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mension merchant RAW novel - Chapter 173
차원상인 173화
“아까 말한 대로 저쪽 숲을 통과하면 데이토나 영지인가?”
“굳이 통과할 필요 없이 숲만 들어가면 됩니다.”
“그게 정말인가?”
고갯짓으로 답을 대신하는 그에 바딘 백작은 시선을 저 멀리 보이는 숲으로 향한다.
산 위에서 봤던 것과는 달리 제법 거리가 있는 것이 레조스 왕을 업은 채로 뛰어가다간 채 반도 못 가 잡힐 듯 싶다.
어찌하나 고민하던 그때 기사가 산 아래 쪽을 가리켰다.
“백작님! 저기 말이 있습니다.”
아까 자신을 쫓아 온 병사들 중에 몇몇이 말이 두고 간 듯 싶다.
‘말만 탈 수 있다면 적의 추격을 따돌리고 숲이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을 듯도 싶은데…….’
충분히 가능하다며 말을 하지만 문제는 주위에 쫙 깔린 병사들을 피해 어떻게 말이 있는 곳까지 가냐는 것이다.
현재 상황으로는 나서기만 해도 붙잡혀 죽을 듯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나, 그의 고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인근을 훑던 병사 중 하나가 그들을 보고는 소리쳤기 때문이었다.
“이쪽이다! 놈들이 여기 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뛰쳐나온 그들은 재빨리 산 밑으로 내려간다.
그것도 말이 있는 곳으로 말이다. 서로들 말은 안했지만 머릿속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어랏!”
달려드는 병사를 향해 곁에 있던 기사가 검을 휘둘러갔다.
시뻘건 핏물이 치솟아 그들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다.
그러는 과정에서도 그 누구 하나 발을 멈추는 이가 없었다.
다리를 세우는 순간 죽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잡아라! 잡아!”
점점 다가오는 병사들이 많아지자 기사 하나가 발걸음을 세웠다.
“여긴 제가 막을 터이니 가십시오! 어서!”
팔에 두르고 있던 천을 검을 쥔 손으로 둘둘 말아 묶고 다른 한손엔 창을 든채 병사들을 향해 뛰쳐나간다.
분명 얼마 못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바딘 백작을 열 걸음, 아니 한 걸음이라도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럴 이유는 충분했다.
“자식들아! 어디 한 번 놀아보자!”
기세등등하게 외치는 그의 목소리에 바딘 백작의 얼굴이 찡그려진다.
“젠장! 젠장! 젠장!”
초개같이 목숨을 던져가는 그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그 덕에 꾸역꾸역 살아남는 자신의 대해 자괴감에 절로 욕지거리가 쏟아진다.
물론 그들의 공을 잊지 않겠다고 연신 되뇌어보지만 그건 살아남은 뒤의 일이다.
붙잡혀 죽는다면 그마저도 개소리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럴까? 바닥을 차가는 발에 더욱더 힘이 실린다 싶더니 상상도 못할 빠르기로 어느새 산 밑에 도달했다.
“이, 이쪽입니다!”
퍼부어지는 화살세례를 가까스로 피한 그들은 서둘러 말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레조스 왕을 말 위에 얹은 기사는 바딘 백작이 오르기를 기다렸다 나뭇가지에 묶어둔 고삐를 풀어 건넸다.
“뭐하는가? 어서 타지 않고?”
“먼저 가십시오! 곧 가겠습니다.”
“자네…….”
순간 바딘 백작의 말문이 턱 막힌다.
기사가 보인 웃음이 뭘 의미하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남은 자네……마저도 갈 것인가?”
“아까 그놈과 한동네에서 태어나 같이 자랐습니다. 어차피 갈 저승길…… 홀로 가면 좀 외롭지 않겠습니까?”
두 눈을 질끈 감던 바딘 백작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간 정말 고마웠네!”
짧은 말이건만 기사에겐 더 없는 말인지 얼굴에 낀 웃음이 더욱더 짙어진다.
“저 또한 고마웠습니다, 백작님!”
이 말에 뭐라 하고 싶건만 말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내리치는 손길에 포기해야만 했다.
멀어져 가는 바딘 백작을 보던 기사는 검지를 들어 코끝을 만지작댔다.
“이놈의 콧물은 나이가 들어도 나온다니까…….”
