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302
301화. 자귀 꽃 필 때 (1)
6월 말의 뜨거운 태양이 그리 싫지 않은 날이었다.
배연화는 벤치에 앉아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젊은 남녀를 보았다.
그들이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 예진 씨. 이거 드세요. 제가 이혁 사장님께 특별히 부탁해서 만들어온 샌드위치입니다.”
“어머! 진혁 씨. 고마워요. 저 샌드위치 좋아하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어머? 커피도 준비하셨네요?”
“커피는 사장님께서 서비스로 주시더군요. 하하.”
그들의 대화에 배연화는 빙그레 웃었다.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한 연인이었는데, 그들을 보자 자신의 연애 시절이 떠올랐다.
‘지용 씨도 샌드위치를 좋아했는데…….’
특히 그녀가 직접 만든 샌드위치를 좋아했지만, 이제 더는 그녀의 샌드위치를 먹을 수 없게 되었다.
‘당신이 그곳으로 간 지 벌써 11년째가 되는군요.’
그 사이 그녀는 쉰 살이 되었다.
남편이 죽었지만, 그녀는 슬프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가 곁에 없으니, 쓸쓸할 뿐이었다.
‘내가 당신 때문에 쓸쓸함이라는 감정을 배우게 되었답니다. 내 사명을 마치면 그땐 함께 있을 수 있겠지요.’
그때 메시지가 도착했다.
[사모님, 상의드릴 것이 있는데 혹시 지금 통화 가능하십니까?]블랙베어 길드장 도한석의 메시지였다.
자신의 남편을 무척이나 따르던 그는, 남편이 만든 길드의 새로운 길드장이 되었다.
보통은 길드장의 자녀가 새로운 길드장이 되지만, 배연화와 죽은 남편 사이에 자녀가 없었으니까.
배연화의 예상대로, 도한석은 현재 무척이나 훌륭히 길드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통화 가능합니다]그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전화가 왔다.
– 사모님, 저 한석입니다.
“무슨 일이 있나 보군요. 목소리가 평소와 다른 것을 보니.”
– 네. 상의드릴 것이 있어 전화 드렸습니다.
“이제 길드장은 당신입니다. 더는 저에게 의견을 구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있지요.”
– 그건 아닙니다. 누가 뭐래도 사모님은 제 이정표이십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형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중대한 결정을 할 때는 반드시 사모님의 의견을 구하라고 말입니다.
“그이도 참…….”
배연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 말한다면 할 수 없죠. 목소리를 들으니 전화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고…… 지금 사무실로 찾아가지요.”
“감사합니다.”
.
.
.
곧 배연화는 블랙베어 길드에 도착했고, 길드장의 사무실로 향했다.
“길드장님. 큰 사모님 오셨습니다.”
비서의 말에 도한석은 직접 문을 열고 그녀를 맞이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직접 문을 열어 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제가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다.”
그들은 소파에 앉았고, 비서는 미리 준비한 따뜻한 인삼차를 가져왔다.
“제가 인삼차를 좋아하는 것, 여전히 기억하고 있군요.”
“당연히 기억해야지요.”
“고맙네요.”
배연화는 인삼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래서, 상의할 것이 무언가요?”
“사실 은탑으로부터 이번 한미중 헌터 특별훈련에 참여할 것을 제안받았습니다.”
“그건 좋은 일이네요.”
배연화의 말대로였다.
한미중 헌터 특별훈련에 참여하는 길드는 국내의 내로라하는 길드들이었다.
중소길드로서 그사이에 낀다는 건 영광이기도 했고 이득도 컸다.
거대 길드의 인사들과 교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헌터들과도 인맥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배연화가 의아한 듯 물었다.
“하지만 은탑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자리를 내주지는 않았을 텐데요?”
머뭇거리던 도한석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사실은…… 일종의 보상 차원입니다. 심정필 헌터에 대해서 아십니까?”
“처음 들어 보는군요.”
“아무튼, 이번에 새로 들어온 녀석인데 은탑에서 원하는 인재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녀석을 은탑에서 요구할 때마다 차출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즉, 심정필 헌터를 두고 오가는 거래라는 거군요.”
“맞습니다.”
