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Martial God’s Return RAW novel - Chapter 390
한 사내가 초조함을 금치 못한 채 질근질근 손톱을 깨물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미 머릿속이 그려졌던 것들이 하나하나 완성되었다면, 중원 전체는 이 만후량의 손아귀에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무당, 소림 등 구파일방의 인물들이 음지로 숨어들었으며, 아직도 정파라는 자부심 가득한 자들이 중경과 호남으로 몰려들며 혈천의 진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이래선 안 된다.
누구보다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혈천.
힘만이 아닌 그 재력 역시 대단했다.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전부를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 수치스러운 일이나 다름없었다.
한껏 깨물던 손톱에서 피가 터졌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릴 테지만, 그럼에도 전혀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가 지그시 아래를 내려다봤다.
앞에는 한 사내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만조강.
현 만금상단의 상단주.
천하의 모든 돈을 쥐고 흔드는 자.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에게는 그저 두려움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늦구나. 재미가 없어.”
“빈틈없이 처리를 하고 있습니다만…… 호남단가의 방해로 호북 세력의 절반을 잃었습니다. 지금 다시 채워 넣고 있기는 합니다만…….”
“호남단가…… 호남단가…… 지긋지긋하군.”
만후량은 인상을 썼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운명을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인가? 왜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니며 사람을 가지고 노는가?
만후량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단우현을 떠올렸다.
주군의 원수.
반드시 죽여야 할 적.
그 과거를 익히 알기에 과거와 같이 처참함 속에 넣어 주겠다고 생각을 하며 모든 계획을 하나둘씩 진행시켰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재미도 없었다.
이래서는 언제 그자의 멱을 딸 수 있을지, 언제 그자의 고통 어린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만후량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천에서 결착을 낸다. 놈들과 전쟁을 벌일 자금과 식량을 가져와라. 녀석들을 모두 밀어내고 호남으로 진군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이 상황에서 만조강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 없었다. 아비의 말은 절대적, 거역할 수 없는 한마디라 할 수 있으며, 또한 거역한들 그 뒷감당을 당해 낼 재간이 없다.
‘사천을 먼저 치려는 것은 자칫 합공을 당할 우려를 생각하신 것인가?’
만조강은 만후량의 생각을 읽었다.
그의 대적이라 할 수 있는 단가는 호남에 있다. 응당 호남으로 모든 이들을 이끌고 가야 함이 마땅함에도 그러지 않은 것은 사천에서 치고 들어오는 정도의 잔당 때문이다.
어쩌면 마교까지 가세할 수도 있는 상황이니, 조금 더 완벽을 기하고자 사천을 먼저 밟아 버리는 것이다.
그 뜻을 알아들었으니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결착을 낸다 하였으니 만금상단 또한 가만있을 수 없다. 전쟁이라는 것은 많은 돈이 흘러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만큼 더 큰 이익을 안겨다 주는 상황이기도 하였다.
만조강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 * *
푸드득-!
전서구 하나가 날아들었다.
구무악은 천천히 그것을 받아 읽으며 인상을 썼다. 그렇지 않아도 중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의 결과가 좋지 않다.
혈천이 압도적인 기세로 정도인들을 몰아붙이는 상황이다.
잘 막아 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언제까지 그것이 유지될지 알지 못한다.
서서히 사천 쪽으로 후퇴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으니, 곧 중경과 사천의 경계가 뚫릴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최후의 보루는 호남인가?’
아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호남 역시 속속들이 혈천을 막아서고자 하는 무인들이 몰려들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혈천 앞에 무릎 꿇은 이들이 너무나도 많았고, 심지어 새외 세력까지 합세하는 중이니, 사천이 무너지는 순간 호남 역시 작살이 날 것은 분명한 상황이다.
이는 결코 좋은 결과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사천에서 놈들을 막아야 한다는 말이로군.”
구무악이 다른 전서구를 꺼내며 서찰을 달았다.
이것은 호남단가로 향하는 전서다.
“이자들이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느냐에 따라 결과가 바뀔 테군.”
