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75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75화
* * *
“헉헉!”
의사의 숨결이 거칠어질수록 서준의 표정도 덩달아 어두워졌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던 생기.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그 생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힐끔.
수술방 밖을 바라봤다. 문으로 그 너머는 가려져 있지만 서준에게만큼은 장애 요소가 아니었다.
“여보, 흑흑흑!”
“미안해, 내가 미안해…….”
“우리 엄마 불쌍해서 어떡해! 흑흑흑! 나, 나…… 엄마한테 못한 말도 많은데 흑흑흑!”
“내가 미안하다. 내가 진짜…… 내가…… 내가 미안해.”
서준은 다시금 이진순을 내려다봤다. 이제는 그녀에게서 생기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기록해.”
집도의가 말하자 어시스턴트가 땀에 전 채로 기록지에 뭔가를 적어 내려갔다. 사망 시간을 쓰는 것이리라.
“후, 고생했다. 다른 선생님들도 고생했어요. 그리고…….”
집도의가 사망 선고 판정을 받은 이진순을 내려다보며 눈을 감았다.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그때였다.
삐!
“음?”
삐삐!
“모니터 고장 났어?”
“확인해 보겠습니다.”
삐삐삐삐-!
모니터의 그래프가 다시 완만한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에 집도의가 소리쳤다.
“모니터 얼른 확인해!”
“이상 없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집도의는 경악했다.
분명 환자는 죽었다.
심정지가 한 번만 온 게 아니라 두 번이나 왔었다. 거기에 노령이기까지 했다.
심정지 상태로 10분이나 지났었다.
그런데 갑자기 환자의 숨이 돌아왔다.
기적이라는 말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에 집도의가 어시스턴트와 간호사들에게 소리쳤다.
“마취과 오 선생님 다시 불러오고 모니터 잘 확인하고 있어요. 환자 상태 진정되면…….”
덥석!
집도의는 손목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고개를 돌렸다. 환자는 분명 마취된 상태였었다.
‘그런데 어떻게……?’
환자는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러더니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우물거렸다. 이윽고 환자의 메마른 입술이 열렸다.
“딸…… 제 딸…….”
“딸?”
“밖에 계신 따님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요.”
“아까 그분 말이지?”
“그런 것 같습니다.”
난감한 표정을 짓자 이진순이 온몸의 힘을 쥐어짜듯 힘겹게 말했다.
“딸…… 얼굴 좀 보게 해 주세요.”
“하지만 환자분. 환자분은 지금 심정지가 두 번이나…….”
“마지막이에요…….”
순간 집도의는 하얀 가운을 입은 지난날들을 떠올렸다.
하얀 가운을 입고 있다는 건 고욕이었다. 저승과 이승의 경계에 발을 걸치고 있는 것과 다름없으니 말이다.
집도의는 이따금 그 경계 속에서 기적을 마주하고는 했었다.
뇌사 판정의 청년이 깨어난다든가.
재활이 불가능한 환자가 멀쩡히 걷게 된다든가.
말기암 환자가 보란 듯 쾌차한다든가.
“죽음에 이른 환자가 눈을 뜬다든가…….”
“네?”
“성철아. 밖에 따님 모셔 와라.”
“하지만…….”
“괜찮으니 모셔 와.”
잠시 후, 눈물 자국이 선한 강민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어머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 봅니다.”
그렇게 말한 집도의는 다른 의료진들을 데리고 빠져나갔다.
이진순이 환히 웃었다.
“우리 딸 왔어?”
“나 알아봐? 엄마 나 알아보는 거지?”
“그럼…… 알아보지. 내가 어떻게 우리 딸 얼굴도 못 알아보겠어.”
“크흐흐흑!”
“울지 마. 왜 울고 그래.”
“엄마 미안해…… 엄마 요양원에 모시면 안 되는 거였는데…… 계속 센터에 계시게 했어야 된 건데…… 흑흑흑흑!”
“괜찮아. 이해해. 엄마는 다 이해해…… 그러니까 울지 마. 뚝.”