“심정필 헌터를 은탑에 뺏기는 것이 싫은 건가요?”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B급에 얼음의 마법을 쓰고 또 검술에도 재능이 있는 녀석입니다. 저희 길드의 힘이 될 녀석인데 뺏기고 싶겠습니까?”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하아…… 하지만, 그 녀석의 미래를 생각하면 저희 같은 중소길드보다는 은탑에서 활약하는 것이 더 낫죠.”
배연화가 침착하게 물었다.
“그래서, 그대의 입장은 어떻죠?”
도한석은 잠시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심정필 헌터가, 싫다고 하더군요. 이 모든 거래는 본인이 동의해야 하는데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째서죠?”
“자신은 이 길드의 길드원으로, 우리와 끝까지 함께 하고 싶다는군요.”
그는 말을 이었다.
“솔직히 정필이의 말에 감동했습니다. 그 녀석이 우리를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줄은 몰랐으니까요. 하지만…….”
“이해합니다. 같은 헌터로서의 당신과 길드장으로서의 당신의 위치는 다르니까.”
“……그렇습니다.”
배연정은 도한석이 아까 자신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 대답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 건지도 알아차렸다.
“혹시 심정필 헌터는 그 거래에 대해서 모르고 있나요?”
“다른 이들은 심정필 헌터에게 약간의 재정적 지원이 있다고만 알고 있지요.”
그는 말을 이었다.
“한미중 헌터 특별훈련 건은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서 그건 저만 알고 있습니다.”
“이제 저도 알게 되었네요.”
“그야, 사모님은 믿을 수 있는 분이니까요.”
“그 말, 기분은 좋네요. 알았어요. 내가 그 헌터와 이야기해 보지요.”
“감사합니다. 아, 참고로 그 녀석은 양춘각의 짜장면을 좋아합니다.”
* * *
그 시각.
오랜만에 고영민이 양춘각에 방문했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강소는 그를 맞으며, 커피를 권했다.
“커피 드릴까요?”
“아, 감사합니다.”
고영민은 강소가 탁자 위에 놓은 커피를 마시며 물었다.
“그런데, 사장님께서는 어디 가셨습니까?”
그 물음에 강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주인의 산부인과 정기검진일이라 함께 갔습니다. 이제 곧 올 겁니다. 하영이는…….”
강소는 웃으며 말했다.
“고 실장님이 더 잘 아시겠군요.”
“그럼요. 오늘은 금요일이고 유하영 양은 ‘꼬마 과학실에 놀러 오세요.’의 촬영이 있으니까요.”
“하하하.”
강소는 소리 내어 웃었고, 고영민은 헛기침했다.
“험, 험험. 그런데 강소 씨.”
“네.”
“연예계에 발을 담그실 생각은 정말 없으신 겁니까?”
그의 물음에 강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지금의 이 생활이 좋습니다.”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싶습니다만, 강소 씨는 참 특이하신 분입니다.”
“그렇습니까?”
“네.”
고영민은 커피를 마셔 입을 축이고 말을 이었다.
“그 외모에 그 노래 실력에 그 연기력이면 보통 사람들은 자신을 감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힘이면 자신의 힘을 자랑하고 싶어 안달 날 텐데…… 말입니다.”
아직도 고영민은 자신이 블랙맨에게 습격당했을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그를 구해 줬던 강소의 목소리도.
그의 말에 강소는 고영민을 보았다.
“혹시 그때 일에 대해서 누구에게 말한 건…….”
“말해도, 누가 믿겠습니까?”
고영민의 대답에 강소는 피식 웃었다.
“저라도 안 믿을 것 같군요.”
그는 말을 이었다.
“사람마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다르겠지만, 저에게 있어 소중한 건 곁에 있는 사람들의 행복을 지켜 주는 것입니다.”
“그럼, 그걸로 만족하시는 겁니까?”
고영민의 물음에 강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루하루 제 주변 사람들의 행복한 일상을 지켜보는 것이 저에게 가장 큰 행복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강소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고, 그 미소에 고영민은 순간적으로 말문을 잃었다.
“…….”
사실 사람들의 행복한 일상을 보는 것이 점점 인간에게서 멀어지는 자신이 더는 인간에서 멀어지지 않게 해 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건 다른 이에게 말할 수 없는 것.
“그, 그렇군요.”
다시 말문을 되찾은 고영민이 말했다.
“그래도 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생각이 바뀌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강소는 빙긋 웃었다.
