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519
518
아르튀르는 게임 속 세상인 뉘르부르크 대륙에서도 예술가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도시였다.
세계 최강대국인 마우레키온 제국의 서북부에 자리한 아르튀르에는 전 대륙의 가수, 음유시인, 시인, 화가, 조각가, 연극배우, 작가 등이 모여들어 각자의 예술적 기량을 뽐내곤 했다.
그 배경에는 마우레키온 제국과 슈트카르트 황제가 있었다.
본래 예술이란 경제성과는 거리가 먼 행위.
일개 소도시에 불과했던 아르튀르가 이라 불릴 수 있었던 이유는 마우레키온 제국의 천문학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슈트카르트 황제는 예술이란 인간의 문화유산을 발달시키는 매우 중요한 행위라고 여겼다 했다.
그래서 어지간한 강대국의 1년 치 국방비에 해당하는 금액을 매년 아르튀르에 기부함으로써 예술가들이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마음 편히 활동할 수 있게 배려했다고 했다.
과연 세계 최고의 권력자는 취미 생활도 남다른 모양이었다.
‘돈이 썩어 나면 이런 짓도 하는구나.’
지크는 슈트카르트 황제가 아르튀르에 지원하는 금액의 규모를 알고 혀를 내둘렀다.
어지간한 강대국의 1년 치 국방예산을 작은 소도시에 쏟아부을 줄이야….
마우레키온 제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도 이길 것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것 같았다.
– 곧 아르튀르에 착륙합니다! 전 좌석 안전벨트를 매주십시오!
지크는 을 착륙시켜 놓고 햄찌와 함께 곧장 아르튀르에 진입했다.
“와우?”
지크는 아르튀르의 풍경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예술가들의 천국이라더니….”
아르튀르의 모습은 정말이지 여유롭고 평화로워 보였으며, 또한 아름다웠다.
아르튀르의 거리에는 온갖 종류의 예술가들이 넘쳐흘렀다.
화가, 음유시인, 행위예술가, 악기 연주자 등등….
예술가들은 세상 아무 걱정 없단 표정으로 저마다의 예술적 행위를 뽐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르튀르의 도로, 건축물, 벽화 등은 굉장히 아름답고 개성이 넘쳤다.
심미적인 안목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지크가 아름답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아르튀르의 미(美)는 가히 대륙 최고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았다.
“예술가들의 천국이라더니….”
“뀨! 주인 놈아!”
“응?”
“관광 왔냐! 뀨우! 한시가 급하다! 얼른 에메랄드 태블릿의 주인이나 찾아라! 뀨우우!”
“알겠어, 인마.”
지크가 햄찌를 향해 입을 삐죽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근데 어디로 가야 하나….”
문제는 막상 어디에 가서 누구에게 물어볼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는 것.
지크는 예술, 특히나 그림에 관해서는 무식 그 자체였으므로 물어보기조차 쉽지 않았다.
“화랑 같은 데 가서 물어볼까?”
“뀨! 좋은 생각이다!”
“가 보자.”
지크는 그림을 전시해 놓거나 판매하는 상점인 화랑에 들러 사부가 준 그림에 관해 물어보기로 했다.
“어서 오시오. 그림 보러 오셨소?”
화랑의 주인이 지크를 맞이해 주었다.
“그런 건 아니고요.”
“그럼 왜 화랑에는 들린 게요?”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요.”
“여긴 질문을 하는 장소가 아니오.”
“자문료는 드리겠습니다.”
“물어보시오.”
“…….”
“뭘 물어볼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아는 선에서는 대답해 드리리다.”
지크는 돈 얘기가 나오자 태세 전환을 한 화랑 주인이 어이가 없었지만, 꾹 참고 사부에게 받은 그림을 꺼내 보였다.
“이 그림 좀 봐주시겠습니까?”
“음.”
화랑 주인이 안경을 끼고는 사부가 준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오래전 그림이구려.”
“예, 뭐. 좀 오래되긴 했겠네요.”
만약 사부의 추리대로 이 그림이 에메랄드 태블릿의 주인이 그린 것이라면 최소한 300년은 넘은 그림이 맞았다.
왜?
치천존이 아는 한 마지막 에메랄드 태블릿의 주인인 아케론의 행적이 끊긴 게 300년 전이었으니까.
“흠. 그림에 묻은 물감과 캔버스의 상태를 보면 150년 정도 된 그림 같은데….”
“그리고요?”
“실력은 형편없구먼.”