연신 훌쩍거리는 강민희에 이진순은 힘겹게 손을 들어 주머니를 뒤졌다. 그녀의 안주머니에서 뭔가가 나왔다.
찹쌀떡이었다.
“옛날에 너 찹쌀떡 주면 울다가도 뚝 그치고 그랬잖아. 그러니까 이제 안 울 거지?”
“엄마…… 흑흑흑.”
“울지 말래도.”
강민희가 울음을 점점 그치자 이진순이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예쁘다. 우리 딸…….”
“엄마도…… 엄마도 예뻐.”
“우리 딸 울지 말고 잘 지내야 돼. 그리고…….”
“…….”
“엄마 딸로 태어나 줘서 고마웠어. 모자란 엄마였는데 다음에 또 엄마 딸로 태어나면 그땐 더 잘해 줄게. 더…….”
“아냐. 엄마, 엄마 너무 잘해 줬어. 내가 고마워. 나중에 엄마 딸로 태어나면 내가 더 잘할게. 그리고 사랑해. 엄마, 엄마 진짜 너무너무 사랑해.”
이진순의 숨결이 점점 옅어져 갔다. 강민희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손도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이진순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내듯 입을 열었다.
“엄마도 사랑해 우리 딸…… 너무너무.”
“엄마! 흐흐흐흐흑!”
이진순이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창가에 닿았다. 창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고맙…… 습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
삐이이이이이!
* * *
“음?”
카달란이 눈을 치켜떴다.
그에 메루트스가 말했다.
“왜 그래?”
“못 느꼈어?”
“뭘?”
“방금 뭔가가 느껴졌던 것 같아서.”
메루트스가 피식 하고 웃었다.
“카달란, 너 이곳에 너무 오래 있었나 보다. 착각한 거겠지.”
“흐음…….”
“왜? 찝찝해?”
“방금 내가 느낀 게 착각이라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 테니까.”
“하여간 걱정도 많다.”
“인간들 속담에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잖아. 한번 확인 좀 해 줘.”
어깨를 으쓱거린 메루트스가 눈을 감았다. 곧 그녀의 몸에서 무형의 기운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
그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가 착각했나 보다. 아무것도 없어.”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 * *
과거에는 북촌한옥마을이라는 지명으로 더 자주 불렸던 곳에 대형 세단이 미끄러지듯 들어서고 있었다.
거침없이 도로를 내달리던 세단이 어느 순간 멈춰 섰다.
“이 앞으로는 더 이상 못 들어가겠는데요?”
황태수가 난감한 표정으로 내비게이션과 서준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그 앞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서준은 차 문을 열고 내렸다. 그러자 주춤거리던 황태수도 따라 내렸다.
“설마 들어가시려는 건 아니죠?”
“찾을 게 있다.”
“여긴 통제구역이라 민간인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데…… 저게 도처에 깔려 있어서 중앙 본부에서 바로 감지하거든요.”
황태수가 가로등과 전신줄 사이에 있는 CCTV와 열감지 장치를 가리켰다.
물론 황태수의 말처럼 서준에게 장애 요소는 못 된다.
퍼퍽-!
황태수가 말한 CCTV와 열감지 장치에서 연기가 치솟았다. 고장이 난 것이다.
“…….”
역시 괴물이 맞아.
황태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게 우연일 리는 없지 않은가.
“여기도 오랜만이긴 하군.”
회상에 잠긴 표정의 서준이 다 쓰러져 가는 한옥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과거 스쳐 지나갔던 인연들 중에 몇몇과 이곳에 왔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그녀들의 얼굴은 기억도 안 나고 이름만 간신히 기억하는 수준이지만 말이다.
서준이 안으로 들어갔다. 머뭇거리던 황태수는 에라, 모르겠다 하며 그를 뒤따랐다.
혼자 밖에서 기다리느니 괴물과 같이 있는 게 걸릴 가능성은 더 적어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은 긴장하면 말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황태수가 그랬다.
