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70
밤은 깊어지고 달은 더욱 선명한 색을 띤다.
어둠이 집어삼킨 산속을 비추는 그 푸른빛을 등불 삼아 풍경을 바라보자니,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남궁소혜는 깨달았다.
이런 야심한 밤, 모닥불 하나 피워 놓지 않고 보내고 있는 이 시간이 왜 이렇게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지를 말이다.
마치 모든 것을 어둠이 품고 있는 것 같았기에, 그 묘한 공기와 분위기에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한 사람만 조용히 한다면 말이다.
“으하하! 그래서 그놈의 궁둥이를 까서 찰싹찰싹 때렸지 않습니까.”
술을 마시고 있는 천무광은 몹시 기분이 좋아 보였다. 취할 리 만무한데 취한 것처럼 보이는 것 또한 결코 착각이 아닐 거다.
단우현은 그 모든 이야기를 쉼 없이 받아 주고 있었다. 벌써 몇 시진째 쉬지 않고 떠들고 있는 천무광도 놀랍지만,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 주고 있는 단우현 또한 대단했다.
남궁소혜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이렇게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실 수 있는 날이 오다니……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천무광이 한 잔을 들이켜며 후우 하며 숨을 내쉬었다. 그의 머릿속에 온갖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며, 과거의 잔상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예전에도 이런 적 있지 않았습니까? 형님과 나, 그리고 고 계집애랑 한데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고 말입니다.”
“지금처럼 네놈 혼자 이야기를 했지…….”
“으하하! 섭섭합니다. 그래도 한두 마디 정도는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아니라 주련이가 했다. 주둥이 좀 그만 놀리라고 말이다.”
천무광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 보니 말이 많다는 이야기를 쉼 없이 들은 것 같았다. 그러다 남주련과 대판 싸운 적도 있었으며 태공진 녀석에게 죽도록 욕을 먹기도 했었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천무광의 입가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이윽고 술 한 잔을 넘기며 잔을 내려놓았다.
시선은 어느새 단우현을 향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말입니다…….”
“뭐냐?”
“어떻게 나오셨습니까?”
마주친 시선 사이로 기이한 기류가 흘렀다.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그것처럼 굉장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남궁소혜가 주룩 식은땀을 흘렸다.
이윽고 단우현이 입을 열었다.
“그…….”
“글쎄, 모르겠단 소리 하지 마시고 좀 알려 주십쇼. 아…… 진짜 궁금하게 만드네.”
천무광이 헛기침을 내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다소 삐딱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들리지 않아?’
한데, 남궁소혜는 아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틀림없이 천무광은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어떤 말조차 들을 수가 없었다.
그 상황이 너무나도 놀라워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아니, 생각을 해 보십쇼. 그 봉인, 팔선 전부가 달려들어 한 것입니다. 술식을 짜고 힘을 불어넣는 데만 놈들은 칠 할 가까운 힘을 낭비했습니다.”
“…….”
“때문에 우리 셋이 그 봉인을 풀려고 온갖 노력을 했지만 풀리지 않았던 것이고, 결국 그렇게 형님은 그곳에서 힘이 빠지다 죽겠구나 했습니다.”
천무광은 물론이고 당시 팔선이나 현 팔선들조차 그 봉인이 풀리리라 생각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무신 단우현은 그 안에서 이미 몇백 년 전에 죽었어야 했다.
술식이 그렇게 짜여 있었으며, 그 술식을 짜고 봉인을 시키는 데 상당한 힘을 소비했다. 때문에 힘이 회복되지 않았던 당시 팔선들은 현 팔선들에게 밀려 체제가 바뀌게 된 것이다.
한데 그 봉인 속에서 천 년을 살아남았다?
심지어 단우현은 어떤 영향조차 받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설령 살아남았다 하여도 천 년이라는 세월을 고독하게 있었으니, 마음이나 정신이 무너져야 함이 마땅한데도, 오히려 단우현은 예전보다 좋으면 좋았지 결코 나빠 보이지 않은 것 또한 이상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인간이 그러한 것들을 가능하게 만든 것인가?
천무광은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정신력이다.”
“놀고 자빠지십쇼.”
들려오는 대답에 천무광은 인상을 쓰며 답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
아무리 강한 정신력을 소유하고 있다 한들, 그러한 상황에서는 누구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차디찬 얼음 속에서 천 년을 정신력만으로 버틴다고?
팔선은 물론이고 이 자리에 있는 천무광조차, 단 십 년조차 제대로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때, 단우현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느끼려 하지 않고, 아무것도 보려 하지 않았다.”
“……그게 가능합니까?”
“그러다 보니 점차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더구나.”
“…….”
천무광은 눈을 휘둥그레 치켜떴다.
지금 내뱉은 단우현의 한마디는 그야말로 벽을 넘어섰다는 뜻이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천하의 적수가 없었던 인간이었는데, 그 벽마저 넘어섰다면 누가 당해 낼 수 있단 말인가?
천무광은 파르르 입꼬리를 떨면서도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치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을 바라보며 승부욕을 불태우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한 것을 알면서도 단우현은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겼다.
마치 무슨 짓을 한다 하여도 천무광은 자신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하늘 위의 하늘, 그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절대자의 시선이다.