“예?!”
“아마추어라기엔 잘 그리고, 프로라기엔 뭔가 애매한 실력일세.”
“으음.”
“이 정도 수준의 그림은 이곳 아르튀르에도 만 개는 넘을 걸세.”
“히익?!”
“이런 그림을 어째서 봐달라는 겐가?”
화랑 주인이 지크에게 물었다.
“설마 어디서 눈탱이라도 맞고 온 겐가?”
“예?”
“그 왜 있지 않은가. 이 그림이 엄청나게 유명한 화가의 역작인데 싸게 주겠다느니 해서 사기를 당하는 것 말일세.”
“아, 아닌데요.”
“그럼 혹시 가문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던 그림이었나? 혹시나 비싼 것일까 봐 감정을 받으러 온 것이고?”
“그것도 아닌데요?”
“그럼 도대체 이런 볼품없는 그림을 가지고 와서 뭘 봐달라는 게야?”
“음.”
지크는 잠시 생각을 해보고는 화랑 주인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냥 뭐… 그림에서 뭔가 느껴지시는 게 없는지, 혹은 특이 사항이라도 발견해 주셨으면 해서 가지고 왔거든요.”
“그런 것 없네.”
“그럼 혹시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
“수도에서 제임스 찾기겠지.”
“…….”
“이런 별 볼 일 없는 그림을 그린 화가를 찾겠다고? 그것도 최소 150년 전의 인물을? 꿈 깨게. 그럴 시간 있으면 발 닦고 잠이나 자는 게 여러모로 이득일 걸세.”
“그, 그렇군요.”
“자, 그럼….”
화랑 주인이 지크에게 눈치를 주었다.
“여기요.”
지크는 화랑 주인에게 금화 몇 닢을 건네주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뀨! 주인 놈아! 이제 어떡하냐!”
“어떡하긴.”
지크가 햄찌의 물음에 대답했다.
“뭔가 아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돌아봐야지.”
지크는 일단 포기하지 않고 사부가 준 그림에 대해 아는 감정사를 찾아보기로 했다.
***
지크는 처음 들렀던 화랑을 시작으로 아르튀르에 있는 거의 모든 화랑과 전당포 등을 돌며 사부가 준 그림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러나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었다.
[당시에도 비주류 화풍을 구사했구먼. 더럽게 인기 없었겠어.] [이런 그림에서 뭘 알아내 달라는 겐가? 화가 서명도 없고 딱히 제목도 없는데?] [이 그림을 그린 화가를 찾고 싶다고? 차라리 150년 전에 죽은 이름 모를 병사의 유골을 찾는 게 나을 것 같은데?]지크가 수없이 발품을 팔고, 또 골드를 써가며 자문을 구해 보았지만 나름 전문가라는 사람들조차 사부의 그림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해가 졌다.
“끄응.”
지크는 아르튀르의 정중앙에 자리한 분수대에 걸터앉은 채 지친 표정을 지었다.
“이래 가지고 찾겠냐….”
“뀨우! 그렇다! 헛걸음만 했다!”
“그렇다고 사부님이 그림을 잘못 보셨을 리는 없잖아.”
지크는 사부의 안목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부는 앉아서 천 리, 아니 만 리를 내다보는 존재.
평범한 사람들은 보지 못한 시각을 가진 사부가 그림을 잘못 봤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지크가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눴던 전문가라는 이들의 안목이 시궁창인 것이다.
물론 그들의 잘못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사부의 보는 눈이 너무나도 높았을 뿐….
꼬르륵!
그때, 햄찌의 배에서 배꼽시계가 울렸다.
꼬르르륵!
지크의 배 역시도 음식물을 섭취할 때가 되었다고 알렸다.
“야, 우리 뭐 좀 먹자.”
“좋은 생각이다!”
그때였다.
웅성웅성-!!!
지크와 햄찌가 걸터앉은 중앙 분수대를 중심으로 수없이 많은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으응? 갑자기 뭔 일이라도 있나?”
지크는 무슨 일인가 싶어 조용히 사람들이 몰린 이유를 알아보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곧 세계 최고의 음유시인 그랭구아르 경께서 버스킹 공연을 시작하실 예정이십니다!”
누군가의 외침에 함께 그랭구아르가 기타를 들고 중앙 분수대로 걸어와 간이 의자에 걸터앉았다.
짝짝짝짝짝짝짝!!!
