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Genius Demon Hunter RAW novel - Chapter 49
49화
더하고 덜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잠깐.”
가온은 눈을 반쯤 감으며, 막 당겼던 시위를 놓으려던 켄트를 만류했다.
느껴진 인기척의 움직임이 너무 대담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몸을 숨길 의사가 없다는 듯 발걸음 소리를 감추지 않는다.
거기다 곧장 이곳을 향해 다가오기까지.
‘굳이 기척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뜻이겠지. 스스로의 실력에 자부심을 느낄 만큼 뛰어나다는 거다.’
또 다른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가정은 배제했다.
가능성이 한없이 희박했기 때문이다.
가온은 몸의 근육을 바짝 조이며 나직이 말했다.
“강자다. 준비해.”
“네.”
켄트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흐릿해지던 시위의 화살도 다시금 빛을 머금기 시작했다.
켄트가 후위를 맡는다면, 가온의 포지션은 전위.
켄트에게 유리한 위치를 제공하기 위해 앞으로 내달렸다.
강자라는 판단은 마쳤지만, 두려움을 느끼진 않았다.
외려 게릴라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펼쳐 병력을 갉아먹었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이나 느꼈을 따름이다.
가온은 스마셀의 애병이었던 대검을 휘둘렀다.
후웅-
대검이 허공을 가르며 둔중한 바람을 일으켰다.
때마침, 피슉! 하고 켄트의 신성화살이 가온을 스치며 지나갔다.
본인의 공격이 적에게 유효타를 주기 힘들다는 판단 아래, 서포터로서의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가온의 대검보다 앞서 닿게끔 속도 조절을 한 것을 보면 말이다.
이처럼 스마셀이란 초강자를 상대했던 실전경험으로 인해 켄트의 활 실력은 급격하게 증가한 상태였다.
커다란 나무 너머, 적의 실루엣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적은 갑자기 눈앞으로 나타난 신성화살에 당황하기라도 한 듯, 한 박자 늦게 반응을 보였다.
‘잠깐. 당황한다고?’
가온의 뇌리를 스친 생각.
덕분에 손을 움직이는 데에 있어 머뭇거림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신성화살은 상대에게 도달해있었다.
상대는 공격을 받을 거란 일말의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다급하게 바람을 일으켜 신성화살을 와해시켰다.
‘바람……마법?’
가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누군가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치고 간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난 얼굴.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고 여겨 배제했던 가능성이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가온은 내려치던 대검의 손잡이를 힘껏 잡아끌었다.
검로를 튼 것이다.
쿵.
대검은 상대의 옆 바닥을 내려찍었고, 두 사람은 아주 가까운 위치에서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다.
멈춘 공격 사이로 묘한 기류가 흐르고,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군, 레이나.”
가온은 바람 마법을 주류로 다루는 오크 마검사, 레이나를 향해 입술을 달싹였다.
“환영받을 거란 기대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공격을 받게 될 줄은 몰랐어.”
“그건 사과하지. 이 숲에서 널 만나게 될 줄은 몰랐거든.”
가온은 순순히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말 그대로 가온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인물들만 가득한 이 숲속에서 호의적인 인물을 발견하게 될 일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여긴 무슨 일이지? 널 만난 게 우연일 것 같진 않은데.”
가온은 여전히 시위를 당기고 이곳 상황을 주시하는 켄트를 향해 괜찮다고 손짓하며 물었다.
레이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가온을 향해 곧게 편 검지를 뻗었다.
“당연히 우연이 아니지. 널 찾아온 거니까.”
“나를?”
가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왜지?”
“그야 이렇게 되리란 걸 예상했으니까.”
레이나는 가온이 자신을 찾아오고 난 후, 다시 오염지대로 나갈 걸 짐작했다.
케일의 성격상 가온을 추격할 거란 것도 알고 있었고.
평소와 달리 전혀 다른 방향을 선택하리란 것도 어려운 예측은 아니었다.
