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154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54화
테스타의 이번 앨범은 당연히 팬들의 넘치는 기대를 받고 있었지만, 동시에 몇몇 팬들의 우려도 받고 있었다.
멤버별 솔로곡 예고 때문이었다.
-아 무슨 벌써 솔로곡이야 줄 세우기 어쩔건데ㅠㅠ
-어그로들이 ㅌㅅㅌ 순위 재정렬 이지랄할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스트레스 오져
-어떻게든 올팬 만들려고 난리더니 왜 갑자기 노선 탈주해
물론 솔로곡의 음원 성적이 멤버들의 지명도를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한 앨범으로 발매되어 그룹명으로 같이 노출되기 때문에, 결국 곡의 대중성에서 순위가 갈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바이벌 그룹 특성상 ‘테스타 멤버 별 음원 성적’이라는 실시간 중계가 예상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약간의 우려가 부푼 기대 속에서 자라고 있을 때, 테스타의 티저가 공지되었다.
위튜브의 최초공개 기능을 이용한 동영상 사전 예고였다.
하루 뒤에 해당 동영상이 공개된다는 뜻이다.
[테스타(TeSTAR) ‘행차(present)’ Official Teaser]‘어두운 숲속, 나무에 꽂힌 화살’이라는 별 힌트 없는 썸네일이 함께 떴다.
별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시큰둥했다.
-사극풍은 맞는 것 같은데
-일부러 이러나
-화살?ㅋㅋ
하지만 사람들이 영상 정보를 확인하자 상황은 일변했다.
영상의 길이가 무려 8분 12초였으니까.
-티저라며! 티저라며!
-예고편을 8분 때리는 그룹이 있다??
-얘들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미친 너무 궁금해
-잘못 뜬 거 아닌가 무슨 티저가 8분;
KPOP 뮤직비디오 티저는 1분 이내로 짧은 것이 보통이었다. 8분은 이례적으로 길었다.
물론 길다고 크게 치명적일 일은 없었다. 어차피 이제 티저는 홍보 목적보다는 팬들의 기대감을 채워주는 역할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성적을 신경 쓰는 팬 중에는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나왔다.
티저니까 가뜩이나 팬이 아니면 보는 사람도 적을 텐데 길이가 8분이나 되니 조회수가 줄어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마침 미국 프로그램 출연이 호조가 되며 해외 케이팝 팬덤 유입이 기대되는 상황이었기에, 확실한 지표를 빨리 확인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아무리 티저 조회수가 자료로 잘 안 쓰여도 그렇지… 짧은 게 나을 텐데ㅠ
-차라리 나눠서 여러 개로 공개하는 게 나았을 것 같긴 한데 모르겠다.
-제발 T1 갬성 신파 노잼 스토리 뮤비 아니지? 아니라고 해줘
-이쯤 헛발질할 때가 됐다고 생각은 하는데 아니었으면 좋겠다 돈 센스 있게 썼길
물론 컴백 직전에 초 칠 일은 일어나면 안 됐기 때문에, 팬들은 공개된 커뮤니티나 SNS 등지에서는 무조건 긍정적인 말로 분위기를 밀었다.
-8분이라니 너무 좋다 티저부터 애들 얼굴 길게 볼 수 있겠네ㅠㅠ
-혹시 우리 배햄찌 연기 볼 수 있나??? 으아아악 너무 기대됨
-24시간 어케 기다리냐
-최초 공개 기다렸다가 30초로 끝나면 진짜 미칠 것 같을 듯 8분이나 주다니 역시 테스타 대혜자그룹
제발 이 기대감이 티저가 나오자마자 식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팬들은 티저 공개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공개 당일.
티저 동영상의 실시간 채팅에서 최초공개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사이좋게 경악했다.
-????
-뭐야
팬들의 추측대로, 티저는 매우 본격적인 사극풍이 맞았다.
다만 멤버들이 맡은 역할은 사람이 아니었다.
영상은 거대한 대궐로 시작해 빨려들 듯이 그 안으로 들어가더니, 모서리를 돌고 돌아 장지문 하나를 열고 들어갔다.
서적이 가득한 서고였다.
그중 예스럽고 낡은 서적 하나가 바닥에 떨어진 채 펼쳐져 있는 것을 화면이 쫓았다.
그 안에는, 바닷가에 솟은 팔 하나가 수묵화로 거칠게 그려져 있었다.
그 순간, 영상은 실제 바닷가로 화면을 바꾸었다.
파르륵.
화면은 순식간에 바닷속으로 들어가더니, 물 아래 거대한 바위에 누운 인영을 비추었다.
인영은 흰 도포 느슨히 걸친 금발의 선아현이었다.
햇살이 푸른 바닷물을 뚫고 바위 위 하얀 얼굴에 일렁였다. 아름답지만 괴이한 풍경이었다.
하단에 고풍스러운 글씨체로 하얀 자막이 떴다.
[숨소리]공개된 트랙 리스트에 있던 곡명이었다.
그리고 아릿한 가야금 소리와 함께, 선아현의 솔로곡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선아현이 몸을 일으켜서 물속에서 천천히 무용을 시작했다.