한번 판을 뒤집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정도 무림을 되찾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고로, 호남단가가 어찌 움직이느냐 하는 것이 바로 정도무림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었다.
구무악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전서를 날렸다.
* * *
대롱대롱-
밧줄로 꽁꽁 묶인 채 매달려 있는 장삼태는, 강한 바람이 이리저리 불어 대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지러움 탓에 당장이라도 토악질을 하고 싶을 정도였지만,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것들이 눈앞에 있었다.
“아! 정말 모른다니까요!”
“그럴 리가! 네놈 스승이 가지고 간 내 재보가 얼마나 되는 줄 아느냐? 황실까지 털었으니 적은 양이 아닐 거다!”
“정말로 모릅니다요-!”
장삼태는 죽을 맛이었다.
스승이라 해도 남아 있는 감정은 그리 좋지 않다.
애초에 어린놈을 데려다가 도둑질이나 시켰으며, 또한 그 돈으로 호의호식(好衣好食)하였다.
경공 하나 제대로 배운 것을 제외하면 때려 죽여도 모자랄 인간이었다.
더군다나 그 경공 역시 선천지기를 이용하는 역겨운 것이었으니, 스스로 몸을 팔아 먹여 살리고 심지어 제 생명까지 깎아 먹는 짓을 장삼태는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그럼 그 인간이 있는 곳만 말해라!”
무천풍이 몽둥이 하나를 들고 거침없이 소리쳤다. 지금까지 때리지는 않았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무슨 짓을 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장삼태는 시큰둥했다.
애초에 이런 일을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아, 이 늙은이 진짜 짜증 나네. 내가 알면 이러고 있겠습니까? 나도 쌓인 거 많습니다요, 진짜!”
“제자이지 않으냐!”
“물릴 수 있으면 물리고 싶다, 왜!?”
장삼태 딴에도 억울한 상황이다.
그 빌어먹을 늙은이가 벌인 일이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가 쌓아 놓은 재보로 호화롭게 살아 본 적도 없었으며, 어떠한 덕을 본 기억도 없다.
오히려 금왕수의 제자이니 뭐니 하며 박해를 받았으면 더 받았다.
지난번에도 보아라.
금왕수가 남기라 했던 것을 생각 없이 해냈다가, 단우현이 엿을 먹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장삼태는 지금까지 가장 두려웠던 적이 언제냐 묻는다면, 생사를 나눈 싸움이 아닌 그 당시였다고 대답을 할 것이다.
“묻는 방법이 잘못되었군. 그럼 마지막으로 스승과 함께 있던 곳이 어디냐?”
그때, 가만히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단우현이 입을 열었다. 벌써 두 시진이나 되는 시간 동안 제대로 된 질문조차 끌어내지 못하는 무천풍이 내심 답답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구경을 하고 있던 이들 대부분이 기다리다 지쳤는지 하나둘 잠을 청하기 위해 들어가 버린 상황이었다.
남아 있는 이라 함은 고작해야 남궁천과 적무성, 사도학이 전부였다.
“그렇지! 내가 묻고 싶은 게 그거다!”
“이 인간아! 빨리 말을 하라고, 빨리!”
“나이도 어린놈이 어디서 이 인간, 저 인간 찾느냐!”
무천풍이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장삼태는 마치 어린아이와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긴 한숨을 내쉬며 강하게 허리를 당겨 새우처럼 목을 숙이더니, 이내 바지춤에 있던 단검을 꺼내어 밧줄을 잘랐다.
툭 잘라 내는 순간 몸을 비틀어 착지하는 그 모든 상황은 마치 날렵한 고양이를 보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기에 여기저기에서 작은 탄성이 터졌다.
“그 늙은이와 있었던 곳은 사천입니다요. 어이쿠, 죽겠네.”
장삼태가 허리를 통통 두드리며 인상을 썼다. 한동안 뒤집혀 있었더니 피가 거꾸로 솟아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미 죽었을 것이다.
“사천?”
“예예, 사천입니다요, 사천.”