애써 콧물 핑계를 대던 그는 어느새 주위 가득한 병사들을 보곤 검을 빼들었다.
“꽤나 많이도 왔다! 근데 어쩌냐, 너희 타고 갈 것은 없을 것 같은데…….”
피식 웃던 기사는 말의 다리를 향해 거침없이 검을 내리친다.
휘이잉! 휘잉!
투레질을 떨던 것도 잠시 바닥에 몸을 눕힌 말은 좀처럼 일어서질 못한다.
네 개 다리 중 두 개가 잘려나갔기 때문이었다.
삽시간에 말 여섯 마리를 베어낸 기사는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적들을 보았다.
“뛰어가려면 제법 힘들겠지?”
비아냥대던 그때 차가운 한기가 얼굴을 뒤덮는다 싶더니 창처럼 날카로운 얼음 덩어리가 기사의 미간 위로 틀어 박힌다.
힘없이 두 무릎을 꿇는다 싶더니 그대로 바닥에 몸을 끄러진다.
축 늘어진 그 위로 초췌한 낯빛을 한 아크리가 보였다.
왕도에 있는 게이트를 타는 것은 물론이고 워프 마법까지 총동원에 오느라 제법 힘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저거 바딘 백작 아니야? 이러다 데이토나 영지로 들어가는 것 아니야?”
빠르게 달려가는 바딘 백작이 탄 말을 보며 러프킨이 말을 한다.
근데 그게 화를 돋운 것인지 아크리의 고개가 홱 돌렸다.
“그딴 헛소리 집어치워!”
거칠게 토해내던 아크리는 지팡이를 들고는 외쳤다.
“아이스 스피어!”
지팡이에 달린 마석 위로 마나의 기운이 풍긴다 싶더니 주위에 얼음으로 된 기다란 창들이 나타나 그대로 쏘아져 나간다.
순식간이란 말이 딱 맞을 정도로 빠르게 거리를 좁혀드는 그것에 바딘 백작은 황급히 말머리를 틀었다.
쾅! 콰쾅!
폭음과 함께 흙먼지가 허공으로 치솟는다.
피했다, 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때 등 뒤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설마…….’
돌려진 시선 너머 뿌연 흙먼지를 뚫고 얼음 창 두 개가 날아드는 것이 보였다.
황급히 말머리를 틀어보지만 피하기엔 이미 때가 많이 늦은 것 같았다.
“커어헉!”
등줄기로 파고는 싸늘한 한기와 더불어 극심한 고통이 밀려든다.
그뿐만이 아니다. 뒤이어 배에 얼음 창이 꽂힌 말은 그대로 땅에 고개를 처박았고 그로 인해 허공에 뜬 바딘 백작과 레조스 왕은 그대로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쿨럭! 컥컥!”
핏물을 토해내던 바딘 백작은 흐릿해져가는 정신 줄을 겨우 쥔 채 주위를 살펴갔다.
“구……국왕…… 폐하!”
제대로 몸도 못 가누는 가운데서도 레조스 왕을 찾으려 애를 썼다.
그러던 중 왼쪽에 축 늘어진 그가 바딘 백작의 눈에 들어왔다.
후들거리는 팔을 부여 쥔 채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다.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 엎어지길 몇 차례 거듭하고 나서야 겨우 곁으로 다가설 수 있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국왕 폐하!”
몸을 만져가던 바딘 백작의 이맛살이 사정없이 좁혀 들었다. 손바닥 안으로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황급히 코밑에 검지를 대보고, 가슴에 귀를 대보는 등 살펴보지만 이미 생기는 사라진 지 오래인 것 같았다.
“구, 국왕 폐하!”
터져 나오는 눈물에 어쩔 줄 모르던 그때 큰 걸음으로 사십 여보 쯤 되는 거리에 일련의 병사들이 늘어선 것이 보였다.
“이곳은 제국의 보호를 받는 곳이다. 더 이상 다가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니 그리 알라!”
‘제국? 그럼, 저 앞이 데이토나 영지?’
릭 캐슬이 있는 곳에 가면 어떻게든 살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바딘 백작은 레조스 왕을 품에 안고 일어섰다.
“리……릭 캐슬 후작을 만나야 하오!”
“다가오지 마라!”
“그를 만나야 한단 말이오!”
