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ing Swordmaster RAW novel - Chapter (317)
요리하는 소드마스터-317화(30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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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 카터스는 완전히 폐허가 된 건물의 잔해에 손을 올리며 쓰게 웃었다.
이곳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카터스가의 저택이 있던 장소였다.
그녀의 유년기가 통째로 담겨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연이은 에이전트의 습격으로 인해 카터스가는 결국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이제 나랑은 상관없는 장소인가.”
아벨은 언제부턴가 카터스라는 성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인간보다 엘프에 가까운 몸이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 에델바이스 상단의 대행수라는 자리를 손에 넣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는 지스타드 영지의 총관(摠管)까지 맡게 되었다.
거기에는 카터스 가문이 끼어들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아벨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바라보았다. 주 무장을 이파리로 바꾼 이후로도 버릴 수 없었던 물건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검을 쥐었던 이유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였다. 오러 소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줄 거라 생각한 거지. 그건 그렇고 어째서 이런 장소에서 보자고 한 건가, 케인첼.”
그러자 담벼락 뒤에 서 있던 남자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걸어 나왔다.
남자의 정체는 처음으로 마음을 터놓은 친구이자, 동료. 그렇지만 이제는 너무나 먼 곳으로 가 버린 케인첼 반 지스타드였다.
“미안. 설마 카터스 저택이 이렇게 되었을 줄은 몰랐어.”
“뭐, 일 년이나 브리타니아를 떠나 있었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 너무 미안해하지 마라. 그건 그렇고 설마 영지에 들리지도 않고 바로 동대륙으로 떠날 줄은 몰랐다.”
케인첼이 자리를 비운 동안 지스타드의 영주를 맡아 준 것은 니뮤에였다. 그렇지만 그녀는 인간을 꺼려 하는 엘프. 결국 대부분의 행정을 처리한 것은 아벨이었다.
“그거야 지스타드에는 아벨, 네가 있잖아. 너라면 몇 년이고 영지를 믿고 맡길 수 있어.”
콜라의 생산과 유통부터 시작해서 성의 증축까지.
지스타드 영지는 이미 아벨이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수준이었다.
“너무 바쁜 주군을 둔 업이라고 생각해야겠지.”
“그건 그렇고 넌 조금도 변하지 않았구나.”
“일단은 하프엘프 아닌가. 순혈만큼은 아니더라도, 인간보다는 훨씬 나이를 천천히 먹는다고 하더군.”
“외모 말하는 거 아니야. 내가 자유기사가 된 후로 쭈욱 같이 있어 줬잖아.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어째서 이 한마디를 하는 것이 그토록 힘들었을까. 그러자 아벨의 얼굴이 마치 사과처럼 새빨갛게 변했다.
“크, 크흠. 하여간 슬슬 콜라의 생산도 순조롭고, 영지의 규모도 커지고 있으니 개편을 요청하는 바이다. 그리고 앞으로 또 지스타드를 떠날 일이 있으면 제대로 된 영주 대행을 앉혀 두고 갔으면 한다만.”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아슬란 폐하께 말도 안 되는 자리를 제안 받았거든.”
케인첼은 아벨에게 하루 전에 있었던 지스타드 공국의 건국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벨의 눈이 가늘어졌다.
“백색산맥 일대를 공국으로 독립시키는 것으로 에이전트와 싸울 전초기지로 만드려는 속셈이겠지. 확실히 아슬란 폐하나 할 수 있는 파격적인 제안이다.”
몇 마디 말을 들은 것으로 아슬란의 의도를 완벽하게 읽어 낸 것이다.
케인첼은 역시 아벨이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분명 지스타드 공국 말고도 다른 것이 더 있겠지?”
“응. 맞아. 일단은 내가 데우스의 검이잖아? 명예뿐인 자리였는데 이번에 신설된 대 악마부대 페이스(Faith)의 캡틴을 맡아 달라고 하더라고. 참고로 구성원은 현재 전부 공석.”
“흐음. 교황님도 정말 너무하는군. 결국 인맥을 동원해서 채우라는 건가.”
“일단 생각해 둔 사람은 있으니 서신을 띄워 봐야지. 데우스교 직할이 아니기 때문에 국경은 물론, 종교나 종족까지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실력만으로 뽑을 생각이야. 하여간 공국에 페이스까지. 앞으로 엄청 바빠질 것 같아.”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겠다. 혹시라도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라. ‘친구’로서 돕도록 하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는 네가 정식으로 지스타드의 영주가 되어 주었으면 해.”
“그,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지스타드의 영주가 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자네뿐이지 않나!”