장삼태가 주저앉아 여기저기 몸을 두들겼다.
그러한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상당히 여유가 엿보였다.
“간도 크구먼. 사천이라면 당가가 있는 곳인데 그런 곳에 금왕수가 있었다니?”
“하하하, 저도 그 생각을 했는데 말인뎁쇼. 저희가 숨어 있던 곳이 바로 사천당가가 가지고 있는 자그마한 산입니다요. 흔히 독산(毒山)이라 불리는데, 아마도 당가 사람들이 간혹 찾아와 독초를 재배하고 독사들을 기르는 곳이 아닌가 합니다요.”
“그…… 그런 곳에 있었는가?”
“어휴…….”
독산이라 한다면 남궁천이나 사도학 또한 알고 있다. 작은 산이라 말을 하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다. 사천 성도와 붙어 있어 가까운 데다 그 줄기가 청성까지 이어져 있었다.
어느 경계에서부터 당가의 땅이고 어느 경계에서부터 청성의 영역이었는데, 이를 놓고 사천당가와 청성 간에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독산에는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이는 장삼태가 말한 대로 온갖 독초를 비롯하여 독물들이 서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거기 우리 애들이 뭐가 있나 싶어 들어갔다가 시체가 되었지.”
“……청성에서 말이 많았다네. 독물들이 청성까지 넘어와 설치는 바람에 피해를 입는다고.”
사도학과 남궁천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사천당가의 힘이 너무나도 크니 이러한 일도 생기고 저러한 일도 생기는 법이다.
더군다나 녀석들은 독을 다루는 일가답게, 성격마저 얼마나 독종인지 가끔 때려죽이고 싶을 때가 많았다.
“아무튼 저희는 거기에 숨어 있었습니다요. 땅굴을 파고 입구를 바위로 막았지요, 하하하! 가끔 들어오는 독사를 잡아먹는 재미가 또…….”
남궁천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왕수는 사실상 전 무림의 공적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황실에서도 찍혀 있는 상황이니, 숨어 있을 데가 그리 넉넉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사천당가의 독산이라 한다면 어느 누구도 쉽게 들어오지 못하고, 사천당가 또한 그곳에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지 않으니 그야말로 등하불명(燈下不明)이 아니겠는가?
“생각보다 똑똑한 자로군, 금왕수라는 자 말이네.”
“똑똑하긴 개뿔…… 그 인간 취미가 다른 사람 놀리는 건데, 사천당가 놈들을 놀리다가 사천에 갇히는 바람에 갈 곳이 없어 그리되었습니다요. 썩을 것……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리네.”
장삼태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당시를 생각하면 오금이 저릴 만큼 두려웠다. 당가의 인간들이 이를 갈며 쫓아오고 그것을 피해 도망다니는 것만큼 무서운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지긋지긋한 얼굴을 떨쳐 내려 할 때.
푸드득-!
전서구 한 마리가 단우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살포시 그의 어깨로 내려앉는 그 모습은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단우현이 아무렇지 않게 전서구에 달려 있는 서찰을 꺼내 읽었다.
상당히 긴 내용인지 한참 동안 그것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화르륵-!
이윽고 손에 쥔 서찰이 단박에 잿더미가 되었다.
“무슨 내용인가?”
남궁천은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표정 없는 단우현의 얼굴만으로는 이것이 어떤 일인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혈천이 사천을 향해 총공세를 펼치려 한다.”
“……!”
“으음…… 드디어 나서는가?”
“왜 하필 그쪽인지 모르겠네?”
남궁천과 사도학, 그리고 적무성이 서로 의견을 나누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중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간간이 엿듣고 있는 이들에게 있어, 지금 이 문제는 결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사천이 뚫리면 마교가 위협을 받고 이내 호남까지 올 것이다.
그러나 이들과는 다르게 전혀 생각이 없는 자도 있었다.
무천풍이 심각함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귀를 후벼 파며 물었다.
“혈천이 뭐야?”
이십 년이란 세월은 참으로 긴 세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