그러자 세찬 빗소리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지고, 수천 명의 군중들이 일제히 중앙 분수대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저 인간 때문이었구만.”
지크는 공연을 준비하는 그랭구아르와 그의 매니저 역할을 하게 된 람보르기니를 바라보며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랭구아르는 누가 뭐래도 세계 최고의 인기 연예인이자 예술 천재.
그런 그랭구아르가 거리에서 버스킹 공연을 한다니 군중들이 몰려드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전하!”
그때, 그랭구아르가 지크를 발견하고는 서둘러 달려왔다.
“신 그랭구아르가 전하를 뵙습니다.”
그랭구아르가 지크에게 예를 올리고.
“오랜만이오.”
람보르기니 역시도 지크에게 아는 체를 해왔다.
“오래간만이네요. 바쁘신가 봐요?”
“아닙니다, 전하. 마우레키온 제국의 의뢰로 버스킹 공연을 하러 왔을 뿐입니다.”
“그래요?”
지크와 그랭구아르가 서로 인사를 나눌 때였다.
“아, 저 사람 뭐야.”
“방해하고 난리야.”
“쟤 때문에 공연 늦어지잖아.”
그랭구아르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모여든 군중들이 지크를 향해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군중들의 입장에서는 오직 그랭구아르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는데, 지크가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 달갑지 않게 여겨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거 하던 거 마저 하시죠.”
지크는 군중들의 시선이 따가워 서둘러 그랭구아르에게 손사래를 쳤다.
“뀨! 주인 놈아!”
“응?”
“그랭구아르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냐!”
“뭘?”
“그랭구아르 그림도 천재라고 들었다! 뀨우!”
“어? 생각해 보니 그러네?”
지크는 그랭구아르가 노래뿐 아니라 다방면에서도 천재적인 재능을 까진 예술인이라는 걸 기억해 내고는 그랭구아르를 잡아끌었다.
“뭐야!”
“저 자식 뭔데!”
“아오!”
성난 군중들이 분노를 토해냈지만, 지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랭구아르 경.”
“예, 전하.”
“혹시 이 그림 좀 봐줄래요?”
“어렵지 않지요.”
그랭구아르의 눈길이 사부가 지크에게 준 그림을 훑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5초 후.
“대, 대단한 표현력입니다.”
“엥?”
“약 150년 전의 그림인데… 기술적으로는 좀 떨어질지 몰라도 그림에 담긴 감정만큼은….”
과연 그랭구아르는 달랐다.
그랭구아르는 사부가 지크에게 준 그림에서 아르튀르의 감정사들이 알아보지 못했던 어떠한 미(美)를 볼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마치 사부처럼….
“가히 명작입니다.”
그랭구아르가 지크를 돌아보며 딱 잘라 말했다.
“그림에 담긴 감정과 전체적인 표현이… 붓질 하나하나에 화가의 절절한 감정들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 그래요?”
솔직히, 지크는 그랭구아르가 어째서 이 그림을 보며 왜 흥분하는지 개미 똥꼬만큼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자고로 예술이란 곧 주관이고 취향의 영역이 아니겠는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건 없었다.
“굉장한 그림인데, 이걸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그게….”
지크가 그랭구아르에게 사부가 준 그림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음.”
그랭구아르는 지크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소신으로서도 이 그림을 그린 화가를 찾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래요?”
“하지만 물어볼 만한 사람은 있습니다.”
“누군데요?”
“샹젤리제 옥션의 호스트인 카이텔 후작이라면, 그 그림을 그린 화가를 알지도 모릅니다.”
“샹젤리제 옥션? 카이텔 후작?”
“이 세상의 모든 미술품이 거래된다는 곳이지요. 그곳의 호스트인 카이텔 후작은 나이가 80세에 이르도록 온갖 미술품을 보아온 사람입니다. 그런 카이텔 후작이라면 알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예, 전하. 카이텔 후작을 찾아가 보시지요.”
“그래야겠네요.”
지크가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 위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도시 전체에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뭐지?”
지크는 귀청을 찢어발길 것 같이 큰 사이렌 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 불이라도….”
그때.
– 아아! 아르튀르의 시민들에게 전파한다!
– 아르튀르의 시민들에게 전파한다!
– 현 시간부로 도시 전체에 계엄령을 선포하는 바이다!
– 다시 한번 전파한다!
– 현 시간부로 도시 전체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뜬금없이 계엄령이 선포되며 도시 곳곳에서 기사들과 군인들이 쏟아져 나와 길목을 봉쇄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