곡에서 정해진 안무가 아닌, 그냥 아름다운 움직임이었다.
머리카락과 도포가 물속에서 유려한 선을 그렸다.
-와ㅠㅠㅠ
-진짜 잘생겼다
-수중 촬영 미쳤나
사람들은 감탄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선아현 솔로곡이 인트로구나!’
하지만 아름다운 수중 공연이 끝나자마자, 카메라는 물거품 속 선아현과 눈을 마주치고는 다시 바닷속에서 치솟았다.
그리고 모래사장 위에 자개로 그려진 기묘한 원형 무늬로 접근했다.
저녁놀이 지는 어둑어둑한 때, 무늬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인영이 몸을 펴고 일어났다.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차유진이었다.
그 볼과 쇄골, 손등에 기묘한 글씨체의 옛 한글이 오색 자개 빛으로 무늬처럼 빛났다.
티디딩, 팅팅, 티딩!
꽹과리 소리와 함께 강렬한 비트의 새 곡이 시작되었다.
[장단]차유진의 솔로곡이었다.
-어?
-오졌다
-헐 설마
-미친 차유진ㅠㅠㅠ
차유진의 퍼포먼스에 대한 반응과 현 상황에 대한 강력한 추측이 어지럽게 뒤섞이며 실시간 댓글창이 폭주했다.
그리고 이들의 추측은 맞았다.
이런 식으로, 모든 멤버들의 솔로곡이 이어서 소개된 것이다.
차유진의 다음으로는 눈을 가린 배세진이 고목 위에 걸터앉은 채, 발라드 멜로디의 곡을 불렀다. 은은한 편종 소리가 가미되어 있었다.
그리고 숲속 동굴 안으로 들어간 영상의 시야는 초롱 불빛을 네온처럼 쓰는 김래빈을 비추었다.
김래빈의 솔로곡은 생황 소리를 메인으로 삼은 퓨처 베이스였다.
그 후, 동굴에서 빠져나온 카메라는 숲 한 편의 낡은 초가로 향했다.
이상야릇한 색색의 천이 어울리지 않게 초가의 다 썩은 장지문을 휘감고 있는 가운데.
박문대가 툇마루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미 익숙한 ‘꽃 그믐’의 소금 소리가 울렸다.
-혼례복!! 미친 감사합ㄴ다ㅠㅠ
-역시 문대는 얼굴을 봐야
마지막으로 영상은 초가와 대조되는 화려한 대궐로 돌아왔다.
그 한복판에서 이세진이 거대한 꼬리 같은 허리 장신구를 단 채 북소리에 맞춰서 묘기 같은 춤을 췄다. 경쾌한 이지리스닝 곡이었다.
당연히 팬들은 행복해했다.
-야 곡 다 좋잖아
-ㅠㅠㅠㅠㅠ
-헤메코 굿
-영상미 맙소사
-아 앨범 얼른 받고 싶다ㅠㅠ
-제발 풀영상
-내 인생 가장 알찬 8분
하지만 이세진의 춤이 끝나고, 그가 빙긋 웃으며 몸을 돌려 궁궐로 사라지자 화면이 꺼졌다.
-???
-청우 어딨어
-타이틀 안 보여줘?ㅋㅋ
-이거 티저는 맞음?
멤버 하나는 나오지도 않았고, 정작 타이틀곡은 보여주지도 않나 싶어서 당황한 팬들은 다시 켜진 화면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트래픽 오류인가
-아 다행
-최초공개 이래서 문제라고ㅠㅠ
하지만 화면은 다시 바닷속 선아현을 비추었다. 솔로곡에 쓰였던 가야금 소리와 함께.
-엥
-또?
-반복 오류 맞네
오류가 아니었다.
화면의 선아현은 잠시 카메라를 응시하다 사라졌고, 다음으로 모래사장의 차유진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컷으로 바뀌었다.
그다음은 배세진이었다.
하지만 인물이 바뀔 때도, 배경에 깔리던 국악기 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계속 쌓였다.
-어?
멤버들은 솔로곡 비트 멜로디에 국악기를 하나씩 잡아넣었다.
그 국악기들이 하나하나 사이드로 조화롭게 들어가며 새로운 비트 멜로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화면이 이세진을 비추자, 이제 북소리까지 들리며 곡이 뼈대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 안을 현대적인 악기들이 채우는 순간.
갑자기 곡이 멈췄다.
그리고 돌아간 화면에서는… 손이 등장했다.
[…….]크고 단단한 손이 바닥에 떨어진 서적을 주워 들었다. 맨 처음 등장했던, 이상한 수묵화가 그려진 서적이었다.
카메라에 서적의 등이 잡혔다.
[요괴답사록]“출두하시렵니까?”
손을 타고 올라간 카메라가 팔의 주인을 잡았다.
철릭을 걸친 류청우였다.
-개잘생겼어
-아악 청우야
댓글창에서 뭐라고 부르짖던 간에, 영상 속 류청우는 복잡한 표정으로 서적을 털어서 챙겼다.
그리고 또렷한 눈으로 화면 밖의 누군가에게 대답했다.
