맛만 다셨다. 여자가 다시 말했다.
“됐어. 그자들이 주도면밀했을 수도 있겠지. 어쨌든 탐정은 상대가 누군지 알고 있었어. 그 말은 전부터 쫓겼다는 뜻이지. 하지만 ‘쇠’의 먹이가 되느니 마법사 쪽이 낫다고 판단했어. 그건 현명한 판단이라 할 만하지. 역시 탐정은 머리가 좋아. 이번엔 우리보다 나았어.”
여자의 눈이 자조적으로 가늘어졌다. 이번 일에는 노출되면 큰 문제가 생기는 인력을 몇 명이나 동원했고 둘도 없이 귀중한 권총까지 미끼로 내걸었다. 그렇게 했는데도 노렸던 적은 나타나지 않았고 아까운 권총만 잃었다.
경매에 나온 두 정 중 ‘카나리아’만이 진짜라는 걸 잘도 알아본 자는 틀림없이 아카데미의 직원 중 하나일 것이다. 그걸 빼돌려 도망친 여자는 조사 결과 진짜 백작부인이 아니었다. 켈티카에서 백작부인 노릇을 이 년이나 해왔지만, 놀랍게도 진짜는 병에 걸려 하이아칸에서 요양중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쇠의 왕’을 경매장으로 끌어내지도 못했고, 얻은 소득이라고는 정확한 정체도 알아내지 못한 적의 부하 두어 명의 얼굴, 그들의 가짜 신분, 그리고 아카데미에도 끄나풀이 있다는 심증 정도에 불과했다.
반면 막시민은 놀라운 판단력으로 경매장에서 가짜 백작부인을 따라 탈출해서 사라지려던 권총을 빼돌렸고, 심지어 붙잡혀가기 전에 그것을 이스핀에게 전달했다.
막시민이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권총을 적에게 빼앗겼을 테니 막시민은 본의 아니게 그들을 도와주기까지 한 셈이다. 어떻게 봐도 판정승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날 그랑도프의 301호 객실에서 벌어진 일도 수수께끼였다. ‘쇠의 왕’의 힘으로 무슨 일인가가 벌어진 것은 분명한데, 이스핀 샤를은 그 함정을 뚫고 창밖으로 탈출했다. 대체 어떻게?
막시민의 조력자라고만 여겼던 이스핀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래서였다. 식당에서 사라졌다가 돌아온 시점을 생각할 때 객실에서 빠져나오는 데 고작 이십 분은 걸렸을까?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뛰어난 검사라고 듣긴 했지만 어떻게 단순한 무력만으로 그자의 힘과 맞싸울 수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적은 왜 이스핀을 노렸을까?
게다가 권총도 현재 이스핀의 수중에 있다. 되찾지 않으면 안 된다…….
그때 남자가 메뉴판에서 몸을 돌려 여자를 보더니 불쑥 말했다.
“제 잘못을 인정합니다. 역시 저는 역량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만 빠지면 안 될까요.”
“뭐?”
여자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남자를 보더니 눈썹을 찌푸렸다.
“왜, 마음이 상했어? 네가 팔아먹은 것 같아?”
“…….”
남자는 바닥에 쌓이기 시작한 눈을 말없이 구둣발로 짓이겼다. 여자는 잠시 후 다시 빙그레 웃으며 메뉴판을 가리켰다. 오늘 저녁에는 이걸 먹자고 말하는 연인처럼.
“탐정은 이 일과 관계없이 쫓기고 있었어. 우리하고는 상관없어. 너하고도 상관없지. 그리고 우린 권총을 되찾아야 해.”
“그걸…… 저더러 훔쳐내라고요?”
남자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밑바닥에서 불안감이, 아니 반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여자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글쎄. 아직은 아냐. 네 말대로라면 쉽게 기회를 주진 않겠지. 하지만 그대로 놔둘 순 없어. ‘쇠’가 언제까지나 은둔하고 있을 리 없지. 돌아오는 날, 그자는 제일 먼저 권총을 가지러 갈 거야.”
마침 찬바람이 불어왔다. 남자는 몸을 움츠리며 떨었다. 이스핀 샤를은 강하고 영리하다. 의지가 굳고 판단이 빠르다. 그러나 진정한 힘을 드러낸 그자와도 맞싸울 수 있을까? 고결한 자도, 빛나는 별도, 끈질긴 플레상스 경도 해내지 못한 일을…….
뭘 기대하는 거야. 그런 사람이 세상에 있을 리 없잖아. 그저 어린 아가씨일 뿐이라고. 몇 번이나 봤잖아. 그자가 도전한 자를 어떻게 다루는지.
생기 넘치는 자일수록 두렵다. 그게 모조리 빨려나간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남자의 표정을 본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지? 그래서 권총을 그 아가씨 수중에 둘 수 없어. 그건 무책임한 처사야. 넌 아직 할 일이 있어. 우린 다 각오했잖아.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으면 시작하지도 말았어야지. 벗어나지도 말았어야지. 그자가 힘을 되찾으면 우린…… 예전으로 돌아가는 거야. 그건 아니잖아. 우리…… 살아남아야지. 안 그래?”
여자가 말을 끄는 부분에 무엇이 생략되어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다. 잔혹하게 고통받던, 죽어간, 산 채로 지옥에 빠진 자들이 있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삐걱거린다. 어금니가 비틀린다. 이유 같은 건 없었지. 앞으로도 없겠지. 그놈한테는 인간의 감정이란 게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하지만 해치고 싶진 않으니까, 그것만은 부탁합니다.”
여자가 씁쓸하게 웃었다.
“알아. 우린 악(惡)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잖아. 그걸 다 보고 지옥에서 기어올라왔잖아. 하지만 아직도 가장자리에 걸쳐져 있는 셈이지. 앞으로 무얼 한들 우리가 택한 이상주의자들처럼 될 수야 없겠지만 지옥 쪽으로 한 발짝만 더 내디디려 해도 난 몸서리가 쳐져, 헤르만.”
갑자기 이름을 불린 남자가 흠칫 놀라며 여자를 보았다. 여자가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더 견디자. 그리고 나도 탐정이 돌아오길 바라. 꽤나 도움이 되었으니까. 사실상 감사 카드와 초콜릿이라도 보내야 할 판 아니겠어?”
“탐정을 찾아보실 겁니까?”
헤르만의 목소리에 언뜻 생기가 돌았다.
“그렇게 될 것 같아. 초콜릿을 보내려는 건 아니고.”
여자가 고개를 모로 꼬며 허공을 보았다.
“마스터께서 관심을 갖고 계셔서. 나도 몰랐지만, 그날 거기 계셨던 모양이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