다만 정확한 방향을 특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고, 이는 케일 모험단의 동향을 살피는 것으로 해결했다.
레이나는 케일의 끈질긴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으리란 것도 알았다.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던 인원들의 움직임과 모험단 본대의 이동은 레이나에게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레이나는 그렇게 케일을 뒤따라 가온을 찾아온 것이었다.
다행이었던 건 가온이 이동한 방향이 레이나가 마수사냥꾼이 되고 난 후, 주로 활동하던 위치였다는 것이다.
덕분에 레이나는 출발이 늦었음에도 늦지 않게 가온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고.
“케일의 집요함은 내가 잘 알아. 절대 널 놓치려고 하지 않을 거야. 단번에 해결하지 않으면 평판에 금이 갈 테니까.”
“그래. 케일의 성격이 그런 것도 알겠고, 케일을 따라 네가 이곳으로 온 것도 알겠어. 근데 네 말엔 알맹이가 빠져있잖아.”
“무슨 알맹이.”
“몰라서 묻는 건가.”
“…….”
레이나는 침묵했다.
가온은 그런 레이나에게 쐐기를 박듯 물었다.
“네가 이곳에 온 동기. 왜 날 만나려 했는지, 그 이유.”
레이나는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듯 연신 입술을 달싹였다.
그리곤 어렵게 말했다.
“널……도우려고.”
“날?”
가온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왜?”
가온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기본적으로 가온은 남을 쉬이 믿지 않는 성격이었다.
무한 경쟁사회의 온상인 대기업에서 수년간 회사생활을 했기에 그리 굳어졌다.
이 세상으로 오고 난 뒤, 약하면 잡아먹히는 거친 외곽지역 생활을 거쳐오며 더 그리 변한 것도 있었고.
해서 가온은 레이나의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아니었으면, 네가 케일 모험단에 쫓기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엄밀히 말하면 호의라기보단 죄책감의 발로에서 오는 부채감이었지만.
물론 이곳은 부채감을 느끼면서도 외면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인 세상이다.
그런 곳에서 빚을 갚겠다는 발상을 한다는 거 자체가 선의에 가깝다는 건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리라.
가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일의 주체는 쟈올과 아베르가 아니었나? 그리고 그 일 때문에 손해를 본 건 너 또한 마찬가지일 텐데.”
“손해라.”
레이나가 쓴웃음을 지었다.
“케일 모험단에서 쫓겨난 거 아니었나?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없게 케일이 손을 쓴 걸로 아는데.”
바람 마법을 사용하는 3레벨의 마검사.
타이틀만 놓고 보면 매우 전도유망한 유망주임은 명약관화하다.
그런 인재가 다른 데로 소속을 옮기지도 못하고 가장 천한 직업이라는 마수사냥꾼이 된 건, 케일의 술수가 강하게 작용한 터일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네게 한 잘못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그건 맞기도 하지만, 틀리기도 해.”
“무슨 말이지.”
“케일이 방해한 것도 맞지만, 다른 곳이라고 케일 모험단과 다를까……그런 생각이 들었거든.”
레이나가 마수사냥꾼이 되길 선택한 건 타의에 의함도 있었지만, 아예 자의가 없었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 뭐 어쨌든. 네가 굳이 나에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레이나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가온은 그런 레이나를 살피다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렇게까지 찾아온 사람을 돌아가라 매몰차게 대할 순 없는 일이겠지.”
“그럼…….”
“도리어 내가 부탁할 일이잖나. 함께 움직이지.”
가온은 레이나에게 합류를 부탁했다.
레이나의 본의가 뭐든, 지금 상황에서 그건 중요치 않은 문제였으므로.
어쨌든 더해줄 손이 생겼고, 레이나 정도의 실력자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실력자였으니까.
당장에 도움이 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가온의 선택은 레이나의 마음을 알아줬다기보다는 당장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선택을 한 것에 불과했다.