“그래야지.”
돌아서 서고를 나가는 류청우의 뒷모습을 잡으며, 멜로디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리고 담장 밖까지 걸어 나온 류청우는 자신의 등 뒤에 걸린 활을 꺼내어 숲속을 겨누었다.
검게 옻칠 된 국궁이었다.
[지금, 나타나셨다경고 또 경고
팔자로 접근하는
느릿한 짜릿한]
화살이 파공음과 함께 날아가, 거대한 대나무에 깊게 꽂혔다.
[나.]영상은 나무에 꽂힌 화살을 비추며 끝났다.
썸네일이었다.
-미친미친
-와
-방금 타이틀임??
-으아아아
-다른 멤버들은 요괴고 청우가 잡는 거예요??
-사랑해 테스타ㅠㅠ
-아 솔로곡 다 연결되는 거 미쳤냐고!1
멤버들의 솔로곡들이 연결되며 타이틀곡을 구성했다. 그리고 영상을 통해 뮤직비디오의 스토리를 암시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티저의 의미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앨범 내 유기적 완성도를 생각했다는 게 분명하게 드러나는 구성이었다.
이점은 티저 동영상의 ‘더 보기’란에 굳이 추가한 정보에서 더 확실히 드러났다.
앨범 전곡의 작사·작곡·편곡 저작권자 목록이 포함되어 있던 것이다.
-무슨 곡마다 애들 이름이 있냐
-다 같이 만들었구나ㅠㅠ
비록 순서는 뒤쪽이었지만, 곡마다 다양한 멤버들의 이름이 보였다. 자신의 솔로곡이 아닌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굳이 티저 영상에서부터 이 모든 것을 연결하여 보여줬다는 것에서 확실한 의사 표명이 느껴졌다.
‘앨범 곡들은 그룹으로 만든 작업물이에요’라는.
후일 직캠 조회수로 줄 세우기가 나올 수는 있어도, 앨범 내 음원으로는 멤버별 성적 비교를 방어할 논리를 선 제시해 줬다는 뜻이다.
-애들 진짜 그룹에 너무 진심이다
-우리 디너쇼할 때까지 같이 가는 거야 테스타 디너쇼 볼 거라구ㅠㅠ
-그래 뮤비 조회수가 중요하지 티저야 우리만 재밌으면 되는 거 아니겠어 고맙다 얘들아 8분 알찼다
멤버를 두루두루 좋아하는 테스타 그룹 팬들이나, 과격하지 않은 개인 팬들은 대부분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다만 류청우의 팬들은 오묘한 반응이었다.
티저 마지막을 보면 류청우가 타이틀곡의 센터는 맞는 것 같은데, 정작 솔로곡을 소개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마 청우 솔로곡만 영상 없어?
-코어 없다는 염불도 빡치는데 홀대도 기상천외ㅋㅋㅋ
-항의하면 센터 먹고 겨우 티저로 왜 지랄이냐고 ㅊㅇㅈ 빠들이 지랄하겠지? ㅋㅋㅋ환멸
-분량 항의도 못 하게 분위기 잡아놓은 게 더 싫어
‘아직 컴백 뚜껑 열어보기도 전에 오버한다’와 ‘티저에 아예 곡이 안 나왔는데 당연히 기분 나쁘지’가 은근한 싸움을 주고받았다.
다행히 그게 캡처되어 여기저기에 ‘테스타 팬덤에서 논란 중인 화제’로 전시되기 전, 테스타 SNS에 글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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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러뷰어. 티저는 재밌으셨나요?
이번 활동에서 제 역할이 크다는 격려를 작업하는 내내 들어서 좀 긴장됩니다만, 앨범 기대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 저는 류청우입니다. (웃는 이모티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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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우 분량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뉘앙스가 담긴 글이었다.
* * *
“이 정도면 될까?”
“예.”
“음, 좀 건방진 것 같기도 한데.”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하하, 알았어. …고마워.”
“…별말씀을요.”
류청우는 웃으며 스마트폰을 껐다.
반응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며 컨텐츠가 풀리면 수그러들 반응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타이밍에 한 번 안심시키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권유해 봤다.
‘이건 이걸로 됐고.’
나는 류청우의 팬 여론이 ‘일단 기다려 보자’로 합의된 것을 확인한 뒤, 아까 보던 기사들을 다시 불러왔다.
‘이게 더 걸리지.’
바로 골드 1이 포함된 그 그룹에 관한 기사였다.
[대형 신인 골든에이지, 컴백 초읽기] [ 출신 골든에이지, 테스타 만나나?] [파란의 8월 가요계… 테스타부터 골든에이지까지]한마디로, 이 그룹 컴백이 하필 테스타 활동기와 겹친다는 것을 알려주는 기사들이다.
당연히 보자마자 떠오른 구도가 있었다.
‘우리 데뷔 때.’
부동의 탑티어 브이틱과 동발했던 테스타의 데뷔 말이다.
정확히 이 구도가 생각나게 하는 동시 활동이었다.
‘어쭈.’
나는 혀를 찼다. 이제 확실히 감이 왔다.
이 새끼들 소속사가 일을 잘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