“순태와 안주인께서 오시는군요.”
그 말에 유순태는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딸랑.
곧 문이 열리고 유순태와 임소영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병원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고영민은 얼른 인사를 했고, 유순태와 임소영은 그에게 답을 했다.
“안녕하세요. 병원은 잘 다녀왔습니다. 아이는 아주 건강하다고 합니다.”
임소영이 말을 이었다.
“이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하네요.”
“다행입니다.”
고영민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절대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물론이죠. 무리하려고 해도 하영이 아빠나 다른 사람들이 워낙 극성이어서요. 호호호.”
고영민은 남은 커피를 마저 마셨고, 말을 이었다.
“오늘은 다름이 아니라, 유하영 양에게 괜찮은 드라마 제안이 들어와서 찾아왔습니다.”
“드라마요?”
“네. 퓨전 사극 미니시리즈인데, 대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랑의 조력자인 신비한 소녀 역할입니다.”
그리고 고영민은 가방에서 대본을 꺼내었다.
제목은 ‘그들의 청사초롱’ 이었다.
“흥미로운 제목입니다.”
강소의 말에 고영민이 대답했다.
“인기소설이 원작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느 정도 흥행은 보장된 드라마입니다.”
유순태가 말했다.
“그런데, 하영이가 금요일에는 스케줄이 있는데……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
고영민이 흔쾌히 대답했다.
“그 정도 사정은 다 알고 있으니, 그에 따라서 스케줄을 짜면 됩니다.”
“그럼 다행입니다.”
유순태가 말을 이었다.
“하영이에게 물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으로는 유하영 양은 이번 드라마를 촬영하겠다고 할 겁니다.”
“……?”
고영민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냐하면, 이번 배역이 공주님이거든요.”
.
.
.
그날 저녁.
스케줄을 마치고 돌아온 유하영은 유순태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이에요? 정말 공주님 역할이에요?”
“그래.”
“나 할래요! 나 공주님 하고 싶어요!”
오른손을 들고 열렬하게 외치는 그 모습에 유순태와 임소영은 물론이고 강소까지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딸랑.
최예진과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황진혁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저녁 영업 준비를 할 시간이었다.
* * *
저녁이었다.
블랙베어 길드의 상담실.
그곳에 심정필이 초조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내가 은탑의 제안을 거절했기 때문이겠지.’
그에게 중요한 건 블랙베어 길드였다. 죽은 이현성 대신 자신이 블랙베어 길드의 기둥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죽은 친구에 대한 예의이자, 의무이자,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을 아껴 주는 팀장님을 비롯한 길드원들을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솔직히 일 년에 10억이라는 지원이 어마어마하게 탐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때,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인자하게 생긴 한 중년의 여자였는데, 그는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어? 아, 안녕하십니까!”
그녀는 대격돌 당시 전사했던 전대 길드장의 부인이자, 길드원들이 큰 사모님이라 부르는 사람이었다.
“반가워요. 배연화라고 해요.”
“헌터 심정필입니다.”
“앉아요.”
그녀의 말에 심정필은 의자에 앉았고 배연화 역시 마주 앉았다.
“배고프죠?”
“아, 아닙니다!”
“양춘각 짜장면을 좋아한다면서요? 그래서 배달을 시켰어요. 같이 식사해도 되겠죠?”
“무, 물론입니다.”
“탕수육도 시켰어요. 물론, 중 자로요.”
“가, 감사합니다! 최고십니다!”
각성자들 중에서, 자연력을 바탕으로 하는 능력을 사용하는 각성자들과 힐러들은 항상 허기진 상태였다.
그에 대해 학자들은, 오러를 자연력이나 치유력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대사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식사가 올 때까지 잠깐 이야기를 나눌까요?”
“아, 네!”
그녀의 눈이 심정필의 왼손 손목의 팔찌에 닿았다. 그가 상담실에 들어오기 전부터 그 팔찌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은탑에서 심정필 헌터를 원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 팔찌, 아티펙트군요.”
“네. 맞아요.”
심정필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친구가 선물로 준 것입니다.”
그 이상은 말할 수 없었다. 그 팔찌의 정체에 대해서 비밀로 하라는 김명희의 협박 아닌 협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지 않아도 배연화는 그 팔찌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 팔찌의 원래 주인이었으니까.
무림에서 온 배달부 30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