“그러니까, 지스타드의 이름을 이어 달라는 뜻이야. 으음…….”
케인첼은 말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지, 몇 번이나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이차원 주머니 안에서 별의 조각으로 만든 작은 단도를 꺼내 아벨의 손에 쥐어 주었다.
“장미칼이라고 해. 프라가라흐와 완전히 동일한 방식으로 만든 보조 무기지. 주인으로 인정받으면 고유 스킬 이기어검을 사용할 수 있을 거야. 줄게.”
단도라고 하지만 그 모양은 아무리 봐도 식칼이었다.
그렇지만 에나토스 크시포스와 함께 사용한다면 공격과 방어 양쪽에서 아주 유용한 무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손가락을 끼울 수 있도록 작은 고리가 달려 있었다.
“……!”
순간적으로 그 의미를 깨달은 아벨의 귀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케인첼이 동방에서 여섯 자루의 신기를 만들어 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클리버를 들고 온 엘리자베스가 귀가 아플 정도로 자랑해 댔으니까.
당연히 신기의 주인은 칠 대 미덕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거기에 설마 자신의 것도 포함되어 있을 줄이야.
“……이걸 정말 받아도 되겠나? 나는 아직 소드 마스터도 아니지 않은가.”
케인첼은 빙긋 웃으며 벌써 십 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일을 입에 담았다.
“예전에 내가 몰락한 가문을 되살리기 위해 스타니스에 입소했다고 한 적이 있었지? 미안하지만 그거 거짓말이야. 사실대로 말하자면, 바로 여기서 네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봤어.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지. 그러니까, 아벨. 너는 내 목표였어. 그때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 거야.”
“아.”
“그래서 장미칼을 받아 주었으면 해. 그걸 제대로 다루려면 소드 마스터가 되어야 하거든. 이번엔 내가 네 목표가 되고 싶어.”
서로가 서로의 목표가 된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케인첼은 갑작스러운 고백에 두 눈이 동그랗게 변한 아벨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의 시작이자,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단 한 사람.
그리고 몇 번의 심호흡을 한 후, 가슴속 깊은 곳에 담아 두었던 진심을 토해 냈다.
“나와 결혼해 주겠어, 아벨.”
“……도, 도대체 언제부터…….”
“사실 예전부터 이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 그렇지만 하프엘프와 인간은 수명이 엄청 많이 차이 나잖아. 언젠가 혼자 남게 될 너를 생각해서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을 뿐이야. 그런데 이번 원정에서 어쩌다 보니 초월자의 문턱을 넘게 되었거든.”
인간의 한계를 넘은 육체는 그 순간부터 노화가 거의 정지된다. 물론 완전히 불노불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하프엘프 정도의 수명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게, 게다가 이 몸은 중성이지 않은가. 케인첼……. 너는 조금 더 제대로 된 반려를 맞아야 한다.”
“그것도 아무 문제없어. 동방 대륙에 음기가 넘치는 영약이 널려 있더라고. 그걸 요리해서 먹으면 완전한 여성이 될 수 있을 거야. 물론 아벨 네가 원한다면 말이지만.”
“…….”
후손조차 남길 수 없는 인간도 엘프도 아닌 몸.
그렇기에 그저 바라만 봐야 했다.
손을 뻗어도 결코 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케인첼 반 지스타드는 아벨의 바로 앞에 있었다.
그 사실이 너무나 기뻤다.
“다시 한 번 물을게. 세계수의 수호자 아벨린. 저 케인첼 반 지스타드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아벨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하늘에 그림자가 만들어진다 싶더니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뛰어내렸다.
엘리자베스 메타트론.
그녀는 1차 칠죄종 전쟁은 물론, 2차에서까지 활약한 하프서큐버스였다.
엘리자베스는 허리에 손을 올린 채 불이라도 토해 낼 기세로 외쳤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몰래 따라와 봤더니 역시나였네.”
“윽. 엘리자베스 님이 갑자기 왜 하늘에서…….”
“꼬맹아. 분명히 내 이상형은 아침밥을 만들어 주는 남자라고 했지? 그러니까 나한테도 청혼해. 지금 당장.”
“자, 잘 못 들었습니다?”
“대 악마부대 페이스의 단장을 맡게 되었다면서. 이 엘리자베스 님이 큰맘 먹고 거기 가입해 줄게. 대신 그 대가로 나와 결혼해 달라는 거지.”
“죄송하지만 저는 이미 아벨에게 청혼했는데요.”
“아하하! 그거 농담이지? 어차피 이제 곧 공왕이 될 거라면서. 꼭 반려가 한 명일 필요는 없잖아?”