“다만 네가 여기에 발을 들이게 되면, 케일과는 더 진한 악연으로 엮일 수밖에 없어. 그래도 괜찮겠어?”
레이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시작된 악연이다. 더하고 덜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곳으로 발길을 옮기던 순간부터 감수한 부분이었다.
그러니 케일의 분노가 쏟아지는 걸 무서워할 이유 따윈 없었고.
“그런 각오라면야.”
그렇게 레이나는 가온의 일행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
가온 일행과 케일 모험단의 싸움은 점점 치열해졌다.
가온 일행은 연신 게릴라를 펼쳐 적의 수를 줄이고자 했고, 케일 모험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여 가온 일행을 압박했다.
가온이 새로운 공략을 꺼내 들면 케일 모험단이 이를 보완해 막아내는 수 싸움이 엎치락뒤치락 이어졌다.
쉐에엑-!
어두운 숲 사이로 화살이 머리통을 꿰뚫을 기세로 매섭게 날아든다.
하지만 화살은 표적을 앞에 두고 힘을 잃은 듯 촉이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힘을 잃은 화살이 표적 삼았던 자의 옆 사람 투구를 틱, 하고 힘없이 건드리곤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화살과 같은 투사체를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는 바람 계열의 방어마법 덕분이었다.
수색조에 케일 모험단의 단원들이 본격적으로 섞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적이다!”
“저쪽이다!”
“달려!”
내내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화살이 무효화 되는 걸 본 이들이 기세등등해져 고함쳤다.
마법이 그들을 지켜준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두려움은 한없이 줄어들었다.
케일이 내민 마도구란 보상에 희번덕 눈이 돌아간 이들은 용맹스럽기 그지없었다.
방패를 눈 바로 아래까지 바짝 들어 올린 채 달려간다.
“억!”
발을 붙잡는 예의 함정들에 나뒹구는 사람들이 속출했지만, 그들의 질주를 막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휭-
한차례 바람 부는 소리가 강하게 들려왔고 이윽고,
펑!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허공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곤 다시,
쉬에엑-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이어진다.
푹!
“끄아악!”
화살에 적중당한 선두가 비명을 질렀다.
“마법이다! 마법에 방어막이 상쇄됐어!”
“방패 제대로 들어! 멈추지 말고 달렷!”
“컥!”
허벅지나 정강이를 붙잡고 쓰러지는 자들이 속출한다.
그나마 방패를 들어 상체를 보호했기에 그 정도에 그친 터일 것이다.
“여기서 뒤돌아봤자 개죽음뿐이야! 겁내지 말고 달려!”
그즈음, 부서졌던 방어막이 다시 가동해 화살을 빗겨내기 시작했다.
“우아악!”
덕분에 기세가 살아난 이들이 발에 힘을 실었다.
“저기다! 저기만 지나면 돼!”
다소 희망에 찬 목소리.
그들은 아름드리나무를 돌았고, 마침내 가온 일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깄……다!?”
환희는 금방 의문으로 물들었다.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적이 등을 돌린 채 멀어지고 있었으니까.
“도망간다! 잡아라!”
선두는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그리고 그건 그의 유언이 되고 말았다.
콰직!
나무 위에서 떨어져 내린 가온에게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으니까.
대검의 무게에 압사당한 동료를 본 이들이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가온은 내려찍은 대검을 회수한 뒤, 한차례 비웃음을 날려주곤 빠른 속도로 물러났다.
“따라가!”
뒤따르다 이제 막 도착한 모험단원이 소리쳤다.
아차 싶었던 이들이 발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그들은 가온을 뒤따를 수 없었다.
쾅! 쾅! 쾅!
“으아악!”
“이, 이게 뭐야?!”
나무 위에서 쏟아지는 돌 포격에 어안이 벙벙해졌으니 말이다.
다크 판타지의 천재 마수사냥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