“더 이상 다가오면 화살을 쏘겠다.”
거듭되는 제국 병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바딘 백작은 계속해서 다가섰다.
이것을 지켜보던 로자이어 기사는 더는 안 되겠다 싶은 생각에 손을 들어 올렸다.
“화살을 쏴서 맞혀라!”
끄덕이던 궁사 둘이 활을 치켜들고 시위에 화살을 메긴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힘겹게 한 발 한 발 내딛던 바딘 백작의 몸이 한순간 휘청대다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
“릭……릭 캐슬에게…… 가야…….”
가슴과 어깨에 화살을 박은 채 이 말만 내뱉던 그때, 희미해져가는 시야 속으로 뭔가가 들어왔다.
“왕은 죽었는데…….”
“그래? 아깝네. 이쪽 아직 살아 있는데 말이야.”
“아직도 살아있어? 거참! 끈질기네.”
놀랍다는 듯 내뱉는 이 사람들이 바로 아크네와 함께 바딘 백작과 레조스 왕을 찾으러 온 텐진과 러프킨이었다.
멀리서 지켜보다 죽은 것 같아 시신을 찾으러 온 것이었다.
감탄을 마지않던 그때 제국 병사들에게서 거친 일갈이 들려온다.
“이곳은 제국의 보호를 받는 곳이다. 더 이상 다가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니 그리 알라!”
“잠깐만! 난 이들을 수습해 가려고 왔으니 공격은 잠시만 중단해 줘! 알았지?”
“더 이상은 경고는 없다! 어서 물러서라!”
“알았어! 알았으니깐 잠깐만 시간을 줘!”
화를 식이라는 듯 연신 손을 위아래로 흔들던 러프킨은 텐진과 같이 바딘 백작을 들어 어깨에 맸다.
“체구는 작은 게 뭘 이리 무거워?”
온갖 불평불만을 토해내며 텐진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신을 메고 삼십 여보쯤 갔을까? 돌연 허공에서 아크리가 떨어져 내렸다.
“테온 님에게서 명이 내려왔다!”
“아니, 이곳에 보낸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어딜 가라는 거야?”
짜증이 가득한 그의 말도 곧이어 들려온 말에 쏙 들어가고 만다.
“백합 화살촉이다!”
“백합 화살……촉?”
“그렇다.”
순간 러프킨의 미간이 사정없이 일그러진다.
백합 화살촉은 작전명 중 하나로 작전 내용은 황급히 성국으로 피신하라는 것이다.
텐진도 그게 무엇인지 떠올렸는지 들고 있던 레조스 왕을 내려놓고 물었다.
“확실히 백합 화살촉 맞아?”
“긴급 통신구로 날아왔다.”
긴급 통신구는 테온이 성국에서 파견인들에게 준 것으로 어떤 내용이 날아오든 무조건 행하도록 되어있다.
심각한 표정으로 둘을 둘러보던 러프킨이 물었다.
“어떻게 하지?”
“지금 즉시 이곳을 이탈해 피신한다.”
“그럼, 이 시신들은?”
“레조스 왕은 죽었으니 놔두고 아직 숨이 붙은 바딘 백작만 데려가도록 하지.”
좋다는 듯 끄덕이던 러프킨은 아크리가 뻗은 손을 잡았다.
뒤이어 텐진도 잡자 주문이 영창이 되며 주위가 빛으로 물든다.
“워프!”
‡ ‡ ‡
“아아악! 너희가 어찌…….”
전신에 꽂혀든 검날에 아이언 트웰브 기사단 충신 기사는 이내 고개를 숙였다.
이는 옆에 있었던 다른 기사 아니, 왕성 안팎에 대기하고 있던 아이언 트웰브 기사단 출신 기사들 모두 옆에 있던 병사들의 검에 맞아 죽었다.
간혹 눈치채고 싸우려 하는 자도 있기는 했지만 해일처럼 밀려드는 병사들에 목숨줄을 놓아야만 했다.
그렇게 또 한 번 왕도는 핏물 속에 잠겨가기 시작했다.
‡ ‡ ‡
“테……테온 님!”
방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사내의 모습에 테온의 눈매가 좁혀든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리 시끄러운 겁니까?”
“조바오니 왕이…… 눈치챘습니다.”
“조바오니 왕이 눈치를 채?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