퇴로는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케인첼은 식은땀을 흘리며 또 다른 난입자가 쳐들어오는 것이 아닌지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더는 없군.’
“왜? 내가 싫어?”
“……저는 괜찮은데, 아벨의 입장이 조금 이상해지지 않을까요?”
그러자 아벨이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스승님과 경쟁하느니 차라리 반씩 나누어 먹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봐, 아벨도 괜찮다고 하잖아. 애초에 하프엘프와 하프서큐버스. 둘이서 한 사람의 몫을 한다고 생각하면 편하지 않을까?”
“…….”
케인첼은 두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아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엘리자베스가 자신에게 호감을 품은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요리인지 본인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둘 다였던 모양이다.
엘리자베스는 아벨을 바라보며 입술을 핥았다.
“아 참, 지스타드 공국을 위해서라도 너도 하루라도 빨리 소드 마스터가 되어야겠지? 시련의 탑을 비워 놨으니까 오늘 당장이라도 들어가서 정신력을 갈고닦으라고. 나는 그동안 낭군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테니까.”
“스, 스승님!?”
“왜? 꼬우면 너도 소드 마스터 하든가.”
청혼을 한다고는 한마디도 안 했는데. 이미 결혼이 확정된 것 같은 말투였다.
케인첼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뭐, 이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은 결말인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지스타드 공국의 건국 행사는 물론, 아벨과 엘리자베스 두 사람과의 결혼식도 해야 한다.
게다가 페이스의 깃발 아래 같이 악마와 싸울 동료들도 모집해야겠지.
그렇지만 그 전에.
지스타드 영지 깊은 곳에 있는 페인의 묘에 찾아가자.
그리고 너무나 사랑스러운 두 연인을 아버지에게 소개시켜 주자고 마음먹었다.
* * *
지스타드 공국의 건국으로부터 반년이 흘렀다.
그사이 악마 대공의 계약자, 속칭 ‘에이전트’와의 싸움은 더욱 격렬해졌다.
천적이 생기자 에이전트끼리 연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도저히 개인, 아니 국가 단위로 움직인다 해도 상대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있을 창단식에 엄청난 의미가 있었다.
단상에 올라가 있던 대문호 괴테는 몇 번의 헛기침을 한 후 입을 열었다.
“오늘 이렇게 괴테 님의 팬 사인회에 와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 아 참, 오늘은 페이스의 창단식이었지. 미안합니다, 여러분. 괴테 님이 조금 바쁜 사람이라서 말이지요. 으핫, 으하하하!”
그러자 뒤에 서 있던 괴테의 담당 편집자 아크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보는 사람이 없었다면 당장이라도 튀어 나가서 목을 조를 기세였다.
“하여간 소개가 늦었습니다. 대륙 최고의 악마 전문가로서 페이스의 참모를 맡게 된 괴테 님입니다. 다들 젊은 베르테스의 슬픔은 읽어 보셨지요? 하하! 그게 바로 제 책입니다.”
그러자 선두에 서 있던 암흑마제 독고천의 눈썹이 꿈틀댔다.
“본좌는 악마를 때려잡으려고 드넓은 대양을 건너서 왔다. 미안하지만 네놈의 농담을 듣고 있을 시간은 없다만.”
그러자 바로 옆자리에 서 있던 비스트 후작이 껄껄 웃었다.
“저게 괴테 선생의 매력 아니겠소. 아, 동방에서 온 젊은이. 베르테스 혹시 안 읽어 봤으면 내 한 권쯤 선물로 주리다. 딸내미가 괴테 선생님의 정말 팬이라서 나도 좋아졌다오.”
“……뭐, 시간이 나면 읽어 보도록 하지.”
광장에 모여 있는 이들의 얼굴을 한 번씩 훑어본 괴테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아르곤 제국에서 온 오크들이 커다란 도끼를 움켜쥔 채,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군데군데 터번을 둘러쓴 이들도 있었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친구를 돕기 위해 보내 준 최고의 전사들이다.
그뿐인가.
저 멀리 동대륙에서 건너온 무사들까지 하면 거의 백 명이 넘는 소드 마스터가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설마 죽기 전에 이토록 어마어마한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
이 모든 것이 단 한 사람이 만들어 낸 광경이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럼 지금부터 지스타드의 공왕이자, 대 악마부대 페이스의 단장, 그리고 너무나 아름다우신 엘프와 머메이드의 구원자이시며 브리타니아의 영웅이자――.”
케인첼은 괴테의 소개가 끝나기도 전에 단상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모여 있는 사람들을 한 번 둘러보고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소개가 조금 길어질 것 같으니, 우선 밥부터 먹고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