“그래서 벽을 넘어섰다? 선경에 오르지도 않았으면서?”
“그게 벽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면 그런 것이고, 그저 그런 깨달음일 수도 있을 테지.”
“선문답하자는 거 아닌데……?”
천무광이 툴툴거리며 인상을 썼다. 그의 말을 전부 믿을 수 없는 것들이었지만, 어쩌면 단우현이라면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거기까지 생각을 하다 이내 또다시 입꼬리를 떨었다.
‘가능할 리가 없잖아? 천 년이라는 세월이 애들 장난이 아닐 터인데, 아무리 깨닫고 넘어섰다 하여 그것을 깨부수고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설령 무수히 많은 깨달음을 얻고 벽을 넘어섰다 하여도, 팔선이 만들어 놓은 그 얼음을 깨지 않는 이상 탈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단우현은 그것을 파훼할 방법까지 알아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단우현과 천무광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슥슥!
남궁소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 같으나, 두 사람은 아주 먼 거리에서 들려오는 기이한 소리를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왔다.”
“네?”
그저 멍하니 서 있던 남궁소혜는 느닷없이 들려오는 말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그들이 바라보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는데, 무언가 다가오는 것처럼은 느껴지지 않았다.
“뭐하냐? 막아.”
“네?”
천무광이 중얼거렸다.
남궁소혜는 그 뜻을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했다.
막으라니?
무엇을?
이해할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사악!
무언가가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나긴 장포를 입은 푸른 인형 같았다. 아니, 인형 그 자체라 할 수 있을까? 얼굴부터 눈에 보이는 팔과 다리까지 목각으로 만들어진 녀석들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스물.
하지만 계속해서 들려오는 소리를 생각해 본다면 수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 같았다.
남궁소혜가 주룩 식은땀을 흘렸다.
“뭐예요 이게?”
“보면 모르나? 인형이다.”
단우현이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러나 남궁소혜 또한 그 정도는 안다. 어디를 어떻게 보아도 인형이라는 것을 말이다. 한데, 어떻게 인형이 저리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류화군의 곁에는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수하 하나가 있다. 인형을 만들어 자기 대신 싸우게 하는 놈이지.”
“……그런 게 가능해요?”
“보면 모르나?”
남궁소혜가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을 수가 없으니 묻는 거다. 틀림없이 눈앞에 있는 것은 인형처럼 보이나, 그 움직임만 본다면 사람과 다름이 없다.
“단 공자의 친구인가요? 이상한 사람들만 있네요.”
“너만큼 말이지.”
“…….”
남궁소혜가 기가 찬 표정으로 단우현을 바라봤다.
어디를 어떻게 보아도 단우현 쪽이 더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저기 있는 천무광만 보더라도 약간 머리가 빈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가?
그녀가 후우 하며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검을 뽑았다.
“이것들을 제가 상대하라는 거죠?”
“그래.”
“단 공자는 다른 곳으로 갈 거죠?”
“그래.”
“제가 죽어도 갈 거죠?”
“그래.”
“하아…… 알았어요.”
어차피 대답은 정해져 있다는 듯이 남궁소혜는 깔끔하게 체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온 이상 일은 해야 한다.
또한 단우현이 시킨 것이니 반드시 이유가 있을 터.
남궁소혜는 또다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럼 여긴 제가 맡죠. 어디든지 가세요.”
“그럴 생각이다.”
단우현과 천무광이 슬쩍 등을 돌렸다.
저 많은 인형들을 상대로 여인 혼자 맞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도, 단우현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천무광이 휘파람을 불며 입을 열었다.
“괜찮겠습니까? 저 계집, 죽을지도 모릅니다만?”
“저 정도로 죽을 아이가 아니다.”
“헤에…… 그런 것도 압니까?”
“그래.”
단우현의 한 마디에 천무광이 제법 놀란 모습이다. 지금까지 누구를 믿지 않았던 사람이었기에, 그가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좀처럼 믿을 수가 없었다.
또한 단우현이 내뱉은 말은 남궁소혜의 귀에도 들어갔다.
‘나를 믿는 거지? 그렇지?’
내색은 하지 않지만, 틀림없이 믿고 있다.
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으니까 맡긴 거다.
그렇다면 이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단우현이 보장한 것이니까.
그녀가 검파를 굳게 쥐며 기세를 끌어 올렸다.
“자! 이제 아무도 여길 지나가지 못한다!”
기세를 터트리며 결의를 다잡았다.
천천히 걷고 있던 천무광은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결의를 다진 여인의 앙칼진 외침이 파고드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단순하네요.”
“그렇지…… 해서 놀리는 재미가 있다.”
“놀린 겁니까?”
“…….”
단우현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천무광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자리에서 우뚝 멈춰 서며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계집을 죽이고 싶지 않을 테니 저는 이쪽입니까?”
“그럼 나는 저쪽이더냐?”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이쪽이 더 수월할 것 같고…… 애초에 양보할 생각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군.”
단우현과 천무광이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정반대, 한쪽은 인형술사가 있는 곳이며 다른 한쪽은 류화군이 있는 곳이다.
아직 미약하지만, 그 기척이 느껴지니 절대 놓치지 않으리라.
느긋하게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두 사람이 씩 웃음을 짓는 그때, 한순간에 두 사람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미풍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