“혹시 여기 오신 목적이 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찾을 게 있어서. 근데 여긴 왜 통제하는 거지?”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뭐, 속설에는 옛날에 미국의 51구역 미스테리처럼 정부가 여기서 비밀 실험을 하고 있다는 말이 돌긴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실험실이 있기는 한 것 같습니다.”
“실험실?”
“예. 각성자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거나 몬스터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거치고는 위치가 영 좋지 않은 것 같은데.”
“과학자들이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실험하는 걸 선호했나 보죠.”
아차!
입을 틀어막은 황태수였지만 그의 말에 서준은 피식 웃고 있었다.
“일리가 있군.”
서준은 휴대전화를 꺼내 지도 앱을 켰다. 그러고는 익숙하게 번지수를 입력했다.
공교롭게도 바로 앞에 있는 한옥 건물이 그가 찾던 곳이었다.
굳이 텔레포트를 이용하지 않고 황태수의 차를 타고 온 건, 마침 그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차도 타 보고 싶었고.
안으로 들어가자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마루에는 먼지가 한가득 쌓여 있었고 몇몇 기와는 조각나 있었다.
흉가가 따로 없는 모습.
서준은 안으로 들어갔다.
삼자가 본다면 도둑질이라도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 만큼 거침없는 모습이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는 이진순의 기억을 더듬어 책상 서랍을 뒤졌다. 그 안에는 앨범 하나가 들어 있었다.
후-
입바람으로 먼지를 털어 낸 서준은 앨범을 펼쳤다.
“이거군.”
“예?”
“아니다. 이제 돌아가지.”
“벌써 말입니까?”
서준은 앨범을 들어 보였다.
“찾을 건 찾았으니까.”
도로 밖으로 나온 서준이 차에 오르자 황태수가 말했다.
“이제 가게로 가면 되죠? 아니면 또 들를 곳 있습니까?”
몇 시간 함께 있어서 그런 걸까?
황태수는 서준을 조금 편하게 생각하게 됐다. 자연히 말투에도 그게 묻어 나왔다.
“한성 장례식장.”
“예, 한성 장례식장이요?”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던 황태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형건이도 내가 이렇게 뺑뺑이 돌리면 X 같아 했으려나. 기분 X 같네. 내가 지 꼬봉도 아니고 시펄.’
“미안하군.”
“예?”
“꼬봉도 아닌데 부려 먹어서.”
“……!”
“얼른 가지.”
“예? 예예! 최대한 안전하고 신속하게 모시겠습니다!”
* * *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문 절차가 끝나자 이창현이 말했다.
“별말씀을요. 한데 이모님은 어디 계십니까?”
“하루 종일 울면서 빈소만 지키다가 지쳤는지 이제 막 잠들었습니다.”
“그렇군요.”
“한데 이분은…….”
이창현이 황태수를 바라봤다.
그에 황태수는 당황한 눈치로 말했다.
“아, 나도 생전 고인을 몇 번 뵌 적이 있었소.”
“장모님을요?”
“그…….”
말을 흐리던 황태수의 눈에 위패가 들어왔다.
“장모님이 교회 다니시지 않았나?”
“아, 그렇습니다만.”
“예전에 같은 교회를 다녔었소.”
이창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랬군요. 아무튼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커흠.”
서준은 사진 속 이진순을 바라봤다. 그녀는 환히 웃고 있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벌써 가시게요? 식사라도 하고 가시지 않고요.”
“아닙니다.”
“아무튼 와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서준은 인사를 마치고 부의까지 한 뒤에서야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단순히 조문만 하기 위해 장례식장을 찾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조문은 부가적인 목적에 불과했다.
스르르륵-
본체를 투명화시킨 서준은 다시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빈소 뒤쪽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강민희가 쪽잠을 자고 있었다.
“엄마,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
서준은 아까 한옥마을에서 가져온 앨범을 꺼내 강민희의 옆에 조심스레 놓았다.
본인의 생명이 다 꺼져 가는 시점에서도 이진순은 이걸로나마 딸이 본인을 기억해 줬으면 했다.
‘평온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